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235)
235화
* * *
천왕탑의 마인들은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며 남궁천과 관서후의 눈치를 보았다.
그들은 조금 전까지 기세등등한 태도로 천왕탑과 거기서 나온 남궁가 무사들을 포위하고 있었다. 마인들의 병력은 남궁가보다 훨씬 많았고, 그래서 그들 중 자신들이 질 것이라 생각한 자는 없었다. 게다가 마가의 가주들을 제외하면 가장 강하다는 관서후가 그들과 함께 있었다.
궁을 배신한 남궁가의 명맥은 오늘 여기서 끝날 것이라고, 마인들은 조금 전까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남궁천이 검을 들기 전까지.
“···북천제왕검이 아니군.”
남궁천의 압도적인 기세에 슬금슬금 물러서는 다른 마인들과는 다르게 관서후는 그 자리에 서서 두 눈에 불을 켠 채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남궁천의 기세가 커질수록 관서후 또한 그에 대항하듯 강렬한 존재감을 내뿜었다.
남궁천이 대답했다.
“아니지. 이건 제왕검형이네. 진짜 제왕의 검이라 할 수 있겠군.”
“진짜 제왕의 검이라···”
중얼거리는 관서후의 머리카락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두 눈동자가 붉게 빛나며 바람도 불지 않는데 그의 옷깃이 흔들거렸다. 그의 주변으로 저릿저릿한 공기가 흘렀다.
그 주변에 있던 마인들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이미 남궁천의 기세를 받으며 위축되어 있던 와중에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몇몇은 아직 칼 한번 부딪치지 않았는데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고, 다른 마인들은 우르르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에 반해 남궁가의 무사들은 남궁천의 무공에 놀라움은 있을지언정 고통스러워 보이는 자는 없었다. 앞으로 나선 남궁천이 관서후의 기세를 막아준 것이다.
“···당숙.”
남궁상이 자기도 모르게 남궁천을 불렀다. 하지만 남궁천은 슬쩍 뒤를 보며 말없이 웃어준 후 앞으로 뚜벅뚜벅 걸음을 디뎠다.
“크윽···”
“윽···”
남궁천은 단 다섯 걸음을 앞으로 나아갔을 뿐이지만 그들을 포위하고 있던 천왕탑의 마인들은 무슨 벽에 밀리기라도 한 것처럼 와르르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물러나는 마인들은 대부분 정신을 차릴 수 없는지 비틀거렸고, 몇몇은 그냥 뒤로 주저앉아서 엉덩이를 질질 끌며 물러서기도 했다.
그렇게 물러서지 않은 마인은 결국 관서후 하나였다.
“재밌는 무공이군. 북천제왕검과 비슷하지만 달라.”
관서후는 흥미롭다는 말투였다. 다음 순간 아무것도 없을 그의 몸 주변에서 검붉은 불티가 틱틱 튀었다. 남궁천의 검기와 관서후의 기운이 충돌한 결과였다.
우르르 물러난 천왕탑의 마인들과 남궁가 무사들 사이에서 남궁천과 관서후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들의 주변 흙바닥에서 먼지들이 마치 복잡하게 물이 흐르는 듯한 묘한 문양을 그렸다. 허공에서 부딪치고 뒤섞이는 두 무인의 기세가 만든 신비한 현상이었다.
그렇게 서로를 마주 보길 잠시, 관서후의 오른손이 허리춤에 메여 있던 칼 손잡이를 잡았다. 그가 말했다.
“놀라운 기공이긴 하지만 그 기세를 이겨내고 움직일 수 있는 고수에겐 별 의미가 없군. 내가 이겼네.”
“그건 조금 섣부른 장담이 아닌가. 우린 아직 칼 한번 부딪치질 않았네만.”
남궁천은 어딘가 느긋한 목소리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왼손은 뒷짐을 지며 오른손의 검은 상체 우하단으로 겨눴다. 마치 고수가 하수에게 검을 지도하며 선수를 양보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를 본 관서후의 입가에 난폭한 미소가 떠올랐다.
“진원폭혈법은 생을 태워 진기를 얻는 대법이지. 일단 대법이 시작되면 멈출 수도 없고, 그 짧은 불꽃의 끝은 죽음일 수밖에 없어. 그래서 과연 자네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남궁천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관서후는 그 얼굴을 보며 더 큰 미소를 지었다.
“제왕검형이라 했나? 놀라운 기공이긴 하나 소모되는 진기가 정말 클 것 같군. 어쩌면 난 그냥 이렇게 시간만 끌어도 이길 수 있을 듯한데.”
“누가 이길지는 두고봐야지.”
남궁천은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관서후를 바라보았다. 이를 들어내고 웃던 관서후는 그 시선을 마주 보며 고개를 살살 가로저었다.
“그래, 두고 보자고.”
그는 그렇게 말하며 오른손을 확 당겨 칼을 뽑았다. 넓적한 칼날이 스르릉 소리를 내며 뽑혀 나왔다. 그 하얗던 칼날은 금세 관서후의 마기에 물들어 시커멓게 변했다. 동시에 그의 몸 주변으로도 검붉은 마기가 줄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허공에서 틱틱 일어나던 불티가 이젠 뇌전이라도 일으키듯 번쩍거렸다.
관서후가 칼을 뽑으며 그와 남궁천 주변에 흐르던 기의 폭풍이 훨씬 거세졌다. 이미 많이 물러났던 마인들은 기겁하며 더더욱 뒤로 나뒹굴어야 했고, 이젠 남궁가의 무사들 또한 피부가 따끔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남궁상과 남궁가의 무사들은 그런 고통 속에서도 불안한 눈으로 남궁천의 등을 바라보았다. 지금 남궁천이 보여주는 제왕검형의 기세는 분명 대단했지만, 또 관서후의 말처럼 조금 전까지 남궁천은 무공을 잃고 골골거리던 노인이었다.
하지만 남궁가의 무사들은 남궁천이 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그가 그렇게라도 가손들에게 남기려는 제왕검형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머릿속에 담기 위해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런 남궁상의 눈에 본인의 칼을 두 손으로 잡고 훌쩍 뛰어오르는 관서후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넘쳐나는 마기를 전신에 두르고 성난 황소처럼 제왕검형의 검기를 부수며 남궁천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때 남궁천의 목소리가 남궁상의 귓가에 조용히 울렸다.
“제왕帝王은 창궁蒼穹의 주인이니, 끝없는 무애無碍 속 그가 그리는 길이 곧 왕도王道이니라.”
남궁상이 깜짝 놀라 그 뜻을 생각하는 가운데 황소처럼 돌진하던 관서후가 갑작스레 우뚝 멈췄다. 너무 급하게 멈춰서 그의 발이 앞으로 주르르 미끄러질 정도였다.
그는 그렇게 멈춰서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남궁천을 노려보았다.
“···무슨, 이게 무슨··· 무슨 짓을 한 거냐?”
관서후의 눈에는 당혹감이 넘쳤고, 고상한 체하던 말투에도 예의가 사라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남궁천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는 처음과 다를 것 없이 그저 검을 늘어뜨리고 있을 뿐이지만, 바로 그 검이 관서후의 움직임을 막고 있었다. 관서후는 그 검에 자신의 목이 꿰뚫리는 환상을 보았다.
남궁천은 차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익!”
그 눈을 본 관서후는 이를 악물고 내력을 폭발시켰다. 그의 전신에서 거센 마기가 쏟아져나오며 공기를 밀어냈다. 그의 칼에서 강렬한 도기刀氣가 휘몰아쳤다.
“무슨 속임수를 쓴 것인지는 몰라도 이딴···”
남궁천이 허공에 겨누고 있건 검을 살짝 틀었다. 그리고 관서후는 자신의 심장이 꿰뚫리는 환상을 보았다.
“허억···!”
관서후의 무릎이 휘청거리며 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다른 마인들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중 최고수인 관서후가 남궁천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 전 환상에 당황하던 관서후 또한 자신이 뒷걸음질을 쳤다는 걸 깨닫고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건 단순히 부끄러워 그런 것이 아니라, 피와 마기가 들끓어 머리를 달구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는 열기를 참지 못하고 토해냈다.
“크허-헝!”
확 달아올라 머리끝까지 치달리는 마기에 관서후는 이성을 잃고 땅을 박찼다.
남궁천이 가까워지자 그의 본능이 환상을 그렸다. 다시 한번 그의 검에 목이 꿰뚫리는 환상이었다. 그것은 생존본능에 가까운 감각이었고, 그래서 관서후는 아주 잠깐 멈칫거렸다. 죽고 싶지 않았던 육체의 제동이었다.
그러나 그 망설임은 아주 짧았다. 그의 전신 혈도와 단전, 그리고 척추를 거쳐 머리끝까지 치달리는 마기는 그런 환상을 무시했다. 그 모든 환상을 갈라버리고 당장 남궁천의 목을 썰어버리기를 명령했다. 굳어가던 몸뚱이가 다시 활기를 되찾고 크게 칼을 휘둘렀다. 검게 불타는 도기가 거대한 반원을 그렸다.
다음 순간 거센 기파가 터져 나와 천왕탑의 마인들과 남궁가 무사들을 휩쓸었다. 그들은 잠시 비틀거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잠시 후 고개를 들었을 때, 그들의 눈에 보인 것은 서로를 등지고 선 남궁천과 관서후였다.
남궁천은 여전히 뒷짐을 진 채 여유롭게 검을 늘어뜨린 모습이었고, 관서후는 칼을 크게 휘두르고 왼쪽 아래로 늘어뜨린 모습이었다.
그때 관서후의 목에서 푸슈욱-피가 뿜어져 나와 달빛 아래 분수처럼 반짝거렸다. 그는 한순간 휘청거리더니 우뚝 멈춰 섰다.
“···어디서 이상한 걸 배워왔구만··· 하지만 예전 것보다, 훨씬 나은걸···”
그렇게 중얼거린 관서후는 곧 풀썩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가 엎어진 바닥 위로 붉은 피 웅덩이가 커졌다.
남궁천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 높게 솟은 피가 그의 얼굴에도 튀어있었다.
잠시 죽은 관서후를 내려다보던 남궁천의 시선은 곧 천왕탑 마인들을 향했다. 그들은 남궁가보다 두 배가 넘어가는 숫자에도 불구하고 이쪽을 포위했다기보다는 한바탕 싸우고 밀려난 패잔병들 같았다. 그들 모두 남궁천의 행동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남궁천이 그들에게 검을 겨누며 말했다.
“다음은 누가 하겠나?”
마인들은 침묵했다. 아무도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서로의 눈치만 봤다. 결국 남궁천이 앞으로 한 발짝을 더 내디뎠다.
“으악! 튀어!”
“도망쳐라! 후, 후퇴!”
“성채로! 성채로 후퇴해라!”
눈치를 보던 마인들은 그 한걸음에 냅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상급자로 보이는 몇몇이 성채로 후퇴하라 명령했지만, 대부분은 방향도 제대로 따지지 않고 사방팔방 흩어졌다. 오합지졸이 따로 없었다.
남궁상은 그런 마인들을 보며 궁의 가문들과 다른 구성원들 사이의 괴리가 어찌나 심했는지를 실감했다. 그리고 그런 놈들을 데리고 한 제국과 전쟁을 벌였음에 허탈감을 느꼈다. 마인들은 바위 아래 숨어있다가 햇빛을 본 벌레들처럼 순식간에 흩어져버렸다.
그렇게 천왕탑 주변에 더는 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된 순간, 허공에 검을 겨누고 있던 남궁천이 비틀 쓰러졌다. 그의 손에서 벗어난 검이 둔탁한 쇳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당숙!”
깜짝 놀란 남궁상이 얼른 달려가 그를 부축했다. 조금 전까지 이 일대에 휘몰아치던 기세는 이미 거짓말이었다는 듯 사라져 있었다. 남궁천은 그 잠깐 사이에 수십 년은 더 늙어버린 듯했다.
그는 회색빛으로 탁해진 눈으로 남궁상을 올려다보았다.
“···소가주.”
“네, 네, 당숙. 듣고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남궁천의 목소리는 아주 작고 가늘었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남궁가의 청년들이 모두 귀를 기울이고 있었기에 그의 목소리를 놓치는 자는 없었다.
“···잘 보셨소?”
“예. 봤습니다.”
“그럼··· 내가 왜 그저 보여주기만 했는지도, 아시오?”
남궁상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남궁가는 마공을, 마인이라는 탈을 벗어 던져야 했다. 그러자면 가문의 무공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가야 했고, 그 과정조차도 아마 황군의 감시가 있을 것이니 아주 쉽지 않은 과정일 터였다. 남궁천은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사실 그냥 모든 구결을 불러줄 수도 있었소, 소가주. 장건은··· 아마 신경 쓰지 않았을 테니까. 그의 제왕검형과 창궁무애검으로, 새로 시작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그렇게는 안 될 말이요, 소가주. 남궁의 제왕검은 오롯이 남궁의 것이어야 하오··· 그래도, 장건의 제왕검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비춰주는··· 등대가 될 수 있을 것이오···”
“명심하겠습니다, 당숙. 꼭 남궁의 제왕검을 완성하겠습니다. 제가 아니라면 제 후대에서라도.”
남궁천은 굳은 어조로 대답하는 남궁상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의 눈에서 빛이 흐려져 갔다.
“···장건에게··· 고맙다고, 덕분에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었다고···”
그렇게 말끝이 흐려지고, 곧 남궁천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를 둘러싼 남궁 씨들 모두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기에 그 주변은 아주 조용했다. 남궁상의 손이 남궁천의 눈가를 감쌌다.
“편히 잠드십시오, 당숙.”
그는 무릎으로 받쳐 들었던 남궁천을 내려놓고는 고개를 숙여 묵념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남궁 씨가 남궁천을 위해 묵념했다.
잠시 후 일어선 남궁상이 일어서자 다른 청년들이 다가가 그 시신을 수습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궁상은 고개를 돌려 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불을 붙이시오.”
“···예? 아! 예, 그럼 모두 물러나야 합니다. 멀리요.”
폭약을 설치했던 암룡대원의 말에 남궁가 무사들 모두 천왕탑에서 멀리 떨어졌다. 사람들이 목책 너머로 물러서자 준비하던 암룡대원은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이쪽으로 달려왔다. 그는 귀를 막으며 소리쳤다.
“귀를 막으십시오! 엄청나게 큰 소리가 날 겁니다!”
그 말에 남궁가 사람들 모두 귀를 막았을 때, 곧 천왕탑 쪽에서 커다란 굉음과 불꽃, 먼지가 터져 나왔다. 남궁가 무사들은 와르르 무너지는 천왕탑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남궁상이 옆에 있던 암룡대원에게 물었다.
“황군에겐 저런 물건이 얼마나 있는 거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입니다. 그저 아주 비싸고 귀한 놈이라는 것만 알아두십시오.”
다르게 말하면 한 제국의 황군만이 다룰 수 있는 물건이라는 말이었다. 그 뜻을 알아들은 남궁상이 피식 웃었다. 물론 폭약이라는 물건은 두려울 정도로 굉장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그게 부럽지 않았다. 아니,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는 조금 전 보았던 남궁천의 제왕검형을, 창궁무애검을 떠올렸다. 그건 폭약처럼 무지막지한 폭발력은 없었으나 평생에 거쳐 갈고 닦을 만한 무예였다.
남궁상은 무너지는 석탑이 피어올린 흙먼지와 그 위에 높이 뜬 보름달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서 남궁의 미래가 반짝였다.
* * *
멀리서도 느낄 수 있는 그 굉음이 울려 퍼진 것은 거의 동시였다. 분명 특별히 시간을 맞춘 것이 아님에도 비슷한 순간에 터진 것이다.
그 소리를 들은 장건이 피식 웃었다.
“마침 울리는군. 들었나?”
비틀거리던 강동공도 역시 그 소리를 들었다.
지금까지는 그의 나무껍질 같은 피부 때문에 쉬이 얼굴을 읽을 수는 없었으나, 지금은 분명 아무 표정 없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는 걸 누구라도 쉬이 알 수 있었다. 장건은 허리띠에 손을 걸치고는 고개를 살살 저었다.
“이거 제일 마지막이 되고 싶지 않다면 어서 마무리해야겠는데.”
그의 허리에는 청룡이 매여 있었고, 강동공의 눈도 그걸 보았다. 장건은 이제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도 구분할 수 있었다.
장건의 왼손이 청룡의 칼집을 잡고 오른손이 까딱거렸다. 동시에 비틀거리던 강동공도 몸에 힘을 주고 자세를 낮췄다. 물론 그래봐야 휘청거리는 건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장건은 칼을 뽑지 않았다. 그의 눈이 성채의 성문으로 향했다. 그의 시선을 따라 강동공도, 한쪽에서 숨을 고르던 순우현도, 성채 여기저기서 싸움을 훔쳐보던 마인들도 성문을 바라보았다.
순우현이 활짝 열어놓은 성문 한가운데에 누군가 서 있었다. 밤이 깊어가며 어두워진지라 그 또한 그림자에 묻혀 체구가 상당하다는 것 외에 제대로 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눈으로만 형상을 보지 않는 장건은 이미 그를 알아보았다.
“폭약이 터진 건 조금 전이지. 거기서 벌써 여기까지 달려온 건 아닌 거 같은데.”
장건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여긴 왜 왔소, 맹주?”
그 말에 성벽의 그림자 속에 묻혀있던 혁련위진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자신을 바라보는 장건을 마주 노려보던 그는 왼손에 들고 있던 뭔가를 앞으로 휙 집어 던졌다. 데구르르 굴러온 그것은 사람의 머리통이었다. 장건이 혁련위진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동안, 순우현이 그 머리통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감히 황군의 교위를!”
그 머리는 성채의 다리 건너편 숲에서 마인들을 교란하던 황군 무사였다. 하지만 순우현의 노호성이 끝나기도 전에 혁련위진의 뒤에서 따라 나온 자들이 휙휙 머리를 내던졌다. 그건 나머지 황군 무사들의 머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