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173)
173화
“아무리 황군이 점령하다시피 한 상황이라지만 이렇게 대놓고 다녀도 괜찮은 건가?”
장건은 서하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눈은 암룡삼호를 향했다. 그녀는 미소 지은 얼굴 그대로 대답했다.
“무림맹 안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쪽 비선과 나름의 협약을 했죠. 그저 황군이 있는 곳에는 우리도 있을 수 있게 된 것뿐이에요.”
“그럼 설마 그놈도 여기 있나?”
“그놈?”
장건의 질문에 의아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곧 그게 누굴 말하는 것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뇨, 칠호는 지금 신사천 거리 쪽에 있어요. 본인은 아예 신사천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듯하지만 그쪽 인력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 붙여두었죠. 찾는다고 전해줄까요?”
“그놈이 내가 찾는다고 나올까 싶은데.”
“어쩌겠어요? 상관인 내가 시키는 건데.”
장건은 약간 장난스러운 그녀의 말에 살짝 웃었다. 두 사람이 말하는 그놈은 양굉이었고, 확실히 그놈 성격에 피할 수 없겠다 싶으면 사람 좋은 척하는 웃음을 지으며 굽실굽실 등장할 터였다.
그녀의 눈이 장건에게 푹 안겨있는 서하를 향했다.
“제자분이 참 예뻐요.”
그 말에 서하가 슬쩍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언니도 예뻐요.”
서하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손목을 들어 장건에게 보여주었다. 꽃과 줄기를 엮어 만든 조그마한 꽃팔찌가 그 손목에서 달랑거렸다.
“저 언니가 만들어줬어요.”
“그래? 잘 만들었네.”
웃는 얼굴로 대답해준 장건은 다시 삼호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조만간 포목점으로 찾아가도록 하지. 서하도 함께.”
“낮에는 항상 거기 있을 거예요. 편할 때 찾아오세요. 그리고···”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굳은 얼굴로 깊게 허리를 숙였다.
“···이번 일은 우리 암룡대의 실책이었어요. 그들이 움직임은 물론이고 목적이나 계획도 눈치채지 못했죠··· 현재 신사천 암룡대의 책임자로서 사과드릴게요.”
그렇게 허리 숙인 그녀를 장건이 잠시 가만 바라보자니, 안겨있던 서하가 툭툭 그의 옷깃을 당겼다. 장건은 그게 얼른 그녀를 용서해주라며 눈치를 주는 것만 같아서 크게 웃을 뻔했다. 장건과 유설이 이야기하는 동안 정원으로 나온 잠깐 사이에 암룡삼호는 가장 강력한 우군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장건은 속내를 숨기고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언젠가 벌어질 법한 일이었지. 그걸 짐작하면서도 긴장하지 못하던 내 탓도 있고. 굳이 당신 탓을 하고 싶진 않군.”
그렇게 말한 장건은 서하의 손을 잡고 몸을 돌렸다. 장가 상회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장건의 손길에 따라 걷던 서하는 고개를 돌려 허리를 펴는 암룡삼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빈손을 들어 흔들었다. 약간 멍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암룡삼호는 슬쩍 손을 들어 화답했다.
무림맹을 나가는 동안 그들을 붙잡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지나가던 맹원들 중에서 그를 알아보고 깜짝 놀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놀란 눈으로 가볍게 눈인사만 할 뿐 붙잡지는 않았다. 뭔가 특별한 일이 있어서 왔다고 여기는 듯했다. 아무래도 한 지붕 아래 황군과 무림맹이 함께하다 보니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장건과 서하는 금세 무림맹 대문을 나설 수 있었다. 넓은 가운데 많은 사람과 마차, 인력거가 지나는 신사천의 거리가 나왔고, 두 사람은 손을 단단히 그러쥔 채 그곳을 가로질렀다. 그러다 문득 서하의 걸음이 멈췄다.
장건은 서하를 돌아보며 물었다.
“왜?”
서하는 파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그 사람들 날 잡으러 온 거예요?”
곧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진견과 단상운이 다쳤고, 아이들 또한 위험했다. 만약 장건이 늦었다면 그 집에 있던 사람은 모두 죽고 서하만 남았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서하는 충분히 그런 만약을 떠올릴 수 있는 아이였다.
“맞다. 마인들이었지.”
때문에 장건은 솔직히 말했다. 거짓말을 한다고 믿을 것 같지도 않았다.
“왜요?”
“널 잡아먹으려고.”
죄책감으로 점점 흐려지던 서하의 얼굴이 화들짝 놀라서 질색한 표정이 되었다.
“···진짜요?”
“아니.”
서하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리고 멍한 표정은 금방 화난 얼굴로 찡그려졌다. 눈가에는 망울망울 눈물이 흔들거리기까지 했다.
“화나냐?”
“···몰라요.”
장건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눈높이를 맞췄다. 두 사람 주변으로 신사천의 사람들이 잔뜩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눈가가 발갛게 달아오른 서하를 마주 보았다.
“그놈들이 널 데려가서 뭘 어쩌려는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무슨 술법에 쓰려는 것인지, 자기들 무공이라도 가르치려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널 삶아서 잡아먹으려는 것인지··· 그건 결국 그놈들만 알고 있을 거다. 하지만 평소 그놈들 하는 짓거리를 생각하면 결코 좋은 일은 아니겠지.”
“···결국 나 때문에 진견 스님이 다쳤어요. 내가 고집을 피워서 여기 오지 않았다면, 단씨 아저씨도, 상이, 영이, 용중이랑 용아도 위험하지 않았을 텐데···”
그렁그렁한 서하의 눈물은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서하는 꾹꾹 눈물을 참으며 장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푸른 눈동자와 망울진 눈물이 흔들거려서 마치 옅은 파란색 물감이 그 눈 속에서 찰랑이는 것만 같았다.
장건은 양손으로 서하의 얼굴을 감싸 쥐듯 하고는 엄지로 눈물을 슥 닦아주었다. 서하의 눈가는 뜨거웠다. 눈물을 닦으니 슬며시 콧물도 나와서 같이 닦았다. 그러다 보니 서하는 어느새 눈과 코를 옴지락거리며 킁킁거리고 있었다.
장건의 검지가 그런 서하의 코끝을 가볍게 튕겼다.
“소림사에 갔다 오더니 눈물만 많아졌구나.”
“···몰라요.”
서하의 뾰로통한 표정을 본 장건은 장난스럽게 볼살을 꼬집으며 말했다.
“죄책감을 느끼는 건 좋은 일이다. 적어도 사람답다는 거니까. 하지만 그 죄책감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는 건 좋은 일이 아니지. 진견 스님과 단 씨 아저씨는 꼭 네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위험한 순간이라면 망설임 없이 몸을 던질 사람들이고, 네가 거기서 느껴야 하는 건 죄책감이 아니라 감사다. 너 그 두 사람한테 지켜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냐?”
“···아직이요.”
장건에게 볼살이 붙잡힌 덕분에 서하의 발음이 조금 이상했다. 하지만 장건은 볼살을 놓아주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그 녀석들에게 미안함을 느끼지 말라는 건 아니지만, 거기서 네 생각이 끝나면 너도 아이들도 힘들기만 할 뿐이다.”
“···그럼 어떡해요?”
장건은 그제야 서하의 볼살을 놓아주었다.
“넌 이제 내 제자다. 형이나 형수님은 제사니 의식이니 치러야 한다고 하지만 넌 어젯밤부터 이미 내 제자였다. 그럼 네가 나에게 배워야 할 건?”
“···태극권?”
“그걸 왜 배워야 할까?”
서하는 두 눈을 깜빡거리며 멍한 얼굴이었다가 천천히 표정이 변해갔다. 울상이던 눈과 밑으로 쳐졌던 입꼬리가 힘을 되찾고, 눈물로 흐리던 눈동자는 깜빡거리며 물기를 지우고 반짝거렸다. 아이는 아이답지 않게 심지가 굳은 눈빛으로 대답했다.
“···누군가 나 때문에 다치지 않게, 그리고 지켜주기 위해서요.”
뭐라 더 말해주려던 장건은 입을 다물고 미소만 지었다. 서하의 총명함이 짐작 이상으로 뛰어난 것 같았다. 동시에 어쩌면 십 년 뒤엔 서하의 이름이 지금 그보다 더 유명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무공 열심히 배울게요, 아저씨. 아니, 사부님.”
서하의 결심 가득한 목소리를 들으며 장건은 무릎을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옆으로 손을 내밀었다. 서하는 냉큼 그 손을 붙잡았고, 둘은 멈췄던 걸음을 다시 내디뎌갔다.
인파 속에 잠시 멈췄던 두 사람은 다시 그 파도 속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 * *
집으로 돌아와 보니 장운과 염 부인, 채윤이 돌아와 있었다.
사공을 비롯한 마인의 시체는 황군이 거둬가며 청소까지 한 것인지 남아있는 것은 마당에 흐릿한 핏자국뿐이었다. 하지만 가구가 망가지며 집안이 엉망이 되었기 때문에 그 부분은 돌아온 장운 부부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치우는 중이었다.
그중 염 부인은 장건 손을 꼭 잡은 서하를 발견하고는 들고 있던 빗자루를 내팽개치다시피 하며 다가와 아이를 끌어안았다. 한 번 꽉 끌어안은 뒤에야 얼굴을 땐 그녀는 서하에게 다친 곳은 없는지 한참을 살폈다.
부서진 의자를 들고나오던 장운도 서하나 장건에게 뭐라 원망을 쏟아내기보단 다친 곳은 없는지부터 확인했다. 혼자 긴장하고 있던 서하는 그 따듯한 환대에 다시 울먹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작게 안도의 한숨은 내쉰 장건은 본인도 곧 소매를 걷어붙이고 청소에 나섰다.
아이들과 진견, 단상운은 안에서 쉬고 있었다. 장운 부부는 안정을 취하라며 서하도 방안에 집어넣었다. 결국 집안을 치우는 건 장건과 장운 부부뿐이었다. 채윤은 진견과 단상운을 간호하고 놀란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엉망이 된 집안을 다 정리한 것은 해가 져 노란 석양이 내릴 즈음이었다. 장건이 싸리비로 마당을 쓸고 있으니 장운이 다가와 슬쩍 물었다.
“···황군이 와서 무림맹까지 모셔갔다 들었다. 괜찮은 게냐?”
“누가요? 저요, 서하요?”
“둘 다 이 녀석아.”
장건은 싸리비로 마당 쓰는 것을 멈추지 않으며 말했다.
“오늘 일은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아이들이 위험했습니다.”
“···내가 언제 그런 사과나 듣고 싶다 했느냐? 듣자 하니 그놈들은 사악한 마공을 익힌 자들이었다는데, 어떻게 그런 놈들이 서하를 잡아가도록 놔둘 수 있겠느냐? 내가 사정을 알았어도 집안에 들였을 거야.”
그제야 장건은 빗자루질을 멈추고 장운을 바라보았다.
“그래도요.”
장운은 멋쩍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물었다.
“어쨌든, 이제 괜찮은 거냐? 다 해결된 거지?”
“네. 집안에 다시는 오늘 같은 일 없을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장운은 문득 어딘가 장건의 말투가 딱딱하다는 생각에 장건의 눈을 바라보았다.
“···혹시 너무 죄송해서 서하를 데리고 어딘가로 훌쩍 떠나겠다는 말은 아니겠지?”
“아뇨. 서하는 계속 여기서 지낼 겁니다.”
“···서하는?”
장건의 얼굴은 석양을 등지고 있어서 짙은 음영이 깔려 있었다. 때문인지 시퍼렇게 빛나는 두 눈이 더 뚜렷이 보였다.
“조만간 잠시 다녀올 곳이 있습니다. 아마 다녀오는데 몇 달 걸릴 것 같은데, 그동안 서하를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장운은 뭐라 말하려다가 장건의 눈빛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미 무림맹과 부두에 주둔하고 있는 황군의 목적, 마궁의 토벌은 유명했다. 장건의 말뜻을 알아듣는 게 어렵진 않았다.
“···그래, 가장 좋은 방법은 뿌리를 뽑아버리는 게지. 네가 무인이긴 하구나.”
그는 그렇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하고는 장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툭툭 쳐줬다.
“언제 출발하게 되는 게냐?”
“확실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당일에야 출발을 알려줄 수도 있죠. 그래도 당장 일이 주 사이는 아닐 겁니다.”
“음. 그래도 연이 얼굴은 보고 가겠구나.”
장운은 다행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장건도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마궁과의 싸움이 어찌 흐를지는 아무도 몰랐다. 아무리 중원의 막강한 황군과 무림맹의 정예가 모여 간다고는 하지만, 그들 또한 백여 년 동안 제국과 전쟁할 것을 가정하고 힘을 길러온 자들이었다. 어쩌면 정말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황군이 큰 피해를 당할 수도 있었고, 그 과정에서 장건 또한 어찌 될지 몰랐다.
물론 장건은 거기서 죽어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는 살아남을 것이다. 살아서 서하에게 무공을 전수하고, 그동안의 무공을 정리하고, 그 일이 끝나면 다시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싸우러 가기 전 가족을 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저··· 행수님.”
그때 가슴팍에 붕대를 칭칭 감은 상팔이 대문에 나타났다. 그를 본 장운은 깜짝 놀라서 그에게 다가가 부축했다.
“아니, 왜 일어났어? 얌전히 침대에 누워있으라니까. 자네 오늘 낮에 죽을 뻔했어!”
상팔은 헤헤 웃었다. 얼굴은 창백해 보였지만 그래도 죽을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손님 안내는 제가 해야죠. 다른 사람들은 엉망이 된 상회를 정리한다고 정신이 없는 걸요.”
“손님?”
그 말에 장운과 장건의 시선이 상팔 뒤에 서 있는 사람을 향했다. 거기 있던 남자는 장건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활짝 웃으며 포권을 했다.
“장 대협! 잘 계셨소? 도저히 천후성에 찾아올 것 같지를 않아 내가 왔소이다!”
하지만 장건은 잠시 그가 누군지 떠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뒤에 서 있는 한 원주민, 중원 복식을 입은 남자를 본 순간 그가 누군지 기억할 수 있었다. 그는 무명협의 저자 저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