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20)
20화
“엿 같은 새끼.”
숲길을 걷던 옥피상단의 상단주 강륭은 혼자 그렇게 중얼거렸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같이 일을 꾸몄던 상행 조합의 강충이 떠오르고 있었다.
같은 고향 사람이라는 것과 원주민들을 쫓아내면 금광을 찾을 수 있다는 말에 홀딱 넘어와 조합의 인장을 찍어주었던 그는 중간에 겁을 먹고 발을 빼려 했다.
거기에 더해 무림맹 순찰대원이 주변에 왔다는 소문을 듣고는 무림맹 지부장과 짜고 자신을 체포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시간을 끌기 위해 강충을 몰래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상단 직원을 모두 버리고 상황을 모르는, 돈으로 끌어모았던 칼잡이만 데리고 이 숲으로 들어와야 했다.
“너무 마음 쓰지 마라. 어차피 목적을 이루면 벗어야 할 신분이었다.”
그의 중얼거림을 들은 것인지 옆에 있던 무사 하나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검은 피풍의와 삿갓으로 얼굴과 체형을 제대로 확인하기 힘든 무사였다. 하지만 강륭은 그의 얼굴을 알고, 정체를 알고, 무공을 알았다. 강륭은 애써 표정을 펴며 속삭였다.
“하지만 금광을 잃지 않았습니까?”
“강물에서 사금이 나왔다곤 하지만 그게 확실한 채굴량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지. 금광은 어디까지나 그곳의 원주민을 쫓아내기 위한 것이었음을 잊지 마라.”
강륭은 욕을 하고 싶었다. 자신이 삼 년에 걸쳐 만든 상단을 뒤로하고 뭣도 모르는 칼잡이 서른만 데리고 산속에 들어왔는데 어떻게 말을 그딴 식으로 하냐고. 하지만 입으로 새어 나온 속삭임은 공손하기 그지없었다.
“···부디 그 비굴한 원시인 놈 이야기가 제대로 된 것이어야 할 텐데요.”
“이미 놈의 단중혈을 확인했다. 사람의 혈을 그렇게 열어 줄 수 있다니, 대단한 영성을 가진 놈인 것 같더군. 대계大計에 들기 충분한 영물이지. 단주님이 기뻐하실 거야.”
“아, 예. 그럴 테지요.”
강륭은 대충 대답했다. 그는 말단 중의 말단이라 그 대계가 뭔지도 제대로 몰랐다. 그저 저 무사의 손길에 해체되었던 원주민 녀석의 명복을 빌 뿐이었다.
그는 이어서 계곡의 원주민들이 적당히 겁먹고 물러나기를, 그래서 저 무사의 목적을 무사히 이루기를 바랐다. 그래야 자신도 다시 새로운 신분으로 새로운 상단을 차릴 수 있을 테니까. 강륭은 음지의 지원 아래 쑥쑥 커가던 자신의 상단이 너무 아까웠다.
그가 그렇게 남몰래 한숨을 내쉬던 때 갑자기 칼잡이들이 걸음을 멈췄다.
“···이보쇼, 고용주? 저기 누가 있는데?”
제일 앞에서 걷던 칼잡이가 뒤를 돌아보며 껄렁거렸다. 강륭은 상단 무사들과 비교되는 그 태도가 다시 한번 엿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무사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서 나타난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낡은 무복에 오른쪽 어깨 부분은 크게 덧댄 자국까지 있었다. 허리에 맨 칼도 그렇게 특별한 것 없는 물건으로 보였다.
하지만 길 한가운데 고요히 서서 왼손은 칼집 위에 얹어놓은 모습은 함부로 하기 힘든 기세가 있었다.
강륭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며 외쳤다. 오 장은 떨어진 먼 거리였다.
“이보시오! 난 옥피상단의 강륭이라고 하외다! 그쪽은 누구요!”
질문을 받은 남자, 장건은 가만 고개를 들어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깨끗한 하늘에 산새들 몇이 휘리릭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강륭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런 장건을 향해 다시 물었다.
“···이보시오? 누구시오?”
“원주민을 상대로 한 불공정, 혹은 사기 계약은 상행 조합과 무림맹에서 엄중히 처벌하고 있소. 걸리면 벌금 정도로는 끝나지 않지. 어쩌면 무림맹 감옥에 갇혀 징역을 살게 될 수도 있는 일이오.”
강륭은 그 뜬금없는 대답에 잠시 입을 벙긋거렸다. 이놈은 뭐 하는 놈인데 갑자기 길을 막고 지랄이란 말인가? 하지만 곧 그가 한 말에서 대강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던 그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비웃음을 지었다.
그는 그렇게 웃다가 말했다.
“···인제 보니 계곡에 살던 오랑캐가 중원인을 고용했나 보군. 이런 버러지 새끼. 받아먹을 돈이 없어서 오랑캐 돈을 받아먹는단 말이냐? 아니면 뭐, 오랑캐 창녀들이라도 붙여줬나?”
장건은 여전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차분한 목소리 그대로 말했다.
“서로 간에 오해가 있다면 풀어가면 될 것이오. 계곡 어딘가에 금광이 있다 생각되면 그들을 다 쫓아낼 것이 아니라 금광의 지분을 대가로 주고 같이 채광하는 방향도 있지. 금광 하나를 완전히 먹지는 못해도 상단 하나가 감당하기엔 충분한 양일 텐데.”
비웃음을 짓던 강륭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버러지가 갑자기 무슨 개소리야? 지분? 오랑캐한테 금광 지분을 주라고? 난 이미 그 땅을 은전 오백 냥 주고 샀다! 당장 꺼져야 하는 건 그 병신 같은 원시인들이야! 내가 왜 내 재산을 황금의 가치가 뭔지도 모르는 오랑캐들과 나눠야 하는데?”
상단을 잃고 도망치며 화는 치솟는데 풀 길이 없었던 강륭은 이 기회에 화를 다 풀겠다는 듯 앞으로 걸어 나오며 소리쳤다.
“너나 네 오랑캐들이나 당장 꺼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줄 아나? 지금 가서 그 움막이나 짓고 사는 그 원시인들은 모조리 죽여버릴 것이다! 저항하는 것은 다 죽이고 계집은 잡아다 팔아버려야지! 그 새끼들이 있었다는 흔적은 모조리 불 질러 태워버릴 것이야!”
그 이야기를 들은 장건은 가라앉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원주민 입장에서만 이야기를 들었으니 중원인 쪽 이야기도 들어볼 생각이었는데, 당장 말하는 모양만 보면 이런 개새끼가 따로 없었다. 강륭은 주변 무사들마저 약간 거북해하는 것도 모르고 계속 소리쳤다.
“아, 그래. 저번에 보니 애새끼도 참 많더군. 할 짓이 그것뿐이라 숭숭 낳아놨나 보던데, 요즘 암상暗商에서 애들 값을 잘 쳐준다지? 잘 됐군! 그 꼬맹이들도 잡아다가 팔아버려-”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강륭의 가슴 한가운데 툭 틀어박혔다. 그의 주변에 있던 칼잡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날아오던 화살을 느낀 장건과 검은 피풍의 무사는 그걸 막을 의지가 없었다.
열정적으로 개소리를 하던 강륭은 갑자기 자기 가슴에 틀어박힌 화살이 믿기질 않는다는 듯 벌벌 떨며 입을 벙긋거렸다. 그는 그렇게 한참 동안 박힌 화살을 제대로 만지지조차 못하다가 천천히 뒤를 돌며 말했다.
“···흐, 흑사님. 사, 살려주십시오···! 제, 제발! 이것 좀 어떻게···”
검은 피풍의 무사는 슬쩍 턱을 들며 강륭을 바라보았다. 강륭은 삿갓 아래 보이는 그 무사의 자흑紫黑색 눈을 마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차가운 미소도.
“나보고 뭘 어쩌라고?”
“시, 신공! 신공의 힘으로···!”
무사는 점점 힘이 풀려 무릎을 꿇고 앉은 강륭을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너 따위한테?”
강륭은 그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동그랗게 뜬 눈으로 무사를 올려다보다가, 결국 풀썩 쓰러졌다. 그리고는 잠시 파르르 떨다가 축 늘어졌다.
주변에 있던 칼잡이들은 모두 당황스러운 얼굴로 죽은 강륭, 저 앞에 선 장건을 번갈아 볼 때 장건의 뒤로 계곡 부족의 전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각자 알록달록한 물감으로 얼굴을 칠한 그들은 굳은 얼굴로 칼잡이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칼잡이들은 그림자처럼 숲에서 나타나는 그들을 보고 겁이 나는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 와중에 장건은 상인의 가슴에 틀어박힌 화살을 깃을 보고 비랑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부족의 아이들을 잡아다 팔아버리겠다는 말에 화가 났던 모양이었다. 동시에 장건은 상황이 묘해졌음도 깨달았다.
분명 부족 사람들에게 들었던 대로라면 저 상인이 이 소란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당장 칼잡이를 이끌고 올라온 것으로 보아 방금 말한 이야기들을 진짜 실현할 계획이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당황한 칼잡이들의 모습만 봐도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장건은 그 상인이 죽어가며 뭐라뭐라 빌었던 무사의 모습에서 겉으로 드러나던 것 외에 그가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음을 눈치챘다.
그의 예감이 맞았는지 검은 피풍의 무사가 버럭 소리쳤다.
“정신 차려라! 고용주가 오랑캐 화살에 맞아 죽었는데 그냥 넘어갈 생각이냐!”
칼잡이들은 그 무사의 호통에 정신을 차리긴커녕 억눌린 분위기가 터진 것처럼 자기들끼리 떠들어댔다.
“뭐, 뭐 시발. 지가 앞으로 나서다가 뒈졌는데 우리가 뭘 어째?”
“염병! 아직 받아야 할 돈이 있었는데!”
“이거, 이거 뭐야? 이거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니야? 고용주가 죽었는데 쟤들이랑 싸울 필요 있나?”
무사는 그들이 오합지졸처럼 중구난방 떠드는 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살살 젓다가 다시 말했다.
“멍청하긴. 고용주가 말 안 해준 거 기억 안 나나? 이 길을 계속 올라가면 원주민 마을이 하나 있고, 거기에 황금이 가득하다! 게다가 전사라고는 저 열댓 명이 전부고 나머진 모두 노약자에 불과하고!”
“황금? 황금이 가득하다고? 맞아, 금광이 있다고 했지.”
“어어, 그, 그런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근데 그건 우리 일이 아니잖아?”
잠시 말을 끊었던 검은 무사는 목소리를 높였다.
“게다가 저 야만인들이 먼저 중원인을 죽였다! 감히 어떻게! 야산에서 사는 야인들 따위가! 우리 고용주가 한 잘못이 뭐냐? 기껏해야 욕 좀 한 것뿐이지! 그런데 화살을 박아버리다니! 역시 못 배워먹은 오랑캐들은 어쩔 수 없군! 같은 중원인으로서 이걸 그냥 넘어갈 생각인가? 부당히 죽은 중원인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은가!”
“···그래! 기습으로 중원인을 죽이다니! 야만인 새끼들!”
“···죽은 우리 고용주, 그 이름이 뭐냐, 강륭! 강륭의 복수를 하자!”
장건은 그 칼잡이들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이 너무 쉽게 흥분하고 있었다. 진짜 인생 막장 칼받이들이 아님에야 저딴 소리에 선동되어 같이 소리 지르며 흥분하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겁을 줄 생각에 굳은 얼굴로 나타났던 원주민 전사들도 그런 모습이 당혹스러운지 흘끗흘끗 서로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때 장건의 코끝에 뭔가 알 수 없는 알싸한 향이 스쳤다. 장건은 재빨리 호흡을 멈추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의 몸으로 흡수되려던 무언가가 내공의 힘에 다시 호흡기로 밀려났다.
장건은 억누르는 호흡으로 그 독기를 후-하고 뱉어냈다. 그리고 호흡을 멈춘 그대로 검은 피풍의 무사를 노려보았다. 그의 피풍의 아래에서 흐릿한 뭔가가 계속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그는 장건의 차가운 시선을 느끼고 눈을 맞추더니 씨익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복수하자! 죽이자! 야만인들을 쓸어버리자!”
“쓸어버리자! 죽이자! 죽이고 황금을 가져오자!”
칼잡이들은 그새 자기들끼리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거기에 원주민 전사들도 그들의 말을 완전히 알아듣지는 못해도 욕하고 험한 말을 한다는 것은 짐작하는지 점점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장건이 그 전사들을 향해 외쳤다.
“숨을 참으시오! 저놈이 뭔가 사람을 흥분시키는 독을···”
하지만 이미 늦었는지 부족 전사들은 일그러진 얼굴로 천천히 자세를 낮추며 각자의 무기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장건의 말이 들리지도 않은 듯 짐승처럼 번뜩이는 노란 눈으로 소리치는 칼잡이들을 노려보았다.
심지어 적풍과 비랑마저도 정신 못 차리고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중원인들의 목소리는 커지고, 전사들은 당장이라도 무기를 뽑을 것 같았다. 이 지랄을 만든 것으로 보이는 검은 무사는 마치 네가 어쩔 거냐는 듯 웃음을 지으며 장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좋지 않았다. 이렇게 싸우게 되면 장건의 조언에 따라 무림인들의 일격을 피할 길도 없어지고 지난 며칠간 숲에 깔아둔 함정들도 쓸모가 없을 터였다. 어느 쪽이 이기더라도 이긴 것이 아닐 것이고, 만에 하나지만 전사들이 진다면 흥분한 칼잡이들에게 부족이 어떻게 될지는 뻔했다.
중원인 칼잡이들이 무슨 궐기 대회라도 하는 것처럼 소리를 지르다가 기어이 차고 있던 칼을 집었다. 그들은 잔뜩 흥분해서 거의 짖듯이 고함을 지르며 칼을 뽑으려 했다. 그리고 그건 장건 뒤에 서 있는 전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장건의 눈이 깊이 가라앉았다. 그는 독이 호흡에 섞여 들어오든 말든 깊이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외쳤다.
“닥-! 쳐-!”
열 줄기 천둥벼락이 한 번에 울린 듯 거대한 굉음과 진동이 숲과 계곡, 그리고 산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숲 전체에서 놀란 산새들이 날아올라 맑았던 하늘이 어지러워졌다. 방금까지 고함을 지르던 칼잡이들과 으르렁대던 전사들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다들 그 자리에 주저앉거나 멍한 얼굴로 장건을 바라보았다.
그중 검은 피풍의 무사는 삿갓도 뒤로 날아간 상태에서 바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서서 믿을 수 없다는 듯 장건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자···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