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191)
191화
“일단 가서 확인해 보세. 지나가던 양민일 수도 있고, 이 지역 원주민일 수도 있으니까.”
제운성은 혈리응을 향해 긴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혈리응은 그들의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던 몸을 돌려 저편으로 훌쩍 날아가기 시작했다. 정찰대는 그 뒤를 따랐다.
큰 소음 없이 평화롭던 침엽수림의 고요 한가운데를 여섯 인마가 내달렸다. 다들 말 타는 데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다 보니 전력으로 질주하진 못하더라도 속도가 느리진 않았다. 굽이굽이 파도치는 숲길을 지나면서 느려지지 않았다는 것만 해도 그들의 승마 실력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달려가던 와중 제운성이 갑작스레 손을 들었다. 정찰대는 고삐를 잡았다. 제운성의 눈이 저 멀리서 원을 그리고 있는 혈리응을 쫓았다.
“···여기부턴 걸어가세. 이자들이 한 장소에 머무는 모양이군.”
정찰대는 말고삐를 한쪽 나무에 묶어두고 각자의 무장을 점검했다. 다들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사실 정찰대원 모두 제운성 말고는 그리 긴장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는데, 그들은 지금 찾아가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가던 떠돌이들이나 상인들일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들은 아직 고원성을 넘지도 않았다. 아직 서부 해안가의 영향권 안에 있었던 것이다.
장건은 조조의 고삐를 묶고 녀석의 뺨을 탁탁 두드려주었다.
“얌전히 있어.”
녀석은 별소리를 다 한다는 식으로 푸르륵 투레질을 하더니 금세 옆에 있는 다른 말들에게 다가가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요 며칠 신나게 달리니 또 힘이 뻗치는 모양이었다.
장건은 고개를 살살 가로저으며 앞장서 나가는 제운성과 정찰대를 따라 움직였다. 그의 발이 풀과 자갈을 밟았지만 소리는 없었다.
장건처럼 정찰대도 지금 찾아가는 사람들이 적이라고 생각지는 않으면서도 모두 최대한 인기척을 줄였다. 어쨌든 이런 산중에 사람이 있다는 점이 이상한 것은 맞았고, 당장 맹주부 무사인 제운성이 정찰대를 이끌고 있으니 트집잡힐 행동을 삼가던 점도 있었다.
그렇게 조심스레 나아가던 정찰대는 곧 숲 한가운데 공터와 그곳에 피워진 모닥불, 그리고 거기 둘러앉은 다섯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젊은 남자 셋과 여자 둘이었다. 쇠솥과 그릇을 덜그럭거리는 게 식사 중이었던 모양이었다. 모두 긴 칼 한 자루씩 가지고는 있었으나 그저 호신용 정도로 보였다. 식사를 하며 서로 시시덕거리는 모양새가 위험하다기보다는 그냥 지나가다 잠시 멈춰 식사 중인 사람들 같았다. 한쪽에 세워진 활과 늘어놓은 가죽들로 보아 근처에 사는 사냥꾼들인가 싶기도 했다.
풀숲에 웅크려서 그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본 정찰대는 슬그머니 긴장을 풀었다. 제운성마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일어서려 했다.
그런 제운성의 팔을 장건이 붙잡았다.
“···왜 그러나? 아는 얼굴인가?”
움찔 굳은 제운성은 속삭이듯 그렇게 물었다. 장건은 모닥불 쪽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마인들이다.”
제운성의 표정이 요상해졌다.
“···마인? 저들이 마궁의 마인들이라고?”
“마궁의 마인인지는 모르겠군. 하지만 마공을 익혔으니 마인은 맞지.”
“다섯 모두?”
“다섯 모두.”
일어서려던 제운성은 재빨리 다시 엎드리며 심각한 눈으로 낯선 이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곧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난 아무리 보아도 모르겠군. 예전 무림맹 사태 때도 그랬지만, 자네는 그걸 어떻게 구분하는 건가?”
“보면 알아.”
제운성은 멍한 표정으로 장건을 돌아보다가, 곧 고개를 살살 가로저으며 다시 앞으로 시선을 두었다.
“만약 저들이 마궁의 마인들이라면 그건 그거대로 놀랍군. 고원성 부근을 넘어선 이후에야 만나게 되리라 여겼는데··· 숫자를 보면 저들도 정찰대인 듯한데 말이야···”
그때 갑자기 장건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른 정찰대와 제운성 모두 그런 장건을 황당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장건은 그런 시선은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며 터벅터벅 모닥불을 향해 다가갔다.
식사하던 낯선 이들은 장건의 그런 자연스러운 등장에 모두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잠깐의 침묵 후에야 그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누구쇼?”
“장건.”
“···누구?”
그들은 장건이라는 이름에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것처럼 얼굴을 찌푸렸다. 모르고 본다면 정말 장건이라는 이름을 몰라서 지은 표정 같았다. 하지만 장건은 그런 얼굴을 보고도 천천히 어깨 너머의 청룡을 뽑았다. 그들은 장건의 칼을 보고는 겁에 질린 양민들처럼 화들짝 놀라 우르르 일어서서 물러섰다.
“자, 잠깐! 그, 자, 장건이라는 사람이 누군진 모르겠는데, 우린 정말 모르는 사람이오!”
“이놈 뭐하는 놈이야? 왜 대뜸 칼을 뽑고 지랄이야?”
허겁지겁 자신들의 칼을 뽑는 모양새나 한쪽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움직임 등, 그들의 모습은 사악한 마인은커녕 그저 평범한 양민들처럼 보였다. 장건이 움직이는 걸 가만 바라보던 제운성은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일어나서 장건에게 다가갔다.
“이보게, 뭔가 실수가 있었던 모양인데··· 저들은 그냥 양민 아닌가?”
뒤따라 나온 다른 외랑대 무사들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저들의 표정이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또 특별한 기세를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정찰대에게 장건은 짧게 말했다.
“잘 봐.”
그렇게 말한 장건이 왼손 검지를 엄지에 걸어 가볍게 튕겼다. 허공에 무슨 딱밤이라도 때리는 듯한 동작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놀라웠는데, 다섯 양민 중 하나가 갑자기 복부를 얻어맞은 듯 앗-소리를 내며 허리를 숙인 것이다.
이내 모두의 시선이 배를 붙잡고 허리를 숙인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그에게서 으르렁거리는 짐승의 소리가 났다.
“···이, 이건··· 으, 그극··· 어떻··· 게···?”
복부를 부여잡고 허리를 숙인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얼굴에는 울긋불긋 핏줄이 일어나 끔찍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두 눈에도 붉은 혈광이 도는 것이 절대 평범한 상황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를 마주한 정찰대는 물론이고 그와 함께 선 자들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장건은 그의 가면을 벗겨낸 왼손으로 허리띠를 붙잡고 삐딱하니 서서 말했다.
“말해봐야 네가 알겠냐?”
“끄으··· 크아악!”
마공이 들끓어 오르던 마인은 장건의 가벼운 조롱에 괴성을 토하며 웅크리던 몸을 활짝 펼쳤다. 놈은 으드득 소리와 함께 조금 전보다 한 뼘 이상 키가 커지고 옷 위로도 드러날 정도로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몸 주변으로는 거뭇한 기운이 흐릿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 전원 공격!”
마공이 폭주한 전형적인 마인의 모습이 된 그 남자는 자신의 동료들에게 대뜸 그렇게 외치고는 제일 먼저 달려들었다. 순간적으로 그가 박찬 땅이 포탄에 맞은 것처럼 터져나가며 풀과 흙이 허공에 흩어졌다.
“네 이놈, 장건!”
조금 전까지 그들이 먹던 솥이 발에 차여 안에 들어있던 죽이 엎어지고 그 솥을 달구던 모닥불 또한 그와 함께 어지러이 날아 반짝이는 불티를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리고 마인은 그 모든 풍경을 뒤로하고 장건을 향해 곧게 날아들었다.
그런 갑작스러운 기습에 제운성과 정찰대는 모두 깜짝 놀랐을 뿐 움직이지 못했다. 가장 빠른 제운성이 이제 막 등에 멘 검을 뽑고 있었을 뿐이다. 질주하는 마인의 눈에는 장건 또한 자신의 움직임을 따라오지 못하고 굳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빛이 번쩍이고, 몸과 분리된 그의 머리가 허공을 날았다.
주인을 잃은 몸뚱이는 달리던 힘 그대로 나아가 어느 아름드리나무와 충돌하고 주르르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그 몸뚱이 옆으로 잘려 나간 머리통이 뒹굴 굴러 뒤따라왔다.
평화로웠던 숲속 공터 안에 공기가 딱딱한 침묵으로 변해버렸다. 외랑대 무사들은 물론이고 죽은 마인의 동료들 또한 움직임을 멈추고 굳었다. 죽은 이의 마공이 갑자기 폭주한 것부터, 이어진 기습과 죽음까지 너무 짧은 순간에 일어났다. 그 자리에 있는 자들은 장건을 제외하고 모두 숨을 헐떡이며 상황을 이해하려 했다.
다른 이들이 그러는동안 장건은 휙휙 청룡을 가볍게 털어내며 죽은 마인의 시체를 돌아보았다.
지난날 신사천에서 소림승 진견에게 백보신권을 가르치는 동안 장건도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그저 흉내 내는 수준에 불과하던 소림의 항마기降魔氣를 꽤 높은 수준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조금 전 손가락으로 튕겨 쏘아낸 것 또한 그를 응용한 것이었는데, 신비롭게도 항마의 기운이 서린 내력은 신체를 벗어나도 먼 거리까지 그 힘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였다. 덕분에 단전 위로 그 지풍指風을 얻어맞은 마인은 갑작스레 마공이 들끓어 오르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할 일이 늘었군.”
돌아가면 이것 또한 진견과 의견을 나누어 볼 만했다. 반쯤은 진견, 혹은 소림이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는 무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장건이 문득 왜 그러고 있느냐는 듯 굳어 있는 마인의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아직도 내가 마인을 구분할 수 있다는 걸 몰랐나?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장건의 말에 그들은 주박이 풀리기라도 했다는 듯 자기들끼리 돌아보며 시선을 나눴다. 그리고 곧 네 사람 모두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서로 다른 네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기습적인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장건의 칼이 움직여 가장 가까운 마인의 목을 갈랐다. 그는 이어서 한쪽으로 청룡을 휙 던졌고, 은빛 원반이 되어 날아간 청룡은 그대로 마인 하나의 허리를 가르며 가까운 나무에 틀어박혔다.
장건은 곧바로 움직여서 그 칼을 뽑아 들며 제운성과 외랑대 무사들에게 말했다.
“저쪽을 쫓아가.”
“아? 어, 알겠네.”
제운성은 반사적으로 대답하고 곧장 장건이 가리킨 방향으로 내달렸다. 그 뒤로 그와 비슷한 표정을 지은 외랑대 무사들이 따라붙었다.
그들에게 추적을 지시한 장건도 다른 하나를 쫓기 시작했다. 꼿꼿한 침엽수림 사이로 그는 마치 흐릿한 유령처럼 내달렸다. 분명 굉장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지만 희미한 바람 소리 외에는 옷깃 흩날리는 소리나 땅을 박차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전력으로 달리던 마인은 등 뒤로 아무런 인기척이 들리지 않아 뒤를 돌아보았다가 그 유령 같은 그림자를 보았다.
“헉!”
깜짝 놀란 그녀는 단전의 마공을 일깨워가며 열심히 두 다리를 놀렸다. 순식간에 그녀의 다리가 두 배쯤 두꺼워지며 역시 두 배쯤 더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렇게 달리고도 장건을 떨쳐낼 수는 없었다. 마인은 어느 순간 등 뒤가 섬뜩해지는 느낌에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앞으로 몸을 날려 뒹굴었다. 그 뒤로 번뜩 이어진 섬광이 두터운 나무 한 그루를 썩뚝 베어냈다.
우자작 나무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뒹굴던 마인은 허겁지겁 일어서며 장건을 마주했다. 들고 있던 칼은 진즉에 내던져서 맨손이었다. 그녀의 눈에 곁에 있던 다른 나무들에게 붙잡혀 기우뚱 쓰러졌지만 완전히 눕지는 못한 침엽수 하나와 그 옆에 원래부터 있던 석상처럼 서 있는 장건이 보였다.
비척비척 바로 선 마인은 헛웃음을 흘렸다.
“흐, 흐흐··· 네놈, 궁의 장군을 둘이나 쓰러뜨린 네놈이··· 이렇게 정찰이나 다닐 줄은 몰랐군···”
“정말로 사냥꾼이나 양민인 척 토벌대의 눈을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나?”
“왜? 지금까진 뭐 달랐을 줄 아나? 네놈처럼 한눈에 신공을 구분하는 자는 지금까지 없었다··· 조금 전 다른 놈들 반응을 보면 모르겠나? 우리가 어떻게 너희 신사천 앞마당까지 숨어 들어갈 수 있었을까? 목에 칼을 들이미는 정도로는 우리 정체를 알아낼 수 없다. 너희들의 눈과 귀는 그 정도로 덜떨어졌지··· 그리고 결국 그런 작은 차이가 모여서, 우리가 승리할 것이다···!”
마인은 말을 하는 동안 모은 내력을 폭발시켜 장건에게 달려들었다. 조금 전 갑작스레 폭주하던 자보다 배는 더 빠른 속도였다. 장건은 어쩌면 이쪽이 다섯 중 지휘를 맡았던 자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빛이 번쩍이고, 그녀 또한 조금 전 그 마인과 별다를 것 없는 신세가 되었다.
장건은 마인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휙 청룡을 털어냈다. 문득 이게 전쟁이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아마 마궁의 마인이든, 황군이든, 아니면 무림맹이든 이번 싸움으로 수백에서 수천 명이 죽게 될 것이다. 마궁이든 황군이든 서로를 완전히 몰살시키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을 테니까.
입맛이 씁쓸한 것을 느끼던 장건은 곧 몸을 돌렸다. 제운성 쪽이 잘 마무리했을지 확인해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