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거리로 뛰쳐나온 세작은 사람들 틈을 헤집으며 달려 나갔다. 그의 손에 밀려 자빠지는 사람들이나 쓰러지는 가판도 있었다.
“이봐! 뭐 하는 거야!”
“어이쿠!”
넘어진 사람들과 가판이 엉망이 된 상인들이 욕을 하고 비명을 질렀지만 세작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뒤에서 쫓아올 적들이 곤란해지도록 거리를 더 엉망으로 만들려 들었다. 하지만 그런 질주는 얼마 가지 않았다. 흘끗 뒤를 돌아본 세작이 슬그머니 뜀박질을 멈춘 것이다. 정작 상회에서 쫓아 나와야 할 적들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뭐지?”
그는 살짝 당황했다. 설마 추적은 아예 포기하고 거점에 남아있을 서류만 노리는 것일까? 물론 거기에 다양한 정보가 있긴 했지만 진짜 중요한 내용은 세작의 머릿속에 들어있었다. 당연히 그를 잡아서 정보를 뽑아내는 게 종이 쪼가리 뒤지는 것보다 효율적이었다.
세작은 문득 위로 고개를 들었다. 쨍한 햇살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가운데, 그 태양을 등지고 지붕을 달리는 장건의 모습이 보였다.
“이런 시발!”
욕설을 내뱉은 세작은 당장에 가까이 보이는 상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가 안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지붕에서 뛰어내린 장건이 바닥에 착 내려앉았다. 장건은 곧바로 세작을 따라 상회 안으로 달렸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망치를 가볍게 받아들었다. 뒤이어 톱과 끌 등이 더 날아왔지만 장건은 아무렇지 않게 그걸 받아서 툭툭 바닥에 내려놓았다.
상회의 물건을 던지던 세작은 그런 장건을 보고 잠시 얼이 빠졌다.
“···시발.”
작은 손도끼를 바닥에 툭 던지는 장건과 세작의 눈이 마주쳤다. 세작은 그 눈을 보며 잘못 걸렸음을 느꼈다.
“···제가의 머저리 중에 너 같은 놈은 없었는데.”
“내 성씨는 장이다.”
“장? 장 씨? 설마 장건?”
세작의 얼굴에 놀라움이, 이어서 진짜 엿 됐다는 감정이 떠올랐다.
“날 아나?”
“지금 신사천에서 누가 널 몰라?”
세작은 장건의 질문에 그렇게 쏘아붙이고는 들고 있던 망치를 휙 던졌다. 하지만 이번엔 장건을 향한 게 아니었다. 그 망치는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장건과 세작을 바라보고 있던 상회 점원을 향해 날아갔다. 점원은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물론 망치는 점원을 때리지 못했다. 어느새 다가온 장건이 대신 붙잡은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에 세작은 상회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장건은 그 망치를 점원 손에 쥐여주고 그 뒤를 따라 나갔다.
밖으로 나오니 골목길 저편으로 달려가는 세작의 등이 보였다. 더 길게 끌어봐야 자꾸 난동에 휩쓸리는 사람들만 더 나올 판이라 장건은 곧장 그 등을 쫓아 달렸다.
두 사람 사이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세작이 느린 것은 아니었지만, 장건의 속도는 그 몇 배는 되었다.
장건이 오른손을 허리춤으로 끌어당겼다. 그대로 세작의 등짝을 후려치기 위해서였다. 심문을 위해 죽이진 않겠지만 그래도 더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그때 세작이 갑작스럽게 몸을 반전시켰다. 동시에 그의 손에서 표창이 쏟아져 나왔다. 표창 수십 개가 빠르게 회전하며 다양한 궤적을 그렸다.
“뒈져!”
세작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그렇게 외쳤다. 하지만 곧 그 찌푸림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 날아간 표창들이 장건의 몸에 틀어박히기는커녕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듯 허공에서 멈춘 것이다.
“···뭐야, 시발.”
그가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 허공에 멈췄던 표창들이 투두둑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 너머에 있던 장건은 뚜벅뚜벅 걸어서 세작에게 다가왔다. 세작은 입을 헤 벌린 채 말했다.
“···시발, 이렇게 되는 게 당연했는데···”
“이렇게?”
장건이 그렇게 되묻는 순간, 그 세작의 입에서 뭔가 반짝하고 튀어나왔다. 그 반짝이는 궤적은 장건의 이마와 직선을 그렸다.
하지만 이미 암기술의 고수와 싸워보고 익숙해져 있던 장건은 허공에서 가볍게 그것을 붙잡았다. 그것은 거의 머리카락 정도로 아주 가느다란 바늘이었다. 장건은 그게 가주 시신에서 찾았던 바늘이 구겨지기 전의 모습이라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쿨럭···”
그렇게 장건이 바늘을 붙잡고 살피던 순간 세작은 갑작스레 왈칵 피를 토하며 주저앉았다. 그걸 본 장건은 재빨리 그의 몸으로 손을 뻗었다. 세작이 발각되는 순간 자결용 독을 삼키는 건 뻔한 일이었다.
“헤, 헤헤··· 이미 늦었다···”
그런 장건을 보며 세작은 실실 쪼갰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몸 상태는 그렇게 말할 만했다. 이미 독이 전신에 퍼져 거의 다 죽어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도주를 시작할 때 이미 독을 삼켰군. 독이 퍼질 시간을 벌려 도망치던 거였나?”
골목길 담벼락에 등을 기대앉은 세작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어서 다시 한번 울컥 피를 토했다. 그의 안색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이렇게 될 것 같았지··· 엿 같은 제가놈들···”
장건은 그의 몸에서 손을 뗐다. 이런 상태면 그의 능력으로는 살릴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질문을 했다.
“네가 제궁월 가주를 죽였나?”
“헤헤··· 그걸 묻는다고? 그럼 넌 나하고 계약한 쪽은 아니군··· 그래, 내가 죽였다. 가부좌 틀고 앉아있는 그 양반한테 다가가서 바늘로 푹. 참 허망하지? 거대한 가문의 주인이 그렇게 간단하게 가다니···”
“그냥 너 혼자 그렇게 들어가서 한 것은 아닐 테고. 누가 도와줬나?”
세작은 피식 웃었다.
“제기랄··· 내 머릿속에 든 정보가 얼마나 많은데 그딴 거나 묻는 거야? 내가 그걸 말해주겠어? 이제 제가놈들이 서로를 의심하며 자기들끼리 박 터지게 싸울 텐데··· 생각해보니 이렇게 죽어서 완성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공작이군···”
그는 말을 이어가며 천천히 고개를 떨구더니, 곧 움직임이 멎었다. 턱을 만지작거리며 그를 바라보던 장건은 그의 숨이 멎은 것을 보고는 일어섰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넓은 신사천 대로와는 다르게 건물과 건물, 담벼락과 담벼락 사이의 골목은 하늘이 좁았다. 그 좁은 하늘 아래로 내려오면 하루 중 대부분이 응달이 지는 어둑함과 사람들이 버린 오물과 쓰레기 등으로 축축한 공간이 나온다. 대로의 밝은 모습과 대비되는 컴컴한 골목길.
그리고 이제 거기 시체 하나가 추가된 것이다. 장건은 이름도 모르는.
잠시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던 장건은 시체를 두고 몸을 돌렸다. 증인이 죽었으니 이제 그 거점에 쓸만한 정보가 남아있기를 바라야 했다.
* * *
장건이 처음의 상회로 돌아왔을 때, 거긴 섬지영과 용 무사, 제규상 말고도 익숙한 얼굴 하나가 끼어있었다. 그는 섬지영을 앞에 두고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상회 안으로 들어서는 장건을 보고는 깜짝 놀라서 외쳤다.
“장 무사! 여기서 또 보내요? 아직 신사천에 있었습니까?”
그는 무림맹 순찰대 산호였다. 장건은 그에게 눈인사하면서도 자연스레 다른 얼굴을 찾았다. 그걸 본 산호가 웃었다.
“적 선배는 맹에 있습니다. 순찰대 부대주로 승진해서 지금 엄청 바빠요. 알죠? 지금 무림맹 바쁜 거.”
“여긴 왜 왔소?”
“어? 바로 본론입니까?”
산호는 허허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당연히 소란이 벌어졌으니 왔죠. 순찰대는 신사천에 머무는 동안엔 이런 치안 업무를 봅니다. 거리를 순찰하다가 무슨 문제가 생기면 달려와서 해결하는 것이죠. 그래, 이 상회 행수가 수상한 놈이었다면서요? 잡았습니까?”
“죽었소.”
“···예?”
장건은 담담하게 말했다.
“혼자 독을 삼키고 죽었소. 골목길에 그 시체가 있을 것이오.”
산호는 대번에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부여잡았다. 장건은 그런 산호를 두고 섬지영에게 고개를 돌렸다.
“뭐 좀 찾았소?”
섬지영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증거로 충분한 서류를 찾았어요. 이걸 상천 오라버니에게 보여주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
그녀는 종이봉투만 슬쩍 보여주었다. 옆에 있는 산호 때문에 자세히 말하지는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장건은 그녀의 표정에서 수상한 점을 느꼈다. 상황을 뒤집을 증거를 찾았으면 기뻐할 만한데, 그 표정이 너무 굳어있었다.
그때 산호가 말했다.
“정말 죄송하지만, 여러분 모두 잠깐 맹으로 오셔야겠습니다. 죽은 자가 나왔다면 어쩔 수 없어요.”
얼굴을 굳히고 있던 섬지영은 깜짝 놀라서 말했다.
“무슨 말이죠? 아까 설명했잖아요. 이건 가문끼리의 일이라고요. 언제부터 무림맹이 고대 세가 사이의 싸움에 끼어들었죠?”
“아, 물론 그동안 맹에 고대 세가 사이의 싸움은 묵시하는 관례가 있었죠. 외부인을 건들지만 않으면 굳이 끼어들려 하지 않았고요. 하지만 지금은 그게 좀 힘들게 되었습니다.”
“힘들다니요? 왜요?”
산호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지금 무림맹 꼭대기엔 유설 공주님이 계시거든요. 저 혼자 관례라는 이름으로 그냥 보내드리긴 어렵겠습니다.”
“···그럼 우리에게 죄를 묻겠다고요?”
“아, 아뇨. 그렇게까진 아닙니다. 그냥 와서 제 상관한테 사정을 설명해주셔야 한다는 거죠. 얼마 안 걸릴 겁니다.”
섬지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시간을 끌면 외당주 제용월이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어서 가문으로 돌아가 그를 잡아야 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오. 정말 확실한 증거가 나온 것이라면 이제 외당주라는 자가 할 수 있는 수는 몇 없소. 오히려 너무 급하게 몰아치면 앞뒤 생각않는 과격한 방식으로 나올 수도 있지. 가주가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 동생까지 죽는다면 가문에 좋을 것 하나 없지 않겠소?]갑자기 귓가에 울린 장건의 목소리에 섬지영의 눈이 그를 향했다. 잠시 그렇게 장건을 바라보던 그녀는 곧 종이봉투를 품에 집어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어서 가죠.”
“예? 아, 가시겠습니까? 그럼 바로 이동하시죠.”
산호는 다른 점원들에게 상황을 듣던 다른 무림맹 무사들에게 이곳 상회의 정리와 장건이 말한 골목길 시체의 처리를 맡겼다. 그리고는 앞장서서 무림맹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를 섬지영과 그녀의 무사들, 여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제규상, 그리고 제일 뒤에서 장건이 따랐다.
장건은 그렇게 제일 뒤에서 묘한 눈으로 섬지영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얼마 후 앞장서는 산호를 따라 일행은 무림맹 대문을 넘을 수 있었다. 지난날 봉쇄되었던 때와는 다르게 활짝 열린 무림맹 대문에는 꽤 많은 사람과 마차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산호는 그렇게 대문을 넘어서 곧장 어느 전각으로 그들을 이끌었다. 큰 탁자가 있는 방까지 안내한 그는 거기 일행을 앉혀놓고 말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금방 제 상관을 모셔오겠습니다.”
그가 그렇게 나가고 나자 방 안에는 장건과 섬지영, 제규상 그리고 용 무사를 비롯한 무사 둘만 남았다. 잠깐의 침묵 후 섬지영이 불안하다는 듯 말했다.
“정말 외당주에게 이렇게 시간을 줘도 괜찮을까요? 증거가 생겼으니 당장 가서 마무리해야 할 텐데요.”
“그래. 여긴 왜 온 거지?”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제규상도 팔짱을 끼며 말했다. 하지만 장건은 태연해 보였다.
“그 서류는 무슨 내용이오?”
“예? 아··· 연가로 보내는 제용월 당주의 편지와 그가 유출한 걸로 보이는 가문의 기밀들이에요. 그, 장 무사에겐 죄송하지만 이건 가문에 중요한 문제라 보여드릴 수는 없고요.”
“그걸 소가주에게 가져가면, 그가 그걸 해결할 수 있겠소?”
섬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물론이에요. 상천 오라버니는 지금 즉위식 문제로 바쁘지만, 이걸 보여주면 다른 일 모두 제쳐두고 이 일 먼저 해결할 거예요.”
“결국 밖에 알려지기로는 소가주가 해결한 것이 되겠군. 나야 뭐 돈이라도 많이 받았으니 됐지만. 그쪽은 괜찮겠소?”
그녀는 싱긋 웃었다.
“괜찮아요. 그리고 결국 마무리를 하는 건 상천 오라버니가 맞을 테니까요.”
장건은 그런 섬지영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눈을 감으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럼 이곳 문제는 빠르게 해결하고 어서 돌아갑시다.”
제규상이나 섬지영이나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제규상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물었다.
“···그걸 여기까지 와서 물어봐야 했었나?”
장건은 눈을 감은 채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검지를 뻗어 제규상을 가리켰을 뿐이다. 그리고 그의 입을 다물게 만드는 데는 그 손가락 하나면 충분했다.
그때 산호가 닫고 나갔던 문이 활짝 열렸다. 장건은 감고 있던 눈을 떴고, 피식 웃고 말았다.
거기엔 지난번 보았던대로 잘 차려입은 유설이 그를 바라보며 방긋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