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서하는 낯선 사람의 등장에 슬그머니 장건의 뒤로 몸을 숨겼다. 하지만 제규상은 애초부터 그런 아이에게 별 관심이 없었는지 눈길도 주지 않았다.
장건이 물었다.
“떠난다고?”
제규상은 마구간 입구에 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난 이 엿 같은 신사천을 뜰 거다.”
“···섬지영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나?”
“약속? 아, 아무런 불이익도 없을 것이란 말?”
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지켜졌지. 하지만 그게 어디 윗사람이 시킨다고 되나. 어쨌든 난 그림자 무사의 능력도 모자라고 윗사람에 대한 신의도 지키지 않는 놈이 되었지. 원래 신분이 들키면서 함께 일하던 외당 사람들도 나에게 배신감을 느끼더군. 그래서 가문이고 뭐고 다 엿 같아졌다. 난 천후성이든 고원성이든, 어디든 제가와 관계없는 곳으로 떠날 거다.”
그렇게 말하는 제규상의 목소리는 냉소적이면서도 적잖은 피곤이 묻어났다. 사건이 마무리된 날부터 지금까지 적잖은 고생을 한 모양이었다.
장건은 허리띠에 손가락을 걸고 가만 서서 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고원성은 요즘 시끄럽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그렇겠지. 그러니 천후성이 괜찮을 것 같군.”
“···천후성이라. 흐, 그래. 거기 날씨가 그렇게 좋다지? 그거 괜찮겠군···”
제규상은 천후성의 날씨를 상상하는지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바라보았다. 아직 정오에도 이르지 못한 태양이 쨍하니 맑은 햇볕을 내리쬐었고, 이름 모를 작은 새들이 기와지붕과 지붕 사이를 총총 날아다니며 짹짹거리고 있었다. 새벽과 아침을 지나 낮을 향해 가는 신사천의 하늘이었다.
말끝을 흐리고 약간 멍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던 제규상은 곧 뭔가 떠올랐는지 실실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가문에 아주 큰 엿을 먹여주셨더군. 제운성과 무림맹이라? 교수공자가 머리를 부여잡고 발광하는 모습이 그려지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나?”
장건은 그냥 어깨를 살짝 으쓱거렸다. 고개를 돌려 그 모습을 본 제규상은 낮은 웃음을 흘렸다.
“···제운성이 그렇게 야망 넘치는 녀석인 줄은 몰랐는데. 하긴, 가문을 뛰쳐나가 무림맹주 밑으로 기어들어 갈 정도면 말 다 했지. 녀석을 달랬어야 할 가주는 죽어버렸고, 교수공자는 경험이 부족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다시 그렇게 말끝을 흐리던 제규상은 곧 정신을 차리고 미소를 지웠다.
“···조심해라. 교수공자와 가문 원로들은 결국 제운성과 맹주를 이겨낼 거다. 천 년 동안 가문에 이런 위기가 한두 번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그렇게 위기를 이겨내면 너에게 일을 그렇게 만든 보복을 하려들 거야.”
“그럼 그땐 칼부림이군.”
진지하게 경고하던 제규상은 덤덤한 장건의 대답에 살짝 놀란 듯 입을 다물었다가, 결국 다시 툴툴 웃어버렸다.
“···젠장, 누가 누구한테 조언하겠다는 건지. 됐다, 난 간다.”
제규상은 그렇게 말하고는 정말 가겠다는 듯 몸을 돌렸다. 장건이 그 등에 대고 말했다.
“제규상.”
그 부름 한 번에 우뚝 멈춘 제규상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장건의 말이 이어졌다.
“살아있으면 또 보자. 그땐 술이나 한잔하면 좋겠군.”
“···죽으라는 건지, 살라는 건지. 신대륙이 얼마나 넓은데 또 봐?”
제규상은 그렇게 퉁명스레 대답하고는 완전히 몸을 돌려 마구간을 떠났다. 그가 담장과 건물들 사이로 사라지는 동안 장건이 계속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 서하가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친구?”
“그렇게 부를 정도로 친하진 않아.”
“그럼 친구 직전?”
장건은 웃으며 서하의 머리를 헝클었다.
“다음에 또 만나면 그렇게 될 수 있겠지.”
서하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장건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건은 더 설명하지 않고 그냥 아이를 번쩍 끌어안았다.
“자, 그럼 이제 조조 녀석을 타볼까? 이놈 놀고먹은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벌써 살이 뒤룩뒤룩 쪘어. 땀을 좀 빼줘야지.”
조조를 탄다는 말에 서하는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녀석을 바라보았고, 지금까지 장건을 무시하던 녀석은 안장을 올리는 와중에도 그를 외면할 수는 없으리라는 결론이 나왔는지 푹 한숨 쉬는 시늉을 했다. 그 이후에는 마치 마음대로 하라는 듯 얌전히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그래봐야 녀석의 꼬리는 이미 오랜만의 외출로 팔락거리고 있었다.
장건과 서하는 그날 한낮 내내 조조와 함께 신사천 변두리를 내달렸다. 서하는 그 질주 내내 맑게 웃었다.
* * *
늦은 오후가 되어 장건과 서하가 상회로 돌아왔을 때, 다른 사람들도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
장운은 물론이고 단상운과 사찰을 둘러보러 갔던 진견도 일찍 되돌아왔다. 게다가 아이들 글 선생도 이미 돌아간 모양이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뭔가 분주했다.
서하와 함께 집으로 들어선 장건은 그 모습들을 보고 슬쩍 물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어디선가 술병 하나를 챙겨 나오던 장운이 그 질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못 들었느냐? 네 형수가 전해주겠다고 했는데.”
“뭘요?”
그때 예쁘장한 아이들 옷가지를 챙기던 염 씨 부인이 장건과 서하를 발견하고는 반색하며 다가왔다.
“안 늦었네요, 도련님. 이제 얼른 가서 씻고 옷도 갈아입으세요.”
“···왜요?”
염 부인은 잠시 눈을 깜빡거리며 장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내 깔깔 웃으며 그의 어깨를 때렸다.
“내 정신 좀 봐. 낮에 말해주려 했는데 말을 타러 나가버려서 전해주질 못했네요. 우리 오늘 밤배 보러 가요. 다 같이.”
“아···”
어제 술자리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서하가 신사천 불야선不夜船을 보고 싶어 하더라는 이야기. 과연 그 말을 듣자마자 서하는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상기된 표정이 되었다.
“얼른 준비하세요, 도련님. 깔끔하게 입어야 해요?”
그녀는 그렇게 당부하고는 서하도 옷을 입힌다고 데려가 버렸다. 장건이 서서 멀어지는 두 사람을 바라보자니 발게진 얼굴의 서하가 뒤를 돌아보며 슬쩍 손을 흔들었다. 장건은 마주 손을 들어 인사를 받아주었다.
“···진짜 딸아이 아닌 거지?”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장운이 의심스럽다는 듯 물었고, 장건은 뚱한 눈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그 눈에 장운이 끌어안은 술병이 보였다.
“그 술은 어디서 자꾸 나오는 겁니까? 어제 먹어보니 보통 비싼 술이 아닌 것 같던데요.”
“어어? 이건, 그, 뭐냐··· 서, 선물로 받은 거다. 너는 뭘 또 그걸 그렇게 굳이 캐물어···”
장운은 말끝을 흐리며 얼른 몸을 돌렸다. 배까지 술병을 숨겨 가지고 갈만한 방법을 찾으려는 게 분명했다.
그때 장건이 그 모습을 보며 살짝 웃고 있으려니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아미타불, 오늘 서하와 종일 말을 타신 겁니까?”
“···그렇소, 진견 스님. 조조를 기억하실지 모르겠군.”
가사를 입은 채 등장한 진견은 허허 웃었다.
“조조, 그 똑똑한 친구는 당연히 기억하지요. 영물이나 다름없던 녀석으로 기억합니다. 서하의 얼굴이 밝은 것을 보니 즐거우셨나 보군요.”
“최근에 녀석을 탈 일이 별로 없었소. 오랜만에 달려서인지 녀석도 좋아하고, 서하도 재밌었던 모양이오.”
진견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음, 장 무사를 만난 이후 서하가 정말 많이 밝아진 것 같습니다. 거기에 어제오늘 이곳에 온 이후로는 더 그러하고요.”
“편해서 그럴 것이오. 아무래도 이 집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들이니.”
“네. 잠시뿐이었지만 소승도 그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장 무사를 비롯해 모두 좋은 분들이지요. 하지만 장 무사.”
옅게 웃으며 집안을 둘러보던 장건은 눈을 돌려 진견과 시선을 마주했다.
진견은 오른손으로 천천히 염주를 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표정은 부처의 것처럼 인자하면서도 동시에 엄숙했는데, 장건과 마주 보고 있는 두 눈은 마치 황동 부처상처럼 가늘게 떠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가 말을 이었다.
“서하를 아끼는 장 무사의 마음, 그리고 다른 가족분들의 마음은 잘 알겠소이다. 하지만 장 무사. 서하는 소림의 품에 안긴 속가제자이고, 곧 배를 타고 돌아가야 하는 아이이외다. 여기서 계속 살아갈 사람이 아니란 말이지.”
장건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진견은 계속 말했다.
“우리 땡중들이 달에 두 번씩 머리를 깎는 것은 속세의 인연과 번뇌를 훌훌 털어버리고 깨달음에 이르기 위함이오, 장 무사. 당연히 머리카락을 깎는다고 그게 다 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각오를 다지는 게지요. 물론 서하는 정식으로 출가한 것이 아니라 속가제자라 하여 그저 본사의 후원을 받을 뿐이지만, 장 무사는 이미 아시지 않소. 서하의 상처들을. 아이가 조금 더 자라서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볼 수 있게 된 날, 자신의 부모님에 대해 깊게 생각할 수 있게 되는 날, 과연 그날 서하가 그 진실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짐작이 되는지요?”
진견의 오른손은 계속 염주를 굴리고 있었다.
“때때로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가 되오. 그 상처는 다른 사람의 온기로 회복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또 어떤 것은 그 온기마저도 불로 지지는 듯한 고통이 될 수 있소. 그 경우엔 상처를 안아주려 한 사람들조차 다치게 되는 경우가 많지. 그리고 그들의 상처는 다시 한번 서하의 상처가 될 것이오.”
미소를 지우고 굳은 얼굴로 진견의 말을 듣던 장건은 입을 열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진견의 말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더 빨랐다.
“조금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볼까요? 서하는 대환단과 장 무사의 도움으로 구음사혈의 저주를 벗어났지요. 아마 무공을 익히지 않더라도 오랫동안 무병장수할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구음사혈의 특성을 완전히 지워버린 것은 아니외다. 여전히, 서하는 마인들에게 영약 중 영약이지요. 때문에 그 마궁이라는 무뢰배들이 존재하는 한 서하에게 신대륙은 위험한 장소일 수밖에 없소.”
장건은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장건도 공주 유설에게 듣고서야 알았던 이야기를 진견은 이미 알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유설은 신대륙에 오기도 전에 이미 소림사를 들렀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잘 아시리라 믿소, 장 무사. 처음 계획은 이곳에서 며칠 묵으며 소승은 신사천의 사찰들을, 서하는 작은 여흥을 즐기는 것이었지만, 이렇게 되었으니 그냥 내일 아침 서하와 난 떠나겠소이다. 오늘 뱃놀이는 잘 다녀오시구려.”
말을 마친 진견은 이어질 장건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듯 몸을 돌렸다. 그는 그대로 집안으로 멀어져갔다.
장건은 굳은 얼굴로 그런 진견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 * *
해가 완전히 진 저녁, 낮 동안 크고 작은 배가 잔뜩 드나들던 신사천 만에는 조용히 등불을 단 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작은 배들은 부둣가 가까이, 큰 배들은 신사천 만의 가운데로 움직여 자신의 환한 몸체를 뽐내었다.
장건과 장운 가족, 단상운 가족, 거기에 서하까지 한 일행은 조금 작은 배를 하나 빌려 그 환한 불야선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배에도 작은 등불이 매달려 있는 것은 같았다. 아이들이 배 밖으로 떨어질 것을 염려한 것인지 장운은 유난히 난간이 높은 배를 빌렸다.
아이들은 다른 화려한 배들을 보고 눈을 떼지 못했고,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을 보며 술잔을 기울였다.
장건도 난간에 등을 기대고 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그의 눈이 서하를 바라보았다. 녀석의 파란 눈 안에 빛나는 배들과 반짝이는 바닷물, 그리고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가득 담겨 마치 작은 세상 하나가 담긴 것만 같았다.
그런 아이의 눈이 문득 장건을 돌아보았다. 서하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헤헤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장건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녀석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 반응이 조금 이상했는지 아이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곧 옆에서 호들갑을 떠는 다른 아이들 때문에 다시 불야선 가득한 신사천 만으로 시선을 빼앗겼다.
장건은 술잔만 비웠다.
신사천 만의 뱃놀이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대륙 안으로 들어온 물굽이라지만 그 물살이 다른 곳의 호수나 강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때문에 불야선이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그 등불 달린 배들은 이른 저녁에만 잠시 나와 사람들을 현혹했다. 그러면 거기에 홀린 사람들은 그대로 신사천 안에 객잔이나 기루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가족 단위로 나왔던 장건 일행은 뱃놀이가 마무리되자 곧바로 집으로 되돌아왔다. 슬슬 아이들은 잘 시간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방방 뛰면서 오늘 탄 배와 거기서 본 불야선들, 그리고 만에서 바라본 신사천의 이야기를 했다. 서하도 처음에는 신이 나서 장건을 붙잡고 그 이야기들 재잘거렸다.
그런데 장건은 그런 서하의 이야기에 제대로 반응해주지 않았다. 그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서하도 어느 순간부터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집으로 돌아온 가족들은 또 잘 준비를 한다고 한참 소란을 피웠다. 느지막한 저녁에 아이들의 장난스러운 웃음소리와 그런 아이들을 침상 안으로 집어넣으려는 어른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까지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은 조용해졌다. 굳이 소란 거리를 찾자면 아이들이 작게 코 고는 것이나 이불 걷어차는 소리 정도가 있을 것이다.
이제 새벽을 기다린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시간. 잠이 오지 않았던 장건은 조용히 마당으로 나왔다. 그리고 가지고 나온 연초를 천천히 말아 하늘에 비스듬히 걸린 달과 흩뿌려진 별빛들을 보며 입에 물었다.
오늘 낮, 진견의 이야기에 장건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 한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그건 서하의 상처를 감당할 수 있겠냐는 질문도, 저 먼 동쪽의 마궁과 그 마인들이 두렵지 않냐는 질문도 아니었다.
그건 그저 떠돌이에 불과한 장건이 과연 한곳에 정착해 서하를 보살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진견이 했던 이야기들은 잘 정리해보면 결국 당신이 키울 것 아니면 더 아이에게 다가오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장건은 그 말에 꼭 아이를 키워야만 친해질 수 있는 거냐고, 그저 아이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무슨 문제냐 따져 물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진견이 이야기했듯 서하는 두 부모를 모두 잃었다. 그중 아버지는 개차반이었고, 어머니는 그 아버지를 직접 죽였다. 함부로 다가가는 것은 도리어 아이에게 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었다.
장건은 이 집과 장운의 가족, 단상운의 가족이 좋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난 몇 년 동안 이어왔던 여정을 접고 이곳에 머물 수 있을까? 그렇다고 그냥 장운 가족에게 떠맡겨 버릴 수는 없었다. 그건 서하에게 안 하느니만 못한 고통을 줄 것이다. 지금이야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결국 서하는 장운 가족을 겉돌게 될 것이다. 서하는 장운의 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장건도 같았다. 장건은 서하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장건의 입에서 길게 이어진 연기가 천천히 하늘로 흩어져갔다.
“아저씨.”
그때 밤하늘을 바라보는 장건의 뒤에서 서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장건은 얼른 연초를 바닥에 떨어뜨려 비벼 끄고는 손을 휘휘 연기를 휘저으며 돌아보았다. 그 가벼운 손길에 뿌연 연기는 소용돌이치며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왜 안 자고 나왔어?”
연기를 흩어버린 장건은 서하에게 한 걸음 다가가며 그렇게 물었다. 그런데 그 순간 서하도 똑같이 뒤로 한 걸음을 물러났다. 장건은 놀라서 우뚝 멈춰버렸다.
흐린 달빛 아래 선 서하는 주륵주륵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