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241)
241화
[도대체, 이게, 무슨···]항우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떠듬거렸다. 그의 몸에서는 대각선으로 상체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상처가 왈칵왈칵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조금 전 강기에 오른팔이 사라질 적과는 대조적이었다. 진짜 사람이 다친 것처럼 피도 콸콸 흘러나왔고, 시간을 되돌리는 듯 재생되던 모습도 이번엔 조용했다. 거기에 그의 가슴팍에 둥글게 박혀있던 원영단들도 모두 깨지고 금이 간 모습이었다.
당황한 듯 자기 몸을 내려다보던 그가 번뜩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 반으로 갈라진 듯 둘로 쪼개져 빛나는 적혈성이 보였다.
[한낱, 인간이··· 별을 베어냈다고?]하늘을 올려다보던 그의 시선이 지상으로 되돌아왔다. 그의 눈에 검을 휘두른 자세 그대로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장건이 담겼다.
눈이 마주친 장건이 씨익 웃으며 슬쩍 고개를 까딱거렸다.
“내가 맨손으로도 이길 수 있다 했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그 말을 알아들은 항우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 되어 비틀거렸다. 그의 상처에서는 여전히 피가 철철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가 비틀거리는 걸 본 강동공이 어쩔 줄 몰라했다.
“대, 대왕! 오, 옥체를, 옥체를 보존하시어···”
항우는 주춤거리며 상처를 부여잡고 뒤로 몇 발짝 물러섰다. 강동공은 두 손을 덜덜 떨며 어쩔줄 몰라했지만, 사공은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고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그때 웅크린 항우의 어깨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후훗, 흐흐흣··· 흐-하하하하-!]“대, 대왕···!”
다음 순간 항우는 고개를 뒤로 젖혀가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 순간이, 이 역경이 너무나 즐겁다는 듯했다. 강동공과 사공, 호흡을 가다듬던 장건까지 모두 멍하니 그 웃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미치광이처럼 웃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뚝 웃음을 그치고는 장건을 바라보았다.
항우가 말했다.
[마음을 세워 베고자 하면 밤하늘의 별조차 그 검을 피할 수 없으리니··· 먼 옛날 저 삼황오제와 은주시대부터 수많은 무인들이 온갖 미사여구를 통해 그 경지를 떠들어댔으나, 그들은 모두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주절거리던 머저리들에 지나지 않았다. 누구도 정말 그 경지에 닿지는 못했지. 그리고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그는 다시 고개를 들어 반으로 갈라진 자신의 별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상처에서는 여전히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벌써 과다출혈로 죽었을 양이었다.
[진을 무너뜨렸을 때도, 유계와 천하를 놓고 싸울 때도 모두 나의 힘이면 충분하리라 생각했었다. 나의 무공과, 우희와, 추만 내 곁에 있다면 진정 온 천하와 맞서 싸울 수 있다고 생각했었지. 심검心劍이니 무형검無形劍이니 하는 건 진짜 무공을 알지도 못하는 먹물쟁이들이 지껄이는 헛소리로만 생각했다. 그저 있지도 않은 경지로 천하를 얻고자 하는 나의 주의력을 흩어버리기 위한 수작질이리라고.]적혈성을 올려다보던 그의 시선이 밑으로 돌아와 다시 장건과 마주쳤다.
[그런데 너는 정말 그 경지에 도달했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장건은 그의 안색이 창백해지는 것과 밤하늘 적혈성의 빛이 점점 사그라지는 걸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있으리라 믿었으니까.”
[천하에서 가장 강한 나도 믿지 못한 것을?]“검기성강과 이기어검 다음은 당연히 심검이라 말하는 스승들이 있었거든.”
그 대답에 항우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특이한 사문이군.]장건은 긍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그들이 서 있는 섬을 중심으로 둥둥 떠다니던 바위와 땅덩어리들이 그 힘을 잃고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무너진 바닥에 고이던 물이 있었는지 풍덩풍덩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거기에 붉게 변했던 달도 천천히 제 색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항우가 되살아나며 비틀렸던 이 장소가 원래대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다 끝난 느낌이었다.
“대, 대왕···! 이렇게, 이렇게 가실 수는 없습니다···! 그 오랜 세월을 지나 겨우 돌아오셨는데, 어찌! 어찌 이렇게···!”
그때 강동공이 항우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두 손을 모아 올렸다. 그의 나무껍질 같은 피부 사이로 뚝뚝 흐르는 것은 눈물이었다. 그는 마치 세상을 떠나는 아비를 앞둔 아들처럼 엉엉 울고 있었다.
이제 시체나 다름없이 창백해진 항우가 그런 강동공에게 손을 뻗어 뺨을 어루만졌다. 그는 입가에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그래. 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되살아났는데, 이렇게 끝낼 수는 없지. 그럴 수 없고말고.]그 말에 장건의 표정이 굳었다. 눈물을 흘리고 있던 강동공도 조금 멍해진 표정으로 눈을 끔뻑거렸다.
“···대왕?”
항우의 눈이 붉게 빛났다. 동시에 그를 바라보던 강동공의 몸이 장난처럼 퍽-하고 터져나갔다. 조금 전까지 강동공이었던 피와 살점들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아니, 흩날리지 않았다. 그 피와 살점들은 다음 순간 거짓말처럼 항우의 손으로 빨려 들어가 어떤 형상을 갖췄다. 그것은 뼈와 살로 이루어진 끔찍한 육골검肉骨劍이었다.
[그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장건! 네 기예는 놀라우나 결국 인간의 것! 나는 전쟁의 별이요, 죽음의 결정자! 또한 저 하늘의 역리逆理와 순리順理가 모두 내 아래 있으니 나는 곧 하늘이자 마신魔神이다! 이것은 한낱 인간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운명의 파도니라-!]항우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기세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머리칼은 하늘로 치솟았고, 두 눈에선 똑바로 마주 보기 힘든 핏빛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
그가 디딘 땅이 그의 발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으스러져 갔다. 먼저 공기가 떨리고, 이후 대지가 진동했으며, 이내 온 천하가 우르르-흔들렸다.
그 진동 속에서 그의 가슴팍에 박혀 있던 깨진 원영단들이 완전히 잘게 바스러져서는 그의 육골검 안에 스며들었다. 항우는 그 검을 자신의 상체 앞에 바로 세우며 두 손으로 잡았다. 동시에 그의 육신도 인간의 몸을 벗기 시작했다.
시원시원하게 생겨 호쾌해 보이던 그의 얼굴이 한순간에 바스러졌다. 이어서 몸뚱이 또한 찢겨 나가며 장건의 일검에 갈라졌던 상처도 사라졌다. 피부와 근육 모두 그의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에 휘말려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그 안에서 나타난 것은 벌건 근육이나 하얀 뼈가 아니라 검붉은 빛 덩어리로 이루어진 마신의 형상이었다.
—–!
마신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것은 그가 인간의 육신을 입기 전, 저 너머 세상에서 벽을 부술 적 외치던 함성과 같았다. 지상에서 그 외침이 울린 순간 밤하늘의 적혈성 또한 둘로 갈라진 모양 그대로 환하게 이글거렸다.
“···환장하겠네.”
장건은 우르르-진동하는 섬 위에서 그 마신을 마주한 채 피곤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직 조금 더 투닥거려야 할 모양이었다.
—–!
그때 마신이 크게 검을 휘둘렀다. 단순한 내려치기. 하지만 그 육골검의 길이를 보면 절대 장건에게까지 닿을 수 없는 거리였다. 물론 장건은 그 의미를 알았다. 그래서 곧바로 마음을 세워 두 손으로 잡고 머리 위로 들어 보이지 않는 칼날을 흘려냈다.
마신의 검은 닿을 수 없는 거리고, 장건의 손에도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건만 그 순간 채앵-하는 쇳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장건의 왼편으로 귀가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 * *
“으악, 시발! 뭐야!”
양굉이 머리를 감싸고 몸을 움츠리며 소리 질렀다. 꼴사나운 모습이었지만 그와 함께 움직이던 사람들 중 비웃는 이는 없었다. 갑자기 터져나온 굉음과 진동에 다른 이들 모두 반사적으로 몸을 낮추며 주변을 경계했기 때문이었다.
인왕탑을 무너뜨린 양굉과 무림인들은 패왕보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곧바로 패왕보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너기 위해 강변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천지가 울리는 진동과 굉음이 들린 것이다.
“···뭐, 뭐야 저게?”
그리고 굉음이 들린 방향을 본 무림인들은 제가와 암룡대 가릴 것 없이 멍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작스레 강물이 쩍 갈라지며 그 물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밀려오는 걸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건 마치 대야에 담긴 물을 손으로 때려 작은 파도를 일으킨 것과 같았다. 대신 그 손이 보이지도 않는다는 점이나, 그 규모가 수백 배쯤 커졌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뛰, 뛰어어-!”
다들 멍청히 그 파도를 바라보는 와중에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양굉이 그렇게 비명을 지르더니, 냅다 파도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행동에 정신을 차린 다른 사람들도 혼비백산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달려가는 사람들의 당황한 모습은 제가의 무사나, 암룡대나, 원주민 전사나 다를 게 없었다.
그렇게 달려가는 무림인들 머리 위를 마신의 일격이 만든 거대한 파도가 덮쳤다.
* * *
항우, 혹은 마신이라고 불러야 할 존재의 일검을 흘려낸 장건은 곧바로 반격했다. 천지가 흔들리는 굉음 속에서 마신의 목을 향해 마음으로 세운 검을 휘두른 것이다.
그러나 마신은 자신의 육골검을 세워 그것을 가로막았다. 다시 한번 챙-하는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쪽에선 굉음도, 무너지는 섬도, 갈라지는 강도 없었다.
장건의 공격을 막아낸 마신은 자신도 할 수 있다는 듯 자연스럽게 반격에 나섰다. 장건은 이번에도 그 일검을 흘려내며 몸을 비틀었다. 그냥 검만 움직여 흘려낼 수 있는 각도가 아니었다.
대신에 그들이 서 있던 섬의 정중앙에 쩍-하고 갈라졌다. 터만 남았던 패왕보 궁전이 완전히 뭉개졌다. 이어서 탑처럼 외로이 서 있던 섬은 그 충격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장건은 정신없이 흔들리고 바닥이 쩍쩍 갈라져 무너지는 섬 위를 달렸다.
마음으로 검을 세웠지만 가진 힘의 총량은 여전히 저쪽이 컸다. 무식하다 못해 아찔할 정도였다. 정확히는 원영단의 힘이겠지만, 그런 힘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는 점 자체가 마신의 힘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달려가는 장건에게 다시 한번 보이지 않는 마신의 일검이 날아왔다. 장건은 가볍게 뛰어오르며 그 궤적을 피했다. 다음 발 디딜 바닥이 콰르릉 무너졌지만 그는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허공에서 몸을 튕겨 경로를 바꿨다.
마신이 검을 휘둘러 천지를 쪼개고 있었으나 사실 장건은 별로 겁먹지 않았다. 마신의 육골검이 그의 심검을 막았지만, 그의 심검도 마신의 육골검을 막았다. 그렇다면 강이 쪼개지고 대지가 무너지는 것과는 상관없이 결국 둘의 대결은 한낱 검술 대결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장건은 자신의 검이 마신보다 못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온 장건을 향해 마신이 함성을 터뜨렸다.
—–!
“이젠 입이 없어서 말을 못 하는 거냐?”
대기가 쩌렁쩌렁 울렸지만 장건은 아무렇지도 않게 핀잔을 날리고는 훅 검을 찔러넣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쥐지 않은 양손으로 찌르는 시늉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결과는 시늉으로 끝나지 않았다. 마신의 왼쪽 어깨가 그 찌르기에 펑-꿰뚫렸다. 밤하늘에 떠 있는 적혈성의 일부도 누군가 베어 문 것처럼 빛이 꺼져버렸다.
—–!
마신은 비명인지 함성인지 모를 진동을 토하며 장건에게 육골검을 휘둘렀다. 그 궤적을 따라서 공간이 일그러졌다. 장건은 보이지 않는 마음의 검을 들어 그걸 막았고, 이어서 가까이 붙은 장건과 마신 사이에 육탄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마신 항우는 이제 단순히 내공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힘을 휘두르고 있었다. 대지와 강물은 육골검을 한 번 휘두르면 종잇장처럼 갈라졌고, 주먹을 뻗으면 거대한 쇠망치로 후려친 듯 뭉개졌다.
그에 맞서는 장건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마음의 검을 휘두른다고 강이 갈라지지도 않았고, 마신의 주먹을 빗겨내고 후려친 반격 또한 대지를 뭉개지 않았다. 장건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그의 검은 오직 마신만을 벨 뿐이었다.
그들이 디디고 있던 섬은 어느새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그러나 둘 모두 바닥으로 추락하기는커녕 매 순간 공방을 이어가며 점점 하늘로 떠오르고 있었다. 바닥이 사라진 그들의 대결은 입체적으로 변해갔다. 진정한 공중전이었다.
마신이 육골검을 휘두를 때마다 대지와 강물이 쩍 갈라지며 굉음이 터졌다. 강 저편에 무성한 숲에도 그 일검이 닿아 콰르릉-먼지 폭풍이 일어났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굉음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분명 마신은 처음과 다름없이 육골검을 휘두르고 있었지만 대지에는 그의 검이 닿지 않기 시작했다.
—–!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은 마신이 두 눈과 입으로 보이는 곳에서 시뻘건 불길을 토했다. 다른 사람들이 걱정된 장건이 그의 공격을 자연스럽게 당겨서 힘의 방향을 허공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허공에서 방향을 틀던 장건은 말 그대로 불같은 분노를 토해내는 마신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게 뭐냐고? 글쎄, 태극혜검太極慧劍? 그저 태극권을 검으로 펼쳤으니 태극검이라 해도 좋겠지.”
그 농담 비슷한 미소를 본 마신이 다시 한번 고함을 터뜨리려 했지만, 그보다 장건의 심검이 그의 왼다리를 썩뚝 갈라버리는 것이 더 빨랐다. 몸과 분리된 마신의 다리가 쭉 떨어져 내리다가 이내 부스스 잿가루처럼 바스러졌다.
살아생전 언제나 땅에서 싸웠던 마신과는 달리 장건은 비교적 두 발 모두 땅에서 떨어진 채 싸웠던 경험이 많았다. 그리고 모든 싸움이 그러하듯 한계를 뛰어넘은 초월자끼리의 생사결 중에도 그런 사소한 차이 하나가 승패를 결정했다.
마신은 곧 검을 든 오른팔만 남지고 나머지 사지가 모조리 잘려 나가서는 기우뚱 지상으로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그의 신체 일부가 떨어져 나갈 때마다 밤하늘 적혈성의 빛도 거뭇해졌다.
그 와중에 그들은 어느새 꽤 높은 곳까지 올라와 있었다. 도도히 흐르는 강줄기와 그 일대에 펼쳐진 숲이 보였다. 한쪽에는 혁련위진이 무너뜨리지 않았던 지왕탑도 있었다.
그렇게 이 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중에서, 장건은 마무리를 위해 마음을 세웠다. 그의 눈에 육골검을 쥔 채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마신의 모습이 보였다.
—–!
그때 마신도 마지막이라 생각했는지 고함을 내지르며 오른손의 육골검을 장건을 향해 뻗었다. 동시에 떨어지던 그의 몸도 새로운 추진력을 얻었다는 듯 장건을 향해 쭉 날아들었다.
장건은 불타는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손에 쥔 마음속 검을 휘둘렀고, 곧 육골검과 부딪쳤다.
다음 순간 육골검이 부러지며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태양이 뜬 것처럼 그 일대가 환해졌다. 겨우 강물에서 빠져나와 헐떡대던 양굉이 그 빛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역시 강물에서 빠져나온 제운성도, 섬지영도, 비랑을 건져주던 소향과 적풍도, 살아남은 모든 제가의 무사들과 무림인들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엉망진창으로 갈라지던 대지의 모습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던 남궁상과 남궁가의 무사들도 갑자기 터진 빛에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왕탑주를 쓰러뜨리고 장건을 따라가려다가, 이후 이어진 땅덩어리의 추락에 덩달아 떨어졌던 순우현도 겨우겨우 강변으로 기어 나오다가 그 빛의 폭발을 올려다보았다.
장건은 제일 가까이서 그 빛을 보았기에 눈살을 찌푸렸다. 두 눈이 멀어버릴 듯한 강렬한 빛이었다. 동시에 그는 그 안에 갇혀있던 대지의 의지들이 풀려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원영단이 완전히 파괴된 것이다. 그들은 어쩌면 오랜 시간이 흐르고 다시 의지를 가진 채 사람들을 보살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순간 그 빛의 한가운데서 불쑥 손 하나가 올라왔다. 그리고 그 손은 장건이 어찌 대처하기도 전에 그의 목을 와락 움켜쥐었다. 마신 항우의 손이었다.
빛 속에서 놀란 장건의 눈과 불타는 마신 항우의 눈이 마주쳤다. 장건은 곧바로 검을 세워 그 손을 잘라버리려 했다. 그러나 그것보다 마신이 와락 그를 밀어 공간을 깨버리는 것이 먼저였다.
“너···!”
[같이 가자.]둘은 딱 둘 들어갈 정도의 크기로 부서진 공간의 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균열은 생겼을 때처럼 빠르게 사라졌고, 때문에 주변을 환하게 비추던 빛이 사그라졌을 때 그곳에는 아무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