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23)
23화
* * *
“그래서, 그게··· 강륭은 강충의 살해 용의자로··· 그, 보시면 알겠지만 원주민을 상대로한 불공정 계약도 있고···”
무림맹 강산촌 지부장 곽선은 삐질삐질 식은땀을 흘려가며 굽실거렸다. 평소에는 나름 무공에 자신도 있고, 지역의 질서를 정리하는 무림맹 지부장으로서의 자부심으로 거만하게 턱을 들던 그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지금은 자칫 잘못하면 그대로 단전이 파괴되고 목이 매달리던가 무림맹 수용소로 끌려가 죽을 때까지 노역해야 할 수도 있었다. 눈앞에서 차가운 눈으로 팔짱을 끼고 자신을 바라보는 여인 때문에.
왼쪽 이마에서 오른쪽 뺨까지 이어지는 큰 흉터. 입술 아래와 왼쪽 뺨에도 있는 작지 않은 상처. 그러나 갸름한 턱과 큰 눈, 높은 콧대, 도톰한 입술 때문에 미인이기도 한 여인.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얼굴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곽 지부장, 정말 몰랐소?”
곽선의 손이 떨렸다. 그가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면, 혹은 시간이 조금 더 있었다면 이렇게 떨거나 굽실거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별일 없었다는 보고와 함께 적당한 선물을 쥐여주는 것으로 이 순찰대원을 떠나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여인은 그가 사건을 덮거나 해결하기 전에 강산촌에 도착했다. 그리고 마을을 한 번 둘러보고 곧바로 강충의 살인사건을 확인하더니 그대로 그 흔적과 줄을 따라 이곳 원주민 계곡 마을까지 단숨에 도착한 것이다.
거기에 강륭 그놈은 칼잡이 서른으로 도대체 뭘 한 것인지 원주민 마을은 털끝 하나 무너진 것이 없어 보이고, 원주민들은 도리어 강충을 고발하고 정당방위를 주장하기 위해 칼잡이들을 잡아두기까지 했다.
잠시 고민하던 곽선은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강륭 그놈은 자기 고향 친구를 죽이고 몸과 칼잡이들만 이끌고 도망간 놈이었다. 지금 자신에게 뇌물을 준 증거가 있을 리 없었다.
“그··· 적 대원. 난 정말 그놈이 이런 짓까지 하려던 걸 몰랐소. 알았다면 어떻게든 먼저 강산촌에 잡아두었겠지. 내 무능을 욕하겠다면··· 겸허히 받아들이겠소.”
적세인은 그 차가운 눈빛 그대로 곽선을 바라보다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소, 곽 지부장. 그럼 먼저 저 칼잡이들을 포박해 마을로 돌아가서 상행 조합에 이곳 주민들에게 줄 보상을 준비하라 하고, 지부장 직인으로 땅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문서도 만들어 두시오.”
“아, 그래도 되겠소? 알겠소이다! 내 가서 문서를 준비하고 상행 조합 녀석들은 꽉 짜두지! 이곳 원주민들은 구경도 못 했을 황금을 준비하라 해 두겠소! 하하하!”
곽선은 반색하며 냉큼 그렇게 대답하고는 자신의 말에 올라탔다. 포로들에게 다가가는 그를 바라보던 산호는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적세인을 돌아보았다.
“왜 그냥 보내주십니까? 저 새끼 뇌물 받아먹고 이곳 주민들 학살을 묵시하려던 놈인데요. 증거 있잖아요? 뇌물 장부. 그 강륭이란 놈 금고에서 발견한 거.”
“그래. 우리 권한이면 당장 저놈을 보내버릴 수 있지. 하지만 그 후엔?”
“···그 후요?”
적세인은 팔짱을 풀고 허리를 짚으며 멀어지는 곽선을 바라보았다. 그 눈은 아주 차가웠다.
“지금 당장 저놈을 보내버리면 이곳에 치안 공백이 생긴다. 근처에 있을지 모르는 사파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될 거야. 썩긴 했어도 평소엔 선을 지키던 놈이니까 일단 놔두면 일을 하겠지. 장부를 든 감찰부가 새 지부장과 함께 오기 전까지는.”
산호는 알아들었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아하. 그럼 그때 감찰부가 목을 매달아버리겠네요?”
“글쎄. 아마 단전을 파괴당하고 수용소로 끌려가지 않을까. 저놈은 그게 더 지옥이겠지.”
“다행이네요. 하여간 무림맹 이름을 단 새끼가 뇌물이나 받아먹고 책무를 경시하다니. 천거부에 항의 넣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왜 만나는 지부장마다 정상적인 새끼가 없어요?”
적세인이 피식 웃었다.
“우리가 그런 곳만 찾아다니니까.”
“···아. 그건 그렇네요.”
산호는 알아들었다는 듯 혼자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옆에서 입을 멍하니 벌리고 자신들을 바라보는 원주민 둘을 발견했다. 산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말했다.
“아, 거기 계셨네요? 두 분은 중원말을 하실 줄 안다고 하셨죠? 그럼 방금 들은 건 비밀.”
본의 아니게 곽선의 미래를 알게 된 적풍과 비랑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찾아가기도 전에 찾아온 무림맹 사람들은 굉장히 친절하면서도 냉정한 사람들인 것 같았다.
적세인은 그런 두 사람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죽은 이들과 칼잡이들은 곽 지부장과 맹원들이 데려갈 것이오. 그런데 그 중 신원확인이 안되는 자가 있다 들었는데. 장 무인과 싸웠다는.”
적풍은 누굴 말하는지 알아듣고 두 순찰대원을 마을 외곽으로 이끌었다. 목이 잘려 죽은 당견상의 시체로 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을 외곽 응달이 진 곳에 죽은 칼잡이들과 함께 뉘어 있었다. 묻거나 하진 않았고 그저 흰 천을 한 장씩 덮어놓았을 뿐이었다.
두 사람을 이끈 적풍은 그 시체들 사이를 가리켰다. 거기엔 천을 덮어놓았음에도 머리와 몸이 분명하게 나뉘어 있다는 것이 뚜렷한 시체가 있었다. 적세인은 적풍에게 다시 한번 그 시체가 맞는지 확인하고 거침없이 천을 걷어버렸다.
검은 옷을 입은 창백한 머리와 몸이 드러났다. 산호는 으-하며 질색을 하면서도 앉아서 잘린 머리와 몸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적세인이 팔짱을 끼고 그걸 바라보며 적풍과 비랑에게 물었다.
“자기 이름을 뭐라고 밝혔다 했소?”
“당··· 당검산? 당견상? 아마 당견상일걸요.”
당시 부족 전사들을 일깨우고 본인 호흡에 집중하느라 제대로 듣지 못한 적풍이 고개를 갸웃하는 동안 비랑이 그렇게 대답했다. 적세인은 계속 물었다.
“암기를 던지고 독을 썼다 했소?”
“독은 공갈이었어요. 장건 덕분에 알았죠.”
“장 무인만 눈치챌 정도였다··· 암기를 던지는 건 보았소?”
비랑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내가 도착했을 때 본 건 바닥에 굴러다니는 날붙이랑 이 목이 잘린 시체, 그리고 장건뿐이었어요.”
“음···”
적세인이 자기 턱을 만지작거리는 동안 시체를 살펴보던 산호가 손을 툭툭 털며 쭈그려 앉은 그대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이거 좀 이상한데요. 당씨 성을 쓰고 암기에 능숙한데다 쉽게 사람들을 속이고. 시체를 보니 마공을 익힌 마인인 것 같은데. 그럼 이거 설마···”
“당문唐門?”
산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에이, 설마 그 집안사람이겠어요? 황군에게 멸문된 게 벌써 백 년 전인데··· 그냥 우연이겠죠.”
“마침 신대륙이 발견된 때도 그쯤이군. 일부가 살아 바다를 건너 도망쳐왔다면 말이 되지.”
“···그렇다면 무슨 자신감으로 자기 이름을 밝혔겠어요? 성씨와 실력을 보면 당연히 당문이 떠오르는데.”
적세인이 고개를 돌려 비랑의 눈을 바라보았다.
“말 그대로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아무도 살려둘 생각이 없었던 거야. 같은 편인 칼잡이들조차도. 그러나··· 여기엔 장 무인이 있었지.”
산호는 당혹스럽다는 듯 입을 벙긋거리다가 슬그머니 일어섰다.
“진짜 그 미치광이 가문이 부활했다고 보시는 겁니까? 저, 그럼··· 맹에 최우선으로 보고해야 할 사항으로 보이는데요···”
적세인은 비랑을 바라보는 시선 그대로 말했다.
“호들갑 떨 일은 아니야. 확실한 증거가 있는 건 아니니까. 그냥 옛날 당문의 일화에 영감을 받은 자일 수도 있어. 하지만 마공을 익힌 마인이라 보고서를 써 올려야 하는 건 맞겠군.”
비랑은 턱을 살짝 갸웃하며 말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 자신을 바라보는 적세인을 가만 마주 보았다. 그러다 불쑥 물었다.
“장건을 잘 아세요?”
“장 무인에 대해서 말이오? 그렇게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
“그럼 잘은 몰라도 알긴 안다는 거네요?”
“···그렇소.”
비랑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혹시 어디로 갔는지 알아요?”
적세인은 그 반짝이는 눈을 보고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건 모르겠군. 애초에 여기서 장 무인에 대해 듣게 되리라고도 예상치 못했었으니까.”
“그래요···”
비랑은 그 대답을 듣고 시무룩해졌다. 적풍은 그런 비랑의 어깨를 툭툭 달래며 적세인에게 말했다.
“두 분에겐 참 고맙소. 우리가 찾아가야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직접 방문해서 문제를 해결해 주다니.”
“우리가 할 일이었을 뿐이오.”
보고서에 쓸 정보를 충분히 모은 적세인과 산호는 그 후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계곡 부족을 떠났다. 말을 타고 산길을 따라 내려가던 적세인은 문득 말을 멈춰 뒤를 돌아보았다. 마을 밖에 나와서 석양을 바라보는 비랑이 보였다.
옆에서 달리던 산호가 따라 멈춰서는 그걸 보고 말했다.
“장건이라는 무인, 정말 큰 대가 없이 저들을 도운 것 같진 않은데요.”
“왜?”
“저 소녀의 마음을 가져갔으니까요. 그것만큼 값진 것은 별로 없죠.”
적세인은 피식 웃더니 꼴값 떤다는 눈으로 산호를 바라보았다. 산호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실실 웃을 뿐이었다.
“실없는 소리 말고, 가자.”
두 사람이 그렇게 계곡을 떠나는 동안에도 비랑은 그 자리에서 계속 먼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지평선으로 사라져가는 석양이 장건의 얼굴을 붉게 비췄다.
장건은 높은 바위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바위 밑에서는 줄도 묶이지 않은 조조가 혼자 땅을 긁으며 마른 풀을 뜯으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그는 어제 종일 달려 산과 숲을 벗어나 황야에 이르러 주변에 사람은 물론이고 동물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고요하고 조용해 보이는 주변 풍경과는 달리 장건의 내부는 활발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마치 작은 찻잔 속에 갇힌 폭풍처럼.
계곡 부족의 정령이 준 영단은 순수한 기운의 결정체였다. 뭔가 어떤 복잡함이나 특별함 없이 그저 작은 구슬 모양으로 꼭꼭 뭉쳐있는 덩어리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건 많은 무림인이 바라는 영약의 모습이기도 했다.
본래 영물의 내단이나 그를 이용한 영약은 쉽게 먹을 수 없었다. 영물의 내단에는 순수한 기운 외에도 강렬한 독성도 가득해서 냅다 입에 처넣으면 그대로 오장육부에 탈이 나면서 심하면 죽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내단의 독성을 중화한 영약조차도 충분한 준비가 없다면 기운을 내공으로 바꾸지 못하고 몸 여기저기에 흩어질 수 있었다. 그렇게 기운이 흩어져버리면 몸은 좀 건강해져도 본래 내공 효능의 삼분지 일은 잃어버리게 되니 영약이 있더라도 먹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장건은 그냥 먹었다. 정령이 독기 가득한 물건을 주진 않았을 것이란 생각과 진짜 영약靈藥이라고 할 만한 것은 처음 먹어본다는 흥분감에 냅다 입에 털어 넣은 것이다. 그는 중원에 있을 적에도 부유한 집안 덕분에 인삼 정도는 먹어보았으나 이런 영약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입안으로 들어간 영단은 그대로 녹아 식도가 아닌 장건의 기혈을 타고 전신을 휘돌더니, 단전으로 들어가 다시 영단의 형태로 뭉쳤다. 장건은 얼른 내공을 일으켜 기경팔맥과 십이경락으로 내달렸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천천히, 그리고 굳건히 키워온 내공은 갑자기 생긴 낯선 기운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였다. 장건은 제멋대로 삐죽 뻗어나가거나 흩어지려는 기운을 그대로 감싸 녹여냈다. 기운은 그 인도에 따라 촘촘한 비단처럼, 단단한 강철처럼 변해 전신의 경락을 누비며 탁한 세혈을 뚫고 기맥을 단련시켰다.
영단은 단번에 자신을 몸을 완전히 풀어 헤치지 않았다. 딱 장건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만 녹아내렸다. 그 외에는 다시 얼음처럼 꽁꽁 얼어 단전 중앙에서 멈췄다. 그게 딱 절반 정도였다. 나머지도 녹여내는 데 오래 걸릴 것 같진 않았다.
영단이 굳어버림과 동시에 바위 위에 앉은 장건을 중심으로 가벼운 파동이 뿜어져 나와 흙먼지를 훅 밀어냈다. 조조가 이게 뭔가 싶어 고개를 들고 장건을 바라보았다.
두 시진 만에 번쩍 뜬 장건의 눈에서 맑은 빛이 반짝이다가 다시 차분히 가라앉았다.
앉은 그대로 저무는 태양을 바라보는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영약이 좋긴 좋군.”
흡족한 내공단련을 마친 장건은 바위 아래로 뛰어내려 조조의 안장에 올라탔다. 등뒤에서 느껴지는 가벼운 무게감과 옆구리를 툭툭 치는 발길에 조조는 머리를 흔들거리더니 총총 걸음을 내디뎠다. 남은 오늘 중으로 마을을 찾으려면 조조의 발길을 재촉해야 함에도 장건은 여유로웠다. 가볍게 휘파람까지 불었다.
휘파람 부는 한량과 게으른 말 한마리가 그렇게 마을을 찾아 느긋하게 황야를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