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175)
175화
* * *
신사천의 부두에는 많은 배와 물자, 사람들이 넘쳐났다.
부둣가 창고로 이동하는 중원의 물건들, 반대로 중원으로 넘어가기 위해 배에 실리는 물자들, 그걸 어깨와 등에 지고 움직이는 일꾼들. 환한 바닷가 태양과 그 빛을 받아 반짝이는 그들의 땀.
꿈과 희망을 품고 몇 주에 걸친 항해를 버틴 양민들과 그저 중원에서 도망쳐 온 범죄자들은 듣던 것보다 훨씬 더 발달한 신사천의 모습을 보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그런 중원 촌놈들을 노리는 신사천의 강도들이 슬금슬금 다가가 흉기를 들이밀기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그 강도들의 흉기는 진짜 칼이 아니라 세 치 혓바닥이었다.
이제 막 배에서 내린 이주민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지 못하면 어느새 그런 강도들에게 탈탈 털려 빈 주머니만 가지고 황량한 동쪽으로 쫓겨난다. 그럼 그들의 미래는 어느 목장이나 농장에 푼돈이나 받는 날품팔이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신대륙에선 그런 상황에서도 미래가 있었다. 날품팔이 생활을 몇 년 버티며 자금을 모으고 주변에서 들리는 어디 땅이 참 좋더라, 기름지더라 하는 소문을 잘 들어두었다가 때가 되면 마차 한 대와 농기구를 구해 그곳으로 떠난다. 그리고 주인 없는 땅에 깃발을 꽂고 농장이나 목장을 일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럼 다시 몇 년 전 그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이주민들이 들어와 일하고, 또 몇 년이 지나면 다른 황야로 떠난다. 결국 게으르지 않다면 누구나 볼품없으나마 내 땅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대략 백여 년 동안 이어진 신대륙의 개척은 그렇게 이뤄져 왔다.
하지만 그 개척은 서부 해안 도시들을 중심으로 할 뿐, 더 동쪽으로 넘어가진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대표적인 이유는 천후성 동쪽의 사막과 신사천, 감산성 동쪽을 막고 있는 기다란 산맥 때문이었다.
더 북쪽 해안 도시는 동쪽으로 개척을 이뤄나갈 여력이 없었고, 천후성 남쪽으로는 너무 더운 기후와 탐험가들이 말하는 요상망측한 밀림 때문에 넘어가려는 이주민이 없었다.
하와이와 해안 도시에 주둔한 황군들이 괜히 이곳을 변방 파견지라 여기는 게 아니었다. 드넓은 땅이 있었지만 어느 정도를 넘어갈 수 없으니 발전에 한계가 있으리라 여기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농부들 사이에서 심상찮은 소문이 돌고 있었다.
“···고원성을 넘어서 동쪽으로 더 나아가면 정말 비옥하고 살기 좋은 대지가 펼쳐진다는 거지. 뭘 심어도 열 배의 작물을 얻을 기름진 땅. 온통 평야인데다가 강물도 거미줄처럼 잘 뻗어 농사짓기 정말 좋고, 풀이 잘 자라 소나 말을 키워도 좋을 땅. 심지어 비가 오면 산에서 금과 은이 흘러나온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댄다.”
장연이 탄 배는 아직 부두에 정박하지 않았다. 신사천 만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아직 다른 배들이 부둣가에 배를 대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장연의 마중에는 장건과 장운만 나왔다. 어차피 집으로 올 것인데 온 가족이 다 나올 필요 없다는 이유였다. 때문에 지금 이곳에는 두 형제와 그들이 미리 불러놓은 인력거 몇 대뿐이었다. 그들은 쨍한 햇빛을 피해 어느 창고 그림자 속에 쭈그리고 앉아서 장연의 배가 부둣가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력거꾼들은 자기들끼리 조금 옆으로 물러나 연초를 피면서도 슬쩍슬쩍 장운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지금 신사천의 모든 인력거는 장운의 장가 상회 공방에서 만든 것이고, 인력거꾼들은 그것을 빌린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말 한마디 하면 일자리가 사라질 판이니 눈치를 보는 게 당연했다.
“몇몇 상회에서는 벌써 개척단을 조직하고 있다지. 농부와 일꾼들, 경비 무사를 모아서 누구보다 먼저 땅을 차지할 생각인 거야. 참 안타까운 일이지···”
“왜요?”
바닷가를 바라보며 두서없이 말을 꺼냈던 장운은 장건의 반문에 슬쩍 그를 돌아보았다.
“왜긴. 수많은 농부가 나눠 가져야 할 땅을 상인 몇 명이 가지게 될 테니 그렇지.”
“글쎄요. 한두 명이 그 넓은 땅을 다 가질 순 없을 겁니다. 병졸을 가진 게 아닌 이상 관리에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가본 적도 없으면서 거기가 넓으면 얼마나 넓을 줄 알고? 소문의 반만 돼도 신대륙은 물론이고 중원에서조차 쉽게 찾을 수 없는 땅이야. 해안가도 아니고 내륙 깊숙이 들어가서 나오는 그런 땅이 넓어 봐야 얼마나 넓을까? 그래서 난 무림맹이나 황군에서 그런 짓거리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팔짱을 끼고 창고 벽에 등을 기대서 있던 장건은 말없이 싱긋 웃었다. 그 축복받은 땅은 아마 지금까지 신대륙에 개척된 모든 땅보다 넓을 것이다. 어느 상인이 무사를 고용해 자기 땅을 지키려 해도, 군대를 육성할 것이 아닌 이상 어느 정도 이상을 넘어서진 못할 것이다.
물론 상인이 무사들의 집단인 무림방파를 고용하거나 협력한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어쩌면 수십 년 뒤 이 신대륙에는 드넓은 농장을 가진 무림방파들이 각 농장과 땅의 분쟁을 무공으로 겨눠 해결하는 시대가 올지도 몰랐다. 무림맹은 그런 방파들의 연맹체가 되는 것이고.
“···어디서 이런 소문이 시작된 건지 알아보니까, 아무래도 황군의 동부 토벌 때문인 것 같다. 이번에 무림맹에 들어앉았다는 그 황족 장군 덕분에 사람들 머릿속에 들어 있던 벽이 깨진 거지. 사실 그동안 고원성 너머의 땅은 원주민들이나 사는 황야라고 알려져 있었으니까.”
장운의 이야기를 들으며 장건은 더 뭐라 떠들지 않았다. 어쩌면 여기서 뭔가 간단한 조언을 해주는 것만으로 장운의 장가 상회가 신대륙 동서를 아우르는 거대 상회가 될 수도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머리를 들이박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장건은 대략적이나마 동부의 지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동부 끝에 도착하면 해안가가 나온다는 것, 그 바다를 건너면 멀고 먼 줄만 알았던 로마가 나오리라는 것 등은 정말 굉장한 정보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장건은 먼 바닷가에 시선을 둘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이미 장가 상회는 단상운의 발명품 개발 아래 덩치를 키워가고 있었다. 굳이 장건이 거들지 않아도 장운과 단상운은 나름의 최선을 다해 나름의 결과를 얻을 것이다. 이미 초야에 묻혀있던 단상운을 세상에 끌어낸 것만으로도 장건이 할 일은 다 한 것이다.
“···그 마궁이라는 놈들은 그런 비옥한 땅에서 기른 작물로 배가 부르다 못해 터질 정도로 잘 처먹는다지? 매일 주지육림을 벌인다는 이야기도 있더구나. 그곳에 있던 원주민들을 노예처럼 부린다는 소문도 있었고. 정말 황군의 토벌계획 때문에 별의별 소문이···”
“들어옵니다.”
“응?”
장운은 멍하니 되물었다가 장건이 손을 들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많은 범선 중에서도 유난히 커다란 배가 천천히 부둣가에 자신의 몸체를 대고 있었다.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여객선으로, 장연이 탄 배였다.
장운과 장건이 몸을 바로 세우자 조용히 잡담을 나누던 인력거꾼들도 눈치 좋게 다가와 인력거를 정렬시켰다. 장운이 그들에게 말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게들. 금방 가서 짐이랑 사람을 데려올 테니.”
“짐 들 사람은 필요 없으셔요? 저희야 오늘치 일당 다 받아서 그냥 이렇게 노는 것도 뭣 헌데···”
잠시 생각하던 장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장연이 짐을 얼마나 챙겨왔을지는 몰라도 애써 바다를 건너올 정도면 한두 주 머무르려 한 것은 아닐 터였다. 그 시간 동안 입을 옷만 챙겼어도 한 짐 가득할 것이다.
배가 멈추고, 곧 그 갑판에서 큼직한 나무판이 내려와 부두와 배를 연결했다. 그러자 일꾼 몇이 얼른 그 나무판에 올라 범선으로 올라갔다. 장건과 장운도 배에서 내릴 장연과 그녀의 남편을 맞이하려 천천히 배로 다가갔다.
그때 장건의 걸음이 멈췄다. 부둣가에 묘한 분위기가 펼쳐져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시선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그리고 왜 이제야 그 분위기를 느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묘한 분위기는 그가 아니라 그가 다가가는 범선을 향하고 있었다. 장건의 팔이 슬쩍 장운의 앞을 가로막았다.
장운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장건의 팔을 바라보았다.
“응? 왜 그러냐?”
“잠시만.”
이후 장건이 뭐라 더 설명하기도 전에 범선의 갑판에서 고함이 들렸다.
“얌전히 항복해라! 이미 백림방에선 널 버렸다!”
“무기 버려!”
아까 올라갔던 일꾼이 일꾼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들은 숨겼던 무기를 꺼내며 삿갓을 쓰고 있는 누군가를 포위하고 있었다. 이제 길었던 배 생활이 끝남에 기뻐하던 승객들은 그런 모습에 당혹감을 느끼며 우왕좌왕했다.
그동안 일꾼으로 위장한 무사들에게 포위된 누군가는 어깨를 덮고 있던 장포를 슬그머니 걷으며 검을 드러냈다. 그가 말했다.
“···내가 끝내 중원으로 떠나지 않고 하와이에서 돌아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이미 백림방은 내게 별 의미가 없다.”
“이 자식이 뭐라-”
다음 순간 그는 뭐라 대답하려는 일꾼 무사에게 달려들었다. 조금 전 거만한 말투가 괜히 그런 것이 아닌지 일꾼 무사는 뭘 어떻게 저항도 하지 못하고 검 손잡이 끝에 명치를 얻어맞아 나자빠졌다. 이후 포위망에 구멍을 뚫은 삿갓인은 곧장 그 틈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갑판과 나무판을 가로질러 부두로 내려선 그는 빠르게 주변을 살피고는 부두 여기저기에서 몰려오는 무사들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리 뛰어난 무사들이 아닌지 느릿하기 그지없었다. 삿갓인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부둣가를 빠져나가려 했다.
그때 그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멀뚱히 서서 그를 바라보는 장건을 발견한 뒤였다.
“···네놈!”
삿갓 아래 그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분노와 증오 가득한, 그러나 그 틈에 일말의 두려움을 담은 표정으로 장건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를 마주 보는 장건의 시선은 차분할 뿐이었다.
“누구?”
“날 모른다고? 이 자식!”
삿갓인은 당장이라고 검을 뽑을 것처럼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뽑지는 못했는데, 그의 눈이 장건 허리에 달린 청룡을 불안하게 스쳐 지났다.
잠시 파르르 떨던 그는 곧 몰려오는 다른 무사들을 보고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장건! 기다려라! 내 조만간 널 찾아가 그때 못 낸 승부를 마무리할 것이다!”
그는 그렇게 외치고는 후다닥 부둣가를 달렸다. 그 뒤를 상인이나 일꾼으로 위장하고 있던 무사들 대여섯이 뭐라뭐라 소리를 질러대며 쫓았다. 하지만 움직임으로 보아 그들은 삿갓인을 잡을 수 없을 듯 보였다.
멍한 눈으로 지금까지 상황을 지켜보던 장운은 저 멀리 사람들 틈으로 사라지는 삿갓인을 바라보다가 그 표정 그대로 장건에게 시선을 돌렸다.
“···뭐냐? 아는 사람이었느냐?”
“통성명 정도는 한 사이였습니다.”
“···아까 그 사람이 물었을 땐 누구냐며?”
장건은 씩 웃었다.
“아는 척하고 싶지 않아서요.”
“···허, 참. 고약한 녀석.”
당연히 장건은 삿갓인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아주 옛날에 만났던 사람도 아니고, 한두 달 전에 만났던 자였다. 무림맹에서였다.
그때 삿갓인을 놓친 자들이 우르르 장건에게 달려왔다. 그중 몇몇의 표정은 당장에 장건을 때려눕히고 도망친 삿갓인과 무슨 관계냐 따져 물을 듯한 험악한 얼굴이었다.
그 몇몇 중 하나가 소리쳤다.
“네놈! 방금 도망친 죄인과는-”
그 옆에 있던 자가 당장에 그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냅다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장 대협! 저희는 무림맹 금산대의 대원들입니다! 평소 대협의 무명武名을 듣고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소리치던 무사의 표정이 해쓱해졌다. 그와 다른 무사들 모두 얼른 장건에게 허리를 숙이며 포권을 해 보였다. 장건은 그에 마주 포권을 해주었다.
“장건이오.”
“예! 헤헤··· 지난번 무림맹에서 마궁의 수괴를 해치우시던 모습, 아직도 제 눈앞에 생생합니다! 이렇게 인사를 드릴 수 있어 정말 영광입니다!”
장건은 무사의 말에 약간 거북함을 느꼈다. 그렇다고 저 초롱초롱한 눈을 보고 욕을 할 순 없어서 적당히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무사의 말이 이어졌다.
“···죄인 배원찬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조금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장 대협.”
그는 다시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장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가 쫓기고 있소?”
“···예. 당연한 일이죠. 배양오 장로가 그런 짓을 벌이고 죽었으니··· 천후성의 백림방은 거의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배를 타고 하와이로, 그리고 남방의 섬을 타고 중원으로 도망치는가 했는데, 무슨 생각에선지 돌아왔습니다. 저희는 하와이 쪽에서 연락을 받아 대기하고 있던 것이고요··· 마인들과의 연결점을 의심받아 도망쳤는데 왜 돌아온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대원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사실, 오늘 저희가 그를 놓쳤으니 이제 황군에서 움직일 겁니다. 차라리 우리에게 잡히는 게 더 나았을 텐데 말이죠···”
그렇게 사정을 설명한 그들은 다시 한번 장건에게 포권을 쥐어 보이며 인사하고는 우르르 떠났다. 장건이 괜히 트집을 잡아 붙잡기 전에 도망치는 것 같았다. 이후 그 상황을 보던 사람들도 어영부영 상황이 끝나자 곧 각자의 일로 되돌아갔다. 부두는 다시 바쁜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소란스러워졌다.
배원찬. 무림맹 장로 배양오의 조카. 약간 거만한 무사였다. 원로원의 명령으로 남궁찬을 압송하려다가 장건의 칼질 한 번에 허리띠와 명성을 모두 잃은 남자이기도 했다.
그땐 순순히 승복한 듯하더니, 조금 전 말하는 걸 보니 나중에 화가 많이 났던 모양이었다. 장건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무림맹 무사의 말대로 황군이 나선다면 이제 그의 목숨은 얼마 남지 않았을 터였다.
생각을 마무리한 장건은 고개를 돌려 장운과 인력거꾼들을 바라보았다.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연이 챙겨서 돌아가죠.”
“으음, 그래.”
장운은 새삼 다시 한번 장건의 명성을 느꼈는지 약간 떨떠름해 보였다. 인력거꾼들은 약간 겁까지 먹은 듯했다. 장건은 굳이 거기에 변명이나 농담을 하지 않았다. 그래봐야 역효과나 날 뿐이었다.
그들의 눈이 다시 범선을 향했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당황하던 승객들과 선원들은 무림맹의 행사였다는 걸 알고는 자기들끼리 구시렁거리면서도 배에서 내리고 있었다. 선장으로 보이는 자가 무림맹에 정식으로 항의할 거라며 버럭버럭 소리 지르는 것이 보였다.
장건의 눈이 범선에서 내리는 승객들을 빠르게 훑었다. 가문을 떠난 것이 벌써 수년 전이었지만, 그렇다고 동생을 못 알아볼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생각이 맞았는지 대번에 눈에 띄는 두 사람이 있었다.
양 옆구리에 짐을 잔뜩 짊어진 남자와 그 옆에서 비슷한 양의 짐을 지고 뭐라뭐라 말하는 여인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여인은 지금 상황에 대해 불평하는 것 같았고, 남자는 실실 웃으며 그 말을 받아주는 것 같았다.
비슷한 순간 장운도 그 둘을 발견했는지 화색을 띠며 손을 들고는 외쳤다.
“연아! 여기다! 여기야, 연아!”
그 외침에 두 남녀의 눈이 장건과 장운을 발견했다. 남자는 약간 어리둥절해 보였지만, 여인은 곧장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들고 있던 짐을 후두둑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냅다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장운이 그걸 보고 허허 웃었다.
“녀석, 많이 반가운가 보구나···”
하지만 그 웃음은 그녀의 질주가 너무 빠르다는 것을 깨닫고는 굳어버렸다. 여인은 마치 날 듯이 달려오고 있었는데, 결코 그냥 반가워 안기겠답시고 달려오는 속도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방향은 장운이 아니라 장건을 향하고 있었다.
과연 여인은 거리가 가까워지자 냅다 그 자리에서 몸을 날렸다.
“잘 만났다, 이 자식아!”
그런 외침과는 어울리지 않게 그녀는 표홀한 움직임으로 공중에서 몸을 비틀었다. 허공에 뜬 그녀의 몸이 반대로 돌았고, 그녀는 그 상태에서 그대로 다리를 내려찍었다. 마치 사람 모양의 도끼가 내려 찍히는 것 같았다.
그를 맞이하는 장건은 굳이 몸을 피하지 않고 다가오는 다리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다리의 타점이 끝나기 전 부드럽게 당겼다. 그대로 끌려가면 여인은 바닥을 뒹굴 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휘리릭 몸을 회전시켜 장건의 손에서 벗어나며 부드럽게 바닥에 내려앉았다. 이후 바닥에 내려선 오른발을 축으로 왼발을 길게 뻗어 빙그르르 원을 그리고는 마치 새처럼 앞뒤로 양손을 길게 뻗은 자세로 멈춰 섰다.
그를 본 장건이 말했다.
“음. 내가 가르쳐준 거 열심히 익혔구나.”
“···덕분에 입군 시험엔 다 떨어졌지. 이 나쁜 놈아.”
험한 말이 나오는 것과는 다르게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한가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