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234)
234화
강동공은 으르렁대며 말했다.
“잘도 그 사이로 끼어들었구나, 유가의 개. 그 늙은이가 죽는 꼴을 지켜볼 수는 없었나 보지?”
부스스 건물 잔해와 먼지를 해치며 걸어 나오는 강동공의 모습에는 강렬한 섬뜩함이 있었다. 단순히 사람 같지 않은 피부를 제외해도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그런 분위기를 만들었다.
물론 장건은 그런 강동공을 마주하고도 툭툭 소매를 털며 무덤덤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조금 다른 것에 관심이 있었다.
“아까 천년 뒤니 뭐니 하는 소리를 했지.”
“뭐라?”
장건은 터벅터벅 조금 앞으로 나서서 강동공을 마주 보았다.
“그게 무슨 뜻인지 말해봐.”
강동공은 흥분은커녕 평이하기 그지없는 장건의 태도를 보며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입가를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무슨 뜻이냐고? 말 그대로의 뜻이다. 천년의 세월 동안 발전한 무공을 보고자 함이었지. 하지만 그리 특출난 것은 보이지 않는군. 대왕께서 부활하시면 따분함을 느끼시겠어.”
“그러니까, 그쪽이 천년 전 마인이시다?”
장건의 대꾸에 강동공은 가슴을 펴고 턱을 들었다. 그 모습은 마치 웅크린 몸을 일으킨 장군 같았다. 나무껍질 같은 피부가 아니었다면 조금 더 그럴듯해 보였을 것이다.
“나는 대왕의 최후까지 함께한 이십육 인의 생존자이며, 그분의 복수와 부활을 위해 남은 생을 모두 바치리라 맹세한 무인이다. 천년의 세월도 그분을 향한 내 단심丹心을 꺼뜨리지 못했고, 유 씨 도적의 혈손들을 향한 복수심 또한 천년의 한을 키웠을 뿐이다. 오늘 밤, 붉은 별 아래 대왕께서 돌아오시면 모든 유가의 성과 궁전은 불탈 것이며, 천하 어디에 서적에서도 그들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오직···”
그 웅변을 가만히 듣던 장건이 고개를 살살 가로저었다.
“진짜 천년 전 사람 아니면 정신병자겠군. 한번 보자고.”
강동공은 말이 끊겼음에도 웃었다.
“하하하! 한번 봐? 한번 보겠다고? 젊은 놈이 아주 오만하구나! 감히 유가의 개 따위가 날 평가하겠다고 말하다니-!”
그의 말은 끝에 가서는 거의 고함으로 변했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그의 주변으로 와락 흙먼지가 밀려나고 성채 전체가 쩌렁쩌렁 울렸다. 성채의 마인들은 귀를 막고 몸을 웅크렸다. 그래도 그 사이에서 주르르 피가 흘러나오는 자가 있었다. 장건 뒤에 있던 순우현도 가볍게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하지만 장건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터벅터벅 강동공에게 다가갔다. 고함을 치던 강동공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런 장건을 바라보다가, 어느새 둘 사이가 훌쩍 가까워지자 반사적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그의 당혹감과는 별개로 넘쳐나는 마기가 담긴 그 주먹은 허공을 찢으며 장건의 턱을 노렸다.
주먹은 턱에 닿지 않았다. 장건의 왼손이 그 주먹을 가볍게 옆으로 밀어 흘렸기 때문이었다. 주먹을 뻗은 강동공과 장건의 눈이 마주쳤다.
“···이놈-!”
다음 순간 강동공의 벼락같은 공세가 이어졌다. 그의 두 주먹에 검붉은 마기가 휘몰아치고, 폭풍 같은 기세가 장건을 덮쳤다. 그 앞에 선 장건은 금방이라도 종잇장처럼 찢겨나갈 듯했다. 그에 맞서려면 그보다 더 큰 폭풍을 부르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하지만 강동공의 주먹을 마주한 장건의 손은 산들바람이라도 되는 듯, 혹은 가볍게 손부채질이라도 하는 듯 부드러워 보이기만 했다. 폭풍 앞에 휘청거리는 나비 같기도 했다. 강동공은 그 손을 찢어버릴 생각으로 와락 주먹을 내밀었다. 그리고, 조금 전 훌쩍 나가떨어지던 순간과 같은 장면이 반복되었다.
강동공의 패력이 담긴 주먹은 장건의 손바닥을 찢어버리지 못하고 묘하게 틀어져 옆으로 빗나갔다. 덕분에 중심이 무너진 강동공은 제힘을 이기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이익!”
그는 이를 악물고 몸을 뒤틀었다. 그렇게 억지로 주먹을 회수하고 장건에게 몸을 날렸다. 그의 전신에서 넘쳐흐르는 내력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물론 장건은 그런 강동공을 부드럽게 잡아당겨 훌쩍 뒤로 넘겨버렸다. 강동공은 다시 한번 훌쩍 날아가 이번엔 흙바닥에 나뒹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어디 하나 부러졌을 추락이었다.
하지만 강동공은 아무렇지 않게 흙먼지를 일으키며 벌떡 일어섰다. 그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장건을 노려보며 외쳤다.
“너! 유가의 개가 아니군! 선인도仙人道의 후예냐!”
장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뭐라 대꾸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유가의 개도, 선인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저 강동공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갈 뿐이었다. 강동공은 그런 장건을 보며 비웃었다.
“천년 전에도 대왕을 막지 못한 놈들이 인제 와서 뭘 어쩌겠다고! 네놈들의 그 둔공鈍功은 느려 터진 양생술일 뿐이다!”
그렇게 외친 강동공은 두 손을 허리춤으로 끌어당기고는 바싹 자세를 낮췄다. 그러자 그의 두 손에서 거센 내력의 회오리가 휘몰아쳤고, 주변의 대기마저 거기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동시에 실체가 된 마기가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와 주변을 검게 물들였다. 검은 촉수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크하앗!”
그는 비명인지 기합인지 모를 고함을 내지르며 장건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양손 피부, 나무껍질 같은 그 피부가 터져나가며 손바닥 안에 압축되었던 폭풍이 장건에게 투사되었다. 공간이 일그러지며 쿠르릉-하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런데 그 폭풍을 앞둔 장건은 그것이 코앞까지 다가오는 동안에도 피하려는 기색이 없었다. 멀찍이 떨어져서 상황을 지켜보던 순우현이 그 모습을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외쳤다.
“뭐하나! 피하게!”
장건은 피하지 않았다. 그저 그 마기의 폭풍을 향해서도 강동공에게 했던 것처럼 부드럽게 손을 내밀었을 뿐이다. 그를 본 강동공은 입가에 비웃음을 띄었고, 순우현은 기겁을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펼쳐진 장면은 두 사람의 표정을 똑같이 멍하게 만들었다.
강동공의 장풍, 마기의 폭풍, 뭐라고 부르던 무지막지한 내공의 결정체는 장건의 느릿한 움직임에 따라 조금 전까지의 강렬한 기세를 잊은 채 그의 양손과 팔, 어깨를 타고 흘렀다. 그 기운은 처음부터 장건의 것이었다는 것처럼 그의 몸을 타고 움직이고 있었다.
장건이 느긋하게 회전하자 강동공의 기운 또한 그를 따라 빙글 돌았다. 그러면서 점점 시커멓기만 하던 색이 밝게 변해갔는데, 마치 불타는 태양처럼 샛노란 색이었다.
성채의 마인들이 멀거니 지켜보는 가운데 그 기운은 장건의 양손과 팔, 어깨를 타고 흐르며 한 마리 화룡이 되었고, 그렇게 이글거리는 용 한 마리를 휘감은 장건은 곧 두 손을 중단으로 끌어올리며 자세를 바로 세웠다.
강동공은 그 모습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조금 전 피부가 터져나간 양손에서 뚝뚝 피가 흘리며 중얼거렸다.
“···이화접목移花接木? 유가도 저렇게 완벽한 이화접목은···”
그때 두 손바닥을 가슴께로 끌어올렸던 장건은 그 손바닥을 그대로 강동공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그의 전신을 타고 흐르던 화룡이 그 양손으로 빨려 들어가며 두 손바닥이 번쩍 빛났다.
동시에 아무것도 보이진 않았으나 장건의 손바닥에서 시작된 강렬한 공기의 진동이 강동공을 후려쳤다.
강동공은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와락 뒤로 날아가 성벽과 부딪쳤다. 그와 부딪친 성벽에선 꽈르릉-하는 천둥소리가 나더니 곧 그 일부분이 무너져내렸다. 회색 먼지와 돌가루가 정신없이 튀었다.
장력을 쏟아낸 장건은 천천히 호흡을 내뱉으며 쭉 뻗었던 두 손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느릿하게 하단을 내리누르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내 내공을 진정시킨 장건은 두 손을 탁탁 털며 말했다.
“참 무식한 내공이군. 뼈마디 부러지는 줄 알았다.”
“크아-아-아-앗-!”
장건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성벽의 잔해가 와르르 밀려나며 강동공이 튀어나왔다. 나무껍질 같은 피부 위로 회색 돌먼지와 피가 엉겨 엉망진창인 모습이었다.
그는 괴성을 지르며 주변에 자욱한 돌가루와 먼지를 밀어내듯 혼자 휘적휘적 버둥거리다가 이내 우뚝 멈췄다.
“우웨-웩!”
그의 입에서 피가 콸콸 쏟아져나왔다. 그 핏물 속에 덩어리 같은 것들이 철벅철벅 떨어졌다. 갈기갈기 찢겨나간 내장 조각이었다. 그렇게 한바탕 쏟아낸 강동공은 휙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휘청거렸다.
“···대왕이시여. 이 생명이 당신께 한미하게나마 보탬이 되기를···”
“그 양반은 못 돌아와.”
하늘을 올려다보던 강동공이 고개를 내려 장건을 노려보았다. 핏줄이 터져 시뻘겋게 변한 눈동자에서 주르륵 피가 흘렀다.
“크흣, 이미 의식은 시작되었다··· 네놈들은 대왕의 귀환을 막을 수 없어···”
“왜 못 막아? 탑을 무너뜨리고 저쪽 안에서 벌어지고 있을 의식만 막으면 되는데.”
강동공은 비척거리면서도 장건을 비웃었다.
“그래? 그럼 그 탑이 언제 무너지지? 네놈들이 이곳에 와서 난동을 피운 지 한참인데, 탑을 무너뜨렸어야 할 동료들은 아직 보이질 않는군. 정말 탑을 무너뜨리고 있는 게 맞나?”
그 비웃음에 장건의 시선도 성벽 밖 하늘을 향했다. 폭약을 이용해 탑을 무너뜨리는 것이니, 만약 성공했다면 어디선가 그 굉음이라도 들려왔어야 했다.
* * *
인왕탑주의 거구가 쿵-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덜덜 떨리는 그의 손이 애써 머리에 쓴 투구를 밀어내 벗겼다. 벗겨진 투구는 떨어져 바닥을 굴렀고, 그 투구 옆에 후두둑 핏물이 흘러내렸다.
“···아프, 다. 너무, 아프다. 어지··· 럽다···”
그렇게 중얼거리는 인왕탑주의 눈에 누군가의 발이 들어왔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에게 고통을 선사해준 남자가 보였다. 인왕탑주는 어딘가 간사해 보이는 그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나, 열심히··· 지켰다··· 열심히, 했다···”
“하이고, 시발. 조금만 덜 열심히 하지 그랬냐. 진짜 뒈지는 줄 알았잖아.”
양굉은 고개를 살살 가로저었다. 그는 다른 세 사람, 제운성, 섬지영, 적세인과 함께 인왕탑주를 상대하며 죽을 뻔한 경우를 잔뜩 넘겼다. 어찌나 싸움에 집중했는지 땀을 너무 많이 흘려 머리카락이 축축했다.
“···열심히, 한다··· 나 그래야, 한다··· 안 그러면, 아무도, 나 필요하지 않다··· 부족에서처럼··· 쫓겨난다···”
“뭐야?”
양굉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인왕탑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살짝 놀랐는데, 큼직큼직한 그의 이목구비와 얼굴색 등이 중원인보다는 신대륙 원주민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아니 시발··· 그럼 동족을···”
그때 인왕탑주의 고개를 툭 아래로 쳐졌다. 양굉은 멍하니 그의 정수리를 바라보다가, 곧 툭툭 건드렸다.
“어이, 진짜 죽었냐?”
그 건드림에 흔들거리던 인왕탑주는 곧 옆으로 휘청하더니 풀썩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양굉은 손을 탁탁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무슨 삶을 살았는지는 몰라도, 내세에선 좀 선하게 살아라···”
짧게나마 명복을 빌어준 양굉은 몸을 돌렸다. 그의 눈에 싸움을 마무리한 무림인들이 보였다. 인왕탑에서의 전투는 무림인들의 승리였고, 살아남은 마인은 없었다. 여기저기 죽고 다친 무림인들을 수습하고 있었다.
그때 양굉처럼 죽은 인왕탑주를 바라보며 잠시 숨을 고르던 제운성이 제일 먼저 정신을 차렸다. 그는 무림인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폭약, 폭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누구요? 시간이 없소! 벌써 해가 지고 달이 떴소!”
그의 말처럼 밤하늘 위에 둥근 보름달이 휘영청 떠오르고 있었다. 저 보름달이 천중에 이르면 그때 의식이 완성되고 천년 전 마인이 부활할 터였다.
“폭약을 가진 게 누구···”
“나예요.”
그런 제운성에게 평범한 여자 무사가 다가왔다. 조금 전 양굉을 격려했던 그 무사, 암룡삼호 소향이었다.
“오, 그럼 어서 폭약의 설치를···”
소향은 제운성의 재촉에 별다른 대꾸도 하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벗으며 외쳤다.
“양굉! 와서 도와!”
“···어엉? 또 나? 아니 왜 자꾸···”
그러나 양굉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냉큼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가방 속 물건을 받아들었다. 마치 벽돌을 노란 종이로 감싼 듯한 모양이었다.
“탑의 외부로 돌아가며 설치해. 중요한 부분은 안쪽에서 내가 할 거니까 겹치지 않게 붙여두는 데 집중해.”
“···어어, 알아들었소.”
그 이후 양굉은 탑 바깥으로, 소향은 안쪽으로 들어서 폭약을 나열했고, 잠시 후 소향은 특수한 도화선을 밖으로 길게 늘어뜨리며 나왔다. 다른 무림인들은 그게 뭘까-하며 멀거니 구경할 뿐이었다.
소향이 도화선을 꼼지락거리다가 그런 무림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물러나요. 다 죽고 싶지 않다면.”
그 냉정한 목소리에 무림인들은 우르르 목책 바깥까지 도망쳤다. 양굉도 얼른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남은 소향이 도화선 끝에 불을 붙이려는 순간이었다.
“···나 아직, 안 죽었다!”
한쪽에 쓰러져 있던 인왕탑주의 시체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불을 붙이려 웅크리고 있던 소향이나, 멀리 목책까지 물러나 있던 무림인들 모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벌떡 일어선 인왕탑주는 제일 가까이 있는 소향을 향해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 탑을 지킨다아-!”
소향은 급히 일어서며 허리를 훑었다. 그녀의 손에 검 한 자루가 들렸다. 그러나 그 검을 들고 있는 소향에 비해 쾅쾅쾅 황소처럼 달려오는 인왕탑주는 너무나 거대해 보였고, 다른 무림인들은 거리가 너무 멀어 그녀를 도울 수 없었다.
소향은 이를 악물고 검을 들어 올렸다.
“억-!”
그때 인왕탑주의 관자놀이에 길쭉한 나무 막대 하나가 돋아났다. 화살이었다.
뇌가 관통당하며 즉사한 인왕탑주는 그대로 쓰러져 주르르 소향 바로 앞까지 미끄러졌다. 소향은 그렇게 미끄러지는 인왕탑주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참았던 숨을 후-내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급히 달려오려다가 서로 뒤엉켜 나뒹굴고 있는 무림인들 저편에 활을 쥐고 있는 비랑이 보였다.
잠시 그녀의 황금빛 눈을 바라보던 소향은 이내 몸을 돌려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달리기 시작했다.
“어, 어! 부, 불을 붙인 것이오?”
“뛰어!”
소향을 향해 달려오다가 넘어졌던 양굉은 이쪽으로 달려오는 소향을 보며 멍청하게 묻다가, 악 소리를 내며 일어서서는 뒤로 달렸다. 다른 무림인들도 호들갑을 떠는 그의 모습에 얼른 다시 목책 밖으로 달려 나갔다.
잠시 후 그들 뒤로 꽈꽝-하는 폭발음과 함께 높게 쌓아 올렸던 탑이 우르르르 무너지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오···”
“···저게 폭약이야? 황군은 저런 걸 쓴다고?”
“뭐? 뭐라고? 크게 말해. 안 들려···”
목책 밖에서 안쪽으로 고개만 내밀고 있던 무림인들은 저마다 감상을 털어놓았다. 물론 그래봤자 각자의 귀에는 왱왱거리는 소리로만 들릴 뿐이었다.
비랑도 그런 사람들 틈에서 멍한 눈으로 높게 솟아오른 흙먼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그녀의 팔을 건드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조금 전 그녀가 목숨을 살린 여자 무사가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난 소향이에요.”
“뭐라고요? 잘 안 들려요!”
버럭 소리 지르는 비랑의 모습에 소향은 두 손으로 그녀의 귀를 덮었다. 그 행동에 비랑이 눈을 깜빡거리는 동안 소향의 입이 열렸다.
[난 소향이에요. 아까 고마웠어요.]“···뭘요! 별거 아니었어요!”
비랑은 귀 안쪽에서 울리는 신기한 소리에 활짝 웃으며 말했다. 소향은 그 미소에 마주 웃었다.
그들은 곧 무너진 탑의 잔해로 고개를 돌렸다. 높게 피어오른 회색 먼지 위로 흰 보름달이 희멀건 달빛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