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 * *
다음 날 아침. 어른과 아이들 모두 모여 조금 소란스럽게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밥을 먹던 장운이 먼저 운을 떼었다.
“오늘 부둣가 순 씨 창고에 갔다 오겠소.”
“그래요? 언제 돌아오는데요?”
“글쎄? 저녁쯤?”
장상에게 반찬을 집어주던 염 부인이 장운에게 시선을 주었다.
“뭐 하는데 그렇게 늦게 들어와요?”
“늦기는 뭘. 물건들 확인하고 서류 정리하고 뭐 하다 보면 식사도 같이하고··· 뭐 그러는 거지.”
염 부인의 눈썹이 슬그머니 역팔자를 그렸다.
“또 잔뜩 취해서 들어오면 알아서 해요.”
장운은 찔끔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뭘··· 식사만 하고 올 거요, 부인. 식사만.”
장운이 그렇게 곤란해하는 동안 단상운은 약간 멍한 얼굴로 밥을 입안에 털어 넣고는 우물거렸다. 보아하니 오늘 낮에 연구할 내용을 벌써부터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채윤은 그 옆에서 자연스럽게 반찬을 챙겨주고 있었다.
아이들인 자기들끼리 작게 속닥거리고 있었다. 오늘은 글 선생이 오는 날이 아니니 뭘 하고 놀지 계획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얌전히 밥을 먹고 있는 것은 장건과 진견뿐이었다. 심지어 서하도 금세 아이들의 작당 모의에 이끌려 그쪽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약간 시끌벅적한 그 장면은 정말 한 지붕 아래서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라는 말과 잘 어울렸다.
그래도 장건이 불쑥 말을 꺼냈을 때는 다들 조용해질 수밖에 없었다.
“제자를 들이려고 합니다.”
달그락거리며 식사를 하던 큼직한 식탁이 잠시 조용해졌다. 두 눈을 끔뻑거리던 장운은 다른 사람들을 대표해 먼저 물었다.
“···제자를?”
“예.”
“누구?”
“서하요.”
어른들의 눈이 서하에게 집중되었다. 밥을 오물거리던 서하는 그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약간 움츠러들었다. 장운은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서하는 소림의 속가 제자라며?”
“아미타불, 소림의 속가 제자라 하여 다른 이의 제자가 되지 못하는 법은 없소이다. 게다가 장 무사는 소승이 참으로 믿는 무인이고, 그 무공 또한 뛰어난 협객이니 서하에게도 좋은 스승이 되겠지요.”
진견의 대답에 장운은 다시 눈을 끔뻑거렸다. 대신 그의 아들 장상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럼 서하 누나 계속 여기 살아요?”
“그래.”
“와!”
심각하게 오늘 놀이를 계획하던 아이들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염 부인도 반색하며 말했다.
“정말 잘 되었네요. 도련님 무공을 가르치는 건가요?”
“예. 그럴 생각입니다.”
아이들과 염 부인, 채윤이 기뻐하며 장건과 서하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딴생각하던 단상운은 그런 사람들 모습에 엉겁결에 같이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때 같이 기뻐하던 장운이 약간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둘이 보통 인연은 아니다 싶었지. 그런데, 그렇게 연무를 하기에는 집 마당이 조금 좁지 않나? 창고를 하나 허물까?”
“아닙니다. 상회 옆 건물을 사서 내부를 정리하고 연무장으로 쓸 생각입니다.”
“연무장으로 쓸 정도로 큰 건물이면 양 씨 건물뿐인데··· 그걸 사겠다고? 그 양반 비싸게 부를 텐데···”
장건은 슬쩍 웃었다.
“제가 벌어둔 게 좀 있습니다.”
장운은 그제야 지난번 제가의 섬지영이 찾아왔을 때 장건이 받아들었던 상자가 떠올랐다. 그 안에 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치면 저런 자신감도 이해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 네가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지. 어쨌든 정말 잘 되었구나, 서하가 머물게 되었다니. 너희 둘이 어찌나 애틋해 보이던지 난 정말 서하가 네 딸아이가 아닐까-”
말을 하던 장운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염 부인이 옆구리를 꼬집은 것이다. 염 부인은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정말 잘 되었어요. 이거 내가 솜씨를 좀 발휘해 봐야겠는걸요? 다들 일찍 집으로 돌아오도록 해요. 오늘 고기도 삶고 요리도 할 테니까요. 하는 김에 상회 직원들 먹을 것도 좀 해야겠네요.”
“···그, 그래. 나도 오늘 일찍 들어오도록 하겠소···”
장운은 옆구리를 부여잡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아픈 걸 참느라 힘들어하는 기색인지라 아이들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소란스러웠던 아침 식사 후 장운은 부둣가로, 단상운은 일터로, 염 부인과 채윤은 오늘 요리할 재료를 사기 위해 시장을 향했다. 그렇게 장 씨 저택에는 장건과 진견, 그리고 아이들만 남게 되었다. 하인도 두엇 있었지만, 그들은 상회 일도 겸하고 있어 아이들을 봐줄 시간이 없었다.
예전에 원래 있던 유모가 암룡대원으로 뒤바뀌었던 사건 이후로 장운 부부는 새 유모를 얻지 않았다. 예전부터 함께 하던 유모가 죽은 것이 마음에 상처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글 선생도 없어 종일 놀게 된 아이들은 집안에서 숨바꼭질을 하거나 단상운이 만들어준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자기들끼리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아이들에게선 웃음꽃이 지질 않았다.
잠깐 아이들이 하는 놀이에 끼어볼까 했던 장건은 그 어린아이 특유의 엉뚱하고 두서없는 규칙에 금방 떨어져나왔다. 그렇게 방안에서 꼼지락대는 아이들을 두고 마당으로 나오니 진견이 의자에 앉아 햇볕을 받고 있었다.
장건은 그 옆에 의자를 끌고 와 축 늘어져 앉았다. 진견이 그걸 보고 웃으며 말했다.
“허허. 아이들 놀이가 생각보다 많이 복잡하지요?”
“어릴 때 형제자매들이랑 놀던 기억이 있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 모양이오.”
“각자의 나이엔 그 나이에 어울리는 복잡함이 있소. 그건 아이도 마찬가지고. 어른이 보기엔 참 이해하기 힘든 복잡함이겠지.”
장건은 진견의 말을 들으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하늘을 보던 고개를 슬쩍 기울여 말했다.
“오늘은 사찰 구경 안 가시오?”
“아미타불, 사실 어제 다 돌아보았소이다. 중원에서 들었던 소문엔 사찰이 여럿 있다고 했는데, 돌아보니 최근 하나로 통합되었다더군. 그래도 꽤 멋진 사찰이었소. 너무 화려하다 싶기도 했지만.”
“그래서 오늘 아침 떠나니 마니 했던 것이군.”
진견은 멋쩍게 웃으며 염주를 굴렸다. 만약 볼 만한 사찰이 더 있었다면 어제저녁의 경고는 며칠 늦어졌을 수도 있었던 듯했다. 장건은 고개를 살살 저으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어쨌든 잘 풀렸으니 그에게 뭐라 따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장 무사는 오늘 집에서 뭐 하시오?”
“···나 말이오?”
장건은 갑작스러운 진견의 물음에 잠시 말문이 막혀 목덜미를 긁적거렸다. 할 일이 없지는 않았다. 서하를 제자로 들이기로 했으니 뭘 어떻게 가르칠지 연구하기도 해야 했고, 연무장으로 쓸 건물을 구매하러 건물 주인을 찾아가봐야 했다.
또한 마궁과의 싸움을 위해 공주 유설을 만나야 했다. 지금 황군과 무림맹의 준비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장건이 슬쩍 끼어들기에 적당한 순간은 언제인지 알아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그 정벌군에 합류하면 또 서하와 떨어져야 하니, 그동안 서하가 혼자 수련할 방법을 만들어야 하기도 했다.
정리하니 할 일이 산더미 같았다. 아이들 놀이에 못 끼어서 시무룩할 때가 아니었다.
“질문을 들으니 할 일이 마구 떠오르지 않소?”
“···그 말이 맞소. 일이 많군.”
장건은 슬그머니 의자에서 몸을 바로 세웠다. 가장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은 연무장 구매였다. 서하에게 뭘 가르칠지 고민하는 건 머리로 하면 될 일이고, 유설을 찾아가는 건 조금 나중에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장건은 이제 자기 무공 수준이 현 무림에서 어느 정도쯤인지 대강 감을 잡았고, 그 정도 무인이 무보수로 합류한다 했을 때 황군이나 무림맹이나 환영하면 환영했지 박대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장건은 몸을 바로 세우기만 하고 일어나진 않았다. 지금 그가 나가면 집안에 남는 어른이 진견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진견이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그저 손님이 집을 지키게 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기에 그랬다.
그러자 진견이 다 이해한다는 듯 입을 열었다.
“밖에 나갈 일이 있으신가 보오. 갔다 오시오. 아이들은 내가 보고 있겠소.”
“···그래도 되겠소?”
“염 부인께 시주받은 밥이 벌써 세 끼를 넘었소.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소?”
그 말을 들은 장건이 잠시 생각해보니, 건물을 사고 그 안을 정리하는데도 시간을 들 터였다. 물론 연무장으로 쓰려는 것이니 그 안을 깔끔하게 치우는 정도로 끝나겠지만 그래도 마궁을 공격하러 가기 전 서하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가르쳐 놓자면 그 정리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생각을 정리한 장건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좋소. 요 옆에 갔다 오는 거니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오. 물론 가서 대화를 나눠봐야 알겠지만.”
“다녀오시오, 장 무사.”
장건은 곧장 겉옷과 금을 챙겨 밖으로 나섰다. 건물 주인이 얼마를 부르든 그냥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진견은 부드럽게 웃으며 멀어지는 장건을 바라보았다. 이후 장건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진견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등 뒤 집안에서는 아이들이 와!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고, 맑은 하늘에서는 따듯한 햇볕이 내리쬐었다. 진견은 손안에 염주를 굴리며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미타불···”
* * *
장건의 거래는 금방 마무리되지 않았다. 건물 주인 양 씨가 그곳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양 씨는 보통 신사천 거리 한가운데 있는 자기 소유 객잔에서 머문다고 했다. 이쪽으로는 잘 찾아오지도 않는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냥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장건은 이왕 금을 들고 밖으로 나온 김에 지금 일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 묵직한 상자를 옆구리에 끼고 그 양 씨를 만나러 거리에 있는 객잔까지 찾아갔다.
“그걸 팔라고? 창고로나 쓰는 건물이긴 한데··· 뭐에 쓰려고 그러나?”
늙수그레한 양 씨는 날카로운 눈으로 장건이 누군지, 혹 신사천 상계의 새로운 경쟁자는 아닌지 의심하는 눈빛으로 장건을 바라보았다. 그를 향한 장건의 대답은 단순했다.
텅-소리를 내며 양 씨의 탁자 위로 장건이 가지고 온 상자가 떨어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들린 미세한 소리만 듣고도 상자의 내용물을 짐작한 양 씨가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붙잡았다.
“···이걸 다?”
장건은 고개를 저었다.
“그, 그렇지. 그 창고 건물에 이 금액을 다 받는 건 도둑놈이지··· 그, 그럼 절반?”
욕심 가득한 노인의 눈빛에 장건은 대답 없이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양 씨는 그제야 장건이 누군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자넨 누군가?”
“장건.”
“···창룡도!”
깜짝 놀란 양 씨는 곧 고개를 끄덕거렸다. 장건의 건장한 체격이나 이만한 황금을 들고도 흥분한 기색 하나 찾아볼 수 없는 태도가 믿음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장건이 장가 상회의 사람이라는 건 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 알았다.
“···제값만 받겠네. 대신 나중에 저녁 식사를 초대해도 되겠나?”
“나중에.”
“···그래, 나중에.”
양 씨는 당장에 서류를 작성하고 아랫사람을 불러 일 처리를 맡겼다. 그리고 장건의 상자에서 자기가 말한 대로 그 건물의 제값, 딱 금 한 덩이를 챙겼다. 그리고는 얌전히 상자를 닫아 장건에게 돌려주었다.
“안을 깔끔히 정리해 달라고 했나? 이틀이면 충분할 것이네.”
“고맙소.”
짧게 감사 인사를 전한 장건은 다시 상자를 옆구리에 끼고는 객잔을 떠났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양 씨는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창고를 살 적과 같은 금액으로 팔았지만, 지금 무림에 떠오르는 고수인 장건과 안면을 텄다는 것만으로 그 몇 배의 이익을 보았다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가 그렇게 좋아하거나 말거나 일을 마무리한 장건은 곧장 장가 상회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그런 그의 눈에 띈 것이 건물들 사이에 보이는 작은 포목점이었다. 사람들을 끌어들이려 밖에 걸어놓은 옷 중 장건의 눈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푸른색의 무복이었는데, 여성용인지 맵시 있게 잘 다듬어진 모양새가 꽤 멋들어졌다. 그 옷을 본 장건은 문득 서하가 생각났고, 저 정도 옷을 짓는 곳이면 서하에게도 어울릴만한 옷을 지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장건은 서하를 데리고 오기 전에 일단 둘러나 보자는 생각으로 포목점 안으로 들어섰다.
입구 쪽 인기척에 포목점 주인으로 보이는 여인이 천천히 뒤돌아섰다.
“어서 오세요, 뭐 찾으시는···”
장건과 그 여인 모두 순간 멈칫 굳었다. 두 사람 모두 황당함에 굳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암룡삼호와 장건은 잠시 멍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 * *
장가 상회 앞으로 마차가 다가왔다.
상회 앞에 조그만 의자에 앉아서 서판을 들고 서류를 확인하던 상회 직원 상팔은 그 마차 마부석에 앉은 이를 보고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마차로 다가가며 말했다.
“오늘은 웬일로 또 빨리 오셨네요? 근데 오늘은 행수님이 안 계셔요, 흐흐. 눈도장 찍을 기회였는데 아쉽게 되었네요.”
그 마차는 며칠 전 수량을 속이려다가 장운에게 걸려 곤욕을 치렀던 마차였다. 하지만 그 마차 주인의 사정을 아는 상팔은 괜히 더 친숙한 척 넉살을 떨며 말을 걸었다. 그 말에 마차 주인의 눈이 그를 향했다.
“오늘은 뭐 문제없죠? 제가 진짜 목 형을 믿으니까 오늘은 그냥 적당히···”
상팔의 목소리가 천천히 줄어들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마차 주인의 시선이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목 형?”
상팔을 바라보는 목 형의 눈은 백태가 낀 것처럼 희멀거니 했다. 그것을 본 상팔이 질색하는 표정을 짓는 순간, 그가 입을 쩍 벌리고 바람 빠지는 소리로 말했다.
“···도망···쳐···”
동시에 마차 안쪽에서 무언가 튀어나와 마차 주인의 몸마저 관통해 상팔의 가슴팍에 꽂혔다.
“어··· 어···?”
상팔이 그게 길쭉한 창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쯤, 창날이 그의 몸을 빠져나가며 바닥에 왈칵 피가 쏟아졌다. 상팔은 피가 줄줄 새는 가슴팍을 부여잡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가 쓰러지자 마차 안에 숨어있던 자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제일 마지막에 창에 꿰인 마부를 털어내며 나온 이는 시커먼 장포를 뒤집어써서 창백한 손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자였다.
그가 마차에서 바닥으로 내려선 순간 딸랑-하고 방울 소리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