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202)
202화
갑옷과 투구를 차려입고 긴 창을 든 황군들은 마치 사람 크기의 동상을 늘어놓은 듯한 기계적인 질서정연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 들린 창들이 꼿꼿이 일어서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그 질서정연한 군단 뒤로 분주히 움직이는 무리가 보였다. 장건이 보아하니 그들은 무림맹으로 보였다. 전투 인원 전원이 기마 병력인 그들은 마궁의 돌진 이후를 생각하는 듯 뒤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황군과 무림맹을 향해 다가가는 검은 들소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황군처럼 잘 정련된 질서는 없었으나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와중에도 그 걸음걸음이 묵직하게 땅을 울렸으며, 들소와 그 기수들의 거친 숨결 속에서 강렬한 힘이 난폭하게 맥동하고 있었다.
장건은 그 충돌 직전의 모습을 한참 떨어진 언덕 위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상황을 쭉 둘러본 그의 손이 허리춤의 청룡을 붙잡았다. 그는 마궁을 때려 부수기 위해 동진군에 합류했고, 지금 저 장소는 마궁의 마인을 가장 많이 해치울 수 있을 장소였다.
“음···”
그러나 장건의 입에선 기합 대신에 미약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는 청룡을 붙잡았던 손을 자연스럽게 놓으며 몸을 앞으로 수그렸다. 내공을 일으키려 하자 단전이 찌릿해지며 머리에서는 띵-하고 현기증이 왔기 때문이었다.
장건이 힘들어하는 걸 느낀 조조가 머리를 흔들거리며 천천히 뒤로 몇 발짝을 물러났다. 마치 괜히 힘든데 무리하지 말고 여기서 전투가 끝나기를 기다리자는 것 같았다. 장건은 식은땀을 흘리는 와중에도 털털 웃었다.
“···그래, 이미 일당 받은 만큼은 했지.”
이미 그의 손에 고혼이 된 마인이 일백이고, 거기엔 모용가의 가주 또한 포함되었다. 그건 동진군의 누구도 그에게 지금 전투에 합류하지 않았다고 비난할 수 없을 전공이었다.
결국 장건은 몸의 긴장을 풀며 한숨 쉬듯 말했다.
“구경이나 해야겠군.”
그 말을 들은 조조는 그거 참 다행이라는 듯 장건처럼 푹 한숨 비슷한 것을 내쉬더니 곧 저 앞에 있을 싸움에는 관심 없다는 듯 머리를 숙이고 풀을 뜯기 시작했다. 장건은 그런 녀석의 목덜미를 툭툭 두드려주고 고개를 들었다.
서쪽 지평선 아래로 붉은 석양이 잠겨 드는 와중에 드넓은 광야에서는 황군의 갑옷이 그 석양빛을 받아 반짝이고, 검은 들소와 그 기수들은 어느새 멈춰서서 잠시 후 있을 돌격을 위해 정렬하고 있었다.
황군이 정렬하고 선 지형이 다른 곳보다는 조금 높은 땅이었으나, 그건 사실 볼록하다고 말할 수 있을 수준에 불과했다. 잘 쳐줘도 동산이라고조차 불러줄 수 없는 높이였다.
하지만 이 광야에서는 그 정도로 높이의 우위를 가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마궁의 기병대는 황군이 새로운 장소를 잡을 수 있도록 시간을 주지 않았다. 장건이 모용광현을 만났던 것이 한낮이었으니 지금 그 본대가 벌써 동진군과 만났다는 건 그들이 그동안 얼마나 빠르게 움직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천년 제국의 황군과 천년의 한을 가진 마궁이라.”
장건은 찌릿한 가슴팍의 고통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두 군단의 대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 * *
시야를 가로막는 것이 그 무엇도 없는 드넓은 광야. 그 광야 속에서 검은 들소 무리와 창 든 황군이 널찍한 거리를 둔 채 대치하길 잠시. 검은 들소, 그러니까 마궁 측에서 한 인물이 기병대의 정렬 사이로 빠져나와 앞으로 나섰다. 그는 그렇게 달려 나와서는 황군 측을 향해서 크게 외쳤다.
“반갑구나-! 유씨 황제의 개들아-!”
바로 옆에서 들었다면 귀가 찢어졌을 듯 쩌렁쩌렁 벌판을 울리는 목소리였다. 과연 그 인물은 그 목소리에 걸맞게 덥수룩한 산적수염과 커다란 덩치를 가진 거한이었다.
“오늘 여기서 너희의 장례가 열리는 걸 알고 온 것이냐-!”
그는 그 큰 목소리로 가벼운 도발을 걸었다. 하지만 정렬하고 선 황군 측은 모두 혀가 없는 것처럼 고요하기만 할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거한, 제갈 가주는 그런 황군의 모습을 보며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말조차 나눌 상대가 아니라는 게냐? 오만한 놈들.”
그렇게 중얼거린 그는 고삐를 돌려 오가기병대 쪽을 돌아보며 외쳤다.
“저 버러지들이 겁을 먹었는지 벙어리가 되었구나-!”
마궁 측에서 곧장 온갖 비웃음과 조롱이 터져 나왔다. 당장 황제를 모욕하는 욕부터 황군들의 어머니와 아버지, 수많은 조상을 향한 욕이 쏟아졌다. 마궁의 마인들은 전투 전의 흥분 때문인지 입에 거품을 물어가며 황군을 욕했다.
그러나 한참을 이어진 그 욕설과 모욕에도 여전히 황군 측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순간이지만 제갈 가주는 그들이 모두 석상이나 목상이고, 진짜 황군은 어디 다른 곳에서 우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분명 멀리 보이는 그들은 모두 두 눈을 깜빡거리며 살아있는 사람들이었다. 제갈 가주는 그런 황군의 고요함에 어쩐지 입술이 바싹 마르는 기분을 느꼈다. 마궁 측의 거친 도발에도 꼼짝 하나 없는 모습이 섬뜩할 정도였다.
“···확실히 보통내기는 아니군.”
이후 제갈 가주의 손이 번쩍 들렸다. 그러자 그의 뒤에 있던 마인들의 욕설과 외침도 사그라들었다. 대신 그 분노를 원동력으로 새로운 분노를 일으키듯 두 눈에서 붉은 혈광을 내기 시작했다.
“저렇게 주둥이를 다물고 있는 것을 보니 겁에 질려 뭐라 입을 뗄 수도 없는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이제 예고했던 장례를 시작할 시간이다-!”
그 외침에 이어 마궁 측에서 거친 함성이 울려 퍼졌다. 마인들 뿐만 아니라 주인의 목소리와 태도에 덩달아 흥분한 들소들 또한 목이 터져라 큰 소리로 울음을 토했다. 이제 지평선 밑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태양과 더불어 그 광경은 밤의 군세가 함성만으로 낮을 몰아내는 듯한 모습을 그렸다.
물론 그들을 마주한 유설은 귓가를 긁으며 중얼거렸다.
“귀가 간지럽네.”
“귀 좀 파드릴까요?”
옆에 있던 진하가 그렇게 물었다. 유설은 손을 내저었다.
“얘는 이제 싸울 참인데 무슨··· 나중에 해줘.”
진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을 이었다.
“저놈들, 이렇게 해가 지는 시간을 노린 걸 보니 어두워져도 자기들끼린 분간할 자신이 있는 모양인데요.”
“그보다는 어차피 싸우다가 눈 돌아가면 적아 구분할 것도 없이 날뛰는 마인들이라 그런 게 아닐까?”
“···그게 더 말이 되는군요.”
그때 제일 앞에 나서서 마인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던 거한이 높이 들었던 손을 앞으로 뻗으며 외쳤다.
“돌-겨억-! 도둑 황제의 개들을 찢어 죽여라-!”
그 소리를 들은 유설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놈의 도둑 황제. 졌으면 깔끔하게 졌다고 인정할 것이지 그건 또 뭐람?”
“초패마왕이 진나라를 무너뜨렸으니 그 마땅한 주인이 그자라는···”
“그 초패마왕을 물리친 게 고조시잖아? 그럼 끝난 거지 뭘.”
유설은 진하에게 그렇게 대꾸해주며 손을 들어 뒤쪽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 신호에 따라 황군 뒤에서 대기하던 무림맹 병력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설은 이어서 전방으로도 신호를 보냈다.
제일 최전선에서 창을 들고 꼿꼿이 서 있던 병사들이 그 창을 앞으로 뉘었다. 흔히 창병이 기마병을 상대할 때 하는 대기병 자세였다.
“으허허허-! 그걸로 오가기병대를 막겠다고? 역시 오만하구나-!”
선두에 있던 제갈 가주는 그렇게 말하며 크게 웃었다. 검은 들소의 무게는 수백 근을 넘어 수천 근에 이른다. 그리고 그 무게의 대부분은 근육이고, 그 근육에서 뿜어지는 폭발적인 근력은 엄청난 속도와 힘을 자랑한다. 그건 단순히 창을 늘어놓고 버틴다고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제갈 가주의 눈에 곧 짓밟혀 박살 날 황군의 모습이 훤했다.
이어서 그의 생각을 실현해줄 오가기병이 천천히 출발했다. 검은 들소들은 쿵쿵 바닥을 울리며 걷는 듯 뛰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점점 속도를 올렸다. 곧 대지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인들의 시뻘건 안광과 그들의 고함 또한 그 굉음에 섞였다.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숨으며 이제 햇빛은 서쪽 하늘에서나 보일 뿐 이 일대는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검은 들소를 탄 붉은 눈의 마귀들이 대지를 진동시키며 파도처럼 몰려오니 범인이라면 두려움에 다리가 풀릴 광경이었다.
“크-아-아-아-!”
마궁의 오가기병은 처음 달리기 시작했을 땐 어느 정도 대열을 맞췄지만, 중간부터는 완전히 흥분해서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몇몇 마인들과 들소는 다른 기병대보다 조금 더 빨리 앞으로 나서서 황군의 창날을 향해 내달려왔다.
그렇게 그들과 황군의 거리가 순식간에 줄어들어 이십여 보 정도로 가까워진 순간, 대열에서 어떤 움직임이 있었다. 앞으로 창을 겨누던 병사 서넛이 비켜서더니 그 사이에서 나온 장수가 휙 창을 던진 것이다.
허공에 길쭉한 선을 그리고 날아든 그것은 그대로 마인이 타고 있던 들소의 머리 한가운데로 박혀 들었다. 일 장에 가까운 창이 그대로 들소의 머릿속으로 사라졌다.
“엇!”
잔뜩 흥분하던 마인이 소리를 내는 순간 달리던 들소는 양 눈이 돌아가며 그대로 쓰러졌다. 그 위에 탄 마인이 그대로 바닥에 나뒹구는 건 당연한 순서였다.
황군의 모든 대열에서 비슷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창을 겨눈 병사들이 비켜서고, 그 사이로 장수가 나서고, 이어서 창을 던졌다. 그러면 그 창은 들소의 이마를 그대로 꿰어버리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들소 수십 마리가 쓰러졌다. 앞에서 달리던 들소가 냅다 나자빠져 버리니 그 뒤에 있던 몇몇 들소는 그대로 그 시체에 머리를 들이박으며 멈춰야 했다. 오가기병대 최선두의 속도가 한순간 줄어들었다.
물론 들소 기병의 숫자는 이천에 가까웠다. 그래서 최선두 몇몇이 공격당했다고 그 돌격 자체가 멈추진 않았다. 아예 그냥 죽은 들소와 바닥에 쓰러진 마인을 짓밟아버리며 돌격하는 자들도 있었다.
“황제의 개들-!”
마침내 새로운 선두가 제일 처음 황군에게 닿았다. 그는 고함을 지르며 자신의 창을 높이 들었다. 여전히 들소의 힘은 넘쳤고, 황군의 창날은 그 무게를 막아내기에 너무 가는 듯했다. 그렇게 들소가 자신을 가로막는 창벽에 몸을 들이박았다.
“컥···!”
들소에 타 있던 마인의 목에 누가 휘두른 것인지도 모를 예리한 창날이 훑고 지나갔다. 그의 들소 또한 황군의 창벽을 뚫지 못하고 멈춰버린 채였다.
분명 검은 들소는 말과 비교하여 훨씬 무겁고 힘도 강했다. 그러나 그 들소가 돌격한 상대는 무공을 익힌 병사였다. 여럿이 합쳐진 그들의 힘은 들소의 무게와 힘을 감당할 수 있었고, 수백 년 동안 이어지며 개량된 창술은 그 무게에 창대가 부러지지 않을 요령을 주었다. 또한 무공으로 단련된 동체시력과 오랜 훈련으로 만들어진 침착함은 그 짧은 순간에 들소의 눈과 입을 찔러 생명을 꺼뜨릴 냉정함을 만들어냈다.
황군의 전열이 무작정 그렇게 들소 돌진을 버티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적 기병대의 돌진이 가까워지자 대열의 일부가 안쪽으로 움푹하게 물러나며 적들을 안으로 끌어들였다. 돌격하던 기병대는 이미 창에 꿰여 죽은 들소와 충돌로 멈춘 들소를 피해서 자연스레 그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 와중에 황군의 피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들소 한 마리마다 서너 명의 병사가 창을 모았는데, 그중에는 창대가 부러지거나 들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들소의 뿔에 치이거나 그 위에 있는 마인이 찍어 내린 창날에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황군의 전열 대부분은 그것을 해냈다. 덕분에 마궁의 오가기병대는 황군의 전열을 박살 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이빨처럼 그들과 얼기설기 얽히게 되었다. 그건 가로로 누운 갈 지之자 모양의 연속으로도 보였다.
창으로 황군의 머리 하나를 쪼개준 제갈 가주는 그 상황을 둘러보고는 오히려 웃었다.
“으허허허-! 난전? 오가기병의 돌진을 막고 난전으로 전황을 이끌겠다고? 어리석구나, 황제의 딸!”
들소들이 황군의 진형 안으로 들어선 순간부터 돌진력을 잃긴 했다. 그러나 그들은 평범한 말과 달리 여전히 단단한 뿔과 강인한 네 다리를 가지고 있었고, 그건 아주 강력한 무기였다. 게다가 이런 난전 상황은 마궁 측에서 도리어 바라던 순간이었다.
“정말로 그 아비에게 딸의 머리로 선전포고를 하게 될 줄은 몰랐군! 자! 어디 있느냐! 내 직접 네년의 머리를···”
호탕하게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던 제갈 가주의 표정이 굳었다. 상황이 생각처럼 쉽게 돌아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빨 모양으로 황군의 진형 깊숙이 파고든 오가기병대가 그 진형을 파고들어 섞이고 있지 않았다. 마궁의 기병대와 황군의 진형은 여전히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황군이 안쪽으로 파고들려는 오가기병을 갈아버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마궁과 황군이 만든 갈 지之자 모양의 이빨 전선에서 마궁의 이빨은 황군의 이빨에게 양옆으로 포위되어 죽어 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