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211)
211화
* * *
“매복을 하겠다면 신장강을 넘기 전에 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마궁의 추적을 매복으로 되받아친다는 작전에 남궁천은 그렇게 말문을 열었다.
“신장강新長江?”
“북쪽에 있는 수많은 호수를 발원지로 해서 끝없이 내려가 남쪽 바다에 이르는 강이오. 정말 길지. 그리고 그 강 동쪽으로는 궁의 농장과 그 농장 도시들이 펼쳐져 있소. 그 부근부터는 정말 완전한 궁의 영역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싸움을 벌이는 것은 좋지 않소.”
“으음···”
낯선 이름에 반문했던 혁련위진은 더 낯선 세상의 이야기에 짧은 신음을 흘렸다. 신대륙에 사는 중원인 대부분은 서부 해안 가까이에서 살아간다. 동쪽으로 뻗어가려 해도 거기 길게 드러누운 산맥과 사막에 가까운 황야 때문에 발전이 더딘 탓이다.
물론 염호성이나 고원성 같은 동부 도시들이 생겨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듯 그 장벽 또한 시간이 흐르며 정복되고 있었다. 이제 고원성 너머에 정말 드넓은 벌판이 있다는 것이 널리 알려지게 될 테니 그 정복은 더욱더 빨라질 것이다.
그래도 강을 걸친 도시가 있다는 이야기는 동부를 그저 야만인의 땅으로 생각하던 서부 무림인에겐 약간 충격적이었다.
“지금 그곳 상황이 정확히 어떨지는 나도 모르겠소. 제갈 가주가 말한 대로 이만 명의 병력을 뽑아냈다면 지금 그 농장 도시들이 상당히 무방비 상태이긴 할 것이오. 궁의 무인들은 정말 최소한의 숫자만 남아있을 것이고, 원주민들 또한 노약자와 여자 정도만 남아있겠지. 그래도 그 주변에서 싸우는 건 좋지 않소. 거긴 궁의 앞마당이니까. 도리어 매복이 들킬 수도 있겠지.”
“그럼 근처에 매복하기 좋은 곳이 있나?”
남궁천은 순우현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주변의 지형은 대부분 평탄하오. 계곡이나 산지는 찾아보기 힘들지. 그러니 결국 매복을 벌이고 싶다면 숲이나 늪지를 이용해야 할 것이오. 또 당가의 정예를 상대하려면 나무가 많은 곳이 좋으니까. 다행히 주변에 그런 숲을 찾는 건 어렵지 않소.”
그의 대답을 들으며 순우현의 시선이 원주민 대전사를 향했다.
“혹 이후에 또 시선을 느끼지는 않으셨나?”
“아니. 없다.”
순우현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모닥불 주변에 둘러앉은 무림정천대에게 말했다.
“더는 술법을 쓰지 않을 모양이군. 그 술법에 그리 많은 피가 필요하다면 당연한 이야기겠지. 동시에 더는 술법에 매달릴 것 없이 직접 흔적을 더듬어 다가오고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는 말로 보아도 좋을 것이고. 이제 가까운 숲에서 싸움을 준비해야겠네.”
그를 바라보는 무림인들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여기 있는 자들은 대부분 무림맹에서 거르고 걸러 뽑힌 고수들이었다. 싸움이 두려워 시선을 내리까는 자는 없었다.
그 시선들을 쭉 둘러본 순우현의 눈이 한 남자 앞에서 멈췄다. 회의의 중심이 되는 모닥불에서 조금 떨어져 팔짱을 끼고 뚱한 표정을 한 남자. 장건이었다.
“자네에겐 특별히 할 부탁이 있네.”
연초가 없어 대신 풀을 물고 그 씁쓰레한 맛을 즐기던 장건은 순우현의 말을 받아 대수로을 것 없다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순우현은 그 덤덤한 모습이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위험한 부탁이네만.”
“말씀하시오. 듣고 있소.”
은근한 경고에도 흔들림 없는 목소리였다. 순우현은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음. 적의 숫자를 파악해야겠네. 혹은 그 구성이라도. 정확히 언제쯤 싸우게 될지도 알아야겠지.”
“늘 하던 정찰이군.”
“그래. 자네가 동진군에서 늘 하던 일이지.”
장건은 씹던 풀을 옆으로 퉤 뱉고는 말했다.
“바로 출발하겠소.”
“음.”
할 일이 생기자 장건은 곧바로 몸을 돌렸다. 모닥불 주변에 모여있던 무림인들은 그런 장건의 뒷모습에서 쉬이 눈을 떼지 못했다. 누군가는 선망의 눈으로, 누군가는 적의 어린 눈으로. 그리고 몇몇은 회의에서 빠져나와 장건의 뒤를 따라왔다.
장건은 본인의 모닥불 쪽으로 돌아와 짐가방을 챙기고 바닥에 누워 질질 침을 흘리고 있던 조조의 배를 툭툭 찼다. 녀석은 덕분에 덜 깬 눈으로 고개를 들고 멍하니 장건을 바라보았다.
“움직일 시간이다.”
조조는 장건의 말을 듣고 맹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아직 한참 어두운 밤풍경을 보고는 다시 장건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그 눈빛이 마치 지금 움직인다고? 이 오밤중에? 하고 묻는 듯했다. 장건은 대답해 주었다.
“그래.”
짤막한 대답에 녀석도 느릿느릿 일어서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귀찮음이 묻어나는 듯한 동작이라 대단하다면 대단한 동작이었다. 하지만 장건은 신경 쓰지 않고 빨리 일어나라는 뜻으로 툭툭 그 옆구리를 걷어차 주었다. 물론 그런다고 조조의 움직임이 빠릿빠릿해지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장건이 게으름뱅이 용마龍馬에게 안장을 씌우는 동안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장건.”
비랑과 적풍, 그리고 양굉이었다. 그들은 매복 작전을 짜는 회의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배웅해주려는 것이오?”
장건은 가볍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비랑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이건 너무 위험해요. 여럿이 함께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혼자 정찰이라뇨?”
“그래서 내가 가는 게 좋소.”
그는 더 길게 말하지 않았으나 비랑은 그 말뜻을 알아들었다. 장건은 혼자 정찰을 나설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지녔지만 동시에 당장 자리에서 빠져도 문제가 없을 지위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그의 무공과 조조의 능력을 생각하면 누군가 그 옆에 붙는 것이 도리어 족쇄가 될 수도 있었다. 이미 지난번 오가기병대 일백 기가 그걸 증명했다.
하지만 비랑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저들도 그걸 알아요.”
“뭘?”
“장건의 손에 자신들의 전사들이, 그리고 그 대전사쯤 되는 인물이 패배한 것을.”
비랑의 말은 두서가 모자랐지만 이번엔 장건이 그 말뜻을 알아들었다. 장건의 손에 기병대 백과 가주 둘이 패배한 것을 저들도 안다는 이야기였고, 그걸 알면서도 몰려온다는 것은 그 장건과 일백 무림정천대를 모두 쓸어버릴 자신이 있어서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장건은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 듯 여전히 미소 지은 채 비랑에게 다가와 그녀의 뺨을 매만졌다.
“그래, 대전사 말고 당신이 주술사였지. 알겠소. 더 조심하겠소. 멀찍이서 놈들 움직임만 대충 알아보고 돌아오겠소.”
비랑은 훌쩍 다가온 장건의 모습에 뭐라 더 말리지는 못하고 떨리는 눈으로 말없이 장건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대뜸 그의 목을 그러안으며 입을 맞췄다.
비랑과 함께 장건을 말리기 위해 찾아왔던 적풍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고, 별생각 없이 따라왔던 양굉은 좋은 구경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장건이나 비랑이 보았으면 묘하게 기분이 나빴을 정도로 음흉한 얼굴이었다.
적풍은 그렇게 먼 곳으로 시선을 돌린 덕분에 제일 먼저 그들에게 다가오는 새로운 인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적풍의 시선을 느끼고는 가볍게 고개를 까딱여 인사했다. 적풍도 비슷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해 주었다.
그는 서로 입을 맞추는 장건과 비랑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순우 선생이 이 장면을 못 봐서 다행이구먼.”
그 목소리에 비랑이 장건에게서 떨어지며 몇 발짝 물러섰다. 고개를 돌려보니 목소리의 주인공은 남궁천이었다. 모닥불 회의 쪽에 있어야 할 사람의 등장에 약간 당황한 비랑과는 다르게 장건은 그가 말고삐를 하나 끌고 있음을 주목했다.
장건이 남궁천과 눈을 마주치고 물었다.
“같이 가시려고?”
“부탁함세. 비록 무공을 잃은 몸이나 발목을 잡지는 않겠네.”
장건은 잠시 말이 없었다. 장건과 남궁천은 잠시 서로의 눈을 가만히 마주 보고만 있었다. 잠시 후 장건은 남궁천이 왜 따라오려는 지 알 것 같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저들의 추적대에 남궁 씨의 가주가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소. 한 가문의 수장이 그리 쉽게 움직이겠소?”
“절대 쉬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네. 이미 자네 손에 가주 둘이 패배했지. 그 이전에도 자네는 이미 궁의 최우선 척살 대상이었어. 내 짐작하기에 그 추적대에는 나머지 가주 셋이 모두 함께일 걸세.”
“동진군과 맞서는 본대는 어쩌고?”
“저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대왕··· 그러니까 항우의 부활이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 그런데 자네와 무림정천대가 궁의 영역으로 들어설 경우 그 의식을 망칠 가능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니, 당연히 자네와 무림정천대를 막는 것을 더 우선순위에 둘 게야.”
장건은 미소를 지었다. 비랑에게 지어준 부드러운 미소가 아니라 차가운 비웃음이었다.
“나머지 병력이 다 몰살당해도 항우만 부활하면 된다?”
“모르겠나? 우리가 궁宮이라는 이름을 쓰는 이유부터가 대왕께서 돌아오실 궁전이라는 뜻과 동시에 돌아오실 그분께서 궁전의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네. 지난 천년 간 음지와 음지를 기어 다니고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는 동안 우리에게 대왕은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어. 대왕께서 진나라의 수십만 대군에 맞서 고작 강동의 청년들 수천으로 천하를 뒤집어 엎어버린 것처럼, 언젠가 그분께서 돌아오시면 아무리 불리한 상황이라도 반전시킬 수 있으리라는 게 궁의 믿음이네. 그렇게 한 제국에게 지난 과거를 복수하고자 하는 것이···”
말을 이어가던 남궁천의 눈이 흘낏 비랑과 적풍을 스쳤다. 동시에 그의 표정에 부끄러움이 떠올랐다. 그런 믿음을 붙들고 천년의 핍박을 견디던 자신들이 정작 이 신대륙에 와서는 그 한 제국보다 훨씬 혹독하게 원주민들을 노예로 부리고 있다는 점을 떠올린 것이다.
“···어쨌든 가주들은 이 무림인들을 막으려고 올 것이야.”
남궁천은 그렇게 말을 마무리하며 슬쩍 원주민 두 사람의 시선을 피했다. 장건은 그런 남궁천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 씨 중에 지금 남궁천처럼 부끄러움을 느낄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남궁천이 그럴 수 있었다는 건 적어도 그런 생각이 피어날 토양이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궁의 추적대에 정말 가주들, 특히 남궁가의 가주가 있다면 이번 기회에 그들을 전향시킬 수 있을지 몰랐다.
“좋소. 하지만 그들과 접촉하는 건 그럴 만한 상황이 되었을 때뿐이오. 굳이 가까이 다가가서 위험한 순간을 만들진 않겠소.”
남궁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뜻을 따르겠네, 어쩌면 가주를 설득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그땐 가문의 다른 원로들을 설득해야겠지.”
그의 승낙을 받은 장건은 몸을 돌려 조조의 안장을 추슬렀다. 아직 잠이 덜 깬 조조는 이빨을 쩍 드러내며 하품을 하고 있었다. 장건은 그런 녀석의 목덜미를 툭툭 두드려주고 훌쩍 안장 위로 올라탔다.
그가 말에 타자 남궁천도 말에 올라탔다. 그동안 정말 기운을 많이 회복했는지 가벼운 동작이었다. 두 사람이 그대로 떠날 듯 보이자 비랑과 적풍, 양굉은 한쪽으로 비켜섰다.
장건은 말 위에서 비랑을 바라보며 고개를 까딱여 인사했다. 비랑은 마주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했다. 그 인사를 본 장건은 이내 양굉을 보며 말했다.
“나 없는 동안 계속 수련해라.”
“헤헤, 안 그래도 할 거요. 이게 또 하다 보니 재미도 있고-”
양굉이 실실 쪼개며 대답했지만 장건은 들리지 않는다는 듯 적풍을 향해 눈인사를 건네며 매정하게 조조의 말머리를 돌렸다. 그렇게 어둑한 벌판으로 나아가는 장건과 남궁천의 뒷모습에 양굉은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시발, 먼저 말 걸어놓고는···”
그런 양굉과는 달리 비랑은 걱정스러움을 담아 멀어지는 장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그 주변에 있던 외랑대 무사들, 그리고 다른 무림정천대 무인들 또한 매복작전을 준비하던 것을 잊고 어둠 너머로 멀어지는 장건을 바라보았다.
가는 초승달과 별들이 어두운 벌판을 비춰 희미하게나마 그의 길을 밝혔다.
* * *
남궁유현은 호숫가 주변으로 길게 늘어선 모닥불과 거기 앉아있는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그들 모두 신공을 익힌 강인한 무인이었으나 어쨌든, 사람이었다. 밤낮을 무시하고 끝없이 적을 추적할 수만은 없었다. 휴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들은 때마침 적당한 호수를 만나 이렇게 멈춰 쉬게 되었다.
“정녕 더는 술법을 쓸 수 없겠다는 말이냐?”
버럭 들리는 외침에 남궁유현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술법사와 당사량이 보였다.
“죄, 죄송합니다, 가주··· 제 능력이 부족하여···”
“본대에서 네놈이 소모한 노예가 몇이었나? 혼자 그 많은 노예를 이용하고도 고작 서너 번 적의 위치를 훔쳐보는 게 전부라니? 신공을 익힌 무인이었다면 그 노예들로 얼마나 높은 경지를 이뤘을지 아나?”
당사량의 눈에서 암녹색 광채가 번들거렸다. 지난날 자신만만하던 이제 술법사는 이마를 바닥에 박고는 바들바들 떨며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당사량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그래, 정말 그저 네 능력이 부족할 뿐인 모양이군.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어. 사공만큼은 아니어도 괜찮은 술법사인가 했는데.”
“으으···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가주···”
애처롭게 비는 술법사의 모습에도 당사량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다음 순간 그의 왼손이 으드득 소리를 내며 새의 발톱처럼 웅크린 모양이 되었다. 동시에 그 손 주변으로 짙은 녹 빛이 흘러내렸다. 그 기세를 느낀 술법사의 몸이 이젠 간질이라도 걸린 것처럼 떨렸다.
그때 패르륵 부채 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사량의 손이 멈췄다.
“손을 거두시죠, 당 가주.”
당사량의 눈이 공손요를 향했다. 그녀는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지만, 부채를 펼치는 간단한 동작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 것이다.
“왜?”
“왜긴요. 괜히 여기서 독왕수毒王水를 남발해 호숫물을 더럽히지 말라는 거죠. 내일 아침에도 수하들이 먹을 물 아닌가요? 정 죽이고자 한다면 저 멀리 끌고 가서 처리하세요.”
당사량의 암녹빛 눈이 그녀의 눈과 마주쳤다. 강렬하게 타오르는 당사량의 눈과는 달리 공손요의 눈에선 흐릿한 푸른빛만 반짝거렸다. 하지만 먼저 시선을 돌린 것은 당사량이었다. 그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내력을 가라앉혔다. 빛나던 그의 눈빛이 검은색으로 되돌아왔다.
“···흥이 식었소. 무능력한 네놈의 목숨이 연장되는구나.”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벌벌 떨기만 하던 술법사는 그 이마를 다시 땅에 박아가며 연신 감사를 외쳤다. 처음엔 멀어지는 당사량에게, 이후에는 그를 살려준 공손요를 향해서였다.
그녀는 부채로 입가를 가린 채 말했다.
“내가 네놈의 무능을 용서하겠다는 건 아니다. 그저 사공 휘하에 있는 술법사가 함부로 죽는 걸 볼 수 없었을 뿐이지. 오늘의 감사함은 곧 돌아오실 대왕께 바치거라.”
“예, 예. 그리하겠습니다, 가주··· 꼭 그러하겠습니다···”
남궁유현은 그 꼴을 보며 절로 한숨이 나왔다. 공손요가 말하지 않은 이유를 짐작하기 때문이었다.
공손 가주 공손요는 대왕의 부활을 가장 강렬하게 지지하는 인물이었다. 회의적인 남궁유현과는 다르게 정말 대왕을 신처럼 여기는 여인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여인의 생각에 대왕께서 작금의 세상에 부활하시면 가장 큰 후의를 입을 인물은 그분을 부활시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을 사공 양이었다.
결국 공손요는 사공 양의 호의를 얻고 더 나아가 대왕의 후의를 얻는다는 생각으로 움직인 것이다.
남궁유현은 그 반쯤 편집증적인 사고방식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천년도 더 전에 죽은 인물, 그것도 단 한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의 호의를 그렇게까지 갈구하는 것이 그는 솔직히 이해되지 않았다.
잠시 후 남궁유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속 여기 앉아서 감사를 말하는 술법사와 은근히 사공에게 이 일을 어필해주길 바라는 공손요의 대화를 들어주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을 따라 일어서는 수하들을 손짓으로 다시 앉혔다. 그리고 호수 한쪽에 자라나 있는 숲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금 전 당사량이 이쪽으로 향했으니 그와 대화를 나눌 생각이었다.
터벅터벅 걷는 걸음에 축축한 땅이 눌리고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를 냈다. 호숫가의 모닥불들은 등 뒤로 멀어지고 희미한 달과 별빛에 머리 부분만을 반짝이는 숲이 그를 맞이했다. 남궁유현은 곧 당사량의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을 몇 발견했다.
그는 그 흔적을 따라 숲 깊이 들어갔다. 어둠은 두렵지 않았다. 두려움을 느끼기엔 그의 신공이 담긴 단전이 너무 묵직했다. 신공은 당장이라도 혈도를 내달리며 거센 힘을 내뿜을 듯했다.
그때 남궁유현의 눈에 저 멀리 얼핏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당 가주? 이보게, 사량.”
그 그림자의 움직임이 멈췄다. 남궁유현은 묘한 느낌을 받으며 그 그림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곧 우뚝 걸음을 멈췄다.
“넌···?”
“오랜만이오, 가주.”
그 그림자는 당사량이 아니었다. 더 늙고 왜소한 노인. 어떤 건장함도 찾아보기 힘든 늙은이. 그러나 더없이 맑고 차분한 눈빛. 남궁유현은 그 낯선 얼굴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네가 어떻게···”
다음 순간 남궁유현은 휙 몸을 돌리며 검을 잡았다. 등 뒤에서 인기척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감각이 잘못되지 않았는지 어두운 숲속 나무 그림자 사이에서 한 남자가 달빛 아래로 반쯤 얼굴을 드러냈다. 남궁유현으로서는 처음 본 얼굴. 그러나 그에게서 얼핏 느껴지는 무의 경지는 그의 정체를 쉬이 짐작하게 해 주었다.
남궁유현은 차마 장건이라는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턱을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