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245)
역은 북적거렸다.
사람이 정말 많았다. 서너 걸음을 움직이려면 너무나 당연하게 낯선 이의 어깨를 부딪쳐야 할 정도였다. 또 그 행색은 어찌나 다양하던지 남자, 여자, 노인, 아이는 물론이고 그들의 옷차림과 생김새, 피부색 등등 같은 것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들 각각을 분류해 나누자면 이곳에 있는 사람의 숫자만큼의 색인이 만들어질 것만 같았다.
사실 그렇게 행색이 다양한 것은 당연했다. 이곳은 동부 해안에서 가장 빠르게 번영하고 있는 우애성友愛城이었기 때문이었다.
십오 년 전 한漢 제국의 마궁 토벌 이후 신대륙의 서부와 동부가 연결되었고, 이미 신장강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던 동부는 그를 통해 더 큰 동력을 얻어 덩치를 불려갔다. 그들은 본래 북쪽 마궁과의 전쟁을 상정하고 힘을 길렀으나 황군의 토벌 이후엔 더 멀리 서부의 도시들과 경쟁하기 위해 몸집을 키웠다.
본국의 상황이 좋지 못했던 황군은 그들을 쓸어버리기보단 이미 서부에서 한번 그랬던 것처럼 검과 무림맹이라는 이름을 하사해주었다. 그렇게 머리 위에 황군을 두고 서부 무림맹과 동부 무림맹은 서로의 이권을 위해 으르렁거리는 사이가 된 것이다. 스스로 식자라 말하는 이들은 애초부터 황군이 그 갈등을 노렸다고도 말했다.
그런 와중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동부의 해안가에서 새로운 깃발을 단 배들이 등장했다. 그 배의 선원들은 자신들을 로마의 탐험가라 소개했다.
마침내 세계가 둥글게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그 최초의 만남 이후 중원말로 우애성, 로마의 말로 아델포스 시市라는 두 개의 이름을 가지게 된 도시는 아주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다. 작은 나무 오두막 하나 찾아볼 수 없었던 해안가가 십 년이 조금 넘는 시간 만에 수천 명에서 수만 명이 오고 가는 거대한 무역 도시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성장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삐이이-!
갑작스러운 소음에 잠시 손안에 쥔 표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진서하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 하얀 수증기를 뿜어내는 거대한 철괴물鐵怪物이 들어왔다. 아마 과한 열기를 빼내기 위해 조정 중인 모양이었다.
“오오··· 과연···”
“저게 정말 움직이는 건가? 아니, 대체 무슨 이치로···?”
“자네는 조금 전에 선로를 타고 들어오던 모습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하나?”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내 눈이 믿기질 않으니까 그렇지···”
그녀 주변에 있던 남자 둘이 연신 감탄사를 흘렸다. 사실 그 둘 말고도 꽤 많은 사람이 놀랍다는 눈으로, 혹자는 두려움까지 느끼는 표정으로 철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최근 이곳 우애성이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놀라운 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쉼 없이 드나드는 동쪽 로마의 범선들도 있었지만, 진정한 원인은 바로 저 기물奇物이었다. 검은 석탄을 태워 물을 끓이고, 그 증기의 힘으로 수천 근 짐을 끌고 저 먼 서부와 동부를 달리는 철마鐵馬. 동서부의 물류 이동을 획기적으로 단축한, 앞으로 신대륙의 혈관이 될 것이 분명한 그것. 바로 장가상회의 증기 기관차였다.
“그 소식 들었나? 드디어 고원성에서 남강성으로 이어지는 선로가 완전히 하나로 개통되었다던데.”
“그럼 이젠 정말 여기서부터 서부 신사천까지 한 번에 쭉 갈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더군. 푯값이 꽤 비싸지만 말이야.”
“놀랍군··· 정말 놀라워. 그 긴 쇳길이 고작 십 년 만에 완성되다니···”
“두 무림맹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인 게지.”
두 남자는 열차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계속 그렇게 감탄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감탄하면서도 정작 열차에 탈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놀라운 기물을 구경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 이 역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열차를 탈 사람이 다섯이라면, 그저 구경하러 온 사람도 다섯은 되었다. 열차의 승무원들은 그런 사람들이 열차에 손을 대거나 표 없이 타려는 것을 막고 있었다.
잠시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던 진서하는 쓰고 있던 삿갓을 살짝 잡아 가다듬고는 승무원에게 다가갔다.
팔짱을 끼고 서서 승객 칸의 입구를 막고 있던 승무원이 다가오는 그녀를 보고는 자세를 바로 했다. 건장한 체구에 꼿꼿한 자세로 보아 그는 무공을 익힌 자였다. 열차의 승무원이자 보표保鏢인 모양이었다.
“승객이시면 표를 보여주시지요. 만약 표가 없다면 안쪽 매표소에서···”
진서하는 말없이 들고 있던 표를 내밀었다. 승무원은 곧바로 꼿꼿하던 허리를 부드럽게 숙이며 표를 받아 확인했다.
“오, 장거리 승객이셨군요. 어서 오십시오.”
승무원의 인사에 진서하는 고개를 살짝 까딱여 화답했다. 그리고 표를 되돌려받는 동시에 비켜선 그를 지나 열차로 올라섰다. 승객 칸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녀의 앞에 객실 좌우로 늘어선 좌석들과 그 가운데 통로가 보였다.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녀가 올라탄 객실이 중간 등급의 객실이기 때문이었다. 본래 그녀는 그냥 제일 값싼 좌석을 이용하려 했지만, 표를 마련한 장상이 어떻게 그런 꼴을 가만두고 보냐며 억지로 쥐여준 것이다.
그나마도 열차 최고 객실을 통째로 빌려준다는 것을 그녀가 질색한 덕분에 타협한 결과였다. 진서하는 천천히 표에 적힌 자리를 찾아가며 불쑥 떠오른 장상을 생각했다.
십오 년 전 동부가 열리며 서쪽의 수많은 상인과 세가들이 새로운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동쪽으로 달려왔고, 당연히 경쟁과 협력, 음모와 귀계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지금 그 이합집산 속에서 가장 선두를 내달리고 있는 무리가 바로 장가상회였다.
장가상회는 서부, 동부 무림맹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열차를 이용한 물류를 틀어잡았고, 대륙 곳곳에 지부를 세운 덕분에 동쪽 로마에서 신대륙을 거쳐 저 멀리 중원에 이르는 거대한 무역로를 가질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황금의 길이었다.
혹자는 그들이 벌어들이는 황금이면 저 중원의 황제에게 신대륙을 살 수도 있을 것이라 말하기도 할 정도였다. 물론 황제가 고작 황금 몇 조각에 땅을 팔아치울 리는 없었지만.
당연히 이곳 우애성에도 장가상회의 지부가 있었다. 애초에 열차가 닿는 곳은 모두 장가상회의 영역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회주 장운의 아들 장상은 그 장가상회 우애성 지부의 젊은 지부장이었다.
진서하는 헤벌쭉한 장상의 얼굴을 떠올리며 살짝 웃었다. 장상은 우애성 지부장으로 발령이 나기 전 혼인을 했다. 그는 본인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여인과 혼례를 올렸는데, 그 후 이곳으로 와서 부인과 함께 보내는 신혼생활이 꽤나 행복한 모양이었다. 여행 중이라 혼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미안해 애써 이곳까지 찾아왔는데 도리어 그 신혼을 방해한 셈이 되어버렸다. 진서하는 자연스럽게 장상의 부인, 주 부인의 모습도 떠올리게 되었다.
그녀는 어릴 적 험한 일에 휩싸여 왼손 약지가 없었다. 그녀가 늦은 나이에 혼인하게 된 것도 그 일 이후 아버지가 워낙에 그녀를 애지중지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결국 인연이라는 게 있다는 말처럼 그녀는 장상을 만났고, 장상은 그녀를 만났다. 불타는 둘 사이를 보아하니 조카 볼 날이 머지않은 듯했다.
짧은 상념을 이어가며 표를 확인하던 진서하는 곧 본인의 좌석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약간 당황했는데, 그녀의 좌석이 널찍한 대신에 두 좌석이 서로 마주 보는 형태로 이루어진 모양이었던데다가 이미 선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좌석 앞에 선 그녀를 흘끗 바라본 선객은 마치 그녀의 시선에 밀려나기라도 한다는 것처럼 몸을 웅크리며 좌석 깊이 몸을 묻었다. 그 선객은 로마인들이 흔히 로브라고 부르는 두건으로 온몸을 감싼 노파였다. 몸을 웅크리기 전 얼핏 보니 그 생김새가 중원인이나 원주민보다는 로마인 같기도 했다.
인사를 나누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눈을 피해버린 터라 진서하도 그냥 입을 다물고 좌석의 번호를 확인해 본인 자리에 앉았다. 그녀도 그렇게 외향적인 사람은 못 되는지라 뭐라 넉살 좋게 말을 붙이기 힘들었다.
그렇게 젊은 여인과 노파가 서로를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둘 사이는 조용하기만 했다.
잠시 가만 앉아있던 진서하는 곧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좌석 위 짐칸에 올려놓았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등에 메인 검이 덜렁거렸다.
그녀는 그 검마저 풀어서는 잠시 짐칸을 올려보다가, 그냥 품에 끌어안으며 자리에 앉았다. 웅크린 노파의 눈이 그런 진서하와 그녀의 검을 흘낏거렸다.
진서하는 그런 노파의 시선을 느끼면서도 그저 삿갓으로 얼굴을 가리며 좌석에 몸을 묻을 뿐이었다. 어쩌면 노파는 그녀가 무림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겁을 먹은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괜히 말을 거는 것보다는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해주는 것이 더 좋았다. 적어도 지난 몇 년간의 여행으로 그녀가 느낀 바로는 그랬다.
그 후 그녀들 옆 통로로 몇몇 사람이 지나다녔다. 좌석을 찾아 짐을 싣는 부산스러움이 그 열차 칸을 맴돌았다. 진서하가 막 탈 때는 좌석이 넉넉했는데, 어느새 빈 곳 없이 가득 차고 있었다.
그때 등에 작은 봇짐 하나를 멘 청년이 표를 쥐고 진서하와 노파의 자리 앞으로 다가와 머뭇거렸다. 그는 자신의 표와 좌석 번호를 번갈아 보고, 이어서 진서하를 바라보았다. 그의 기척을 느낀 진서하는 삿갓도 들어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열차 창가 쪽으로 몸을 당겨 앉았다.
그 몸짓을 본 청년은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꾸벅 인사를 하고는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등에 메던 봇짐은 앞으로 끌어안은 채였다.
“···짐은 위쪽에 짐칸에 올려놓으세요.”
“예? 아, 아하!”
어벙한 소리를 내던 청년은 위쪽에 짐칸이 있다는 걸 깨닫고는 얼른 본인 봇짐을 그곳에 올렸다. 그리고 다시 좌석에 앉고는 하하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사실 열차는 처음 타보는 거라··· 장거리 마차는 자주 탔었는데 말입니다. 아, 저는 이환이라고 합니다.”
청년은 그렇게 자기 이름을 밝히며 머리를 까딱여 인사를 했다. 그 인사를 그냥 무시해버릴 수도 없는지라, 진서하는 내심 한숨을 쉬면서도 삿갓 끝을 붙잡아 까딱이며 화답해 주었다.
“진서하.”
“아···”
그런데 그 과정에서 얼핏 그녀의 얼굴이 드러난 모양이었다. 이환이라는 청년은 두 눈을 크게 뜨고는 입까지 헤 벌리며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진서하의 삿갓은 어느새 다시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아, 아앗··· 그, 반갑습니다. 저는 이환이라고··· 아, 아까 했지. 그러니까, 저는 여행 중이고··· 아니 이게 아니라···”
정신을 차린 이환은 혼자 버벅거리다가 뚝 입을 다물었다. 그들의 좌석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색해졌다.
물론 그 어색함을 느끼는 것은 이환뿐이었다. 진서하는 그저 좌석에 몸을 묻고 편하게 쉬고 있었고, 노파 또한 좌석 구석으로 몸을 웅크리며 자기만의 상념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환은 입술을 말아 물며 두 눈을 꾹 감았다. 스스로 말재주가 없는 건 알았지만 상대 얼굴을 보고 이렇게 떠듬거리는 건 정말 최악이었다. 그렇다고 다시 말을 꺼내기에는 이미 순간을 놓친 지 오래. 결국 이환은 푸시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좌석에 몸을 묻었다.
덕분에 어쩌다 보니 세 사람의 모습은 비슷해졌다. 셋 모두 좌석에 반쯤 늘어진 자세가 된 것이다.
그들 사이에 고요함만 맴돌기를 잠시. 곧 열차가 덜컹-하는 움직임과 함께 천천히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밖에서 움직이는 열차를 보고 놀라 떠드는 사람들의 소란이 들렸다. 조금 전이었다면 처음 열차를 타는 이환 또한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자기 신발을 바라볼 뿐이었다.
천천히 미끄러지던 열차는 곧 거친 쇳소리와 증기, 거뭇한 연기를 내뿜으며 저 먼 서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 *
제규상은 연초를 입에 물고 화섭통을 꺼냈다. 곧 칙-하는 소리가 나고 그의 연초에 불이 붙었다.
“후-우.”
내뿜는 연초 연기 너머로 멀리 달려가는 열차가 보였다. 잠시 그렇게 멀어지는 열차를 바라보던 제규상은 곧 몸을 돌려 자신의 고객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어 말했다.
“저 열차가, 아니, 아니지. [저 열차가 맞소?]”
그의 말과 시선이 닿은 곳에는 시커먼 천으로 두 눈을 제외한 전신을 가린 괴인이 있었다. 그는 시퍼렇게 빛나는 눈으로 멀어지는 열차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다. 저기에 타고 있는 게 분명하다.]제규상은 그 걸걸한 목소리와 꼬부라지는 단어를 들으며 이마를 긁적거렸다. 확실히 본토 발음은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그동안 열심히 로마어를 공부한 게 헛일은 아니었는지 무슨 뜻인지 정도는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거참. 그냥 우애성으로 갔으면 저 열차 출발하기 전에 목표를 잡았을 것 아니요. 왜 이리 온 거요?]그는 그렇게 구시렁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우애성 중심에서 상당히 떨어진 외곽의 언덕이었다. 덕분에 저기 멀어지는 열차의 꽁무니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 순간 그 괴인의 번뜩이는 두 눈이 제규상을 향했다.
[하지만 이런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당신을 고용한 것 아니겠나?]그 눈을 마주한 제규상이 피식 웃었다. 그건 맞았다. 지금 그의 품에 든든히 자리한 황금이 괜히 거기 들어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맞군.]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건가?]제규상은 연초를 깊게 한번 빨아들이고는 연기를 후-내뿜으며 말했다.
[저 열차라는 놈은 중간중간 깨끗한 물을 공급받아야 하오. 그래서 무작정 곧게 목적지로 나아가지만은 않지. 그 중간에서 내리고 탈 놈도 있으니까. 그래서 조금 급하게 말을 달리면 어느 지점까지는 저 열차를 앞서는 것도 가능하외다.]괴인의 푸른 눈과 제규상의 검은 두 눈이 마주했다.
[앞선 이후엔?] [적절한 장소에, 적절한 때가 오는 거지.]제규상의 대답에 괴인의 푸른 눈이 좁아졌다. 아마 웃는 모양이었다.
[그렇군. 적절한 장소에, 적절한 때라··· 당신을 고용하길 잘한 것 같군.]제규상은 로마 광대처럼 과장된 동작으로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별말씀을. 받은 만큼만 하는 거지.]잠시 후, 말을 탄 괴인 십수 명과 제규상이 서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뒤로 뿌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마치 저 멀리에서 먼저 달려 나가는 철마와 경쟁이라도 하겠다는 듯 짙은 흙먼지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