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모용광현은 훌쩍 멀어지는 장건에게 최대한 따라붙으려 노력하면서도 빠르게 기병대의 상태를 훑었다.
오가기병의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그들이 탄 검은 들소가 아무리 다양한 독과 약, 술법으로 개량된 종이라고는 해도 지금 같은 전력 질주를 끝도 없이 반복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지금 저기서 처음과 다를 바 없는 속도로 달리고 있는 장건의 말이 수천 근짜리 근육 덩어리 괴물 들소보다 더 말이 안 되는 괴물인 셈이었다.
거기에 기병들은 제일 처음 있었던 충돌 이후 장건의 손에 꾸준히 죽어 나갔다. 장건의 손에 길쭉한 창이 들린 이후부터는 더 빨리, 더 많이 죽었다.
기마전에선 마인들의 무지막지한 내력이 큰 이점을 주지 못했다. 그보다는 거리 감각과 몸의 중심이 한곳에 묶여있는 와중에도 얼마나 능동적인 기동을 보여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했다. 말하자면 힘보다는 기교가 더 중요했다.
그러나 검은 들소는 애초부터 그 정신 나간 무게와 힘으로 상대를 모조리 밀어버리기 위해 길러진 기마였다. 그건 기병들의 싸움 때도 마찬가지였다. 모용광현은 정말 오가기병 이천이면 상대가 기병이든 보병이든, 숫자가 두 배, 세 배가 넘어가든 싹 짓밟아버릴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것은 결국 질량과 질량의 충돌이기 때문이었다.
오가기병의 마상무예가 부족함에도 모두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어차피 오가기병이 더 달릴 수 없는 상태라면 그땐 그냥 들소 위에서 내려서서 싸우면 그만이라 여긴 것이다.
“말! 저 새끼 말부터 잡아!”
그때 한 마인이 그렇게 외쳤다. 마공이 들끓는 와중에도 나름 이성적인 판단을 한 모양이었다. 그 외침을 들은 몇몇 기병들이 이를 악물고 자신들의 창이나 칼을 집어 던졌다. 날붙이들이 번쩍거리며 허공을 날았다. 쒜에엑 대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그 날붙이들은 장건의 창이 허공을 휘적-걷어내자 무슨 그물에 걸린 것처럼 창대에 달라붙었다. 장건은 멈추지 않고 다시 한번 그 창을 크게 휘둘렀다. 순간 창대에 달라붙었던 창칼들이 피피핑-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대충 봐도 목표 없이 무차별적으로 날아가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어차피 이 자리엔 장건의 적들뿐이었고, 덕분에 운 없는 마인 몇몇이 그 창칼에 맞아 피를 뿌렸다.
투척을 되돌려보낸 장건은 즉시 다음 목표에게 다가가 푹 창을 찔렀다. 그 상대는 두 눈에서 마기를 이글거리며 큰 칼을 휘둘렀지만, 그 칼이 장건 근처에 도달하는 것보다 장건의 창날이 뱀처럼 파고들어 목덜미를 훑고 지나가는 것이 더 빨랐다. 또 다시 몸과 분리된 머리가 허공에 두둥실 떠올랐다.
모용광현은 그 모습을 보며 정신이 번쩍 드는 걸 느꼈다. 휙 주변을 돌아보자 두 눈에 불을 켜고 장건을 쫓는 오가기병의 숫자가 처음보다 확연히 줄어든 게 보였다. 그들이 쭉 달려온 벌판 뒤로 주인을 잃은 검은 들소가 뜨문뜨문 멈춰 선 것이 보였다.
이대로라면 정말 장건의 손에 오가기병 일백 기가 모두 깎여나갈 수 있다는 실감이 나는 장면이었다.
모용광현은 더 생각할 것 없이 자신의 신공을 완전히 일깨웠다.
“자앙-거언-!”
상대의 창을 걷어내고 그 겨드랑이에 쑥 창날을 꽂아주던 장건은 벌판을 쩌렁쩌렁 울리는 그 목소리에 흘낏 그쪽을 바라보았다. 모용광현이 조금 전보다 더 환하게 번쩍거려서 이제는 불길을 토해내는 듯한 두 눈으로 이쪽을 노려보는 것이 보였다.
장건은 그 눈을 마주 보며 창을 뽑았다. 심장이 터져나간 마인이 기우뚱 들소 아래로 굴렀다. 그 뒤에서 따라오던 다른 들소들이 그의 몸을 마구 짓밟아 부쉈다.
상대가 그렇게 나가떨어지는 동안 장건은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리고 조조의 고삐를 잡아 툭툭 당겼다. 모용광현이 처절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으나 여전히 맞상대해줄 생각은 없었다.
아직 적들의 숫자가 많았다. 모용광현을 상대하는 것은 그 숫자가 모두 사라진 다음이 될 터였다. 혼자 저렇게 열이 뻗쳐서 흥분하고 기운을 낭비해주면 장건 입장에선 오히려 더 좋았다. 어차피 당장 발을 달리는 것은 조조와 검은 들소들이었다.
조조도 지금까지 달리며 점점 숨이 차는지 헐떡거리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들소들의 상태에 비하면 날아다니는 수준이었다. 이대로 상황을 이끌어가면 오늘 저녁이 되기 전에 본대로 복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장건은 등 뒤로 아찔한 섬뜩함을 느꼈다.
그는 곧바로 조조의 옆구리를 툭 차서 신호를 보내고 몸을 돌려 창을 휘둘렀다.
다음 순간 하얀 반월이 그의 창대를 잘라 버리며 다가왔다. 그 반월은 이어서 그의 가슴팍을 가르고, 신호를 받아 옆으로 움직이려던 조조의 목덜미마저 스쳐서는 벌판 위에 길쭉한 상흔을 나기며 사라졌다.
장건의 눈에 잠시 느려진 세상과 그 속에서 왈칵 피를 뿜어내는 자신의 가슴팍, 그리고 조조의 목덜미가 보였다. 반으로 쪼개진 창대와 화끈해지는 가슴팍, 그리고 조금 전 그 하얀 반월이 무엇인지 따져보기도 전에, 장건은 곧바로 조조의 목덜미를 끌어안으며 훌쩍 몸을 날렸다.
다리에 힘이 풀린 조조가 그대로 나자빠지기 전 장건이 녀석을 부드럽게 받아 눕혔다. 동시에 그의 손이 번개처럼 녀석의 상처를 훑었다. 왈칵 쏟아지려던 피가 그의 점혈에 멈췄다. 피를 막고 나서도 장건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단순히 혈관만 막으면 시간이 지나서 그 부분에 괴사가 일어날 수 있었다. 지혈은 결국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다행히 상처가 그리 심각하진 않았다. 당장은 상처가 다시 터질 수도 있으니 움직이면 안 되겠지만, 그의 짐가방 안에 실도 있고 바늘도 있었다. 조금 있다가 상처를 꿰매고 연고를 발라주면 될 터였다.
그때 장건의 품에 머리를 안기고 있던 녀석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그의 가슴팍을 핥았다.
“음?”
장건은 그제야 자기 가슴팍 또한 가로로 길게 갈라졌음을 기억해냈다. 그의 앞섬이 철철 흘러나온 피로 철벅거리고 있었다. 조조는 숨을 헐떡거리며 물기 가득한 눈알을 굴리는 와중에도 장건 또한 다쳤다고 말한 것이다.
장건은 녀석의 턱을 가볍게 두드려주며 다른 손으로 가슴의 혈을 짚었다. 잠깐 사이에 피를 너무 많이 쏟았는지 손가락으로 푹푹 찌르고 있음에도 통감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상처를 지혈한 장건은 거칠게 숨을 쉬는 조조의 머리를 바닥에 내려놓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조가 그 모습을 보고는 버둥거리며 함께 일어서려 했다. 장건은 녀석의 머리를 붙잡고 내리눌렀다.
“잠깐 누워 쉬어. 평소엔 그렇게 뒹굴거리길 좋아했으면서 왜 이러냐?”
조조는 푹푹 깊은 숨결을 내쉬며 장건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는 비리비리하거나 영악하기만 한 그 눈이 지금은 고통과 불안감으로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장건은 그게 웃겨서 살짝 웃었다.
“그럼 쉬고 있어라.”
그렇게 조조를 눕혀둔 장건은 우뚝 일어서서 그의 앞에 반원을 그리고 선 마인들을 바라보았다. 검은 들소들이나 그 위에 탄 마인들이나 모두 헉헉거리며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제일 앞에 모용광현이 있었다.
조금 전까지 두 눈에서 말 그대로 불길을 토하던 그는 이제 검게 식은 눈으로 장건을 노려보고 있었다. 거기에 그는 마치 전력 질주를 하기라도 한 것처럼 땀을 줄줄 흘리며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장건이 인사라도 하듯 턱짓하며 물었다.
“방금 그게 뭐였지?”
“···건곤백룡비검乾坤白龍飛劍.”
“단순무식한 방식에 비해 멋진 이름이군.”
“뭐라?”
장건은 아직 수십에 이르는 마인들을 마주하고도 특별히 대수로울 필요가 없다는 듯 어슬렁어슬렁 움직였다. 그는 조조를 뒤에 남겨두고 조금 앞으로 걸어가 바닥에 뒹굴고 있던 창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를 보던 모용광현이 말했다.
“단순무식하다고? 본가의 비검이 단순하단 거냐? 그 단순무식에 곤욕을 치른 네놈이 할 말은 아닐 텐데.”
“그래도 무식한 건 무식한 거야, 내력을 있는 대로 다 때려 부어 검기인지 뭔지 모를 덩어리를 만들고 던져버리는 건. 네놈들처럼 사람 잡아먹는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내력을 키우고 혈도를 강화시키는 것이 아닌 이상 불가능한 방법이지. 본래라면 내력이 부족하든가, 아니면 내력을 감당하지 못한 기혈이 터져나가야 하니까.”
모용광현은 잠시 멍하니 장건을 바라보다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외쳤다.
“그것이 바로 신공의 위대함이다, 황제의 개! 그러는 너는 이것 비슷한 기교라도 부릴 수나 있나? 무공이라 함은 결국 이런 압도적인 힘으로 천하를 평정하는 것이다! 이 같은 경지에 이를 수 없다면 오히려 그게 잘못된 길이 아니겠는가!”
그가 외치는 동안 장건은 집어 든 창을 바닥에 꽂고 갑자기 쭈그려 앉아 신발 끈을 다시 묶기 시작했다. 그를 지켜보던 마인 중 하나가 창을 들어 겨누며 버럭 외쳤다.
“네놈이 시간을 끄는구나! 가주! 굳이 더 시간을 줄 게 아니라-”
그 순간 떼엥-하는 종소리와 함께 그 마인의 가슴팍이 퍽 뚫려버렸다.
그 마인은 멍청한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내려 휑하니 뚫려버린 자기 가슴팍을 내려다보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다시 고개를 들다가 기우뚱 안장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순간 그 마인에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가, 다시 장건에게 향했다. 장건은 정권 자세로 주먹을 뻗은 채 그들을 마주 보고 있었다.
장건은 그 자세 그대로 다시 모용광현을 바라보며 말없이 다시 가벼운 턱짓을 했다. 마치 이게 진짜 무공이라는 듯했다.
모용광현은 방금 자신이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건 그 자리에 있는 마인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어떤 암기나 무기, 혹은 날붙이가 허공을 나는 걸 보지 못했다.
그것은 그 주먹이 방금 모용광현처럼 내력을 이용한 공격이든, 아니면 어떤 암기를 이용한 것이든 사실상 피할 수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어쨌든 보지 못한 것은 같았으니까.
그들이 침묵에 잠긴 동안 장건은 다시 쭈그려 앉아서 묶던 신발 끈을 마무리했다. 이후 일어서서는 신발 코로 툭툭 바닥을 건드리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조조가 고개만 빼꼼 들어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녀석은 조금 전 장건이 그랬던 것처럼 인사라도 하듯 슬쩍 턱짓을 했다. 멀쩡해 보였다.
녀석을 확인한 장건은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리고 박아두었던 창을 뽑으며 성큼성큼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를 본 모용광현과 마인들은 정신을 차리고 각자의 무기를 치켜들었다. 어쨌든 지금까지 장건이 그들을 농락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소인 말을 쓰러뜨렸다. 이제 달려가서 그를 짓밟아버릴 일만 남은 것이다.
그때 장건이 훌쩍 날아올랐다.
“뭣-?”
모용광현은 저 멀리 있다가 갑자기 훌쩍 가까워지는 장건의 모습에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 짧은 사이에도 내력이 솟아났는지 하얀 백광이 번쩍거리는 검이었다.
그 검을 마주한 장건의 창은 혼자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휘리릭 움직여 칼날을 피하고 모용광현의 뺨을 살짝 핥고 지나갔다. 모용광현이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장건이 그를 뛰어넘은 후였다.
“이놈!”
모용광현이 주르륵 뺨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느끼며 들소의 머리를 뒤로 끌어당겼을 때, 장건은 그의 뒤에 멈춰 있던 오가기병의 한가운데로 파고들어 날개라도 달린 듯 뛰어오르며 창을 휘두르고 있었다.
“죽여라-!”
“놈은 이제 말이 없다!”
오가기병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장건의 모습에 들소 위에서 내리거나, 아니면 그 들소로 장건을 들이박으려 고삐를 튕겨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모용광현은 다시 한번 머리가 아찔해지는 것 같았다.
“무슨···”
장건은 다리에 무슨 용수철이라도 단 것처럼 가볍게 뛰는 것으로 기병대의 머리 서넛을 훌쩍훌쩍 뛰어넘고 있었다. 동시에 그는 왼손의 창뿐만 아니라 허리의 칼마저 뽑아 휘두르기 시작했다. 덕분에 조금 뒤쪽에 있던 오가기병 눈에는 장건이 어디 있는지도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앞쪽에서 불쑥 솟아올라서는 하늘 위에서 벼락처럼 섬광을 내리꽂는 듯 느껴졌다.
결국 모여있던 오가기병들의 진형은 난장판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저놈! 쫓아라! 들이박아!”
“들소를 멈춰! 너무 좁아서 움직일 수 없다!”
“들소에서 내려라! 내려서 쫓아!”
“놈을 짓밟아버려! 죽여-!”
만약 지금 이 장소가 수천, 수만이 싸우는 전쟁터였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어쨌든 마공을 익힌 오가기병들은 각자 개개인이 아주 강력한 병사였고, 혼전이 일어나면 이성을 날려버리며 모두 일당백의 전사가 될 수 있었다. 그들의 힘이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이 오히려 그런 난장판 속인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적은 단 하나. 장건뿐이었다.
조조가 없어지자 이제 그의 발은 단순히 평면적인 움직임을 벗어나 수평으로 넓어진 것이다. 그 압도적인 보법, 경공 앞에서 마인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장거언-!”
모용광현이 흉신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천둥처럼 외쳤다. 물론 장건은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들소의 머리나 등, 때론 마인들의 머리를 밟아가며 놈들의 하늘 위를 날아다녔다. 그리고 그 발걸음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마인들은 숨이 끊어져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이 순간 그 벌판 하늘의 지배자는 장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