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163)
163화
* * *
제가의 연회장을 벗어난 장건은 곧장 비락원을 향했다. 거기서 만날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회장에서 멀어질수록 주변은 조용해졌다. 저 멀리서 울려 퍼지는 연회장의 소란 때문인지 그 고요함은 더욱 두드러졌다. 때문에 비락원으로 걸어가는 길은 마치 혼잡한 도시를 벗어나 산속 조용한 사찰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그 끝에서 승려를 만날 수 있으니 아주 틀린 생각도 아니었다.
그렇게 비락원을 향하는 길에 몇몇 하인들이 스쳐 지나갔다. 장원 안에 한가득한 손님들 때문인지 그들은 아주 바빠 보였다. 개중에는 장건이 길을 잃고 헤매는 손님인 줄 알고 말을 걸려다가, 곧 장건임을 알아보고 허리를 숙이는 일도 있었다.
장건은 곧 비락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말고도 몇몇 있었던 손님들은 모두 연회장에 가 있기 때문인지 커다란 전각 안은 아주 조용했다.
천천히 계단을 오른 장건은 어떤 방 앞에 서서 가볍게 옷을 가다듬고는 똑똑 문을 두드렸다. 곧 문이 열리고 진견과 서하의 얼굴이 보였다.
“장 무사? 어찌 연회장에 있지 않고···”
장건의 얼굴을 보고 말끝을 흐리는 진견과는 달리 서하는 얼른 쪼르르 달려와 찰싹 달라붙었다. 장건은 그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너무 시끄럽더군. 그런 자리는 익숙해지질 않는 것 같소.”
그 대답에 진견은 뭐라 말하려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서하를 내려다보며 작게 미소 짓는 장건의 모습을 보고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서하가 옷에 얼굴을 부비적거리는 걸 잠시 바라보던 장건은 곧 녀석을 다리에 매단 채로 뒤뚱뒤뚱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서고 난 뒤에야 생각났다는 듯 진견에게 말했다.
“···좀 들어가도 되겠소?”
“허허. 그러시구려.”
진견은 전혀 기분 나쁜 것 없다는 듯 웃었다. 그는 안으로 들어서는 장건 대신에 문까지 닫아주고는 방 한쪽으로 걸어갔다. 그가 향하는 곳에는 간소한 옷가지 몇몇이 늘어져 있었다. 장건은 그걸 보고 진견과 서하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음을 눈치챘다.
“조금 전에 축문을 외우지 않았소?”
“음?”
옷가지를 집어가던 진견은 장건의 질문에 그를 돌아보고는 허허 웃었다.
연회 전, 가문의 어른들이 제상천을 가주로 인정하는 의식 전에 제일 먼저 진견의 축문 외우기가 먼저 있었다. 그는 많은 불경을 인용해 좋은 말과 제가의 앞길을 축복해 주었다. 지금의 소란스러운 연회장이 그 순간만은 잠시 큰 사찰의 법당 같았다.
행사가 잘 진행되었으니 거기 계속 있었다면 이제 가주가 된 제상천을 비롯해 많은 제가 인물은 물론이고 신사천과 신대륙 문파의 주요 인사들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언변이 좋다면 거기에서 소림사를 향한 시주를 이끌었을 수도, 더 나아간다면 단순한 시주 이상의 기부금을 받아낼 수 있었다. 당장 진견이 다시 신대륙으로 찾아온 이유도 제가의 전대 가주가 많은 기부금을 냈기 때문이었으니까.
하지만 진견은 자기 일이 끝나자 곧장 비락원으로 돌아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장건은 왜 벌써 떠날 준비를 하느냐 물은 것이다.
“글쎄··· 지난 며칠간 느낀 것인데, 새로 가주가 된 제상천 시주는 사실 본 사찰에 큰 관심이 없는 듯 보였소. 그저 아버지가 시주한 사찰이라니 존중하는 모양을 취할 뿐이었지. 아마 소승이 거기 계속 있었다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을지도 모르겠소.”
진견은 계속 웃는 낯으로 말했다.
“게다가 장원에 들어온 이후로 너무 답답했소이다. 이번에 신사천에 오면 이곳에 있는 사찰도 몇몇 들러보고, 밤에는 앞에 신사천 만灣에서 띄운다는 불야선不夜船을 구경할 생각이었는데 말이오. 안전이니 뭐니 이야기하며 비락원 밖으로 나가질 못하게 하니 산사에 있었을 때보다 답답한 느낌이었소.”
“불야선?”
장건이 어리둥절해져서 되물었다. 제가의 대우가 소홀하니 얼른 떠날 생각이 들었다는 건 알아들었다. 하지만 신대륙에서 한참을 산 장건도 불야선이라는 말은 처음 들었다.
그때 매미처럼 장건에게 매달려 있던 서하가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밤에만 띄우는 아주 커다란 배래요. 그 배의 등불이 얼마나 밝은지 부둣가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 집 등불 대신에 그 배의 불빛으로 밤을 보낼 정도래요. 그래서 불야선이라고 불리고요.”
승려인 진견이 뜬금없이 배 구경을 한다 했더니, 서하의 강력한 주장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장건을 올려다보는 서하의 눈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장건은 그런 아이의 코끝을 장난스레 꼬집었다. 그러자 서하는 혼자 코 막힌 소리를 냈다.
장건은 그렇게 서하에게 장난을 치며 말했다.
“그럼 장원을 나가서 머물 숙소는 정하셨소?”
“으음. 중간중간 들른 사찰에서 도움을 받을까 했소만···”
“그럼 내 형님 집으로 갑시다. 빈방 많으니까.”
진견은 약간 당혹스럽다는 듯 머뭇거렸다.
“그, 굳이 그럴 필요 없소, 장 무사. 괜히 장 무사의 형님분께 폐를 끼치는 건···”
“폐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오. 만약 그러면 내가 신사천에서 제일 좋은 객잔으로 방을 잡아 드리지.”
서하의 얼굴에 장난을 치던 장건은 고개를 들어 진견과 눈을 마주쳤다.
“하지만 장담하는데 내 형님 집이 그런 객잔 방보다 열 배는 더 편안할 것이오.”
그런 장건의 장담에 진견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들어 반장을 하며 웃었다.
“···그렇소? 그럼 이거 꼭 가야겠군. 여긴 오래된 가문이라고 방이 넓기만 하지 가시방석 같아서 너무 불편했소이다. 하하하.”
장건의 다리에 매달린 채 둘의 대화를 듣던 서하는 약간 맹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보다가 조용히 장건의 옷깃을 끌어당기며 물었다.
“···우리 어디 가요?”
장건은 그런 서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여기보다 북적북적한 집으로.”
“북적북적한 집이요?”
“그래. 거기 아저씨 가족도 있어.”
“···가족?”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아이의 눈빛에 장건은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 눈높이를 맞췄다. 확실히 옛날보다는 많이 컸는지 그렇게 무릎을 꿇고 앉자 시선이 반대가 되어 장건이 서하를 올려다보고, 서하가 장건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음, 내 형과 형수, 조카들, 그리고 새로 사귄 친구 가족도 거기 머물고 있어. 집이 넓지만 그만큼 사람도 많아서 가끔은 시끌시끌하지. 아이만 넷이라 엉뚱한 소란도 많이 일어나고. 하지만 어쨌든 여기보단 나을 거야. 어때, 가볼래?”
“···같이 있을 거죠?”
장건은 서하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서하의 입가에 천천히 미소가 떠올랐다. 왁자지껄한 웃음은 아니었다. 그냥 환한 아이의 얼굴이었다. 서하는 곧 고개를 끄덕이고는 장건을 끌어안았다. 잠시 서하를 마주 안아주던 장건은 끙-소리를 내며 아이를 매단 채 일어섰다. 서하가 조그만 소리로 웃으며 장건의 머리를 붙잡았다.
한쪽에 물러서 있던 진견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염주를 굴렸다. 그는 작은 소리로 아미타불-하고 중얼거렸다.
장건이 서하를 매달고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짐은 다 쌌소?”
“허허, 거의 다 챙겼소이다.”
“그럼 얼른 갑시다. 여긴 더 있기 싫군.”
진견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럽시다.”
장건과 진견, 진서하는 그렇게 제가 장원이 연회로 시끌벅적할 때 조용히 정문을 넘어 떠났다. 세 사람 모두 비락원을 떠나며 아쉬워하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연회로 바빴던 섬지영과 제상천은 그날 밤이 돼서야 그들이 떠난 걸 알게 되었다.
* * *
어둡고 커다란 방 안에 조그만 등잔불 하나가 흐린 불빛을 흘리고 있었다. 방 안을 모두 밝히기엔 등잔불이 너무 작았다.
하지만 그 조그만 빛만으로도 방 안의 기괴함은 충분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 방의 벽에는 노란 종이에 붉은 그림이 그려진 부적이 난잡하게 붙어 있었고, 천장에는 약초인지 독초인지 모를 풀들이 얽혀서 매달려 있는 지푸라기 끈과 새나 토끼 같은 작은 동물들이 뻘건 뱃속을 훤히 드러낸 채 쇠고리에 꿰어 걸려 있었다.
얼핏 보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섬뜩함이 이는 풍경이지만 어둑한 그림자 때문에 그 기괴함은 배가 되었다. 흔들거리는 등잔불 때문에 그림자가 꿈틀거리고, 그건 마치 시커먼 괴물이 벽과 바닥, 천장을 미끄러져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기괴한 장식뿐인 줄만 알았던 방 한가운데서 무언가가 스르륵 몸을 일으켰다. 그것은 검은 장포를 뒤집어쓰고 있어 정확한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저 장포 밖으로 빠져나와 바닥을 짚고 있는 두 팔이 시체처럼 창백하고 삐쩍 말라 있다는 점이 괴이할 뿐이었다.
그렇게 몸을 일으킨 그것 앞에는 작은 물그릇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 물그릇이 이제야 옅은 등잔불에 찰랑거리며 반짝인 이유는 검은 장포의 존재가 엎드린 몸으로 그걸 덮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찰랑거리는 물그릇 안에선 놀랍게도 어떤 흐릿한 그림이 움직이고 있었다. 너무 어둡기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건 남자 둘과 소녀 하나로 보였다.
장포 사이에 묻힌 가는 틈에서 그 존재의 눈알이 번뜩였다. 그 눈알은 정확히 그 물그릇 안의 흐린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말했다.
“···구음사혈九陰死穴··· 장건, 너는 참 번번이 우리의 앞길을 방해했구나···”
장포 틈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마치 쇠를 긁는 듯 불쾌하고 끔찍한 목소리였다. 혼잣말을 흘린 그는 바닥을 짚고 있던 손으로 천천히 물그릇 위를 훑었다. 마치 멀리 있는 그들을 만지작거리듯 듯했다.
그 손은 곧 스르륵 장포 속으로 사라졌다가 곧 다시 튀어나왔다. 그 손안에는 새로운 도구가 들려 있었다.
어두운 방 안에 딸랑-하는 방울 소리가 울렸다. 사방이 막혀있는 덕분에 소리가 벽에 울리며 끔찍한 공명을 일으켰다. 분명 맑고 청명한 방울 소리인데, 이상하게 섬뜩하고 신경이 예민해지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방 안에 엎드려 있던 다른 자들이 스르륵 몸을 일으켰다. 방은 어둡고 등잔불은 너무 작았기에 정확히 그들이 몇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들 중 하나가 무릎걸음으로 조금 나서서 다시 엎드리고는 입을 열었다.
“하명하십시오, 사공蛇公.”
딸랑-하는 방울 소리가 울렸다. 사공이라 불린 자가 까딱 손을 흔든 것이다.
“···그 덜떨어진 황녀가 버티고 있는 이상, 이곳 신사천의 조직은 더 유지될 수 없다. 지금 있는 것마저도 내가 오지 않았다면 사라졌을 테지···”
“죄, 죄송합니다, 사공. 당장군께서 배신자를 처리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바꾼다는 작전을 짜셨지만···”
다시 한번 딸랑-하는 방울 소리가 울렸다. 변명하던 자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죽은 당장군의 탓을 하겠다는 거냐? 그만두거라, 널 찢어 죽이고 싶어지니까···”
“네, 넵. 죄송합니다, 사공.”
장포 속에 묻힌 사공의 눈이 먼 곳을 바라보았다.
“···신사천에서 완전히 철수한다. 더 있어 봐야 의미 없는 죽음이 늘어날 뿐이다. 대신···”
대신이라는 말에 엎드려 있던 자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대신···?”
“···거점을 정리하며 그 틈에 구음사혈을 노린다. 배신자를 처리하지 못하고 당장군마저 잃었으니, 구음사혈을 통해 손해를 벌충해야 한다. 게다가 저 구음사혈을 손에 넣으면 대계의 완성도 코앞으로 다가올 테니···”
“···하, 하지만··· 그럼 창룡도를···”
사공의 눈이 엎드린 자를 향했다. 그 눈이 마주친 자는 얼른 머리를 다시 바닥에 처박으며 외쳤다.
“둘이 영원히 붙어 있을 수는 없을 겁니다! 인간인 이상 언젠가 조그마한 틈이 생기기 마련! 신사천 거점이 완전히 정리되기 전에 반드시 틈을 찾겠습니다!”
그의 다급한 외침 이후 방안은 급속도로 싸늘해졌다. 엎드린 자는 바들바들 떨면서 이를 악물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몇 시간이 흐른 것만 같았다.
그때 사공이 다시 방울을 흔들어 소리를 냈다.
“···물러가라. 나는 본궁과 연락해야 하니···”
“옙! 물러가겠습니다!”
그와 그 뒤에 엎드려 있던 자들 모두 뒤로 기어 물러났다. 그 모습이 마치 등잔불의 빛이 닿지 않은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그들이 모두 사라진 후 사공은 방울을 품 안에 집어넣고 물그릇 위에 자기 몸을 덮었다. 그리고 그 순간 어딘가에서 바람이 불어 훅, 등잔불을 꺼뜨렸다. 이후 어둡다 못해 시커먼 공간 속에서 흐으으-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옅게 울려 퍼졌다. 검은 귀신들이 어둠 속에서 춤추고 있었다.
* * *
장운은 상회 앞에서 서판 하나를 들고 목록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 앞에는 짐마차 하나가 서 있었고, 그 마차의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굽실거리고 있었다.
“헤헤, 행수 어르신. 뭘 또 그렇게 빡빡하게 보십니까. 저 못 믿으십니까?”
찬찬히 서판을 보던 장운이 그 말에 멈칫 굳었다. 그리고 그는 서판을 보던 표정 그대로 고개를 들어 그 남자를 마주 보았다. 마차 주인이 왜 그러냐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잠시 그렇게 마차 주인을 바라보던 장운은 곧 고개를 돌려 외쳤다.
“상팔아!”
“예- 행수님”
상회 직원 상팔은 냉큼 대답하며 밖으로 나왔다. 장운은 마차를 손짓하며 말했다.
“다 풀어봐라.”
“예이-”
상팔은 두말없이 대답하고 짐마차로 다가가 묶인 끈을 풀기 시작했다. 마차 주인은 그걸 보고는 당황해서 말했다.
“저, 저저··· 해, 행수 어르신!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제, 제가 뭐 실수했습니까?”
“실수? 글쎄, 모르겠는데. 그러니 확인해 보자는 걸세.”
“예? 아, 아아···”
잠시 멍청한 소리를 내던 마차 주인은 얼른 장운에게 허리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행수 어르신···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있는 물건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행수 어르신··· 그저···”
장운이 슬쩍 손을 들었다. 그러자 짐을 풀던 상팔도 눈치 좋게 손을 멈췄다. 마차 주인의 말이 이어졌다.
“죄송합니다, 행수 어르신··· 그저··· 마차 안에 물량이 아주 조금 모자랄 겁니다···”
서판을 든 장운은 고개를 살살 흔들었다.
“이 사람아. 때가 어느 땐데 물량을 속여먹나? 그거 상팔이가 잠깐 확인하면 딱 걸리는걸? 또 그것도 제대로 못 해서 티를 내?”
“···죄송합니다, 어르신··· 집사람 약값이 모자라서···”
“오늘 중으로 본래 물량 맞춰놓게. 그리고 다음에 또 이런 일 있으면 그땐 두말할 것 없이 그냥 상행 조합에 보고할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나?”
마차 주인은 거의 엎드리다시피 허리를 굽실거렸다.
“예, 예, 어르신. 알고 말고요. 감사합니다, 어르신.”
“그럼 얼른 가서 일 마무리해 오게.”
마차 주인은 허옇게 변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며 연신 감사하다 말하고는 마차를 타고 떠났다. 장운이 뒷짐을 지고 서서 멀어지는 마차를 보고 있으려니, 옆으로 상팔이 다가와서 물었다.
“쉽게 용서해 주셨네요? 아무리 그래도 물량을 속여먹었는데.”
“···저 양반 집사람이 아픈 게 벌써 두 해가 넘어간다. 그 병수발을 한다고 있던 집안 살림 거진 다 털어먹었지··· 사람이 극단에 처하면 가끔 못된 생각도 하고 그러는 거야. 그리고 여러 번 그런 것도 아니고 이번 한 번이니까 봐준 거다.”
장운은 퉁명스레 대답하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멈칫 굳었다. 그를 보며 씨익 웃고 있는 장건과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염불을 외는 승려, 그리고 장건의 뒤에 숨어서 조심스레 이쪽을 훔쳐보는 소녀 하나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소녀를 보는 순간 장운은 어떤 불길한 상상이 번뜩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외치고 말았다.
“네가 기어코! 애엄마는 어쩌고!”
웃고 있던 장건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