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21)
21화
검은 무사는 비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의 표정에는 혼란스러움이 가득했다.
“사자후라니? 소림의 제자? 하지만 사자후는 나이 많은 고승들이나···”
그때 물러나는 검은 무사의 눈에 칼잡이들과 부족 전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갑자기 일어난 엄청난 진동에 어안이 벙벙해 보이는 표정들이었는데, 그런 표정과는 달리 여전히 얼굴이 붉고 동공은 살짝 풀려 있었다.
무사는 그 모습을 보고 급히 자신의 몸을 더듬거렸다. 그리고 다시 장건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진짜 사자후가 아니군···! 파사의 힘이 없어. 독기의 작용을 멈출 정도로 강력한, 그저 크기만 한 목소리라니? 도대체 어디서 그딴 무공을···?”
장건은 가벼운 헛기침을 하며 생각했다. 진짜 크기만 한 소리였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 고막은 모조리 터져나갔을 것이라고.
내공을 이용해 목소리의 진동을 조절해 듣는 귀를 찢지 않고 신체 전체를 울려 몸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진정시키는 것은 장건 나름대로 파사破邪라는 뜻을 이해하려 노력한 결과였다. 나중에 소림 사자후는 진짜 파사의 힘이 있다는 사실에 풀이 죽었던 기억도 있지만.
칼칼한 목을 헛기침으로 달랜 장건은 조금 전과는 달리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진정하시오. 무작정 서로에게 칼질은 하지 맙시다.”
그의 말을 듣고 나서야 칼잡이들과 부족 전사들은 자신들이 너무 쉽게 흥분했다는 걸 깨달았다.
“어어··· 뭐, 뭐지? 뭔가 몸이 후끈한걸?”
“이게 이렇게 흥분할 일은 아니었는데···”
“···저 양반 목소리가 어마어마하구먼. 고수가 분명해.”
적풍은 깊은 심호흡을 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주변 전사들에게 말했다.
“모두 가슴을 열고 숨을 조절해라. 뭔가 좋지 않은 공기가 뿌려져 있다.”
전사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정령의 힘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살기로 번들거리던 두 눈이 본래의 황금빛을 되찾고 반짝거렸다. 칼잡이 중에서도 뭔가 이상한 공기를 느낀 자가 있어 모두 내공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흥분제? 독도 아니고 이딴 걸 쓰다니!”
“내공으로 가라앉혀!”
물론 아직 정신 못 차린 놈도 있었다.
“이거! 저 오랑캐 새끼들이 뿌린 거 아니야? 역시 저 씹쌔끼들은 족쳐야-”
순간 피융-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화살 하나가 위로 묶은 그놈 상투를 뚫고는 옆에 있던 나무에 꿰어버렸다. 머리가 한쪽으로 휙 끌려갔던 놈은 잠시 어버버 거리다가 화살을 확인하곤 자신이 죽을 수 있었음을 깨닫고 붉었던 얼굴이 창백해졌다.
주변 칼잡이들도 표정이 좋지는 않았지만 화살 하나를 더 재는 비랑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두 집단 모두 조금 전보다는 가라앉은 상태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검은 무사는 그걸 보며 자신이 원했던 상황이 되기는 어려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찌푸린 눈으로 장건을 바라보고 조용히 물었다.
“정체가 뭐냐? 무림맹? 세가? 아니면 설마 궁?”
“난 네 정체가 더 궁금한데.”
검은 무사는 도리어 되묻는 장건의 모습에 히죽 웃었다.
“유사 사자후라. 신기한 재주이긴 하구나··· 궁은 확실히 아니겠군. 그 자존심 강한 놈들이 절의 무공을 베끼려 하진 않을 테니까. 쯧. 번거롭게 되었어.”
가볍게 혀를 찬 검은 무사는 몸을 가리고 있던 피풍의를 휙 하고 어깨 뒤로 걷어 넘겼다. 그러자 그의 몸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온갖 날붙이들이 보였다.
작은 비도부터 그것보단 큰 단도, 십자표창, 손바닥만 한 넓이의 둥근 날붙이, 길쭉한 대바늘, 굽은 칼, 곧은 칼 등등. 온갖 방식으로 던질 수 있을 듯한 칼날들이 그의 몸 여기저기에 매달려 있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무기를 드러내놓고는 말했다.
“이름이 뭐냐?”
“장건.”
검은 무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난 당견상이다. 귀찮은 일을 만들어 주셨군.”
자신의 이름을 밝힌 그는 뒤를 돌아 칼잡이들을 바라보았다.
“너흰 돈 받고 사람 죽이러 온 인간말종들이지. 돈은 이제 내가 줄 테니 그 일을 해. 가서 저 오랑캐들을 죽여라.”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무례한 말에 칼잡이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런 시발. 그쪽이 뭔데 이래라저래라 지랄이쇼? 뒤지고 싶소?”
“저놈들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우리가 굳이···”
당견상은 피식 웃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무슨 일인지 다 알고 온 거 아니었나? 저 야만인들을 죽이고 약탈하는 일이라는 건 알았잖아? 근데 지금 와서 아닌 척을 하겠다고?”
칼잡이들의 표정이 더 일그러졌다. 기껏 장건의 외침에 정신을 차렸던 자들이 다시 벌겋게 익어가며 흥분하고 있었다. 그때 당견상이 휙 허공에 손을 한번 휘저었다.
그러자 그에게 욕을 하던 칼잡이가 거품을 물며 쓰러졌다.
“뭐, 뭐야? 뭐야 시발?”
“서, 설마··· 흥분제가 아니라 독? 허공에 이런 독을 뿌릴 수 있다니···”
흥분하던 칼잡이들은 빠르게 가라앉았다. 당견상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라. 그리고 원래 하려던 대로 죽이고 빼앗아라. 저놈들 마을에서 얻는 황금과 여자는 모두 그 개개인의 것이다. 그 후 해독제를 주지. 싫으면 그냥 죽던가.”
“···하지만 저 양반은 고수처럼 보이는데?”
칼잡이 중 누군가가 굳은 표정의 장건을 가리키며 물었다. 당견상은 다시 몸을 돌리며 말했다.
“저놈은 내가 상대하지. 너흰 저 야만인들이나 처리해.”
쓰러져 거품을 문 무사를 보며 눈치를 살피던 칼잡이들은 자기들끼리 눈빛을 교환하더니 슬금슬금 부족 전사들을 향해 돌아서며 조용히 칼을 뽑았다.
분위기는 금세 이상해졌다. 조금 전처럼 가라앉았다는 것은 같았지만, 이번엔 흥분을 지우는 침묵이 아니라 폭발 직전의 고요함이었다. 장건은 당견상을 가만 노려보다가 옆에 있던 적풍에게 말했다.
“물러나시오. 원래 하려던 대로 하시오.”
“자네는?”
그는 자흑색으로 번들거리는 당견상의 눈을 마주 보며 대답했다.
“저놈을 좀 족쳐봐야겠소.”
“···조심하게.”
짧게 말한 적풍과 부족 전사들은 나타날 때처럼 그림자 같은 움직임으로 물러나 숲속으로 사라졌다.
“어! 저놈들 튄다!”
“쫓아가!”
칼잡이들은 숲속으로 사라지는 부족 전사들을 보며 지들끼리 뭐라 웅성거리더니 모두 무기를 뽑아 들고 그들의 뒤를 따라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장건에게서는 멀찍이 떨어졌기 때문에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 있어 그것을 비켜 가는 것 같았다.
그들이 와아-하고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동안에도 장건은 그저 묵묵히 당견상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잠시 후 칼잡이들이 모두 숲속으로 사라진 후에야 짧게 말했다.
“손이 빠르군.”
싸늘하게 웃고 있던 당견상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걸 봤나? 눈이 좋은걸.”
장건은 방금 칼잡이 하나가 쓰러진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흥분한 칼잡이들이 쉽게 속은 것과는 다르게 지금도 거품을 물고 있는 무사가 쓰러진 이유는 독이 아니라 귀밑머리에 파고든 바늘 모양 암기 때문이었다.
흥분제는 흥분제일 뿐이었다. 당견상은 손짓 한번으로 무사를 쓰러뜨리고 나머지를 속인 것이다.
“그걸 알았으면서 저들을 막지 않았나?”
“모르고 온 것이면 모를까 이미 사정을 알고 마을을 불태우러 온 것이라면, 그 대가는 알아서 감당해야지.”
당견상은 끌끌 웃었다.
“냉정하시군. 오랑캐들이 저 칼잡이들을 모두 물리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인가?”
장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오른발 한 발짝 나와 몸을 비틀어 세우며 왼손으로 칼집을 잡았을 뿐이다. 당견상은 그 자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래. 서로의 정체는 일단 상대를 제압한 후 알아보자는 거지? 어디 네 칼이 얼마나 빠를지 한번 볼까?”
그는 서서히 얼굴을 굳히며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췄다. 두 손은 중단에서 허공을 내리누르듯 부드럽게, 그렇게 천천히 내려오다가 우뚝 멈췄다. 암기를 던지기 전 자세라기보단 마치 어떤 권법의 기수식 같았다.
조금 전 장건의 외침으로 근방 산새들과 동물들은 도망치고 찌르르 울던 동물들은 잔뜩 움츠러들었다. 덕분에 멀리 있을 강물이 찰찰 흐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릴 정도로 숲길은 고요했다.
그 고요함에는 두 무인도 포함되었다.
오 장 정도 되는, 일반적인 일 합 싸움보다 훨씬 먼 거리에서 장건과 당견상은 깊이 가라앉은 눈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두 사람은 호흡마저 너무 느려 마치 숨을 쉬지 않는 듯, 그래서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굳었다. 둘은 그렇게 한참이나 굳은 자세로 서로의 틈을 노렸다.
그러나 둘의 내부에선 긴장한 근육들 사이로 각자의 내공이 치달리며 당장이라도 폭발할 수 있도록 자신을 달구고 있었다.
그때 먼 숲에서 누군가의 비명이 들렸다.
직후 그 비명이 누구의 것인가 따져 생각하기도 전에 두 무인이 움직였다.
당견상의 양팔이 어깨쯤부터 흐릿하게 사라졌다. 동시에 장건이 빠르게 그에게 가까워지며 칼을 뽑았다. 다음 순간 티리리리링 하는 맑은 쇳소리가 울리며 무수한 날붙이들이 장건의 칼에 튕겨 나가기 시작했다.
당견상은 사람이 아니라 마치 기관 장치가 된 것처럼 온갖 암기를 쏘아냈다. 하지만 장건은 그 모든 암기를 칼로 튕겨내며 귀신처럼 그에게 가까워졌다. 쇠와 쇠가 만나며 붉은 불티가 튀었다.
울리던 쇳소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가까워진 장건의 칼이 쉭-당견상이 있던 자리를 베었다. 그러나 당견상은 이미 뒤로 공중제비를 돌며 멀어져가고 있었다.
“···”
아주 짧지만 동시에 벼락처럼 빠른 일 합이었다. 그리고 둘은 방금의 움직임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처럼 멈췄다. 장건은 칼을 휘두른 그대로, 당견상은 공중제비를 돌고 내려앉은 자세 그대로.
당견상이 그렇게 앉은 자세에서 말했다.
“···신대륙 무림인의 칼은 대부분 한 번뿐이지. 그게 다야. 몸을 움직인다는 것이 뭔지 제대로 알고 수련하는 자는 별로 없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건 황군에 들기 위해 무공을 수련하던 중원의 무공이 그대로 왔기 때문이니까.”
두 사람의 자세는 그대로인 듯 보였으나, 조금 다른 부분도 있었다. 그건 얼굴에서 송골송골 땀이 흐르며 호흡이 거칠어진 당견상과 칼을 뽑기 전과 다름없이 차분한 장건의 모습이었다.
당견상은 흘낏 바닥에 널브러진 자신의 암기들을 바라보았다. 유효한 타격을 줄 암기는 단 하나도 장건의 칼을 뚫지 못했다. 어쩌다 그 너머로 넘어간 암기는 기껏해야 옷에 구멍 정도 뚫었을 뿐이다.
그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지어졌다. 이번엔 비웃음이 아니라 어떤 기대감에 찬 미소였다.
“그렇게 그저 단 한 번 칼 휘두르기밖에 모르는 자는 내 암기를 막을 수 없다. 내 암기는 그 칼질을 한 수에 수십 번씩 하는 것과 같으니까··· 넌 그런 팔푼이들보단 조금 나은 것 같군.”
조금 전 장건은 당견상의 암기를 막으며 그리 크게 칼을 휘두르지도 않았다. 그저 날아오는 암기를 보고 그 궤도에 칼을 가져다 대며 몸 바깥으로 튕겨 나가도록 각도를 적절히 조정했을 뿐이다.
날아오는 암기를 모조리 볼 수 있을 정도의 안력과 침착함, 동시에 그 아주 미세한 움직임을 감당해내는 근육과 내력 모두 보통을 훨씬 넘는다는 것을 보여준 순간이었다.
장건은 당견상의 코끝에서 흐르는 땀을 보며 낮게 말했다.
“확실히 황금이 목적은 아니었군. 상인은 위장이야.”
“흐. 당연히 아니지. 그런 재물은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이 신대륙은 중원보다 넓은데 사람은 없어서 발굴되지 않은 자원이 넘치는 곳이니.”
당견상은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은 힘을 썼는지 얼굴 가득 땀이 흘렀다. 그는 혀를 내밀어 짭짤한 입술을 핥고는 말을 이었다.
“일단 황궁은 확실히 아니고, 엿 같은 느낌이 없는 걸로 보아 세가의 무사도 아니고··· 그럼 무림맹이 유력한데··· 순찰대나 타격대에 너 같은 놈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단 말이야. 그럼 뭐, 비밀병기 그런 건가? 무림맹이 본단의 움직임을 읽었나?”
장건은 입을 열지 않았다. 지 혼자 알아서 뭔가 알려주고 있는데 괜히 떠들어봐야 망치기만 할 터였다.
하지만 당견상은 도리어 그 무반응에 어떤 확신을 얻었는지 히죽거렸다.
“···다 아니군, 제길. 정말 그냥 황야에서 떠도는 방랑자일 뿐이야.”
그때 멀리 숲에서 다시 비명이 들려왔다. 이번엔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당견상은 그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는 얼굴의 땀을 훔쳐내고 말했다.
“저쪽은 금방 결판이 나겠군. 이쪽도 끝을 내야지. 시간도 충분히 끌었고.”
시간을 끌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지 갑자기 그에게서 어떤 기세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어둡고 차가운 기세. 어쩐지 그의 자흑색 눈을 마주 보자니 움츠러들고 몸이 굳는 느낌이었다. 장건은 이미 그와 비슷한 기세를 본 적 있었다. 적사단 두목 놈이었다.
장건은 휙 칼을 한 번 털고 바로 서서 말했다.
“암기에 독, 거기에 마공까지. 너 진짜 뭐 하는 새끼냐.”
“하, 마공? 아니! 이건 신공이다! 황야에서 볼 수 있는 지저분한 잡것들과 비교하지 마라! 이것이 유 씨 제국의 그림자를 벗어나 발전한 진정한 중원의 무공이니!”
그는 그렇게 외치며 허리 뒤에서 짧은 칼 두 자루를 뽑아 들었다. 팔뚝보다 조금 더 긴 그 칼날들은 금세 쇠의 반짝임을 잃고 거무튀튀해졌다. 강력한 내공이 담겨 내기가 외부로 드러나는 것이다.
장건은 당견상의 눈을 살펴보았다. 약간 흥분한 것 같긴 하지만 적사단 두목처럼 완전히 이성이 날아간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놈처럼 무지막지한 내공을 발휘하면서 이성이 그대로라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장건은 뭐라 더 떠들려 하는 당견상의 말을 무시하고 기습적으로 달려들었다. 대화를 통해 정보를 얻니마니 하기 전에 일단 싸워 이겨야 했다.
전신을 가득 채우는 힘에 강렬한 고양감을 느끼던 당견상은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장건의 공격을 황급히 받아쳤다.
장건의 칼과 검게 물든 당견상의 두 칼날이 빠르게 부딪쳤다. 장건의 칼이 어찌나 빠른지 당견상은 쌍칼이라는 이점을 취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막고 비껴내고 흘리기만 해야 했다.
하지만 그건 기본적으로 그가 약간 당황했기 때문이었다. 빠르게 대여섯 합을 나눈 당견상은 정신을 차리고 일깨운 신공의 내력을 움직였다. 그러자 겨우 따라잡던 장건의 칼이 보이고 도리어 반격까지 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익힌 신공에 자기 혼자 경외감을 느끼며 거칠게 장건을 몰아붙였다. 내력에서 밀리는 장건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안타깝구나! 정말 소속이 없는 자라면 본단으로 초대해 같이 신공을 익힐 수도 있었을 텐데!”
싸움 도중에 입까지 열어가는 여유를 보이던 당견상은 이어서 장건의 칼이 밀려나며 드러난 빈틈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오른손의 칼로 그 빈틈을 쭉 찔렀다.
그 순간 장건이 뒤로 크게 한 걸음 물러나 상대적으로 짧은 당견상의 칼 범위에서 벗어나더니 번개처럼 칼을 휘둘렀다. 당견상은 얼른 찌르던 칼을 끌어당기며 그 칼을 막으려다가 멍해지고 말았다.
분명 하나뿐일 장건의 칼이 흐릿하게 셋으로 나뉘어 그의 목으로 치닫고 있었다.
저게 뭔가? 무엇이 진짜인가? 어찌 칼이 셋으로 나뉠 수 있는가? 그저 빨리 움직이는 것만으로 저런 환상이 가능한 것인가?
그 순간 당견상의 머릿속에선 그 네 질문만 스쳐 지났다. 양손에 쥔 두 칼이 애써 움직여 셋 중 두 칼날을 막았으나, 그 칼날들은 당견상의 칼과 만난 순간 가볍게 흩어져버렸다.
마지막 칼날은 고요히 날아와 당견상의 목을 스쳤다.
당견상은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그저 스르륵 목이 갈라져 머리가 땅으로 떨어지며 계속 방금 생각을 반복할 뿐이었다.
장건은 털썩 쓰러지는 그의 시체를 보며 후 하고 깊은 호흡을 내뱉었다. 그렇게 잠시 숨을 고르던 그는 칼을 털어내곤 칼집에 넣고 돌아서려 했다.
뭐 알아낸 건 없어도 일단 부족 전사들을 도우러 갈 생각이었다. 얼른 칼잡이 중 하나라도 붙잡으면 알아낼 것이 있을 터였다. 게다가 숲 저편에서 울리던 비명은 지금 들리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장건의 눈에 머리를 잃은 시체가 바들바들 떠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심지어 목 부분의 근육이 꽉 움츠러들어 피가 멎어 있었다.
저쪽에 구르는 머리의 눈이 맹하니 풀린 것과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뭔가 살아나려는 것 같지는 않고, 그저 기이한 생명력이 마지막 발악을 하는 듯했다.
마공魔功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단숨에 목을 자르지 않았다면 싸움이 더 길어졌을 수도 있었음을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했다.
장건은 피식 웃었다.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그가 이겼으니까. 생명력이고 나발이고 당견상은 죽었다. 장건은 시체가 이내 축 늘어지며 왈칵 피를 쏟는 것을 보며 칼을 집어넣고 돌아섰다.
이 계곡에서의 소란이 마무리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