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당사운의 몸을 중심으로 모든 방향을 향해 섬광이 뻗어 나온 순간, 고도로 집중된 장건의 의식이 시간을 잘게 자르고 잘라 모든 순간을 길쭉하게 늘여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느려진 시간 속에서 당사운의 갑옷은 마치 혼자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렸다. 그 갑옷에 곤두서 붙어있던 쇠 비늘들은 새의 깃털처럼 파르르 떨다가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용수철에 밀리기라도 한 것처럼 고정되어 있던 사슬을 벗어나 앞으로 쭉 뻗어 나갔다.
갑옷을 벗어나 허공을 가르는 암기들은 별별 종류가 다 있었다. 쇠바늘처럼 단순한 것은 물론이고 세 개의 날을 가지고 핑그르르 회전하는 칼날이나 비검, 단도, 쇠 깃털, 둥근 원형 칼날, 조그만 쇠공에 고슴도치처럼 쇠바늘을 박은 암기 등등. 한 뼘 안쪽 길이의 온갖 암기들이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은 채 사방으로 쏘아졌다.
그 칼날의 파도와 제일 먼저 만난 것은 당사운을 향해 치켜들고 있던 장건이었다. 제일 빠르게 허공을 가르던 비검들이 그와 가까워졌다.
칼날은 장건과 가까워지자 진동하는 그의 호신기와 만나 위이잉 떨리며 나아가는 힘을 잃고 느려져 갔다. 비검의 뒤를 이어 날아든 쇠바늘이나 단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것들은 도리어 앞으로 나아가는 장건의 움직임에 따라 뒤로 밀려나기까지 했다.
그때 먼저 쏘아지던 암기들 뒤로 새로운 암기가 발사되었다. 당사운의 갑옷이 이번에 토해낸 것은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조그만 쇳조각이었다. 먼저 쏘아진 암기들보다 배는 빠르게 날아간 쇳조각들은 한순간에 다른 암기들을 따라잡았다.
그리고 장건에게 이른 쇳조각들이 아직 허공에 떠 있던 암기들과 충돌해 그것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장건의 호신기에 멈췄던 암기들은 그렇게 새로운 동력을 얻고 다시 한번 장건의 몸을 향해 치켜들었다. 수많은 칼날이 장건의 진동호신기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 공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반 뼘 정도 더 장건에게 가까워졌을 뿐이다. 아직 암기와 장건의 살갗 사이에는 한 뼘은 될 공간이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던 암기들이 다시 장건의 움직임을 따라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당사운이 두 팔을 들어 장건을 향해 뻗었다. 느려진 장건의 시간 속에서도 충분히 빠른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그 팔이 쭉 뻗어진 순간 갑옷의 마지막 암기가 발사되었다.
당사운의 양팔에서 다시 한번 손가락 한 마디 쇳조각들이 쏘아졌다. 그것들은 마구 날아와 호신기에 가로막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멈춰있던 다른 암기들의 등을 때려 그것들에 다시 한번 앞으로 쏘아질 동력을 선사했다.
결국 당사운의 칼날들은 장건의 진동호신기를 뚫고 뚫어 그의 살갗 가까이 닿아갔다. 비검의 칼날이 예리하게 번쩍이고, 당사운의 눈은 섬뜩하게 커지며 번들거렸다.
한없이 잘게 쪼개진 시간과 시야 속에서, 장건은 진동호신기가 아직 미완의 무공임을 실감했다. 아직 보강하고 다듬어야 할 구석이 많은 듯했다. 하지만 당사운을 당혹시키고 또 그가 가진 비장의 수를 당장에 꺼내 들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선 나쁘지 않은 시도였다.
그의 상념이 이어지는 동안 호신기를 뚫고 날아온 비검의 칼날이 장건의 옷깃과 만나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장건은 호신기를 일으키던 단전을 가라앉히며 오른쪽 허리춤으로 당겨 붙였던 청룡을 출격시켰다.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던 몸을 쑥 뒤로 당기며 비검과의 공간을 벌렸다. 그리고 그 벌어진 공간 속에서 청룡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청룡의 시퍼렇다 못 해 창백한 칼날이 노란 석양과 탑의 그림자로 얼룩덜룩한 공간을 거침없이 갈라버리며 자기 색으로 세상을 물들였다. 그 청백색 덧칠에 당사운이 쏘아낸 비검과 단도, 칼날들과 쇠 탄환은 자기 색을 잃고 지워졌다.
장건의 과열된 의식으로 느려진 시간은 그대로였다. 그러나 그 시간을 보는 장건은 본인은 그런 느려짐에 묶이지 않았다는 듯, 도리어 평소보다 배는 더 빠르게 움직였다.
청룡이라는 붓은 그렇게 장건의 인도에 따라 장건을 향하던 모든 칼날을 지워버리고 그 공간에 얼핏 푸른빛이 도는 하얀빛만 남겼다. 그것은 벽 같기도, 혹은 어떤 폭발 같기도 했다.
그 청백색의 춤은 당사운의 눈에도 들어왔다. 장건과 비슷한 시간을 보고 있던 당사운은 자신의 정면을 가득 채우는 빛의 폭발에 두 눈을 멍하니 떴다. 그건 눈앞에 보이는 빛의 그림을 보고 감탄함과 동시에 그걸 어떻게 막아내야 하는가 하는 절망감이 섞여 표현된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의 시간이 되돌아왔다.
청룡의 반사광은 한순간 반짝이고 사라졌다. 동시에 청룡의 칼날에 밀려났던 공기는 빛이 사라짐과 함께 제자리로 되돌아오며 쾅-하는 소음을 터뜨렸다. 그 충격파는 모두 정면으로 투사되었다.
당사운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뒤로 튕겨 나갔다. 그가 허공을 날아가며 들은 소리는 복합적이었다. 먼저 장건의 청룡벽靑龍壁이 만든 굉음이 있었고, 그의 당가기갑唐家奇鉀이 쏘아낸 암기들이 무림맹의 흙바닥과 담벼락, 전각, 그리고 마인과 무사를 가리지 않고 꿰뚫고 틀어박히며 난 소음이 있었다.
훌쩍 날아가 바닥에 등을 처박을 때쯤엔 무림맹 무사들의 뒤늦은 비명이 있었다.
“끄억!”
“어흑! 이, 이게 무슨···!”
“아악! 내, 내 눈-!”
데구르르 굴러 한쪽 담벼락에 몸을 처박은 당사운은 생각했다. 무림맹 무사들의 피해가 원했던 것보다 적다고.
지금 그의 임무는 남궁천과 혁련위진의 죽음이었다. 당장 눈앞의 장건을 꺾을 수 없다면 그 목표라도 이뤄야 했다. 그래서 길게 끌 것 없이 당가기갑을 꺼냈고, 폭발시켰다. 당 씨 가문과 마궁의 백 년의 역사가 이 갑옷, 더불어 조금 전 천추열산공天追裂散功에 담겨 있었다. 그것은 미래에 한 제국과의 전쟁에서 숫자의 열세를 이겨내게 해 줄 신무기이자 신공이었다.
하지만 암기들이 넓게 퍼지기 전 제일 가까이 있던 장건에게 많은 암기가 가로막혔고, 그 후 이어진 충격파에도 무수한 칼날이 힘을 잃었다. 결국 무림맹 무사들을 향해 날아간 것은 본래의 삼분지 일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무림맹 무사들은 그것만으로도 꽤 많은 이들이 다쳐 비명을 질렀다.
당사운은 귀가 먹먹한 와중에도 얼른 몸을 일으켰다. 자신이 장건이라면 무사들의 비명 따위에 멈추지 않고 공격할 것이다.
그의 생각대로 장건은 여기저기 나뒹구는 암기들을 지르밟으며 당사운에게 달렸다. 다른 무인이었다면 잠시 시간을 주고 바로 설 시간을 주었을 수도 있었지만, 당사운은 암기와 독을 쓰는 자였다. 이미 터진 것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그가 다시 무사들을 향해 암기를 쏘아대는 건 막을 생각이었다.
비척거리며 일어난 당사운의 양팔이 다시 한번 장건을 겨눴다. 장건은 그걸 보고도 정면으로 치켜드는 걸 멈추지 않았다. 조금 전 수백 발 암기를 쏘아내고도 아직 남아 있는 철편들이 당사운의 팔뚝에서 다르륵 소리를 내며 꿈틀거렸다.
그 소음 후에는 퓨뷰뷱,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철편들이 발사되었다. 장건은 멈추지 않고 달리며 청룡을 들고 날아오는 철편을 막았다. 쏘아진 철편과 청룡의 칼날이 만나 티티티팅 하는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사운은 쏘아진 암기를 모조리 튕겨내며 순식간에 가까워진 장건의 얼굴을 보고 울컥 볼을 부풀렸다. 그걸 본 장건이 본능적으로 호흡을 멈춘 순간, 당사운의 입에서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청룡을 휘둘러 막기에 너무 가깝고, 또 암기와 달리 튕겨 막아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장건은 그대로 밀고 들어가 검은 연기를 꿰뚫고 청룡을 휘둘렀다. 시퍼런 칼날이 담장을 갈랐다.
“큽!”
당사운은 옆으로 몸을 굴려 겨우 치명상을 피했다. 청룡에게 베이며 찢어진 갑옷의 사슬이 차르르, 하는 소음을 내며 흩뿌려졌다. 갑옷이 찢겨나간 왼 어깨에선 이미 피가 철철 흘렀다.
데구르르 바닥을 구른 당사운은 곧바로 몸을 일으켜 세우며 오른손으로 허리춤을 훑었다. 그리고 손에 붙잡히는 대로 암기를 던졌다.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비검들이 쒜쒝 공기를 가르며 장건에게 날아들었다.
장건은 독안개로 피부가 따끔거리는 와중에도 날아드는 비검을 정확히 바라보고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튕겨버렸다. 이어서 뒤로 물러나는 당사운을 곧장 따라붙었다.
당사운은 계속 뒷걸음질 치며 온전한 오른손으로 계속 암기를 던졌다. 비검처럼 직선으로 날아오는 것도 있었고, 얇은 칼날 날개를 달아 허공의 바람을 타며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는 암기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태극권과 기감으로 공기의 흐름을 느끼는 장건에겐 소용없었다.
결국 아주 잠깐만에 장건은 당사운을 따라잡았다. 당사운의 갑옷에는 이제 철면이 보이지 않았다. 방금 장건에게 쏘아낸 것이 마지막인 듯했다. 그래서인지 당사운은 장건이 훌쩍 가까워지자 조그만 주머니들을 끌러 그 안에 든 모래를 휙 흩뿌렸다.
장건은 다시 한번 호흡을 참으며 눈을 감고 모래를 뚫고 지났다. 그리고 눈을 감은 그대로 당사운을 향해 청룡을 휘둘렀다.
“윽!”
횡을 그린 칼날에 당사운의 복부가 갈라졌다. 갑옷 때문에 허리를 완전히 잘라버리진 못했다. 장건은 눈은 감은 채 다른 감각만으로 그걸 느끼고 칼을 잡고 있던 왼손을 들었다. 한순간에 흐른 삼매진화가 그의 왼팔을 타고 흘렀다.
그리고 그가 항룡장을 내지른 순간, 이를 악물고 피를 흘리던 당사운 또한 그 손을 향해 마주 손바닥을 내질렀다.
손바닥과 손바닥이 부딪쳐 쿵-하는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장건의 삼매진화가 당사운의 내부를 태워버리며 파고들었다. 당사운은 이번에도 비명 한 번 제대로 지르지 못했고, 그의 오른팔은 뒤로 휙 튕겨 나갔다. 그의 몸이 튕겨 나는 오른팔에 이끌려 옆으로 돌았다.
그대로 쓰러질 법도 한데 당사운은 뒤로 꺾이는 허리를 있는 힘껏 앞으로 끌어당기며 장건을 향해 이빨을 드러낸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 이 사이에 길쭉한 쇠침이 물려 있었다.
여전히 눈을 감고 호흡을 멈춘 장건은 몸을 훌쩍 낮추는 것으로 쇠침을 피하고, 청룡의 손잡이 끝으로 바짝 달라붙은 당사운의 턱을 올려 찍었다. 그 충격에 물려 있던 쇠침이 뚝 끊어지고 으드득 이빨이 부서졌다.
턱을 맞은 당사운의 눈이 흐릿하게 풀렸다. 하지만 그 혼미한 와중에도 그의 왼발이 툭 바닥을 찍었다. 그러자 그 신코에서 조그만 칼날이 솟았다. 당사운은 뒤로 쓰러지는 와중에도 발을 들어 그 칼날로 휙 장건의 얼굴을 노렸다.
끝끝내 장건의 턱 끝에 칼날이 스쳤다. 말 그대로 스친 정도라 희미한 핏방울만 송골송골 맺혔다. 대신 당사운은 왼 다리가 허벅지부터 잘려나갔다.
다리 한쪽마저 잘려나간 당사운이 풀썩 바닥에 쓰러지고, 그 다리를 베어낸 장건은 눈을 감고 칼을 휘두른 자세 그대로 멈췄다.
두 사람의 움직임이 멈추자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졌다.
비명을 지르던 무림맹 무사들과 역시 무차별적인 암기 공격에 노출되었던 마인들 모두 두 사람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멈춰있던 장건이 스르륵 눈을 떴다. 당사운은 만신창이가 되어 바닥에 쓰러진 채 쿨럭쿨럭 피를 토하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피를 토하며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한 와중에도 장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뭔가 기다린다는 것처럼.
그리고 눈을 떴던 장건은 그 시선을 착 가라앉은 시선으로 마주 보다가, 왈칵 입가에서 검은 피를 흘렸다.
그는 그렇게 죽은 피를 흘리며 말했다.
“···꽤 독하군, 이거.”
“커흑, 컥···! 꽤, 꽤 독해? 죽을 것 같은 것도 아니고··· 꽤? 하하···”
바닥에 쓰러진 당사운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툴툴 웃었다.
입으로 뿜은 독 연기, 마구잡이로 흩뿌린 듯하지만 나름의 규칙이 있던 독 모래, 마주한 손바닥에 담았던 독장毒掌, 마지막으로 장건의 턱을 스친 칼날에 묻어 있던 극독 추혼독追魂毒까지.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여태 당사운이 쏘아낸 모든 암기에도 독이 묻어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격파하고 그를 난자한 장건은 입가에 피를 흘리긴 하지만 크게 다친 것 같진 않았다. 다리까지 잘려 나간 당사운 입장에선 황당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미 삼매진화의 요체를 터득한 장건에게 외부에서 들어오는 독기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론 그게 아프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다. 몸 안에 들어온 독기를 삼매진화로 태워버리는 것은 달군 쇠침으로 몸을 찌르는 듯한 고통이 있었다. 마지막 턱을 통해 들어온 독은 곧장 뇌로 올라가려 해 상당히 위험하기도 했고.
장건은 오늘이 마무리되면 며칠 쉬면서 몸을 요양해야 함을 느꼈다. 어쨌든 서 있는 것은 그였고, 사지가 엉망이 되어 바닥에 쓰러진 것은 당사운이었다.
장건의 승리였다.
“···엉망이군. 제기랄···”
당사운은 허탈하다는 듯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장건은 곧바로 그에게 다가가 청룡을 치켜들었다. 당사운은 그 두말할 것도 없다는 장건의 태도가 참 대단하다는 듯 다시 허헛 웃었다.
칼날이 웃고 있는 그의 목을 베었다. 잘려 나간 머리가 데굴, 굴렀다.
당사운을 마무리한 장건은 휙 청룡을 털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마인들과 시선을 마주할 수 있었다. 마인들은 암기에 다쳐 쓰러지거나 무력화된 무림맹 무사들과는 다르게 일단 일어선 자들은 대부분 멀쩡해 보였다. 그들은 암기가 박혀도 마공의 힘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장건은 마인들 너머 복잡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멀쩡한 맹주와 그 뒤에 남궁천, 그리고 구석에 찌그러진 양굉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눈을 내려 다시 마인들과 눈을 마주했다.
“마무리할 시간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