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2)
2화
객잔 안은 가벼운 소음으로 가득했다.
2층짜리 사합원 모양의 객잔 1층에는 저녁 식사를 하는 자들과 술을 마시는 남자들, 구석 탁자에서 골패를 만지작거리는 사람들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보였다. 그 사이를 객잔 주인으로 보이는 배불뚝이 중년인이 국수 그릇이나 술병, 안줏거리들을 들고 바쁘게 오갔다.
그때 삿갓을 쓴 한 남자가 객잔의 주렴을 열고 들어섰다.
외지인이었다. 국수를 먹고 술을 마시던 사람들이 흘끔흘끔 그를 훔쳐보았다. 칼을 차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림인일 테지만, 신대륙에서는 개나 소나 창칼을 쥐고 무림인이라 지껄이니 그리 특이하달 것도 없었다.
뚜벅뚜벅 들어온 남자가 시선들을 느끼고 멈춰서자 객잔 주인이 다가갔다. 주인은 허리띠에 달린 수건에 손을 닦으며 말했다.
“외지인이시군. 어서 오시오, 환영하외다.”
남자는 손가락으로 쓰고 있던 삿갓을 슬쩍 밀어 올리며 객잔 주인을 바라보았다. 객잔 주인은 삿갓 아래 보이는 남자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숙박이시오?”
“식사도.”
객잔 주인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열 문이오.”
남자는 별 말없이 품에서 동전 열 문을 꺼내 내밀었다. 객잔 주인은 그걸 받아들고 주방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편한 데 앉아 있으쇼. 국수 하나 금방 말아 올 테니까.”
객잔 한쪽 구석으로 걸어간 남자는 허리춤의 칼을 칼집 그대로 뽑아 탁자 옆에 세워놓고 삿갓을 벗었다.
그가 특별히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 않자 조금 조용해졌던 객잔 안이 다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남자, 장건은 양손을 탁자 위에 올려둔 편한 자세로 앉아 천천히 객잔 안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객잔 겸 식당 안 사람들은 대부분 이곳 마을 사람이나 인근 농부들이었다. 물론 개중에도 그처럼 탁자 옆에 검이나 칼을 세워둔 사람들도 있기는 했으나 기껏해야 서넛이었다. 서부 해안 쪽 도시나 마을에는 무림인이랍시고 거들먹거리는 놈들이 평범한 양민들보다 많았지만 이곳은 그쪽과 거리가 좀 있는 지역이었다. 칼잡이보단 농부가 많았다.
그래서 기껏 있는 칼잡이들도 모두 떠돌이가 호신용으로 날붙이를 마련한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꽤 손님이 많았으나 객잔의 일손은 주인이 전부인 것 같았다. 다른 객잔에선 흔히 한두 명씩 있는 점소이도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주인의 부인이나 자식이 있지도 않았다. 장건의 생각에 이런 객잔 상황이라면 국수 한 그릇 말아오는 것도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이런 염병! 너 이 새끼! 지금 사기 쳤지?”
“뭐? 사기? 지 손가락 병신인 건 생각 안 하고 뭐가 어째?”
그때 객잔 구석에서 골패를 만지작거리던 남자들 사이에서 언성이 높아졌다. 한 남자가 벌떡 일어나서 장건을 등지고 앉은 남자를 노려보며 사기를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두 사람은 그 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로 죽이겠다니 어쩌니 말싸움을 해댔다.
객잔 안 사람들은 흔히 보던 광경인지 고개를 살살 흔들거리거나 낄낄 웃으며 술을 마셨다. 소란을 들은 객잔 주인마저도 주방 주렴 밖으로 고개만 슬쩍 꺼내 보더니 픽 웃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긴장하거나 불안해 보이는 사람이 없으니 아마 저렇게 서로 욕이나 하다가 끝날 모양이었다.
하지만 장건의 눈은 그들에게 고정되었다. 정확히는 그를 등지고 선 남자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부터였다.
“이런 시발! 그럼 오늘 종일 너는 따고 나는 잃는 게 말이 되냐!”
“아니 글쎄, 그건 네 손가락 문제 아니냐고. 너 빼고 다른 사람들은 많이 땄잖아?”
“이 새끼가?”
사기를 주장하던 남자는 결국 화를 참지 못했는지 상대방을 두 손으로 툭 밀었다. 그를 비웃던 자는 주춤거리며 뒤로 두어 걸음 밀려났다가 이내 으르렁거렸다.
“뭐야. 진짜 해보자는 거야?”
“그래 이 새끼야! 그동안 당해주기만 하니까 내가 진짜 호구인 줄 알았냐?”
결국 두 사람은 서로의 멱살을 쥐더니 거칠게 흔들어대며 못 알아들을 욕설을 외쳐댔다. 그리고 그때까지 소란을 주시하던 장건은 끝내 등만 보이던 남자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떠올랐다.
“저 새끼 여기 있었군.”
짧게 중얼거린 장건은 가만 둘의 실랑이를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뚜벅뚜벅 다가갔다. 그가 그렇게 다가가는 동안에도 두 남자는 서로의 얼굴에 침을 뱉다시피 거친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탁자의 다른 사람들은 둘을 말릴 생각이 없는지 슬슬 웃기만 했다.
“어이.”
멱살을 잡고 난리를 피우던 두 남자가 장건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사기를 주장하던 자는 장건을 보고도 ‘이 새끼 뭐야?’ 하는 얼굴이었지만, 다른 남자는 혼자 덜컥 놀라서는 스르륵 창백해졌다.
“···뭐요?”
사기를 주장하던 남자의 질문에 장건이 고개를 저었다.
“그쪽 말고.”
얼굴이 창백해졌던 남자는 장건의 말을 듣고 이리저리 불안하게 눈알을 굴리다가, 이내 비실비실 쪼개며 말했다.
“···장 형, 여기서 보네?”
“그래. 두 달 만이군. 잘 지냈냐?”
남자는 붙잡고 있던 상대의 멱살을 슬쩍 놓으며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상대도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의 옷깃을 놓아주었다.
“나야, 뭐. 자, 잘 지냈지. 그, 장 형은 잘 지냈소?”
장건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난 잘 못 지냈다. 어떻게 된 것이 네 일당은 다들 잘 지냈다는 말만 하는군.”
“···다른 친구들도 찾았던 모양이오?”
“그래. 네가 마지막이야.”
남자는 슬쩍 뒤로 한 걸음 더 물러섰다.
“그, 그게··· 사실 나, 난 하지 말자고 했었소. 그렇잖소? 골패로 칼 든 무림인 털어먹자는 게 말이 되나? 걸리면 그 칼 맞을 게 뻔한데?”
“하지만 너희는 결국 했지.”
남자는 장건의 대답을 듣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하핫, 하고 웃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그는 몸을 돌린 동시에 어떤 우악스러운 손아귀가 자신의 뒤통수를 붙잡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손아귀는 그대로 그의 머리를 골패가 늘어져 있던 탁자 위에 내리꽂았다.
“어억!”
남자의 이마가 탁자에 처박히며 골패와 동전들이 들썩거렸다.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움찔 뒤로 물러서기까지 했다. 얼굴을 박은 남자는 머리가 띵하고 고통스러운지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장건의 손아귀를 벗어나려 했으나 머리를 누르는 손은 바위라도 되는 것처럼 꼼짝도 하질 않았다.
“지, 진짜 난 하지 말자 했다고! 그리고 결국 그렇게 돈이 다 털리도록 앉아 있던 건 장 형이잖소! 우린 중간에 장 형이 일어나도 붙잡을 생각이 없었소! 진짜로! 좀 봐주시오!”
장건은 대답 없이 남자의 왼손을 붙잡아 탁자 위에 올려놓고 그 소매에 숨겨져 있던 골패를 끄집어냈다. 장건은 그 골패를 남자의 얼굴에 들이밀고 가까이 붙어 낮게 속삭였다.
“그런다고 도박판에서 속임수 쓴 게 사라지냐? 지랄 말고 양굉, 내 돈 어딨어?”
양굉이라는 남자는 번들거리는 장건의 눈을 보고 꿀꺽 침을 삼키고는 대답했다.
“···그게, 무, 무림맹 현상금으로 냈소.”
“뭐 시발? 그걸로 현상금을 냈다고?”
양굉은 찡그려지는 장건의 얼굴이 무서운지 벌벌 떨었다.
“그, 그럼 당장 여기에도 무림맹 지부가 있는데 내가 어쩌겠소? 나도 객잔에 들어와 밥은 먹어야 할 것 아니오···”
장건은 탁자에 처박혀있던 양굉의 머리를 붙잡아 일으키고는 멱살을 붙잡았다.
“그래서 한 푼도 없단 거냐?”
“그, 그건 아니고, 여기 와서 딴 게 있으니··· 그걸로 좀···”
양굉은 탁자 위에 깔린 동전을 눈으로 가리켰다. 그걸 본 장건은 붙잡고 있던 양굉을 옆으로 밀어버리고 그가 앉아 있던 자리로 다가갔다. 그리고 거기 깔린 동전을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양굉을 사기꾼이라 욕하던 남자와 그와 같이 앉아 도박하던 사람들, 그리고 객잔 안에 있던 손님들 모두 멍한 눈으로 그걸 바라보기만 했다. 아무래도 저 양굉이란 자가 예전에 도박판에서 속임수를 치고 도망쳤다가 잡힌 모양인데, 그런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지금 장건의 행동은 거침없는 면이 있었다.
“자, 잠깐. 잠깐 멈추쇼!”
그때 양굉을 욕하던 남자가 정신을 차리고 장건에게 소리쳤다.
“멈춰보시오! 그거 다 속임수로 딴 돈이잖아! 그거 내 돈이야!”
장건은 그렇게 외친 남자를 흘끔 보고는 계속 동전을 챙기며 대답했다.
“그게 내 책임은 아니지. 나중에 이놈한테 알아서 받으시오.”
“뭐, 뭐 시발?”
남자는 장건의 대답을 듣고 다시 확 열이 오른 얼굴로 두 손을 뻗었다. 양굉을 밀쳤던 것처럼 밀어버릴 생각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남자가 장건을 밀어붙이려는 순간, 장건은 남자의 손을 붙잡아 끌어당기며 슬쩍 비켜섰다.
“어이쿠!”
확 끌려간 남자는 그대로 앞으로 자빠져 굴렀다. 무공을 익힌 적이 없는지 그대로 바닥에 얼굴을 박기까지 했다. 장건은 그가 얼굴이 갈리든 말든 다시 탁자로 다가가 양굉의 동전을 챙겼다.
금세 자리에 있던 동전을 모두 집은 장건은 그것을 품에 챙겨 넣고 돌아서 다시 주저앉아 있는 양굉의 멱살을 잡았다.
“어엇, 왜, 왜 이러십니까, 장 형!”
“왜긴 자식아. 한참 모자라니까 그렇지.”
“그, 그게··· 이젠 저도 가진 게 없는데···”
양굉은 정말이라는 듯 비시식 웃으며 비어있는 두 손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마치 정말 이젠 가진 게 없다고, 못 믿겠으면 몸을 다 뒤져보라는 듯했다.
그걸 본 장건이 정말 이놈 옷이라도 싹 벗겨야 하나 생각할 때였다.
“너, 너 이 새끼!”
바닥에 넘어졌던 남자가 코를 부여잡고 일어나 장건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코를 부여잡은 손 사이에서 줄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 시발! 내 코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넌 뒈졌어!”
장건은 그 흉한 꼴을 보고 멋쩍게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다치게 한 건 미안하오. 하지만 나도 이놈한테 뜯긴 돈이 한두 푼이 아니라···”
장건은 말끝을 흐렸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보이던 남자가 그대로 객잔 밖으로 도망가버린 탓이었다. 남자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장건은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으며 다시 양굉에게 눈을 돌렸다.
“저놈은 또 뭐 하는 병신이야?”
“그··· 그게··· 일단 저 녀석 이름은 진양석인데···”
장건은 양굉의 말을 끊으며 고개를 저었다.
“됐고. 너 어쩔래?”
“예, 예? 뭘 어쩝니까?”
옷깃을 잡은 장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떻게든 내 돈 내놓을래, 아니면 단전이 박살 나볼래.”
그 말에 양굉은 왼쪽 눈과 두 손을 파르르 떨었다.
“그, 제 눈곱만한 공력 흩어보셔야 장 형에게 무슨,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장건은 애처롭게 떨리는 목소리에도 동정심 하나 느끼지 못하는지 말없이 돌처럼 굳게 쥔 왼 주먹을 양굉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그 주먹과 장건의 눈을 불안하게 번갈아 보던 양굉은, 이내 푹 한숨 한번을 내쉬더니 축 처져서는 눈까지 내리깔며 말했다.
“···그럼 일단 이것 좀 놔 주십시오. 품에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
장건이 움켜쥐고 있던 것을 놓아주자 양굉은 앞섶을 조금 풀더니 가슴팍 쪽 옷자락 한구석을 쥐어뜯어 그 안에 교묘히 숨겨져 있던 작은 헝겊 뭉치를 꺼냈다. 그리고 느릿한 손놀림으로 헝겊을 풀어 헤쳐 작은 옥가락지 하나를 꺼내 보였다.
그는 그 옥가락지를 보며 다시 한숨 한번을 내쉬곤 장건에게 내밀었다.
“···저기, 뭐냐. 예전에 신사천에서 얻은 겁니다. 진짜 옥이니까 적당한 구매처만 찾으면 값이 꽤 나올 겁니다.”
장건은 그걸 받아 들고는 눈앞에서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곧장 자기 품속에 집어넣었다. 양굉은 그런 장건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어, 어떻습니까? 그 정도면 되시겠지요?”
“그래. 이 정도면 되겠군.”
장건은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을 어설프게 따라 웃는 양굉을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돌려 주방 밖으로 나와 있는 객잔 주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객잔 사람들이 보내는 어처구니없다는 식의 시선은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어리둥절한 얼굴의 객잔 주인에게 덤덤하게 물었다.
“내 국수는 언제 나오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