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227)
227화
“케히이이···”
마인의 입에서 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치 온 힘을 다해 비명을 지르고 싶어 폐를 쥐어짜곤 있지만, 정작 성대와 입이 움직이질 않아서 폐에서 올라온 공기가 축 늘어진 성대와 충돌하는 소리 같았다.
섬뜩하다면 충분히 섬뜩한 소리였지만 선실 안 무림인들은 그 소리에는 신경 쓸 수 없었다. 당장 그들의 눈에 우드득 소리를 내며 꿈틀거리는 마인의 몸뚱이가 똑똑히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혹스럽게 마인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눈이 장건을 향했다. 그는 그 끔찍한 마술을 벌여놓고 태연하게 연초를 말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 그가 고개를 들었다.
“왜? 연초 연기가 싫으시오?”
마치 싫으면 싫다고 말하라는 듯한 태도에 모두 말문이 막혔다. 그나마 연륜인 깊은 순우현이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굉장한··· 수법이군. 기혈의 역행과 순행을 이용한 건가?”
“정확히는 체내 기의 순환과 외기의 개입을 이용해 기혈을 뒤틀어 근육과 힘줄, 그리고 관절의 모양을 주물럭거리는 것이긴 하지만, 맞소. 그냥 역행과 순행을 이용했다고 표현해도 될 것이오.”
장건은 그렇게 대꾸하며 연초에 불을 붙였다. 선실 안에서 둘의 짧은 대화를 알아들은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그 연초에서 하얗게 연기가 피어오르는 동안 뭐라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쇄심금침 같은 도구 없이도 이런 수법이라. 대단하군, 장건.”
순우현의 칭찬에도 장건은 가볍게 어깨만 으쓱거렸다. 그리고 그때, 그런 두 사람과 마인의 꼴을 지켜보며 눈살을 찡그리고 있던 혁련위진이 입을 열었다.
“이봐, 장 무사. 그저 고통만을 주는 가학적인 고문은 이 자리의 누구라도 할 수 있네. 정말 이런 짓거리로 이자의 입에서 순순히 정보가 나올 것이라 믿는 것인가? 세상에는 때때로 육체적 고통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자들도-”
“그래서 조금 전 장 무사가 올 때까지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으신 건가요? 굳이 본인 손을 더럽힐 필요가 없어서?”
그렇게 혁련위진의 입이 열리자 곧바로 따라 말문을 연 사람이 있었다. 냉소적인 표정으로 혁련위진을 바라보는 그녀는 당연히 섬지영이었다.
“···포로의 심문은 이렇게 무작정 고통만 주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이자는 어차피 마인이에요. 마공을 연성하며 원주민들을 몇이나 잡아먹었을지 모를 괴물이죠. 그런데 굳이 인간 취급을 해줄 필요가 있을까요? 정보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면 당장에 목을 베었을 놈이에요.”
두 번이나 중간에 말이 끊긴 혁련위진의 얼굴에서 표정이라 할만한 것이 사라졌다. 동시에 선실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남궁천이 작게 헛기침을 했다.
섬지영은 얼른 남궁천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남궁가와는 경우가 다르겠지요. 인면수심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이자들과는 다르게 남궁가는 이 끔찍한 동부의 상황을 바꾸고자 전향하셨으니까요.”
남궁천은 그저 씁쓸히 웃으며 끄덕거릴 뿐이었다. 뭐라 대꾸할 마음은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감정이 사라진 무표정이 된 혁련위진은 그 얼굴로 잠시 섬지영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뭐라 말을 이으려 입을 벌렸다.
그때 장건이 움직였다. 그는 연초를 입에 문 채 다시 마인 앞으로 다가가 몸 여기저기를 툭툭 건드렸다. 그러자 그자에게서 울려 퍼지던 섬찟한 소리가 멈추며 나무토막처럼 굳어있던 몸뚱이도 실이 끊어진 것처럼 축 늘어졌다. 마인은 잠시 씩씩거리며 병자처럼 새된 숨만 내쉬었다.
장건이 그의 턱을 붙잡아 올렸다. 마인의 눈은 이미 반쯤 풀려 있었다.
“흠. 아직 정신을 덜 차렸나? 그럼 잠깐 더 해야겠는데.”
“에으, 어으어··· 저, 정신, 정신 차렸, 차렸다··· 그만, 그만···”
그 눈을 본 장건이 중얼거리자 마인은 붙잡힌 얼굴 근육을 파르르 떨며 떠듬거리면서도 얼른 대답했다. 장건의 눈썹이 까딱거렸다.
“차렸다?”
“···차, 차렸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아니, 조금 전 그것만, 제발 그것만 더 하지 마시오··· 묻는 말에 다 대답하겠소···”
장건은 고개를 돌려 잘 들었냐는 듯 혁련위진을 바라보았다. 뭐라 말하려 했던 혁련위진은 이제 그냥 입을 꾹 다문 채 가라앉은 눈으로 그를 마주 보았다. 이를 악문 것인지 턱에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그런 표정을 보며 피식 웃은 장건은 붙잡고 있던 마인의 턱을 놓고는 그의 옷깃에 손을 닦았다. 잠깐 사이에 흥건한 땀이 그의 손을 축축하게 만든 것이다.
그는 이후 길게 연기를 내뿜으며 물었다.
“이름.”
“···여, 여상륭이오.”
“신분.”
신분이라는 말에 마인 여상륭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나 다음 순간 장건의 눈빛이 서늘해지자 그는 다급히 말을 이었다.
“인보대장! 인보대장人保大將입니다!”
장건은 혀끝에 묻어나는 연초 가루를 옆으로 투 뱉어내며 말했다.
“그게 뭐 하는 자리인지도 설명해야지.”
“···인왕탑人王塔의 병력을 지휘하는 자리요···”
그 대답을 들으며 장건은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들과 눈을 마주쳤다.
“뭔가 캘 것이 있긴 한 모양인데.”
이후 인보대장 여상륭은 고개를 푹 떨구고는 순순히 패왕보에 대해 털어놓았다. 조금 전 겪었던 분근착골이 확실히 깊은 인상을 남긴 듯했다. 그는 장건과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패왕보는 세 개의 탑과 그 중앙의 작은 성채를 가진 요새요.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니아가랍 폭포를 둘로 나누는 작은 섬 위에 건설되어 있소···”
남궁호와 모용호는 한 강줄기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그 짧지 않은 강은 중간쯤에서 어느 거인이 강바닥을 뚝 끊어낸 듯한 거대한 폭포로 나뉘게 되는데, 그 폭포의 이름이 니아가랍 폭포였다. 애하화 농장과 같이 본래 그 땅 원주민들이 부르던 이름을 중원말로 대충 음차해 버린 이름이었다.
어쨌든 그 폭포는 무슨 자연의 조화 덕인지 다시 강줄기 한가운데서 두 갈래로 나뉘었고, 덕분에 그곳에 내륙과 독립된 작은 섬 하나가 생겼다. 패왕보는 그 섬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세우고 돌을 옮겨 쌓아 올린 요새였다.
정확히는 그 요새 중심에 있는 성채를 패왕보라 불렀다. 그리고 성채를 중심으로 세워진 세 개의 탑은 각각 인왕탑, 지왕탑地王塔, 천왕탑天王塔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여상륭은 그중 인왕탑의 병력과 시설을 담당하는 책임자 중 하나였고, 상부의 명령으로 부하들을 이끌고 텅빈 남궁가를 공격했던 것이다.
“책임자치고는 입이 싸군. 무공도 별로고.”
장건이 반쯤 놀리듯 시큰둥이 말했지만 여상륭은 여전히 그를 바라보지 못하고 축 처져서 바닥만 바라보았다.
“본래 패왕보의 자리는 아주 한직이었소··· 가끔 사공과 술법사들이 꼼지락대는 일이나 좀 도와주고 평소에는 동쪽 숲에서 사냥이나 하는 그런 한직이었지··· 내 위로도 탑주니 뭐니 하는 자들이 잔뜩 있지만 그들도 다들 문제 하나씩 달고 좌천된 사람들일 뿐이오··· 하지만··· 그자가 나타나고 나서는··· 모두 겁에 질려서는···”
“그자?”
횡설수설하던 여상륭의 몸이 크게 움찔거렸다.
“그자··· 강동공江東公. 마치 나무껍질을 뒤집어쓰고 있는 듯한··· 괴물.”
“그게 누군데?”
“···나도, 나도 잘 모르오. 그저 사공이 그에게 아주 공손하다는 것과 그에게 무례하게 굴면 간단히 머리가 뽑혀 나간다는 것 외에는··· 더 말해줄 것이 없소···”
장건은 그 소리를 흥미롭게 들었다. 마가의 가주들이 마궁 최고위층의 전부인가 했는데 누가 더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이후 이어진 질문은 장건이 아니라 순우현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것이었다. 병력은 몇이나 되는지, 그 인원 중 고수의 숫자는 얼마나 되는지, 요새의 형태는 정확히 어떤 모양인지 등등. 그쯤 흥미가 식은 장건은 연초를 태우며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계획 짜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잘할 사람이 이 선실 안에 한가득 있었다.
그렇게 장건은 조용히 선실을 나와 갑판으로 올라갔다. 어느새 어두워진 밤이 그를 반겼다.
배는 한밤중의 호수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 호숫물은 마치 바닷물처럼 찰랑거리며 거의 보름달에 가까운 달빛을 받아 반짝거렸고, 멀리 그어진 수평선과 그 위에 덧칠된 먹물선처럼 보이는 육지는 어렴풋하기만 했다.
돛과 돛대, 그 둘을 연결한 밧줄과 고리 등이 서로의 몸을 비비적거리며 끼이익-하는 소음을 냈다. 남궁호의 호숫물은 철벅거리며 배의 몸을 때렸다. 도무지 호수 위에 있다고 생각하기 힘든 풍광이었다. 누구든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백이면 백 밤바다 위에 있다고 생각할 터였다.
주변을 쭉 둘러보던 장건은 배 후미에 방향타를 붙잡고 있는 남궁상을 볼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남궁가의 청년들이 군데군데서 돛과 밧줄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배를 몰기 위해 탔다는 것이 헛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방향타를 붙잡고 있던 남궁상도 갑판으로 올라온 장건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 방향타를 놓을 순 없는지 그냥 눈을 마주치고 고개만 꾸벅 숙여 인사할 뿐이었다.
눈인사로 대꾸한 장건은 갑판 한쪽 난간으로 다가갔다. 시린 밤바람이 그의 뺨을 스쳤다.
문득 훗날 배를 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서쪽 바다를 건너 중원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동쪽, 지금 이곳에서 더 먼 동쪽에 있을 바다를 건너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예전에 감산성에서 만났던 아논과 쿠르텐이 떠올랐다. 지중해 로마에서 시작해서 끝없이 동쪽으로 항해해 감산에 닿았다던 그들. 지금쯤 어디 있을지 궁금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때 그들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본래 오백 년을 가던 한나라가 천년을 간 것처럼 로마 또한 본래 역사보다 훨씬 긴 시간을 로마라는 이름으로 이어지는 듯했다. 그 세상은 어떤 모양일지 궁금했다. 한 제국처럼 강력한 철권 정치 국가일까? 신관이라던 자가 신기한 힘을 쓰던 걸 생각하면 꼭 그렇진 않을지도 몰랐다.
“심문을 시작해놓고 정작 본인은 혼자 쏙 빠져나오셨군.”
배 난간엔 팔을 걸치고 생각에 잠겨있던 장건은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한 여인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엔 흉터가 가득했다. 얼굴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큰 것이 하나, 왼뺨과 턱에 하나씩 작은 것이 둘.
장건이 대꾸했다.
“나는 더 할 일이 없더군. 공격 작전은 거기 있는 사람들이 잘 계획하지 않겠소?”
적세인은 장건 옆으로 다가와 그처럼 난간에 팔을 걸치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낙천적인 사람인 줄은 몰랐는데. 맹주가 당신에게 위험한 역할을 맡기면 어쩌려고 그러시오?”
“혁련위진이? 지금의 그가 작전 방향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겠소? 보아하니 측근 몇몇을 제외하고는 발언권이 많이 약해진 것 같던데.”
먼 호숫가를 바라보던 적세인은 고개를 돌려 장건과 시선을 마주쳤다.
“···그건 맞소. 지금 무림맹원들은 대부분 이번 토벌이 끝나면 그의 맹주직이 끝날 것이라 보고 있소. 거기에 섬지영과 제가는 그를 완전히 적대하고 있지. 내 짐작으로는 제상천 가주의 죽음을 당신보단 그의 탓이라 보고 있는 듯한데. 맞소?”
순찰대원다운 추리에도 장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답이 되었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의 최측근으로 움직이던 제운성의 배신이 치명적이었소. 그는 이번 동진 토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혁련위진의 신임을 크게 얻은 상태였고, 이후 제가를 끄집어낸 사건으로 완전히 그의 수족이 되었다고 여겨지던 상황이었지. 그런 사람이 하루아침에 태도를 뒤집고 아주 모르는 척을 하니 혁련위진 입장에선 미칠 노릇일 것이오. 제운성이 돌아서며 무림맹, 적어도 이곳에 있는 무림맹원은 대부분 돌아섰으니까.”
그녀의 시선이 다시 먼 호숫가로 향했다. 달빛이 그녀의 얼굴을 은은하게 비췄다. 그녀 얼굴의 흉터들이 달빛에 반짝이며 보기 싫은 흉터보다는 오히려 어떤 신비한 문양처럼 보였다.
“···혁련위진은 궁지에 몰렸소. 무슨 수를 내지 않는다면 무조건 맹주 자리를 잃게 생겼지. 황군의 요청에 따라 동진군에 합류하고도 특출난 공을 세우지 못했고, 덕분에 이 동부 땅에 대한 그 어떤 권리도 얻어내지 못한 탓이오.”
“그 양반이 쫓겨난다니. 내 귀엔 괜찮게 들리는데.”
적세인은 작게 웃었다.
“내 귀에도 충분히 좋게 들리는 소리요. 하지만···”
잠시 머뭇거리던 적세인이 난간에 걸쳤던 몸을 바로 세우며 말했다.
“조심하시오, 장건. 궁지에 몰린 자는 비약적인 생각에 빠지기 쉽소. 어쩌면 자신의 몰락이 시작된 이유가 당신이라 여기고, 당신을 해치우면 다 멀쩡해지리라는 망상에 가까운 생각을 할 수도 있소.”
“날 등 뒤에서 찌를 수도 있다는 말이군.”
장건의 대꾸는 시큰둥했다. 마치 그럴 테면 그러라는 듯했다. 적세인은 그를 바라보았지만, 그의 시선은 환한 달과 밤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적세인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땅의 정의를 세워야 할 무림맹주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군··· 어쨌든, 내 경고를 가벼이 듣지 말고 조심하시오.”
말을 마친 그녀는 볼일이 다 끝났다는 듯 휙 몸을 돌려 성큼성큼 멀어졌다. 육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좁은 선상이기에 더욱 눈에 띄는 몸놀림이었다. 밤하늘을 바라보던 장건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슬쩍 확인하고는 다시 거의 원형에 가까운 달에 시선을 두었다.
적세인이 갑판 아래로 내려간 후, 장건이 중얼거렸다.
“내일 밤엔 보름달이 뜨겠군.”
호수의 물살과 선수가 부딪치며 철벅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