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197)
197화
“이런 제기랄! 얼른 튑시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검은 짐승들을 보고 양굉이 겁에 질려 외쳤다. 대충 봐도 저들의 숫자는 수십을 넘어 백에 가까웠다. 게다가 구릉 너머에서 계속 넘어오고 있으니 그 뒤에 얼마나 더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정찰대는 여덟. 아무리 뛰어난 고수인 장건과 대전사 미쳐 날뛰는 말이 있다고는 해도 당장 이런 평원에서 정면으로 싸우는 건 자살행위였다. 정찰대는 곧바로 말머리를 뒤로 돌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시발! 저놈들은 뜬금없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마궁의 주력인 오가기병五家騎兵이 분명하오! 수비를 준비하는 게 아니라 선제공격을 오다니··· 어서 본대로 복귀해 장군께 보고해야 하오!”
양굉이 비명을 지르듯 불평을 토하자 황군 임사영이 옆에서 그리 외쳤다. 양굉은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뭐여 시발? 저런 놈들과 만날 걸 알고 있었다고?”
“우리 측에 전향자가 있다는 걸 모르시오? 당연히 마궁의 규모와 구성군은 다 파악하고 있었소!”
양굉은 휙 뒤를 돌아보았다. 들소인지 악마인지 모를 시커먼 짐승들이 대지를 진동시키며 질주해오고 있었다. 그는 다시 임사영에게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난 저런 괴물들하고 싸운다는 말은 못 들었다고!”
“···”
임사영은 양굉을 이상한 놈 보듯 했다. 사실 그가 암룡대원임을 알지 못한다면 당연한 태도였다. 황군인 그녀가 무림맹 소속인데다가 낭인 부대인 외랑대에게 모든 정보를 공유해 줄 이유가 없었다.
그때 장건이 그녀 옆으로 따라붙으며 외쳤다.
“그 오가기병의 규모는?”
“대략 이천 정도로 파악하고 있소! 아마 저들은 선두부대일 것이오!”
그녀의 대답을 들으며 장건은 뒤를 돌아보았다. 당장 쫓아오는 마인들은 수십 정도였다. 처음 구릉 위에서 그들과 마주했던 자와 몇몇은 지금도 그 자리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건의 눈이 창을 들어 마인들에게 돌격 명령을 내렸던 자와 마주쳤다. 그는 크고 화려한 갑옷을 입고 허리에는 검도 차고 있었다. 하지만 투구는 쓰고 있지 않았기에 장건은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깊은 눈매가 인상적인 중년인이었다.
그는 마치 장건과 정찰대가 곧 잡히는 게 당연하다는 듯 평온한 표정이었다. 실제로 검은 들소들과 정찰대의 거리는 점점 좁혀들고 있었다. 검은 들소는 그 커다란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지치지도 않는 것인지 속도가 줄지를 않았다. 도리어 빨라지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물론 그건 조금씩 느려지는 말과는 달리 들소들의 속도가 처음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저 덩치에 뭐가 저렇게 빨라!”
점점 가까워지는 들소와 마인들을 보고 양굉이 비명을 질렀다. 다른 사람들 또한 이를 악물고 말을 달리느라 말은 안 했지만 비슷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장건이 살짝 뒤로 처지며 외쳤다.
“멈추지 말고 달리시오!”
양굉과 산호 등은 그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비랑은 대번에 그 뜻을 알아듣고 마주 외쳤다.
“안 돼요! 적이 너무 많아요!”
“그래! 차라리 소식을 전할 한둘만 보내고 다 같이 싸우자!”
비랑에 이어 미쳐 날뛰는 말도 그렇게 외쳤다. 두 사람이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정찰대 사람들 모두 장건의 말뜻을 알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따라잡히니 본인이 시간을 끌어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뒤로 처져있던 장건과 조조가 쏘아진 화살처럼 앞으로 튀어 나갔다. 둘은 순식간에 정찰대를 훌쩍 앞질러나갔다. 정찰대 사람들의 얼굴에 황당함이 떠올랐다. 그 잠깐 사이에 거의 십여 장 정도의 거리가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앞서나간 장건과 조조는 천천히 속도를 줄이고는 이내 멈춰 서서는 뒤를 돌아보았다. 놀라운 질주 이후였으나 조조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푸르륵 투레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질주의 뜻은 분명했다. 조조의 특출난 속도와 지구력으로 시간을 끈 이후에도 얼마든지 빠져나올 자신이 있다는 의미였다.
그제야 일행들은 장건과 조조가 도망치고자 하면 얼마든지 그들을 뒤로하고 도망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 먼저 가겠수!”
제일 먼저 양굉이 냉큼 장건을 지나쳤다. 이어서 산호와 임사영이 눈인사를 보내며 양굉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원주민 전사들은 그렇게 바로 장건을 지나치지 못했다.
“정말 혼자 괜찮나? 그냥 좀 무리하는 셈 치고 같이···”
“괜히 여기서 힘 뺄 필요 없소, 대전사. 아니, 애초에 부족 연합의 전사들은 이 싸움에 앞장서 싸울 필요가 없소. 결국 이 싸움의 주체는 황군과 마궁이오. 앞으로 중원인들과 섞여 살아가기 위해 황군과 끈을 만들어두는 것은 좋지만 그 때문에 목숨을 걸어선 안 될 것이오.”
함께 하자는 말을 꺼냈던 대전사 미쳐 날뛰는 말은 장건의 대꾸에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았다. 부족 연합의 전사들이 동진군에 합류한 것은 그동안 마궁에게 학살당한 부족들의 복수도 있었지만, 앞으로 중원인들과 조금 더 깊이 섞이며 살아가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부족 전사 중 최고의 전사인 그가 한낱 정찰원으로 합류한 것도 아직 중원인에게 거리감을 느끼는 원주민들에게 앞으로는 바뀌어야 함을 몸으로 먼저 보여주려 한 것이었다.
“알았다. 그럼 먼저 가겠다. 나중에 보자.”
장건이 고개를 끄덕이자 대전사와 강물 바위도 그를 지나쳐 달리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적풍과 비랑이었다.
“···난 안 갈 거예요.”
장건과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 비랑은 입을 꾹 다물고 물기 어린 눈으로 장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건이 옅게 웃으며 말했다.
“날 못 믿소?”
“믿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말고 어서 가시오. 나 혼자라면 천 명이든 만 명이든 빠져나올 자신이 있으니까.”
비랑은 장건의 눈을 번갈아 보다가 겨우 다시 말했다.
“···알았어요. 빨리 와야 해요.”
장건은 마인들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적풍이 비랑을 챙겨서 앞서 나간 일행을 따라 달렸다.
이제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장건과 조조뿐이었다. 장건은 녀석의 목덜미를 툭툭 두드려주며 말했다.
“오늘 제대로 한바탕하겠는데. 잘 뛸 수 있지?”
조조는 뭘 걱정하냐는 식으로 푸륵 콧김을 뿜었다. 그런 녀석의 자신감에 장건도 피식 웃으며 천천히 청룡을 뽑았다. 그 후 칼을 늘어뜨린 장건은 지진을 일으키듯 땅을 마구 울리며 다가오는 검은 들소와 마인들을 마주했다.
* * *
“용감하군! 머리는 좀 멍청한 것 같지만!”
덥수룩한 산적 수염의 남자가 저 멀리 홀로 멈춰선 무사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그는 여트막한 언덕 위에 올라서 있었고, 그 주변으로 오가기병의 수뇌부가 모두 모여 있었다. 그중에는 부하들에게 출격을 명령한 모용 가주도 있었다.
모용 가주는 멀리 보이는 무사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자신이 있는 모양이지.”
“흐허허! 자신이라? 하지만 혼자 시간을 끌어봐야 얼마나 끌겠소? 차라리 하나나 둘 정도만 보내고 나머지가 모두 힘을 합쳐 시간을 끌었으면 정보 전달이라는 임무는 완수할 수 있었을 것이오. 물론 그러면 시간을 끈 쪽은 모두 죽었겠지만.”
걸걸한 제갈 가주의 말에도 모용 가주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사실 그는 크게 신경 쓰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곧 황군과의 전면전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고작 정찰대 하나에게 낭비할 주의력은 없었다.
그때 제갈 가주가 말했다.
“오, 이제 싸우겠군. 이거 저 친구 이름이라도 알아야 명복을 빌어줄 텐데! 흐허허!”
그의 말대로 제일 선두에서 달리던 오가기병이 이제 멈춰 있는 무사를 공격해가고 있었다. 그 기병의 길쭉한 창이 깔끔한 반원을 그리며 무사의 목을 노렸고, 그의 들소는 그 무사의 말에게 뿔을 들이밀었다. 언덕 위 수뇌부는 그 무사가 짓이겨질 광경을 기대했다.
“···오호?”
무사는 그들의 기대를 배신했다. 그 순간은 꽤 놀라운 장면이었는데, 멈춰 있던 무사의 말이 갑자기 훌쩍 뛰어올라 검은 들소의 등을 짓밟고 넘어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창을 휘두르던 기병은 그대로 말발굽에 짓밟혀 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기절했든가, 아니면 죽은 듯했다.
이후의 장면도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선두를 뛰어넘은 무사는 그렇게 오가기병의 돌격진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더니 마치 물살을 가르듯 홀로 기병대를 꿰뚫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검은 들소에 올라탄 마인들은 그런 무사를 저지하기 위해 창과 검을 들었으나, 그의 칼이 번쩍이면 잘 갖춰 입은 갑옷이 무색하게 왈칵 피를 뿜으며 들소 위에서 떨어졌다. 그 무사의 말에게 정면으로 뿔을 들이박으려 해도 마치 들판 위를 미끄러지는 듯한 움직임에 들소들은 번번이 그들을 지나쳐야 했다.
결국 잠시 후 그 무사는 오가기병들을 관통해 진형의 반대편으로 빠져나왔다. 그 잠깐 사이에 쓰러진 기병이 열에 가까웠다.
“아니 이게 무슨···”
껄껄 웃으며 지켜보던 제갈 가주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오가기병은 궁의 주력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무인들이었다. 익히고 있는 신공의 수준이 아주 높은 것은 물론이고 그들이 탄 검은 들소 또한 한 마리 한 마리를 길러내는 데 어마어마한 자원이 들어간 괴물이었다.
그래서 오가기병 백이면 같은 숫자의 무림맹 전투부대 정도는 별다른 손해 없이 쓸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 제갈가에서의 분석이었다. 괜히 오가기병으로 황군과 맞서려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오가기병이 지금 정찰병으로 보이는 무사 하나를 잡지 못한 것이다. 제갈 가주의 입에서 어처구니없다는 식의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당황한 것은 그 오가기병 본인들도 마찬가지라서 저 멀리 도망치는 황군의 정찰병을 쫓던 것도 잊고 모두 멈춰 서고 말았다.
조금 전까지 천둥이 울리는 듯했던 벌판 위가 조용해졌다. 오가기병들은 자신들을 꿰뚫고 지나간 무사의 위용에 모두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 무사는 말고삐를 잡고 자신이 꿰뚫고 나온 오가기병 백기와 언덕 쪽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수뇌부 등을 쭉 둘러보았다. 그 모습이 마치 고작 이게 너희의 전부냐고 비웃는 듯했다.
“저, 저···”
“저 무사. 누군지 알겠군.”
화를 내려던 제갈 가주는 착 가라앉은 모용 가주의 말투에 그를 돌아보았다.
“모용 가주는 저자가 누군지 아시겠소?”
“젊은 나이의 놀라운 무위, 담대함, 대왕의 오추마를 보는 듯한 저 말까지.”
모용가주의 눈에서 하얀 백광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는 들고 있던 창을 바닥에 툭 꽂아버리고는 허리에 찬 검을 뽑았다.
“장건. 저자는 장건이 분명하군.”
“아하··· 그렇군. 저자가 그···”
그때 모용가주는 자신의 고삐를 와락 당겨 잡으며 말을 이었다.
“제 일대一隊는 나와 움직일 것이오, 제갈 가주. 나머지 병력의 운영을 부탁하겠소.”
“엉? 어엉? 그게 무슨···”
제갈 가주가 뭐라 되물으려던 순간 그들이 장건이라 확신한 무사가 휙 말머리를 돌려 텅 비어있는 북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를 본 제갈 가주가 급히 모용 가주를 돌아보며 말했다.
“잠깐, 모용 가주! 지금 설마 직접 저자를 쫓으려는 것이오? 그럴 필요 없소! 어차피 이제 다른 정찰병들을 막기에도 늦었으니 병력을 물리고 본대와 합류해서 전투를 준비해야지!”
“저놈 손에 내 딸이 죽었소. 이 기회를 놓칠 순 없군.”
제갈 가주는 그 덤덤한 대꾸에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벙긋거렸다. 하지만 곧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외쳤다.
“그깟 죽은 사생아 하나 때문에 본인 일을 내팽개치겠다는 건가! 지금 제정신인가, 광현!”
모용가의 가주, 모용광현은 그 괄괄한 다그침에도 화를 내기는커녕 차가운 눈으로 제갈 가주를 바라보았다. 일그러진 얼굴로 그 눈빛을 마주 보던 제갈 가주는 결국 손을 들어 본인의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최대한 빨리 돌아와야 하오. 우리 목표는 다른 가주들이 병력을 이끌고 오기 전까지 최대한 놈들에게 피해를 강요하고 발을 묶는 것이외다. 부디 대의를 생각하시오.”
모용광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가볍게 고개를 까딱이고는 고삐를 당겨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는 검을 높이 치켜들고는 외쳤다.
“제 일대-! 지금부터 저자를 쫓는다-!”
그 외침에 멀어지는 장건을 보며 명령을 기다리던 백기의 오가기병이 무기를 들며 함성으로 화답하고는 다시 들소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북쪽으로 달려가는 장건 뒤를 일백 명의 마인과 검은 들소가 쫓았다. 그 마인들의 선두에는 두 눈에서 하얀 백광을 흘리는 모용가의 가주, 모용광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