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188)
188화
* * *
진하는 자신의 상관이자 호위 대상이 유설을 보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도 황족이라는 지위에 걸맞지 않게 털털한 모습을 자주 보이던 유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처럼 홀딱 빠진 표정을 내관들에게 들켰다면 크게 한 소리 들었을지 몰랐다.
“너 뭐 하는 새끼야!”
유설을 바라보던 진하는 앞쪽에서 들린 외침에 고개를 돌렸다. 유설이 흥미진진해 미치겠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대치 상황이 보였다. 넓은 마당 한가운데 홀로 선 장건과 그 앞에 몰려와 반원을 그리고 선 도룡방도들. 방도들은 박살이 나서 굴러다니는 문짝과 의식이 없는 경비 무사를 보며 당황한 듯 보였다. 반대로 그들과 대치하고 선 장건은 유난 떨 것 하나 없다는 듯 침착해 보였다.
그는 삿갓을 살짝 들어 몰려나온 도룡방도들의 험상궂은 낯짝을 쭉 한 번 둘러보더니 짧게 말했다.
“방주 어딨냐.”
“뭐, 뭐? 이 새끼가 어디서··· 방주님이 이렇게 갑자기 쳐들어와서는 찾으면 나오시는 분인 줄 아냐!”
도룡방도 중 한 놈이 그렇게 외치며 칼을 뽑았다. 그를 시작으로 다른 도룡방도들도 채채챙-각자의 날붙이를 뽑아 들었다.
“···숫자가 좀 많은데, 거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반사적으로 그 도룡방도들의 숫자를 세어본 진하가 유설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유설과 진하, 양굉과 가용산은 장건이 박살 내고 들어간 문밖에서 빼꼼 얼굴만 내밀고 안쪽을 훔쳐보고 있었다. 만약 마궁의 계략이 아니라면 괜히 우르르 몰려 들어가 여러 은원을 만들 필요 없다는 장건의 말 때문이었다.
“어? 그런가?”
장건이 맨손으로 대문을 박살 내던 순간부터 소리 없는 환호를 내지르고 있던 유설은 진하의 의견에 정신을 차렸다. 문짝이 박살 나고 그 앞에 있던 무사의 외침에 우르르 몰려온 도룡방도는 마흔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도 안쪽에서 몇 명씩 우르르 달려 나오고 있었다.
“장 형의 무공 모르쇼? 저런 건달 놈들은 백이 몰려와도 옷깃 하나 못 건드릴걸?”
양굉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유설은 그 얼굴을 보고는 진하에게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였다.
“그렇다는데?”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진하는 약간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사실 그녀와 유설은 직접 두 눈으로 장건의 무공을 본 적이 몇 번 없었다. 대부분 이야기나 단편적인 정보로만 간접적으로 경험했을 뿐이다. 그래서 문파 하나를 홀로 마주 보고 선 장건을 보고는 위기감을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장건의 무공이 정보의 절반만 사실이어도 저런 무뢰배 출신 무사들에게 질 리가 없었다.
그때 도룡방 무사 하나가 외쳤다.
“너 이 새끼! 설마 검룡문이냐?”
“내가 누구인지가 중요하냐?”
“뭐야?”
장건은 끈을 풀어내고 삿갓을 벗었다. 그리고 그걸 뒤쪽으로 툭 던져놓으며 말했다.
“누가 되었든 대문을 부수고 들어올 정도면 말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거지.”
삿갓 아래 드러난 얼굴이 젊은 남자의 것이자 도룡방 무사들은 잠시 자기들끼리 돌아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이내 피식피식 웃으며 성큼성큼 장건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말 잘하네, 이 엿 같은 새끼. 그래, 네가 누구든 이 도룡방에서 그렇게 함부로 굴었으면 안 되지. 그러니 일단 그 팔 한 짝 자르고 네가 누군지 알아보자고.”
실실 쪼개며 다가오던 무사는 어느 순간 휙 칼을 치켜들며 장건에게 달려들었다. 상대방의 방심을 유도하는 속임수라면 속임수라 할 수 있었다. 장건을 상대로 하기엔 너무 수준 낮았지만.
다음 순간 퍽-하는 소리가 울리며 달려들던 무사가 갑자기 꼿꼿하게 섰다. 동시에 하얀 뭔가가 하늘을 날다가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빨이었다.
“엉?”
웃으며 지켜보던 다른 도룡방도들은 순간 그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돼서 멍청한 소리를 냈다. 그들이 뭘 어떻게 더 하기도 전에 꼿꼿이 섰던 무사는 갑자기 나무가 쓰러지는 것처럼 앞으로 기우뚱 엎어졌다. 얼굴을 바닥에 처박아서 아플만도 한데,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가 쓰러지는 것을 보며 도룡방 무사들 모두 조용해졌다. 아무도 장건이 공격하는 걸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장건은 그들을 보며 짧게 말했다.
“시작하자.”
이번엔 장건이 그들을 향해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도룡방 무사들은 쓰러진 동료와 다가오는 장건을 번갈아보며 어어 거리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때 누군가 외쳤다.
“시발! 쳐! 저 새끼 조져!”
도적놈들 출신에 걸맞은 공격 신호였다. 당황하던 도룡방 무사들은 그 신호에 우와악 소리를 질러가며 장건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이 든 창칼의 칼날이 햇빛을 받아 번뜩번뜩거렸다.
다가오는 험상궂은 얼굴들을 바라보며 장건은 두 주먹을 말아쥐었다. 저들에게 태극권을 펼쳐 유한 태도를 보일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청룡을 뽑아 단죄를 외치며 모조리 썰어 죽일 상황도 아니었다. 그런 건 심판관의 일이었다.
그래서 장건은 그 험상궂은 얼굴에 주먹을 꽂아주었다.
빠박-하는 소리가 연이어졌다. 장건은 도룡방 무사들에게 다가가고 있었고, 도룡방 무사들은 장건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그 사이는 너무 빨리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 사이가 빠르게 줄어드는 만큼 도룡방 무사들도 둔탁한 타격음 하나씩을 달고 쓰러져갔다.
그들이 휘두르는 칼날은 장건에게 닿지 않았다. 장건은 가볍게 몸을 틀거나 한두 걸음 좌우로 움직이는 것만으로 그들의 공세를 모두 피했다. 무작정 칼을 휘두른 도룡방 무사가 다음 순간 보는 것은 훌쩍 커지는 주먹뿐이었다.
간혹 도룡방 무사가 너무 가까이 붙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일단 달려드느라 본인 칼이 닿지 않을 공간까지 다가간 것이다. 그럴 경우엔 빡-하는 소리 이후 뭔가 보이지 않는 거인에게 붙잡힌 듯 훌쩍 뒤로 날아가 나뒹굴었다. 장건이 그들이 달려오던 힘 그대로 뒤로 던져버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빡 소리와 함께 한 방 맞으면 그 주먹의 힘 방향대로 휙 날아가 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장건의 주먹 한 방에 사람들이 실 끊어진 인형이 되는 것 같았다.
스물 정도가 순식간에 그런 식으로 쓰러지자 뒤에서 달려들려던 도룡방 무사들은 해쓱해진 안색으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대충 봐도 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고수가 쳐들어온 것이다.
“바, 방주, 방주님을··· 누가 가서 방주님을 모셔와!”
“내가, 내가 가서 모셔오겠다!”
“아니야! 내가 갈게!”
“새꺄! 내가 간다고!”
동료들이 장난처럼 쓰러지는 것을 본 도룡방 무사들이 방주를 찾았다. 서로 먼저 가서 그를 모셔오겠다며 고성까지 질렀다. 어쨌든 그들 모두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것은 같았다.
마지막으로 달려든 놈을 빡-소리와 함께 쓰러뜨린 장건은 오른손을 툭툭 털면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의 뒤로 의식을 잃은 도룡방 무사들과 그들의 입에서 쏟아져나온 하얀 이빨들이 점점이 굴러다녔다.
“시, 시발··· 어디서 저런 놈이···”
도룡방 무사들은 그 이빨들을 보며 왠지 자기들 잇몸까지 아려오는 듯했다. 그런데 그때 터벅터벅 다가오던 장건의 걸음이 멈췄다. 그가 우뚝 멈추자 반대로 움찔 놀랐던 도룡방 무사들은 곧 그 시선이 그들 뒤를 향한다는 걸 깨달았다. 얼른 돌아보니 커다란 장신에 근육질 몸을 가진 거한이 서 있었다.
“방주님!”
도룡방 무사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 거한이 바로 황야를 떠돌던 그들을 모아 검룡문을 몰아내고 염호성을 집어삼킨 도룡방주였다.
“물러나라.”
큰 덩치에 걸맞게 묵직하고 낮은 목소리였다. 도룡방 무사들은 얼른 그와 장건 사이에서 우르르 비켜섰다. 장건과 도룡방주의 눈이 마주쳤다.
잠시 장건의 눈을 바라보던 도룡방주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이 몸을 찾으셨다고.”
장건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대답했다.
“난 장건이다.”
그거면 다 설명된다는 듯 짧고 간단한 자기소개였다. 그리고 정말 그걸로 다 설명이 되었는지 도룡방주는 두 눈을 조금 크게 떴다.
“···네놈이 왜 여기에?”
“지나가던 길에 잠시 들렀지. 잠깐 만날 친구가 있어서.”
도룡방주는 곧 두 눈을 꾹 감으며 손으로 눈 사이를 짚었다. 일이 안 풀려도 이렇게 안 풀릴 수 있냐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는 그렇게 눈가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 친구가 검룡문 사람이었나?”
“그건 아니고. 그 친구를 만나고 있으니 네 부하들이 시비를 걸더군.”
눈가를 만지작거리던 도룡방주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장건을 바라보았다.
“뭐야? 그럼 뭘 알고 온 게 아니라고?”
“널 만나고 확실해졌지.”
“···허허. 어처구니가 없군.”
그는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살살 가로저었다. 동시에 그의 손이 어깨 위로 길게 솟아있는 손잡이를 붙잡았다. 그 칼은 느릿하게 모습을 드러냈는데, 도룡방주의 덩치에 걸맞게도 아주 길고 넓적한 칼이었다.
“일이 안 풀려도 이렇게 안 풀릴 수 있을까. 이제 본격적으로 좀 시작하려니 본 궁의 주적에게 들켜버리다니. 아무도 안 믿겠군.”
그 커다란 칼을 보며 장건도 허리춤의 청룡을 가볍게 추슬렀다. 잠시 후의 격돌이 기대되는 것인지 청룡은 칼집 안에서 윙윙 떨고 있었다.
“이런 도적놈들 좀 모아서 황군을 상대하려던 게 실수였던 거지.”
“허. 황군이라니. 누가 거기까지 기대하나. 그럴 거면 차라리 본 궁의 정예를 이끌고 와서 유격전을 펼쳤겠지.”
“그럼 보급로를 노릴 생각이었나?”
장건의 되물음에 도룡방주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진짜 뭘 알고 온 게 아닌가 보군. 일은 사람이 꾸미나 성사를 결정하는 건 하늘이 한다고 했던가. 전쟁의 시작부터 아주 불길하군.”
그는 고개를 내려 장건을 바라보았다.
“난 서쪽으로 갈 계획이었다. 염호성 양민들을 재물로 만들어진 병사들과 함께. 신사천을 불태워버릴 생각이었지···”
이번엔 장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자기 뒤쪽에 쓰러진 도룡방도들을 턱짓하며 말했다.
“신사천을 불태워? 고작 저놈들로?”
“왜? 불가능해 보이나? 하지만 지금 텅텅 비어버린 신사천은 저급한 신공을 익힌 미치광이 백 명 정도면 충분히 불태울 수 있다. 사실 다 불탈 필요도 없고, 이놈들이 그 과정에서 모두 죽어버려도 상관없지. 고원성을 넘어간 황군과 무림맹을 흔들 수만 있다면 충분해.”
도룡방주는 양손으로 칼을 붙잡고 두 다리를 크게 벌렸다.
“토벌이 최우선인 황군과는 다르게 이 땅이 터전인 무림맹을 군대를 돌리고 싶겠지. 하지만 그게 어디 쉽겠나? 당연히 무림맹은 불만 가득한 상태로 황군과 움직이게 될 거야. 아, 비협조적인 아군이라. 열 배 많은 적보다 두려운 게 바로 그런 아군이지. 그걸 고작 도적놈 목숨으로 이룰 수 있다면 그게 진짜 계책인 거야.”
장건은 왼손으로 칼집을 붙잡으며 몸을 살짝 틀었다. 그는 비스듬히 서서 도룡방주를 마주 보게 되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한 도룡방주와는 다르게 그냥 선 것과 거의 다를 것 없는 자세였다.
하지만 그를 마주한 도룡방주는 씨익 웃었다. 별 거 없어보이는 자세와는 다르게 쉽지 않다는 걸 느낀 것이다.
“···내가 이걸 왜 다 털어놓는지 아나?”
“모르겠군.”
“지금 이 염호성과 같은 계획은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지. 도적놈들 좀 이끌고 아무 마을이나 쳐들어가 신공을 베풀면 끝날 일이니까. 지금 서부 해안에 나와 같은 이가 몇이나 될 것 같나? 얼마나 많은 곳에서 또 다른 도룡방이 만들어지고 있을까? 과연 네놈은 이 사실을 알고도 고원성을 넘어갈 수 있을까?”
장건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도룡방주를 바라보았다. 큰 칼을 든 거한은 인상과는 다르게 달변과 계략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문득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 설마 성씨가 제갈 씨는 아니겠지.”
그 말에 도룡방주는 표정을 감추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깜짝 놀라서 움찔거렸다. 무엇보다 확실한 대답이었다. 장건은 작게 헛웃음을 흘렸다.
“나한테 의심암귀를 심어보겠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봐야 별로 위기감이 들진 않는군. 황야에 아무리 도적놈이 많다지만 그중에 마공까지 익힐 놈이 그렇게 많을까 싶기도 하고, 신사천이 정말 텅텅 빈 것도 아니니까.”
도룡방주의 표정이 굳었다. 장건의 말대로 사실 그리 쉽게쉽게 풀릴 작전은 아니었다. 신대륙은 넓었고, 무림맹의 토벌에 합류하지 않은 문파도 꽤 많았다. 마공이라는 게 그리 쉽게 익힐 수 있는 게 아니기도 했다. 결국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장소에서 진행 시킬 수 있는 작전이 아니었다.
결국 도룡방주는 입을 꾹 다물고 칼을 치켜들었다. 그의 계획이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한 것처럼 마지막 세 치 혀의 계략도 장건에게 별다른 충격을 주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칼부림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