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207)
2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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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에서 나와 군영 안을 이동하는 동안 순우현은 주절주절 말이 많았다. 마치 지금까지 장건과 무공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을 애써 참고 참다가, 이번에 그가 펼친 점혈을 보고 폭발한 듯한 모습이었다.
장건은 그의 질문 공세에 짧게 대답해주며 천천히 걸었다. 아직 무리할 정도로 몸 상태가 나아진 건 아니었다.
그렇게 순우현의 질문에 대답해주던 장건은 문득 지금까지 아무런 말이 없는 인물이 뒤따라오고 있음을 기억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무림맹주인 혁련위진이 굳은 표정으로 정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걸어오고 있었다.
장건이 그를 바라보자 지금까지 무공 이야기만 하던 순우현이 불쑥 다른 말을 꺼냈다.
“자네 상태가 궁금하다 해서 함께 왔지. 그런데 둘이 그렇게 사이가 좋아 보이진 않는군.”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소.”
장건은 그렇게만 말했고, 혁련위진은 아예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순우현은 재밌다는 듯 그런 장건과 혁련위진을 바라보았다.
세 사람은 오래 지나지 않아 어느 천막 앞에 섰다. 그곳에는 창을 든 황군 병사 둘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들은 순우현의 얼굴을 알아보고도 그에게 명확한 신분표를 요구했다. 순우현은 혼자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본인의 신분패를 보여주었다. 두 병사는 군례를 하며 말했다.
“장군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지만 흡족하던 순우현의 표정은 안으로 들어서서 조금 멋쩍게 변했다. 엄격한 듯했던 입구의 모습과는 다르게 천막 안에는 사람이 꽤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곳엔 일단 심문 대상인 제갈 가주가 의식을 잃은 채 의자에 묶여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었고, 당연하게도 동진군 지휘관인 유설과 그녀의 부관 진하도 함께 있었다. 거기에 맹주 혁련위진의 부관으로 보이는 제운성이, 그의 반대편에는 제가의 가주 제상천과 섬지영이 있었다.
세 사람은 장건을 보고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제운성은 올 사람이 왔다는 식의 끄덕거림을 보여주었고, 제상천은 왜 그가 여기 왔는지 모르겠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섬지영은 차마 눈을 마주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들만 해도 벌써 여섯 명인데 한쪽 구석에는 부족연합의 대전사 미쳐 날뛰는 말과 뜬금없이 비랑이 끼어 있었다. 거기에 장건과 순우현, 맹주 혁련위진이 들어왔으니 천막에 열이 넘는 사람들이 복작거리고 있게 된 것이다.
천막의 크기가 큼직한 것이라 서로의 사이가 정말로 좁지는 않았으나 마궁의 주요 인사를 심문하는 자리에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풍경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천막 안 사람 중에도 같은 생각을 한 자가 있었다.
“안 그래도 사람이 많은데 저 칼잡이가 왜 들어오는 것이오? 저 남자는 한낱 낭인일 뿐이지 않소?”
제상천은 팔짱을 끼고 눈살을 찌푸린 채 장건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물론 그를 제외한 사람들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장건이 특별한 지위 없는 낭인인 것은 맞지만, 현재 그의 공적을 안다면 함부로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게 현명한 태도였다.
유설은 화는커녕 황당하기 그지없다는 듯 말했다.
“···그야 이 포로를 생포한 게 장건이니까요. 공을 세운 순으로 따져보자면 당신이 여기 있는 게 도리어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그 직설적인 말투에 제상천은 약간 당황했는지 팔짱을 풀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걸 본 유설의 말이 이어졌다.
“부족연합의 대전사는 지금 이 동진군에서 신대륙 원주민들을 대표하고 있어요. 현재 마궁이 원주민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있다는 첩보가 있는 이상 그는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죠. 비랑은 그의 부관이고요. 맹주와 그의 부관이 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죠? 당연히 나와 내 부관인 진하가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고요. 할아범은 심문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 있어서 당연히 있어야 하죠.”
그녀는 이걸 이렇게 일일이 설명하는 게 피곤하다는 듯 관자놀이를 만지작거렸다.
“사실 이 자리에 제일 있을 필요 없는 사람이 바로 제가주 당신이죠. 난 그저 당신의 가문이 지난 수백 년 동안 황실에 충실해 왔기에 그만큼의 존중을 보이고자 했었던 것뿐이에요. 만약 이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당신은 여기서 나가는 게 좋겠군요.”
“···아니, 아닙니다, 장군. 제가 말실수를 했습니다.”
유설은 제상천의 대답을 들으며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장건과 순우현을 향해 말했다.
“장건은 왜 온 거예요?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잖아요?”
“혈도를 풀어줘야 한다 해서 왔소만.”
유설의 눈이 순우현을 향했다. 노인은 허허 작게 웃고 있었다.
“···해혈법을 물으러 간 것 아니었나요?”
“기왕이면 혈을 짚은 본인이 오는 게 좋지 않겠소, 장군. 해혈법을 알더라도 혹여나 실수가 있을 수 있으니 말이오.”
“아니 이 자는 어차피 심문이 끝나면··· 아니, 됐어요. 올 사람은 다 온 듯하니 시작하는 게 좋겠네요.”
뭔가 말하려던 유설은 그냥 그렇게 말을 마치며 손을 휘적거렸다. 그에 허허 웃던 순우현이 소매에서 금빛 장침 하나를 꺼내 들더니 장건에게 말했다.
“자네가 짚은 봉맥, 아니지. 자넨 그걸 뭐라고 하나?”
“점혈.”
“오, 의원들이 하는 것처럼? 그게 훨씬 말이 되긴 하는군. 어쨌든 그 점혈을 풀어주게.”
장건은 그의 장침을 향해 턱짓했다.
“그건 뭐요?”
“복잡하고 어려운 긴 이름이 있네만, 보통은 쇄심금침碎心金針정도로 부르지. 이 친구는 남궁 종자처럼 천천히 회유할 시간이 없어서 준비한 물건이네.”
“좋은 물건은 아닌 듯한데.”
순우현의 입가에서 미소를 지워졌다. 그것만으로 그 노인의 얼굴은 어딘가 스산해졌다.
“당연히 아니지. 이걸 쓰면 당사자의 이성은 거의 확정적으로 파괴된다고 보면 되네.”
“···그럴 필요까지 있겠소? 남궁 노사가 있으니 오히려 회유하기 더 쉬울 텐데.”
“오가기병대를 지휘한 것으로 보아 이자는 단순한 지휘관이 아니라 마가魔家의 가주급 인사네. 그런 자를 회유하기엔 당장 우리가 가진 시간이 부족하지. 현재 오가기병대 말고도 마궁의 본 병력이 몰려오고 있을 것이라는 게 참모진의 예측이네.”
“그리고 우리가 상대해야 할 것에는 단순히 그 군단 말고도 저 멀리서 벌어지고 있을 의식도 있죠. 이미 이 자리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어요. 우린 지금 당장 마궁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요.”
순우현의 뒤를 이은 것은 유설이었다. 결국 두 사람의 말은 효율의 문제라는 이야기였다. 장건은 새삼 황군의 본질을 느끼며 냉소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럴 거면 남궁 노사 때도 그저 그 금침을 썼으면 될 일이군.”
“···쇄심금침의 효과는 아주 짧네. 많은 정보를 얻을 순 없지. 우리도 상황이 급하지 않았다면 쓰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자네 또한 이렇게 이 마인을 심문할 생각으로 생포해온 게 아니었나?”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만들 생각은 아니었소.”
순우현은 엄숙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저들은 사람의 생살을 씹으며 마공을 키운 마인들이네. 동정할 가치도 없는 괴물들이야.”
“동정한다고 말하진 않았소.”
장건은 입가에 씁쓰레한 미소를 지은 채 여전히 의식이 없는 제갈 가주에게로 다가갔다. 장건이 그를 내려다보길 잠시. 그의 오른손이 흐릿한 속도로 움직여 제갈 가주의 혈도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음···”
그와 동시에 순우현이 의자 뒤쪽으로 움직여서는 천천히 눈을 뜨는 제갈 가주의 정수리로 금침을 틀어박았다. 천천히 고개를 들며 끔뻑거리던 제갈 가주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렇게 그의 고개가 뻣뻣이 세워지자 순우현은 소매에서 금침 둘을 더 꺼내서는 목덜미 부근에 박아넣었다.
쇄심금침이 박힌 가주는 의자에 묶인 채 파르르 떨다가 어느 순간 평안한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그 천막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런 모습에서 어딘가 섬뜩함을 느꼈다. 그 평안한 모습은 살아있는 사람보다는 어딘가 인형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상태를 확인한 순우현이 질문을 시작했다.
“이름은?”
“제갈용현.”
“지위는?”
“제갈가의 가주.”
사람들의 눈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장건을 향한 놀라움이었다. 새삼 그가 대단한 공을 세웠음을 느낀 것이다.
그 놀라움을 뒤로하고 순우현의 질문이 이어졌다.
“오가기병대를 제외하고 현재 마궁의 군세는 어찌 움직이고 있나?”
“유가의 군단을 상대하기 위해 곧장 직진 중.”
“···군세의 숫자는?”
“이만.”
혁련위진과 제상천의 입에서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이만? 이만 명?”
두 사람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 모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미쳐 날뛰는 말과 비랑은 자신들이 중원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게 맞는지 의아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순우현은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질문을 이어나갔다.
“그 이만 명은 어찌 구성되어 있나?”
“오대 가문의 병력이 적게는 각각 오백에서 많게는 천 명씩 총 삼천. 그 외에 군소 가문의 병력이 오천, 나머지 만 이천은 대부분 노예병.”
“···노예병?”
제갈용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노예병은 노예들로 이루어진 병사들. 평소에는 농장을 일구거나 잡일을 함. 혹은 신공 연성을 위한 제물이 됨.”
잠시 그 뜻을 이해하기 위해 입을 다물었던 사람들은 곧 어떤 강렬한 기세를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대전사 미쳐 날뛰는 말이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제갈용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을 뒤로한 순우현이 다시 질문했다.
“거의 대부분이 노예병인데, 그걸로 동진군을 상대한다는 건가? 그 외에 군세는 없다는 말인가?”
“그들은 수적 우위를 위한 병력일 뿐··· 다른 군세를 운용할 필요가 없지. 우린 정면으로도 당신들을 쳐부술 수 있으니까. 우리가 이길 것이오.”
“피해 클 텐데.”
“현재 신대륙에 머무는 황군을 쳐부수고 대왕께서 부활해 돌아오시면 이후에는 일사천리··· 노예 정도는 얼마든지 죽어도 상관없소···”
부자연스럽게 끝나던 제갈용현의 말끝이 본래 말하듯 돌아오기 시작하며 그의 코에서도 주르륵 피가 흘러내렸다.
“그 대왕의 부활 의식은 어찌 진행되는 중이지?”
“···현재 양이 의식을 준비 중이오.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강동공江東公마저 깨웠으니 이젠 정말 얼마 남지 않았지. 아마 전투가 끝날 때쯤 본 궁에서도 의식이 마무리될 것이오··· 대왕께서 돌아오시면··· 거짓 황제의 씨앗은 모조리 뿌리뽑힐 것이오···”
그때 유설이 끼어들었다.
“항우는 천 년 전 인물이고, 그 시간 동안 황군의 무공은 눈부시게 발전했어요. 옛 구닥다리 마인 하나 부활한다고 천년 제국이 무너지리라는 건 너무 환상 아닌가요?”
멍하니 앞을 바라보던 제갈용현의 눈이 그녀를 향했다. 그는 덤덤하니 말했다.
“···대왕의 부활은 그저 한낱 천년 전 무인의 귀환이 아니외다. 남궁천이 말해주지 않은 모양이지? 아, 그래. 그의 가문은 애초부터 대계에 회의적인 이들이었지. 대왕의 부활을 허무맹랑하다고 여겼을 수도 있겠소.”
그의 코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의 양이 많아졌다. 대신 두 눈의 빛은 훨씬 정상적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죽음에서 돌아온다는 것은 더 이상 하늘의 뜻에 묶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더는 대왕을 묶는 족쇄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고, 천년 전 그랬던 것처럼 능력이 있음에도 실패하는 일이 더는 없으리라는 것이지.”
그때 대전사의 뒤에서 제갈용현의 말을 듣던 비랑의 눈에 어떤 환상이 보였다. 그것은 밤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어떤 별이었다.
“···대왕께서는 이 땅 모든 인간의 생과 사를 결정하는 살아있는 별, 신이 되실 것이다. 장안은 불탈 것이고, 유 씨에게 충성하는 모든 인간은 모조리 산 채로 땅에 묻힐 터. 네놈들이 천년에 걸쳐 이룬 것이 단 십 년 안에 모두 잿더미만 남게 될 것이다···”
비랑의 눈에 보이던 붉은 별이 점점 더 커졌다. 그리고 그녀는 곧 그것이 별이 아니라, 어떤 남자에게서 섬뜩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을 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곧 그 빛 또한 빛이 아닌 핏물이 세상을 물들이고 있을 뿐이라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남자의 발아래엔 문자 그대로 시체로 이루어진 산이 있었다. 비랑과 그 남자의 눈이 마주쳤다.
비랑은 그 눈 속에서 불타는 세계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