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209)
209화
* * *
당 가주 당사량은 회의실로 쓰는 천막의 입구를 걷어내며 안으로 들어섰다. 급한 소식이 있다는 다른 두 가주의 연락 때문이었다. 널찍한 천막 내부에는 큼직한 원형 탁자와 의자들이 놓여 있었고, 거기 앉아있는 남궁 가주 남궁유현, 공손 가주 공손요도 보였다.
그리고 치렁치렁한 옷과 두건을 뒤집어쓰고 있는 술법사도 있었다. 본궁에서 의식에 한창인 사공을 대신해서 따라온 술법사였다. 사공 양, 수보다는 부족하지만 그도 뛰어난 술법을 부리는 자였다.
“무슨 일이오? 급한 소식이라니?”
당사량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거두절미하고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 질문에도 남궁유현은 눈가를 감싸 쥔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고, 공손요는 먼 곳을 바라보며 본인의 부채만 살랑거렸다.
두 사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당사량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문득 든 생각에 표정을 굳혔다.
“···기병대에 무슨 일이 생겼군. 장담했던 것과는 다르게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한 것이오?”
그 질문에 남궁유현은 침중한 한숨을 흘렸고, 공손요는 비웃음에 가까운 콧방귀를 꼈다.
그녀가 말했다.
“그 정도면 다행이게요.”
“···어차피 이번 공격은 동진군의 수준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으니 기병대에 어느 정도 피해가 있는 건 어쩔 수 없소. 가주들 모두 예상하고 동의한 부분이지 않소?”
“피해 정도가 아니니 문제죠.”
당사량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사상자가 얼마나 되길래?”
그의 질문에도 두 가주는 입을 꾹 다물고 말이 없었다. 당사량은 한참을 기다리며 두 사람의 대답을 기다리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탁자를 가볍게 내려쳤다.
“왜 모두 입을 다물고 있소? 말을 해보시오! 사태를 알아야 다음 대응을 준비하지 않-”
“전멸이에요.”
“···뭐?”
공손요의 말에 당사량의 얼굴이 멍해졌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두 가주를 번갈아 보며 입술을 벙긋거리다가 겨우 다시 말문을 열었다.
“모용 가주와··· 제갈 가주는?”
“두 사람 모두 전사했네.”
당사량은 남궁유현의 대답에 허리를 펴고 바로 섰다. 그리고 두 눈에서 초록색 광채를 번뜩이면서 다른 두 가주를 노려보다가,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술법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놈이 본 것이냐?”
“예, 가주. 제 수면경水面鏡으로 확인한···”
술법사의 입이 다물어졌다. 당사량의 눈에서 마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확인한 것이 맞나? 이천의 정예 기병대가 전멸? 두 가주는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러나 사실입니다. 모용 가주님과 제갈 가주님은 전사하셨습니다.”
“···황군의 무력이 예상을 훨씬 웃돌더라도 그 자리에서 두 가주는 빠져나왔어야 했다. 아무리 그래도 두 사람은 빠져나왔어야 했어. 어떻게 그들과 이천 기병대가 모두 산화했다고 말하는 게냐?”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기병대의 돌격은 큰 위력을 내지 못했습니다. 병사들 또한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고요. 거기에 두 가주님들은 모두 한 사람에게 당했습니다.”
당사량은 다시 입을 벙긋거리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그는 다른 두 가주를 흘끗 돌아보며 혼란스러워하다가 번뜩 뭔가 떠올린 듯 이를 악물었다.
“설마 그 한 사람이···”
“예, 장건 그자입니다.”
“허!”
당사량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며 쓰러지듯 빈 의자에 주저앉았다. 결국 그의 태도도 먼저 그 소식을 들었던 다른 두 가주와 비슷해진 것이다. 그는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 관자놀이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어떻게 그 두 사람이 모두···”
“제갈 가주야 가주 중 신공의 성취가 제일 낮았으니 그럴 수 있다 쳐도, 모용 가주가 그렇게 된 건 확실히 믿기 힘든 일이죠. 상황이 위급해지면 적어도 자기 몸 정도는 뺄 수 있을 사람이었는데.”
“···정확히 두 사람이 어떻게 전사한 것이오?”
당사량의 질문에 공손요는 술법사를 돌아보았다. 그녀도 그 둘이 정확히 어찌 죽었는지는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술법사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제 능력이 부족하여 정확한 장면을 보진 못했습니다. 그저 모용 가주께서는 해 질 녘에, 제갈 가주께서는 달이 뜬 시간에 쓰러지시는 걸 보았을 뿐. 마찬가지로 기병대의 전멸 또한 어두운 밤에 벌어졌습니다.”
“따로 격파되었단 말인가? 어째서? 두 사람이 왜 병력을 나눠? 게다가 그 장건이라는 놈은 무슨 능력으로 두 가주를 모두 상대해?”
술법사는 더 말해줄 것이 없어 송구하다는 듯 머리를 숙였다. 당사량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의자 위에 축 늘어졌다. 그렇게 그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 입을 다무니 천막 안이 조용해졌다.
당사량은 두 눈을 꾹 감고 한참 말이 없다가 깊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문을 열었다.
“급한 소식은 이것뿐이오?”
그 질문에 남궁유현과 공손요의 시선이 당사량을 향했다. 지금까지 별다른 반응이 없다가 갑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모습에 당사량은 다시 한번 불길함을 느꼈다.
“···뭐가 또 있소?”
두 가주의 눈이 술법사를 향했다. 술법사는 다시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저들의 본대에서 적은 인원이 떨어져 나왔습니다. 그 숫자는 대략 일백.”
“일백? 정찰대인가?”
“아닙니다. 그들은 평야를 북쪽으로 멀리 돌아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당사량의 두 눈이 좁아졌다.
“···본대를 두고 적은 인원이 따로 움직이고 있다? 설마 거기에 장건 그자가 포함되었나?”
“예, 그렇습니다.”
당사량은 다른 두 가주에게 눈을 돌렸다.
“고수만 따로 움직이고 있다는 말인 듯한데. 그럼?”
“본대는 우리와 회전을 벌이는 동시에 그 인원들로 본 궁의 의식을 방해하겠다는 게지.”
“···의식을 방해한다니. 반드시 그들을 잡아야겠군.”
남궁유현이 고개를 저었다.
“황군과의 싸움이 머지않았소. 본 궁을 타격하기 위한 일백 명이니 하나하나 고수 아닌 자가 없겠지. 그 장건이라는 자에게 두 가주가 패배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소? 그러니 그자를 상대하기 위해선 우리 쪽에서도 가주나 장군급 인사들이 움직여야 하는데, 그럼 황군과의 회전은 누가 지휘하오?”
“군대를 뒤로 물려 회전을 미루면 그만이오. 정 필요하다면 노예병들을 미끼로 안겨주는 방법도 있고.”
“···노예병을 미끼로 본대는 시간을 끌고, 우리 쪽도 최고수들을 움직여 그 일백 명을 지워버린다?”
당사량의 두 눈에서 다시 초록 마기가 번쩍거렸다.
“이후 개전 선물로 그들의 머리를 던져주는 것만큼 좋은 선물은 없을 것이오.”
남궁유현과 공손요, 당사량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긍정의 뜻을 읽은 당사량이 술법사에게 말했다.
“그 일백의 위치를 알아내라. 가능한 한 빨리.”
“···이미 제 술법을 많이 소모한지라···”
당사량은 벌떡 일어나서는 갑작스레 천막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금세 돌아왔는데, 그의 손에는 어리둥절한 표정의 원주민 노예 하나가 끌려오며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는 술법사에게 그 노예를 내던지며 말했다.
“노예를 얼마나 많이 소모하든 상관없다. 그들의 현재 위치와 그들이 이동할 것으로 보이는 길을 모두 알아내라.”
술법사는 노예를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곧 깊게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노예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덜덜 떨면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 술법사와 눈을 마주쳤다. 술법사는 이제부터 볼 피가 즐겁다는 듯 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장건은 양굉이 끓인 잡탕을 한술 떠 입에 넣었다. 짭조름한 것이 괜찮은 맛이었다. 양굉의 야전 요리 실력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다.
“헥, 헤엑···”
장건이 씹던 것을 삼키고 옆에 내려놓았던 잔을 들어 찻물을 한 모금 홀짝 마시고 있으려니 한쪽에서 양굉의 다 죽어가는 숨소리가 들렸다. 장건은 그 소리를 듣고 고개도 돌리지 않으며 말했다.
“거기서 더 느려지면 한 번 더 한다.”
“윽···”
장건에게 배운 삼매진화 권법-양굉은 혼자 그렇게 불렀다-을 느릿느릿 펼치던 양굉은 장건의 말에 움찔 떨더니, 애써 다시 팔다리에 힘을 주었다. 볼품없이 무너지던 자세가 약간이나마 돌아왔다.
양굉이 본인의 성취를 들킨 것은 무림정천대의 여정이 시작되고 나흘쯤 지났을 때였다. 그는 그때까지 별다른 말 없이 아침저녁으로 장건이 시켰던 권법을 펼쳤고, 장건은 그걸 보고 별다른 말이 없었다. 사실 장건도 양굉이 가시적인 성과를 얻는데 한참 걸리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정 나흘째 되던 날 양굉은 전날 부싯돌을 잃어버린 덕분에 별 생각 없이 맨손으로 불을 피웠고, 그 모습을 장건이 보게 되었다.
양굉은 당장 모닥불 피우던 것도 치우고 장건과 대련을 해야 했다. 사실 그건 대련이라기보단 장건이 양굉의 몸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혈도를 살핀 것에 가까웠으나, 전신 여기저기를 손가락으로 깊게 푹푹 찔린 양굉 입장에선 자기가 뭔가 장건의 심사를 거슬러서 이런 지옥을 겪나 싶은 시간이었다.
어쨌든 양굉의 몸을 살핀 장건의 결론은 생각보다 항룡장과 양굉의 상성이 잘 맞는다는 것이었다. 그가 인위적으로 만들었던 내공의 길이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정착되었고 그래서 아직 위력적인 수준은 아니어도 불씨를 만드는 정도는 가능해진 것이다. 재능이 부족하네, 나이가 많네 하던 것과는 다르게 양굉이 가진 무재武才가 괜찮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양굉은 그날부터 전날의 몇 배에 이르는 수련을 시작해야 했다.
“으··· 으···”
마침내 오늘 정해진 할당량을 끝낸 양굉이 풀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팔다리에 묶여있는 돌 주머니들을 낑낑거리며 풀어냈다. 그것도 장건이 지시한 사항이었다.
그런 양굉에게 비랑이 다가와 물주머니를 내밀었다. 양굉은 애써 웃는 낯을 보였다.
“아, 고맙소···”
“이 정도로 뭘요. 오늘 저녁 식사도 양굉이 준비했잖아요.”
헤헤 웃던 양굉은 그 말을 듣고 두 눈을 좁혀 장건을 노려보았다. 그가 매일 힘들게 수련을 하자 어제 식사를 준비했던 비랑이 오늘도 본인이 하겠다는 걸, 장건이 그냥 정해진 순서대로 하자며 양굉에게 시킨 것이다.
하지만 그 시선을 느낀 장건이 스윽 돌아보자 양굉은 얼른 물주머니를 들어 벌컥벌컥 들이켜며 표정을 가렸다. 물론 이미 그 눈빛을 본 장건은 피식 웃을 뿐이었다.
쪼그려 앉은 비랑은 그런 장건과 양굉을 번갈아 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두 사람이 각자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옆에서 보는 비랑에겐 두 사람이 나름 친구처럼 보였다.
“그럼 이제 식사하세요. 조금 오래 끓이니까 맛이 더 깊어지더라고요.”
“어엉, 고맙소···”
물주머니를 물고 벌컥벌컥 들이키던 양굉은 축 처져서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느릿느릿 일어나서 모닥불로 걸어와 다시 풀썩 주저앉았다. 그런 양굉에게 장건이 그릇을 내밀었고, 양굉은 말없이 그걸 받았다.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본인이 끓인 잡탕을 한 술 뜬 양굉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그걸 입으로 가져가지 않고 잠시 가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수저를 다시 그릇 안에 놓아버리고는 장건을 바라보았다.
“저기, 장 형···”
“말해.”
“그··· 이제 불붙이기도 되는데··· 왜 이렇게 점점 더··· 아, 물론 덕분에 요즘 체력도 늘고 내력의 움직임도 점점 더 강해지고는 있는데··· 그렇다고 중요한 임무를 위해 움직이는 중에 굳이 이렇게 힘든 수련을···”
전신 찌르기를 당하고 며칠 동안 군말 없이 시키는 대로 하던 양굉이 결국 더는 참지 못한 것이다. 물론 그래봐야 항의치고는 너무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장건은 그릇의 바닥을 슥슥 긁으며 무심히 대꾸했다.
“맞기 싫으면 그냥 해.”
양굉은 입술을 파르르 떨다가 고개를 떨궜다. 결국 당장 장건과 붙어있는 이상 그는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비랑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이 웃겨서 다시 미소 지었다.
단호한 태도로 양굉을 꺾은 장건은 곧 그릇을 다 비우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후 고개를 돌려 무림정천대라는 하나의 이름과 달리 각자 끼리끼리 모여앉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무림맹은 무림맹끼리, 제가는 제가끼리, 황군은 황군끼리. 그리고 무림맹은 그 안에서도 다시 더 작게 나뉘었다. 맹주와 그의 주변 인물들, 순찰대, 그리고 외랑대와 원주민들. 그나마 외랑대와 원주민들은 그럭저럭 섞여서 서로 음식을 나눠 먹고 있었다.
장건은 그걸 보면서 이 무림정천대가 동진군의 축소판에 지나지 않음을 느꼈다. 그나마 동진군은 황군의 세가 커서 문제가 없었지만, 과연 지금은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들었다.
“···칼 든 놈들이 다 그렇지.”
약간 냉소적인 말을 중얼거린 장건은 후루룩 차를 마셨다.
그는 이후 눈을 돌려 먼 지평선과 그 위에 그려지는 은하수를 바라보았는데, 문득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느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장건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원주민들의 대전사 미쳐 날뛰는 말이었다.
그를 본 장건은 찻잔을 들어 인사했다.
“차 한 잔?”
하지만 가까이 다가온 대전사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장건도 조용히 잔을 내렸다. 대전사의 두 눈이 붉은빛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피처럼 섬뜩하지만 순수한 그 눈빛.
대전사이자 정령인 미쳐 날뛰는 말이 입을 열었다.
“누군가 우릴 훔쳐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