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214)
214화
* * *
남궁유현, 당사량, 공손요, 그리고 그들의 친위대는 긴 숲길로 접어들었다.
그 길로 접어들며 당사량이 말했다.
“이거 길이 너무 좁군.”
그의 말대로 숲길은 그리 넓지도, 잘 정돈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말을 탄 그들은 서너 줄로 길게 늘어져서 이동해야 했다. 전술적으로 볼 때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당 가주는 걱정이 참 많으시군요. 그래서 어디 황제의 장안까지 밀고 들어가실 수 있겠어요?”
당사량 옆에 있던 공손요가 부채를 팔랑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당사량은 뭐라 대꾸하진 않았다. 그냥 공손요에게 참 아니꼽다는 시선을 보내주고 반대편에 있는 남궁유현에게 시선을 돌렸을 뿐이다. 그 눈을 마주한 남궁유현은 그녀의 말에 너무 열 내지 말라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공손요가 말했다.
“어쨌든 이 길을 따라가면 옛날에 건설된 다리가 나와요. 저들은 아마 그 다리를 건너 신장강을 넘어갈 생각인 듯하군요.”
“흔적을 보아 지나간 지도 얼마 지나지 않은 듯하군. 반나절 안에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오.”
바닥의 흔적을 훑어본 당사량이 앞장서 나갔다. 공손요가 그 뒤를 따랐고, 친위대도 속도를 높였다. 남궁유현은 조금 뒤늦게 그 뒤를 따라가며 자신의 옷깃을 툭툭 털었다. 그의 푸른 무복이 팔랑거렸다. 슬쩍 돌아보니 다른 남궁가 무사들도 같은 색의 무복이었다. 소속을 참 명확하게 구분시켜주는 복장이었다.
문득 뒤를 돌아본 자신들의 가주와 눈이 마주친 친위대 몇몇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유현은 그들을 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부디 옳은 선택이길.”
추적대가 숲길을 내달리길 잠시. 제일 선두에서는 당사량이, 그 뒤로 두 가주와 친위대가 뒤따랐다. 그러던 어느 순간 당사량이 번뜩 눈을 치뜨며 숲길 옆을 노려보았다.
그는 뭘 외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안장에서 뛰어올랐다. 다음 순간 좌우 숲에서 날아온 목창들이 그가 타고 있던 말에게 퍼버벅 틀어박혔다. 말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절명했다.
높이 뛰어오른 당사량이 외쳤다.
“기습이다-!”
그 외침이 신호가 되기라도 했다는 듯 숲길의 좌우에서 정신없이 목창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적당한 속보로 움직이고 있던 각 가문의 친위대들은 갑작스러운 나무창 세례에 크게 당황했다. 더 당황한 것은 그들이 타고 있던 말들이었다.
“이, 이런! 진정해라!”
“으악!”
나무창 세례는 친위대 본인들보다는 그들의 말에게 치명적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도 무기를 뽑아 나무창을 막아낼 수 있었던 친위대들과는 달리 커다란 말들은 그저 움직이는 표적에 불과했다. 몸 여기저기 나무창을 단 말들이 쓰러지거나, 아니면 고통에 몸부림치며 기수를 떨어뜨렸다.
찰나의 시간 후 나무창 세례는 멈췄다. 대신 새로운 외침이 울려 퍼졌다.
“가자-! 무림의 정의를 세우고 마인들을 물리치자-! 공격-!”
숲을 쩌렁쩌렁 울린 외침 이후 좌우 수풀과 나무 사이에서 서부의 무림인들이 튀어나왔다. 그들 모두 풀과 흙으로 지저분한 것이 나무창을 던지기 전까지 흙바닥에 엎드려 숨어있었음이 분명했다.
“이 더러운 놈들!”
바닥에 내려선 당사량은 그자들이 추적 대상이었던 무림정천대임을 직감했다. 그의 양 소매에서 번뜩 칼날이 튀어나와 손가락 사이에 걸쳤다. 그는 암기를 뽑아 든 채 다른 두 가주를 향해 돌아섰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여기서 저놈들을 쓸어버립시다!”
당사량과 마찬가지로 말을 잃은 공손요는 옳다구나 고개를 끄덕이고는 들고 있던 부채를 잡고 쥐어뜯었다. 그러자 부채의 종이가 찢어지며 그 안에 살대를 이루고 있던 가는 쇳조각들이 길게 늘어졌다. 공손요가 그 끝을 잡고 두어 번 흔들자 그 쇳조각들은 수많은 관절을 가진 기다란 강철 뱀이 되었다.
“간악한 놈들! 감히 대왕의 무사들을 기습하다니!”
그녀는 그렇게 외치며 칼인지 채찍인지 쉬이 구분할 수 없는 무기를 들고 무림정천대를 향해 마주 달려들었다. 당사량은 그녀의 외침을 듣고 고개를 가로저으면서도 크게 외쳤다.
“나약해 빠진 서부 중원인들이다-! 당황하지 말고 오늘 이 자리에서 모조리 쓸어버-”
“남궁-!”
그때 세 가주 중 유일하게 말을 잃지 않은 남궁유현이 검을 뽑아 높이 들어 올리며 외쳤다. 당사량은 그가 남궁가 무사들에게 전투명령을 내리려 한다고 생각해 그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남궁유현은 그 눈을 피했다.
그가 다시 외쳤다.
“남궁-!”
다른 두 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후방에 위치하고 있던 남궁가의 무사들이 그 외침에 마주 외쳤다.
“제왕-!”
그들은 남궁유현이 그런 것처럼 검을 뽑아 들어 높이 치켜들었다. 남궁유현이 그 모습을 보고 다시 외쳤다.
“적을 쳐라-!”
“우와아-!”
그 모습을 본 당사량이 피식 웃었다.
“허, 언제 보아도 남궁가의 무사들은 참 군기가 살아있는···”
그의 표정이 멍해졌다. 남궁가의 무사들이 서부 중원인들을 향해 달려든 것이 아니라 다른 가문을, 아군을 공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무림정천대는 그런 모습에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환호성을 내질렀다.
“마인들을 처단하라-!”
“으랴아아-!”
당사량의 멍한 눈이 남궁유현을 바라보았다. 마침 남궁유현도 그를 마주 보고 있었다.
싸움이 시작되었다.
* * *
제일 먼저 피맛을 본 것은 당가의 무사들이었다.
그들은 말이 날뛰고 안장에서 떨어진 와중에도 풀숲에서 튀어나온 무림정천대에게 반사적으로 암기를 뽑아 던졌다. 비도나 표창 같은 날붙이들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가 제일 선두에서 달리던 무림인을 난도질했다.
“으억!”
“어윽···제, 제기랄···”
“쳐라-! 쳐! 저 마인들을 물리쳐라-!”
그러나 기습을 날린 쪽은 무림정천대 쪽이었다. 게다가 마궁의 병력은 길게 늘어져 있어서 선두의 좌우를 덮쳐온 무림인들에게 수적으로 밀렸다.
“이 배신자들!”
“어떻게 네놈들이!”
게다가 마궁의 후방에선 조금 전까지 같은 편이라 생각하던 남궁가의 무사들이 검을 빼 들고 몰아치고 있었다. 남궁가의 무사들은 그 자신들의 검술만큼이나 냉혹한 표정으로 전날의 아군을 벴다. 당가와 공손가의 친위대는 그렇게 전후방으로 포위되어 공격당했다.
그런데 모든 남궁가의 무사가 같은 생각이진 않은 듯했다. 몇몇 무사들은 갑작스레 바뀐 동료들의 모습에 당황하다가 검을 뽑아서는 그들과 맞섰다.
“이게 무슨 짓이냐!”
“가주의 명이다. 남궁가의 미래를 위해서야.”
“궁의 미래가 남궁가의 미래다!”
“그렇게 말할 줄 알고 너에겐 말하지 않았지. 부디 동조할 수 없다면 검을 놓기라도 해라. 친척을 죽이긴 싫군.”
남궁가보다 궁에게 더 충성하던 무사는 참지 못했다. 그의 눈에서 시퍼런 마기가 터져 나왔다.
“그래! 그럼 어디 죽여봐라!”
사방에서 칼부림이 벌어졌다. 수백 명이 숲속에서 뒤얽혀 싸우기 시작하며 피와 내장이 오래된 부엽토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 부드러운 흙들은 별다른 저항 없이 그 핏물들을 깊숙이 빨아들였다.
그것은 얼마 전 있었던 동진군과 오가기병대의 싸움과는 달랐다. 수천 명이 드넓은 평원에서 적과 아군을 뚜렷이 구분하며 싸웠던 그 전투에 비하면 지금 이곳의 싸움은 난잡하고 지저분했다.
당가의 암기가 날아다니고, 서부 무림인의 칼이 마인의 목을 베었다. 공손가의 채찍과 칼이 허공에 피를 그리고 남궁의 냉혹한 검이 친족의 피를 머금었다.
그곳에는 평소 찰나의 순간 일격을 나누던 일 대 일 대결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상대 하나에게 정신을 집중하면 그 외에 다른 적이 공격해왔기 때문이었다. 마궁의 마인들이나 무림정천대의 무인들이나 정신없이 바닥을 굴러다니며 자신의 생을 지키고 적을 죽여야 했다. 상대 하나를 잡고 기세를 모으던 자들은 싸움 초반에 진즉 등에 칼을 맞고 쓰러졌다.
각 세력에서 뽑힌 정예들인 만큼 싸움은 백중세였다. 원래라면 무림정천대의 숫자가 이백 명쯤 모자라야 했으나 남궁가의 전향이 그 싸움을 팽팽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남궁가의 모든 무사가 전향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숫자는 마궁이 유리했다. 게다가 그들은 싸우면 싸울수록 더 힘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들의 마공이 들끓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무림정천대는 밀리지 않았다. 거기엔 상승 고수의 차이가 있었다.
순우현은 몇몇 황군들과 함께 몰려다니며 그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껑충껑충 뛰어올라 마인들의 멱을 따버렸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이 찰나의 순간 번쩍 빛나는 궤적을 그리면 마인들은 몸 어딘가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져 피를 콸콸 쏟으며 죽었다.
무림맹주의 검 또한 번쩍거리며 빛살을 그렸다. 그의 의룡검이 쭉 뻗어나가면 그를 마주한 마인들은 마치 검이 화살처럼 날아오는 환상을 보며 심장이나 목에 조그만 자상 하나씩을 달고 쓰러졌다. 혁련위진 또한 순우현처럼 자신의 친위대와 함께 움직이며 서로의 등을 지켜주었다.
“대지여-!”
유난히 눈에 띄게 특이한 자들은 대전사 미쳐 날뛰는 말과 원주민 전사들이었다. 그들은 미리 사냥한 짐승의 피로 얼굴과 몸에 전투의 문양을 그려 놓아서 얼핏 보아서는 마궁의 마인들보다 더 마귀 같았다.
그들은 그런 겉모습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그렇게 보이길 바라는 것인지 자신들만의 함성을 내지르며 창과 손도끼, 단검과 화살로 마인들을 사냥해 나갔다. 그중 미쳐 날뛰는 말은 두 눈에서 선홍빛 광채를 쏟아내며 맨손으로 마인들에게 달려들었다. 마인들 또한 들끓는 마공에 힘입어 그를 마주 상대하려 했지만, 미쳐 날뛰는 말은 으허헝-하고 짐승처럼 울부짖고는 맨손으로 그들을 찢어버렸다. 그의 손은 마치 들소의 뿔이자 곰의 손톱이 된 듯했다.
그리고 장건이 있었다.
“허,흐윽··· 제기,랄···”
허리가 툭 잘려 나간 마인 하나가 흙바닥에 쓰러져서는 그 상태에서도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나려다가, 결국 내장을 와르르 쏟아내고는 털벅 엎어져 죽었다. 그를 그렇게 만들어준 장본인인 장건은 휙 칼을 털어내고는 저벅저벅 다음 상대를 향해 걸어갔다.
“이놈-! 중원인-!”
당가의 마인으로 보이는 자 하나가 왼손으로 비도를 뿌리고 오른손에 갈고리 모양의 기형병기를 들고 장건에게 달려들었다. 장건은 그를 상대로 청룡을 두 번 휘적였다. 일격에 비도들이 바닥에 널브러졌고, 이격에 당가 무사의 목이 달아났다. 목이 잘려 나가서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으읏···”
“저, 저놈···”
마인들은 무심하게 다가오는 장건을 보며 흠칫 떨었다.
장건과 마주한 마인들은 모두 그랬다. 장건을 상대한 자들은 모두 두 번 이상의 칼을 보지 못했다. 싸움이 시작되고 난전으로 번져간 이후로 장건이 걸어온 뒤로는 마인들의 시체만 있었다. 물론 그건 혁련위진이나 순우현도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그들은 적어도 등을 지켜줄 수하들과 함께 움직였다. 장건은 혼자였다.
게다가 마인들이 흠칫 떤 것은 그저 그의 무위가 압도적이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장건이 청룡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그의 눈에서 푸른 빛이 번쩍거렸는데, 그건 마치 시퍼런 불과 벼락이 사람의 눈이라는 창을 통해 세상으로 쏟아져나오는 듯했다. 마인들은 마공의 혈기가 차오르는 와중에도 그 눈빛을 보고 두려움을 느꼈다.
장건은 그들을 보고 까딱 턱짓했다.
“뭐해? 안 와?”
장난이라도 치는 듯한 가벼운 태도에 머뭇거리던 마인들의 기세가 확 타올랐다.
“···이 새끼!”
“쳐라! 공격!”
“저놈이 그 장건이라는 놈일 것이다! 궁의 최우선 척살 대상이다! 죽여라!”
다시 한번 당가의 암기들과 공손가의 칼이 장건을 노렸다. 그들의 넘치는 내력만큼 빠르고 강한 공격들이었다. 그러나 장건은 그 너머의 경지를 볼 수 있다는 걸 차치하고도 더 빠르고, 더 강한 공격을 선보일 수 있었다.
마인들은 짐승처럼 달려와 가축처럼 도살되어갔다. 피피핑-하는 소리를 내며 날아든 암기들은 장건의 몸에 닿지 않았다. 그 암기가 만들어준 틈을 노리고 파고드는 칼날들도 청룡의 섬뜩한 몸체와 만나 두부처럼 잘려 나갔다. 이어진 청룡의 궤적이 그들의 살갗마저 그렇게 베어버렸다.
잠시 후 장건과 마주한 마인들은 모두 시체가 되어 숲의 낙엽 위로 나뒹굴었다. 장건은 가볍게 칼을 털어내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남궁가의 전향에도 불구하고 무림정천대의 무림인들은 마궁의 마인들에게 밀렸다. 칼과 채찍을 쓰는 공손가와 암기와 독 모래, 그리고 많지는 않으나 독장毒掌을 흩뿌리는 당가 마인의 존재로 창칼에 익숙한 무림인들은 고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건과 순우현, 무림맹주, 대전사 등 몇몇 강력한 고수들의 활약으로 상황은 백중세를 넘어 무림인 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대충 상황을 파악하던 장건은 이내 내부가 좀 진정되는 것을 느끼고 다시 전장으로 나아가려 했다.
그때 분노에 찬 외침이 울려 퍼졌다.
“감히 궁을 배신하다니! 남궁가는 대가를 치를 것이다! 또한 이곳에 있는 중원인들은 아무도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외침의 주인은 당가주 당사량이었다. 그는 두 눈과 전신에서 어두운 녹색 기운과 안개를 내뿜으며 전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장건은 그 앞에 검에 기대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남궁유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은 절반이 녹아서 끔찍한 몰골이었다.
“가주!”
남궁가 무사들이 그 모습을 보고 당장에 달려갔다. 하지만 당사량은 그 꼴을 두고 보지 않았다.
“감히-!”
당사량이 손을 뻗자 그의 손에서 암녹색 기운이 쏟아져나오더니 달려오던 남궁가 무사들을 덮쳤다.
“으헉···!”
“꺽, 커헉···”
남궁가 무사 넷은 그 공격을 맞이해 아무 저항도 하지 못했다. 그저 칠공에서 피를 왈칵 쏟다가 겉으로 드러난 피부와 얼굴이 와르륵 녹아내리더니 그대로 쓰러져 죽었다. 당사량의 독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목표로 했던 그 무사들이 죽자 그대로 주변으로 옅게 흩어져간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 있던 무림인, 마인 가릴 것 없이 왈칵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는 제일 깜짝 놀란 것은 엉뚱하게도 한창 날뛰고 있던 공손요였다.
“당가주! 미쳤어요! 독왕수를 그렇게 난사하면-”
“어차피 난전 상황이다! 게다가 저자는 무림맹주 혁련위진이고, 또 다른 자는 황군의 고수가 분명하군! 거기에 저 원주민은 서남쪽 원주민들의 대전사! 오히려 오늘 친위대를 모두 잃어도 저자들을 모조리 죽여버릴 수 있다면 손해가 아니다!”
뭐라 하려던 공손요는 이내 그렇듯 하다고 생각했는지 굳힌 표정을 풀었다. 물론 무림정천대 쪽은 그럴 수 없었다. 당사량이 독기를 쏟아낸 이후로 한창 싸우던 무인들이 왈칵 피를 토하거나 픽픽 쓰러져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엔 마인과 무림인의 구분이 없었으나, 겁을 먹고 몸이 굳은 무림인들과는 다르게 마인들은 머릿속에 치닫는 마기에 피를 토하면서도 도리어 더 날뛰기 시작했다.
당사량은 순식간에 반전된 상황을 보며 다시 한번 독왕수를 내뿜기 위해 독기를 끌어올렸다. 그의 몸 주변으로 암녹색 연기의 소용돌이가 휘도는 듯했다.
“독에 절어 숨 쉬는 것조차 고통으로 만들어주마. 이 숲이 너희의 무덤이 될 터. 물론 독기에 녹아버려 시체조차 찾을 수-”
그 순간 당사량은 처음 날아든 목창을 피했던 것처럼 본능이 찌르르 울려준 경고에 따라 몸을 돌리며 오른손을 뻗었다. 누가 그를 공격하는 것이든 독왕수의 독으로 녹여버릴 생각이었다.
그의 암녹색 독기와 이글거리는 장건의 항룡장이 충돌했다.
그 둘을 중심으로 마치 물방울이 떨어진 호숫가처럼 둥근 동심원 모양의 충격파가 퍼져나갔다. 녹색 독기와 그를 불태우는 삼매진화가 일으킨 파동이었다.
“···네놈!”
“따끔따끔하군.”
장건과 당사량이 오른손을 마주한 채 서로를 노려보았다. 두 손바닥의 접점에서는 지글지글 소리가 울려 퍼지며 시커멓게 타고 남은 무언가가 줄줄 흘러내렸다. 뿌연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은 물론이었다.
장건의 얼굴을 본 당사량의 표정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네놈! 네놈은 장건이군!”
“이젠 나도 좀 유명한 모양인데.”
당사량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난 당사량이다···! 네놈이 죽인 사운이 내 동생이지···!”
그 순간 장건이 생각한 것은 당사량에 대한 미안함도, 혹은 이렇게 돌고 도는 무림의 은원, 복수에 대한 상념도 아니었다. 짧은 순간 생각을 정리한 장건은 비어있던 왼손을 쭉 뻗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내 동생의, 이 자식!”
말을 이어가던 당사량은 그 반대쪽 손에서 날아온 항룡장에 손바닥을 떼고 뒤로 한 발짝 물러서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당사량을 물러나게 만든 장건은 공세를 이어가지 않았다. 그냥 짧게 말했다.
“네 동생 복수를 하고 싶나?”
장건은 그렇게 말하고는 휙 몸을 돌려 숲속으로 달려갔다.
당사량은 멍한 표정으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한 가문의 지도자였고, 지금 장건이 왜 짧은 도발과 함께 도주하는지 알았다. 그의 몸에서 뿜어지는 독기가 이곳의 무림인들에게 문제가 되니 장소를 옮기거나 시간을 끌려는 것이다. 그러니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저 뒤를 쫓아서는 안 됐다.
“···으아아-! 장-거언-! 네 이놈-!”
그러나 당사량은 그런 이성보다는 동생의 복수를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