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 * *
장건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이걸 따라와?”
그의 뒤로 일백 기에 이르는 검은 들소와 마인들이 우르르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의 선두에는 전에 장건과 눈이 마주쳤던 화려한 갑옷의 중년인이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앞장서 있었다.
고개를 돌린 장건과 그의 눈이 다시 한번 마주쳤다. 장건은 피식 웃었다.
“···해보자는 거지?”
사실 지금 저들이 이렇게 장건을 쫓아오는 것은 그리 이성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이미 다른 정찰대원들은 멀리 도망친 후였고, 장건은 단 한 사람에 불과했다. 전략전술이라는 걸 따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있을 황군과의 전면전을 생각해서 부하를 물리거나 아니면 소수의 인원으로 장건을 쫓았을 것이다.
물론 그랬다면 진즉에 장건의 칼이 추적자들의 목을 쳤을 테지만, 어쨌든 머리가 돌아가는 인물이라면 지금처럼 장건 한 사람을 쫓는데 저렇게 우르르 몰려오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장건은 선두 중년인과 눈이 마주친 순간 지금 저들과 자신 사이에 이성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저 중년인과 자신 사이에 무슨 은원이 얽혀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장건은 저 남자의 얼굴을 오늘 처음 보았다. 분명 처음 장건과 눈을 마주쳤을 즈음엔 중년인도 그랬다. 둘은 서로의 얼굴을 몰랐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저 중년인은 분명 장건에게 살의를 품고 있었고, 그 순수한 감정 앞에서 장건 또한 더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칼날에는 칼날을, 피에는 피를 돌려줄 뿐이다.
장건은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리고 조조의 옆구리를 툭 쳐줬다. 그러자 원래도 상당한 속도로 달리던 조조는 거칠게 콧김을 뿜고는 다시 한번 쏘아진 화살처럼 쭉 뻗어나갔다. 어찌나 빨랐던지 녀석과 장건의 모습이 길쭉하게 늘어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중년인, 모용광현과 일백 기의 오가기병들은 순간 훌쩍 멀어지는 장건의 모습에 당황했다. 순간 그들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전설 속의 오추마가 되돌아왔나-하는 것이었다. 그건 대왕의 부활을 꿈꾸는 자들에겐 그냥 우스갯소리로 넘어갈 생각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렇게 멀찍이 앞서나가던 장건과 조조는 약간 언덕진 곳 위로 올라서서는 천천히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자연스럽게 우르르 달리던 오가기병들도 천천히 속도를 늦췄다.
장건이 언덕 위로 올라섰기에 일백 기의 오가기병들 모두 장건을 볼 수 있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장건은 멈춰선 마인들을 쭉 둘러보았다. 조금 전의 질주로 들소들의 입에선 거친 숨결과 침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놈들의 눈에선 피곤함은커녕 피를 보고자 하는 흉포함만 번뜩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건 놈들이 등에 태운 마인들의 눈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그들을 둘러보던 장건이 불쑥 외쳤다.
“날 아나?”
짤막한 외침이었지만 일백 명의 마인 중 그 말을 못 알아들은 자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 입술을 꾹 다물고 번뜩거리는 눈으로 장건을 노려볼 뿐 아무도 말문을 열어 대답하는 자가 없었다. 그들이 선 벌판에 거칠게 숨 쉬는 소리만 가득했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장건. 넌 장건이지. 우리 계획을 참 번번이도 망치는 자.”
그는 제일 앞에서 장건을 쫓던 중년인이었다. 다른 마인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선 그는 장건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장건은 그 시선을 마주 보며 다시 물었다.
“날 아나?”
같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과는 다르게 그 질문의 주체는 중년인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모를 수 있겠나? 요즘 한창 무림에 이름을 날리는 신진고수인데.”
“난 당신을 모르는데.”
중년인은 입가만 당겨서 웃었다. 그래봐야 두 눈은 백광白光으로 번들거리고 있어서 섬뜩하기만 했다.
“난 모용가의 가주 모용광현이다. 넌 내 딸을 죽였어.”
장건은 침묵했다. 두 눈을 분노로 이글거리는 모용광현과는 다르게 그를 내려다보는 장건의 눈은 깊고 고요했다. 모용광현의 말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장건 본인만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장건의 말이 이어졌다.
“모용산산?”
이번엔 모용광현이 침묵했다. 조금 전 장건과 다른 점이 있다면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던 그와는 달리 모용광현은 검을 들어 장건을 겨누었다는 것이다.
“···네놈은 궁의 살생부 중에서도 최우선으로 척살해야 할 이름 중 하나지. 오늘 명단을 하나 지울 수 있겠군.”
그건 대화가 아니라 그저 통보였다. 모용광현은 장건과 더 말을 나눌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 비죽 허공을 찌르는 듯한 검 끝과 모용광현의 눈빛을 바라보던 장건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오후로 접어든 푸른 하늘이 그를 반겼다.
서쪽으로 기울은 태양은 장건의 오른쪽 뺨을 환하게 덮어 주었고, 새파란 동쪽 하늘에선 하얀 깃털 구름이 잘게 흩뿌려져 흐르고 있었다. 지금 저쪽에서 거친 숨을 씩씩대는 자들만 아니었다면 아무 들판에 누워 낮잠이나 자도 좋을 날씨였다.
그렇게 잠시 햇볕을 쬐던 장건은 천천히 고개를 내려 모용광현과 일백 마인들을 바라보았다. 더 나눌 이야기는 없었다. 장건은 칼을 들었다.
“그럼 할 일을 하자고.”
다음 순간 조조가 앞발을 높이 들고 길게 울부짖었다. 말의 울음소리가 벌판에 널리 울려 퍼졌다. 동시에 이미 흥분한 상태였던 검은 들소들도 마치 깊은 동굴에서 올라오는 듯한 울음을 토했다. 숨 쉬는 소리만 들리던 벌판에 짐승들의 소리가 가득했다.
모용광현이 검을 치켜들고 외쳤다.
“쳐라-!”
일백 기의 마인과 검은 들소가 다시 장건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 앞으로 장건과 조조도 마주 달려오고 있었으니, 언뜻 보기엔 조금 전 진형이 관통당하던 장면의 연속으로 보였다. 하지만 서로의 간격을 넓게 두고 돌격했던 전과는 다르게 지금의 일백 마인은 모용광현을 꼭짓점으로 두는 삼각 대형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 사이사이의 간격도 훨씬 좁아서 전처럼 장건과 그의 말이 빠져나갈 구석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이미 한 번 진형을 꿰뚫린 마인들은 두 눈에 마기를 번뜩이며 장건을 노려보고 있었으니 장건과 조조는 거대한 검은 파도에게 몸을 던지는 조그만 조각배 같았다.
그러나 정면으로 달려오던 장건과 조조가 갑자기 와락 방향을 틀어 기병대의 오른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하자 상황이 이상해졌다.
선두의 모용광현은 당장 그 장건을 쫓아 고삐를 당겼다. 그 뒤를 따르는 일백 마인 또한 그에 맞춰 진형을 움직였다. 문제는 장건과 조조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었다.
어느 순간 모용광현은 자신이 장건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장건과 조조는 넓게 돌아 삼각대형의 꼭짓점을 지나 진형의 우익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그와 충돌하려던 모용광현이 그대로 그 뒤를 따라 움직이며 일백 마인의 삼각대형은 삼각형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길쭉하게 말리기 시작하는 요상망측한 덩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모용광현이 대형을 되돌려야 한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듯 달리는 조조와 장건이 일백 마인의 우익 끝과 만났다.
“이 자식!”
그를 마주한 마인은 두 눈에서 흉성을 폭발시키며 창을 휘둘렀다. 창날에 시커먼 기운이 줄줄 흘러 허공을 검게 물들였다.
그 검은 먹물 한가운데를 하얀 백광이 번쩍 가르고 지나갔다. 마인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들소 아래로 나가떨어졌다.
그렇게 동료 하나가 명줄을 달리하자 그 주변에 있던 마인들의 두 눈 또한 시뻘겋게 이글거렸다. 그들은 진형을 맞출 게 아니라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장건을 쫓아 고삐를 당겼다.
“이-놈-!”
장건은 순간 호흡을 멈추고 그 마인들을 향해 청룡을 휘둘렀다. 번뜩이는 섬광이 긴 채찍처럼 마인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조조가 다시 땅을 박차 속도를 높였을 땐 이미 숨이 끊어진 마인 셋이 기우뚱 들소 아래로 쓰러지고 있었다.
장건은 그렇게 압도적인 속도로 진형의 오른쪽 귀퉁이를 깎아버리고 지나갔다. 마인들의 얼굴에 황당함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이 탄 검은 들소는 그냥 신대륙 들소처럼 힘이 세고 흉포한 게 아니라 보통의 말과 비슷할 정도로 민첩하고, 똑똑한 짐승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형을 만들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그냥 말과 비슷한 정도로는 장건과 조조를 잡을 수 없었다. 이 신대륙을 떠돌고 수많은 자와 싸우면서 장건의 무공이 늘어났던 것처럼, 조조 또한 그동안 다양한 적을 상대로 자기 발을 달리며 경험이 늘었다.
정말 녀석의 혈관에 용의 피라도 흐르는 것인지 녀석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힘이 줄기는커녕 그 힘을 활용할 요령만 늘어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조조를 두고 장건은 가끔 고삐도 잡지도 않고 당장 눈앞에 다가오는 적만 상대했다. 그건 인마人馬가 하나가 되었다기보다는 위와 아래로 서로의 역할을 완전히 분담한 것과 같았다. 물론 그것도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그럴 수 없었을 기행이었다.
“쫒아라-!”
그런 장건과 조조를 상대로 모용광현이 한 대책은 그냥 진형을 풀어버리는 것이었다. 아주 빠른 한 기의 기마를 상대로 진형을 갖추는 것이 도리어 그 구성원들의 움직임을 굼뜨게 하고 반응할 틈을 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일백 기의 마인들은 이젠 진형 없이 장건의 뒤를 쫓았다. 다시 한번 장건이 제일 선두에서 달리고, 그 뒤를 검은 들소들이 우르르 뒤따랐다.
하지만 이번엔 장건과 마인들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장건은 속도를 늦춰 마인들에게 달라붙었다. 마인들은 장건의 등이 가까워지자 당장에 자신들의 창칼을 치켜들었다.
그때 장건이 손바닥으로 툭 안장을 때려 가볍게 몸을 띄워서는 반대로 돌려 앉았다. 그리고 다가오는 창칼들을 향해 청룡을 휘적 휘둘렀다. 그렇게 시퍼런 빛이 번쩍이고, 잘려 나간 창대와 칼날들이 우수수 날렸다.
청룡은 그 창대들을 자른 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다시 한번 자신의 예리한 칼날로 공간을 베었고, 이번엔 창대가 아니라 사람의 머리를 우수수 날려버렸다.
대여섯이 한꺼번에 그리 죽어 나갔으나 마인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두 눈에서 마기를 번들거리며 반쯤 마비된 이성으로 장건에게 달려들었다.
“대왕을 위하여-!”
한 마인이 그렇게 외치며 자신의 장창을 쭉 찔렀다. 창대와 창날 부분 모두 크고 묵직해서 그냥 그렇게 찌르기만 해도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그 창을 상대로 장건은 왼손을 뻗었다. 그 손을 마주한 창날 끝이 파르르 떨리며 장건의 안쪽으로 파고들려 했지만, 다음 순간 장건의 손이 흐릿해졌다가 다시 그 형상을 되찾았을 땐 이미 창대가 붙잡힌 후였다. 장건은 그 창을 와락 당기며 청룡을 휘둘렀다.
마인의 목이 하나 더 달아나는 동시에 장건은 장병기를 얻었다. 장건은 청룡을 다시 칼집에 집어넣고 새로 얻은 창을 휘리릭 한번 돌려보았다.
“괜찮군.”
새로 얻은 창이 마음에 든 장건은 여전히 돌아앉은 그대로 툭툭 조조의 옆구리를 쳤다. 조조는 이미 늦췄던 속도를 조금 더 늦췄다. 새로운 마인들과 장건과 거리가 줄어들었다.
“이 쥐새끼 같은 놈!”
한 마인이 그렇게 외치며 창을 찔러왔다. 장건은 그 창에 자신의 창을 그대로 마주 찔러넣었다. 창날과 창날, 창대와 창대가 서로 가까워지며 곧 부딪쳤다. 그리고 마인의 창은 어떤 강한 힘에 그대로 튕겨 나갔다.
“엇!”
이후 장건의 창이 그 마인의 목을 꿰뚫었다. 창날에 담겨 있던 힘이 어찌나 강했던지 마인의 목이 그대로 터져나가며 몸과 머리가 분리되었다. 붉은 핏물이 허공에 성긴 그물처럼 흩뿌려졌다.
장건은 자신의 창을 휘리릭 돌려서 그 핏물을 막았다. 이후엔 잠깐의 멈칫거림 하나 없이 다른 마인에게 창날을 찔러넣었다. 창은 그 마인의 갑옷과 몸을 가르고 다시 한번 허공에 핏물을 뿌렸다.
그 순간 주인을 잃고 계속 달리던 들소 하나가 길게 울부짖으며 조조에게 뿔을 들이밀었다. 조조는 도리어 순간적으로 더 속도를 늦춰 그 들소의 뒤로 빠지며 육탄공격을 피했다. 동시에 장건의 창날이 그 들소의 뒷목 부분을 푹 찌르고 빠져나왔다.
무-어-어-!
거대한 들소는 이후 두어 번 더 풀쩍풀쩍 뛰다가 곧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갑자기 그렇게 거대한 장애물이 생기자 장건을 쫓아 한 방향으로 달리던 들소들은 그대로 거기에 머리를 들이박아 버렸다.
“으악-!”
“어억!”
마인들 대여섯이 그대로 안장에서 앞으로 튕겨 나갔다. 그 충돌은 일고여덟의 희생자를 더 만들고 나서야 멈췄다. 물론 장건과 조조는 이미 멀찍이 떨어진 후였다.
“으아아-!”
“이 쥐새끼!”
그 충돌 현장을 피한 마인들이 괴성을 질러대며 장건을 향해 달렸다. 장건은 그때까지도 안장에 거꾸로 앉아서는 다가오는 마인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의 창날이 낭창거리면서 슬쩍 몸을 훑고 지나가면 마인들은 몸 한 곳이 퍽퍽 터져나가며 왈칵 피를 쏟고는 숨이 끊어졌다.
“장-거언-!”
그 순간 제일 선두에서 최후방으로 처졌던 모용광현이 마침내 장건을 따라잡았다. 장건의 눈도 그를 향했다.
들소를 내달리며 달려오는 모용광현의 눈에는 검은자위가 없는 것 하얀 백광만 번뜩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그의 손에 들린 검도 마찬가지였다. 내력을 얼마나 쏟아부은 것인지 뚝뚝 흘러내릴 듯한 검기가 그의 뒤로 긴 섬광을 그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를 마주한 장건은 곧장 다시 몸을 돌려 안장 위에 바로 앉아서는 조조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그러자 조조는 다시 한번 푹푹 거칠게 숨을 내쉬며 속도를 냈다. 모용광현과 장건의 거리가 멀어져갔다.
그 모습을 잠시 멍하게 바라보던 모용광현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외쳤다.
“장건-! 네 이놈-!”
장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모용광현에게서 멀어지며 계속 그 귀신같은 창을 휘둘러 다른 마인들의 숫자를 줄여나갔다.
“멈춰라, 이놈-!”
“지랄하네.”
모용광현의 외침에 장건은 짧게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 하나를 잡겠다고 이렇게 백이 몰려왔으니, 원하는 대로 그 백을 모조리 박살 내 줄 생각이었다. 오늘 이 벌판을 마인들의 시체로 가득 채워주는 것이 지금 장건의 목표였다.
그의 창날이 또 다른 마인의 목을 훑고 지나갔다. 몸과의 연결점을 잃은 머리가 훌쩍 높이도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