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247)
진서하 외전 3화
알리사라 불린 하얀 머리칼의 소녀는 그 말을 듣고 당장에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엿 먹어! 그게 왜 내 탓인데, 빡빡이 새끼야! 네가 죽인 거잖아!]대머리 남자는 피식 웃었다. 그러나 그건 살기 가득한 미소였다.
[···죽이지만 않으면 되겠지.]다음 순간 그의 오른팔을 대신하던 쇳덩이가 차르르륵-하는 소리를 내며 화살 쏘아지듯 하얀 머리 소녀를 향해 날아갔다. 그 흉악한 쇳덩이의 행사에 소녀의 몸뚱이는 유리처럼 박살 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쇳덩이는 소녀에게 닿지 못했다. 어느 주먹이 칼날을 피해 쇳덩이를 후려친 것이다. 땅-하는 소리와 함께 곧게 날아가던 쇳덩이는 방향을 틀어 열차의 천장에 쾅 틀어박혔다.
대머리의 표정이 굳었다. 그의 눈이 자신을 방해한 자를 노려보았다.
날아가던 쇳덩이를 후려친 청년, 이환이 주먹을 굳게 쥔 채 툭툭 털어내듯 양팔을 풀어주며 복도로 나왔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대머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놈이 뭐 하는 놈인지는 몰라도 사람 목숨을 참 가벼이 여긴다는 건 알겠다. 대낮에 살인을 저지르다니.”
[···함부로 나서지 마라, 애송이. 지금 네가 누구의 앞을 가로막는지 알고 있는 게냐? 넌 지금 티폰의 뜻을 거스르고 있다.]이환은 오른 주먹을 들어 올려 대머리를 겨눴다. 그의 눈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는 대머리의 말을 알아들은 듯했다.
“티본이고 나발이고, 일단 넌 좀 맞아야겠다.”
[허. 이 야만인 놈이 감히 누구의 이름을-]대머리의 눈이 커졌다. 저 승객 칸 끝에 있던 이환이 어느 순간 그의 앞에 있었다.
[무슨-]다음 순간 이환의 두 주먹이 동시에 뻗어져 대머리 남자의 상체 위아래를 후려쳤다. 땅-하고 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대머리는 객차 문을 부수며 뒤로 날아갔다.
그와 함께 지금까지 대머리의 살기에 눌려있던 사람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꺄아악!”
“내, 내려야 해! 열차를 멈춰!”
“사람이 죽었다!”
사람들이 제멋대로 소란스럽게 떠드는 동안 이환은 주먹을 뻗은 자세 그대로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의 눈은 저 앞에 문을 부수고 건너편 객차까지 날아간 대머리를 흔들림 없이 노려보고 있었다.
건너편 객차는 짐칸이었다. 그곳까지 쭉 밀려났던 대머리는 박살 난 짐과 잡동사니 사이에서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상체를 일으켰다. 그는 옆으로 퉤 피 섞인 침을 뱉더니 오른쪽 어깨를 확 당겼다.
그 동작을 본 이환이 다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객차 천장에 박혀 있던 쇳덩이가 그 천장을 박살 내며 그를 덮치고 있었다.
이환은 곧바로 바닥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객차 천장을 디디며 몸을 회전시켰다. 다음 순간 그가 다시 바닥에 내려앉을 때, 그의 발밑에는 대머리의 쇳덩이가 밟혀 있었다. 쇳덩이가 쾅-소리를 내며 객차 바닥에 틀어박혔다.
[너 이 새끼!]대머리의 오른 어깨로 이어진 쇠사슬이 철커덩 소리를 내며 팽팽해졌다. 이환의 발 때문에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힘겨루기를 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그렇게 대머리의 공격을 봉쇄한 이환이 외쳤다.
“다들 반대쪽 객차로 도망가십시오! 여기 있으면 싸움에 휘말릴 겁니다!”
그 외침에 좌석 아래로 몸을 숨기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상황을 본 그들은 곧 우당탕 소리를 내며 반대편 객차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대머리가 그 모습을 보며 비웃었다.
[참 상냥하시군. 영웅 놀이가 하고 싶은가 보지?]피풍의 속에 감춰져 있던 그의 왼팔이 드러났다. 몸뚱이처럼 검은 갑주에 덮여있던 그 팔뚝에서 철컹-하는 소리와 함께 칼날이 솟아났다.
이환도 그를 보며 픽 웃었다.
“그 주둥이가 얻어 터지고도 그딴 말이 나오는지 보자.”
그의 몸이 다시 한번 대머리를 향해 쏘아졌다. 직후 가슴을 걷어차인 거구의 몸이 짐칸의 잡동사니들을 박살 내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이환은 곧바로 공세를 이어가려 하다가, 움찔 굳었다. 오른 어깨가 따끔했다. 손으로 만져보니 적잖은 피가 묻어나왔다.
[크크큭··· 놀아보자 이거지? 좋아···]나가떨어졌던 대머리가 몸을 일으키며 낄낄거렸다. 그의 왼팔 칼날에서 피가 뚝뚝 흘렀다. 그는 그 칼날을 들어 혀로 할짝거렸다.
이환은 굳은 눈으로 그것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곧 굳게 쥔 두 주먹을 들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 * *
이환과 대머리가 건너편 짐칸으로 건너가 싸우는 동안, 사람들은 우르르 안쪽 객차로 도망치고 있었다. 대머리가 다짜고짜 공격한 것 때문에 놀랐던 알리사도 정신을 차리고 그들 틈에 섞여 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런 소녀의 팔을 누군가 붙잡았다.
“잠깐. 움직이지 마.”
[무슨···]고개를 돌려보니 묘한 눈빛을 보내던 푸른 눈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천천히 객차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알리사는 당혹스러워서 팔을 당기며 외쳤다.
[이거 놔!]하지만 그녀의 손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무슨 쇠 집게에 잡혀있는 느낌에 알리사는 어벙벙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이렇게 힘이 셀 것처럼 보이는 인상은 아니었다.
[이, 이거 놔! 당신 누군데! 설마 베, 베누스의 사제야? 당신들도 여기까지 날···]“조용.”
당황한 목소리로 우다다 쏟아내던 알리사의 입이 뚝 닫혔다.
알리사는 중원어를 전혀 못 했다. 우애성은 그 근간부터 로마의 황금이 섞여 로마 사람들은 물론 로마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기에 이 열차를 탈 때까지 꼭 중원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사실 알리사는 지금 진서하가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조금 전 표를 보여달라고 할 때나, 지금 짧게 말한 단어조차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 뜻은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군가 빈틈을 노리고 있어. 조금 전 대머리는 그 빈틈을 만들기 위한 흔들기였을 뿐이야. 지금 저 사람들과 섞여나가면 저들은 거기에 휘말려 다칠지 몰라.”
진서하는 텅 비어가는 객차를 노려보며 고저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알리사는 거기서 알 수 없는 위압감을 느끼며 벗어나려던 힘을 풀었다.
소녀에게서 도망치려는 기색이 사라지자 진서하는 팔을 놓아주고 옆에 세워두었던 검을 등에 둘러메었다. 그리고 슬쩍 창밖을 확인했다. 느려지던 열차는 이제 거의 멈추다시피 하고 있었다. 조금 전 이환이 보았던 검은 말들과 기수가 멈춰서서 열차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후 몸을 돌린 그녀의 눈에 안타까움이 흘러나왔다. 객차 복도에 쓰러져 있는 승무원의 시체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미 죽은 후 쇳덩이의 칼날에 꿰여 나뒹굴던 그 시체는 이후 객차를 벗어나려던 사람들의 발에 밟혀 엉망이었다.
“···극락왕생하시길.”
승무원의 명복을 빌어준 그녀는 소녀를 객차 중앙으로 이끌었다. 알리사는 계속 그녀에게 알 수 없는 묘한 느낌을 받으며 그 손길에 순순히 따랐다.
다음 순간 진서하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소녀의 움직임에 따라 은밀한 기척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조금 전 대머리의 쇳덩이 공격을 이환이 막도록 놔둔 것은 이 기척을 느낀 탓이었다. 물론 생각보다 그의 움직임이 빨랐던 탓도 있었다.
기척은 아주 기묘했다. 그저 은신술의 고수가 숨어있는 것과는 달랐다. 그보다는 어딘가 끝없이 먼 동시에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이쪽을 훔쳐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진서하의 깊은 눈에서 푸른 광채가 흘러나왔다.
그때 열차의 승객들이 도망쳤던 방향의 문이 벌컥 열렸다. 그곳에서 조금 전 날아간 대머리처럼 시커먼 천으로 몸과 얼굴을 감싼 자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들은 앞을 막는 진서하를 보고는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들의 팔뚝에는 섬뜩한 칼날이 솟아 있었다.
진서하가 말했다.
“내 뒤로 바짝 붙어.”
알리사는 냉큼 그녀의 뒤에 붙었다.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이인데 뭔가 알 수 없는 든든함이 느껴졌다.
다음 순간 제일 앞에서 성큼성큼 다가오던 흑의인이 번뜩 오른손의 칼날로 진서하를 찔렀다. 곧게 목을 노리는 일격. 단순하지만 그만큼 빨랐다.
그러나 그 칼날이 진서하의 목에 닿는 것보다 그녀의 왼손이 흑의인의 팔목을 걷어내는 게 더 빨랐다. 동시에 진서하는 자세를 낮추며 텅 빈 상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녀의 어깨가 흑의인의 가슴팍을 때렸다.
[끄억-!]퉁-하는 소리와 함께 흑의인의 가슴팍 갑주가 우지직 일그러지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의 뒤에 있던 흑의인들이 거기에 휘말려 우르르 밀렸다.
직후 흑의인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진서하가 쑥 앞으로 치고 나왔다. 당황한 흑의인들이 당장 자신들의 칼날을 휘둘렀다. 당황한 와중에도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정교하게 진서하의 급소를 노리는 공격이었다.
그러나 그 칼날들이 진서하의 몸에 닿는 일은 없었다.
[으악!]곧게 찌른 흑의인의 팔은 그대로 뱀처럼 휘감아오는 진서하의 손길에 붙잡혀 휘리릭 객차 창문으로 날아갔다. 창문이 만나 와장창 박살이 나며 그자의 몸뚱이는 열차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칼날을 내려치려던 흑의인은 그 칼날을 완전히 뻗기 전에 품으로 파고든 그녀를 보고 곧 턱이 화끈해지며 시야가 암전되었다.
양팔의 칼날로 동시에 찔러가던 흑의인은 그대로 양 손목이 붙잡혔다. 다음 순간 그는 온 세상이 빙그르르 뒤섞이는 풍경을 보고 등짝이 화끈해지며 의식을 잃었다.
진서하의 양팔은 뼈가 없는 듯 채찍처럼, 혹은 제각각 살아있는 뱀처럼 움직였다. 그 손들이 흑의인들의 몸을 붙잡아 밀고, 당기고, 후려쳤다.
동시에 그녀의 발과 몸은 흐르는 물처럼 그들에게 나아갔다. 아주 작은 빈틈이 있다면 그녀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객차 복도를 가득 채우던 흑의인들은 무슨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나가듯 좌우로 나가떨어졌다.
[끄으···] [티, 티폰이시여···]순식간에 열댓 명에 달하던 흑의인들이 제각각 창문을 박살 내고 열차 밖으로 날아가거나 좌석 한구석에 찌그러졌다.
[와···]진서하의 뒤에 바짝 붙어 따라가던 알리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티폰의 아이들이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당하는 것은 처음 봤다. 지중해 일대에서 악명이 자자한 전사들이 진서하 앞에서는 뒷골목 건달보다도 못한 얼치기들이 된 것이다.
객차 중간에서 끝까지 움직이며 거침없이 흑의인들을 쓰러뜨린 진서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주변을 살폈다.
흑의인들은 힘과 속도는 빨랐으나 그 능력을 활용하는 무예가 너무 단순했다. 물론 그 기준점이 진서하 본인의 수준이라는 게 조금 과하긴 했으나 단순한 건 단순한 것이었다.
그렇게 잠시 내공을 가라앉히던 진서하가 객차 반대쪽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얼른 소녀를 등 뒤로 두고 나섰다.
그와 동시에 이미 반파된 객차 문을 완전히 부수며 대머리 덩치가 나가떨어졌다. 그의 오른팔에 달려있던 쇠사슬은 중간에 끊어져 있었고, 왼팔의 칼날 또한 뚝 부러져 있었다.
[으으··· 무, 무슨 맨손이···]대머리는 떠드는 동안 저편 객차에서 이환이 뚜벅뚜벅 걸어왔다. 여기저기 잔상처가 나 있었지만 치명상으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이환은 한쪽으로 패앵-코를 풀며 말했다.
“이놈 주둥이가 멈추질 않네. 아예 그 이빨을 다 부러뜨려 주랴?”
그렇게 약간 껄렁하게 걸어오던 그는 곧 대머리 너머에 서 있는 진서하를 보고는 움찔 굳었다.
“아,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그쪽은?”
진서하의 대꾸에 이환은 활짝 웃었다.
“저야 뭐 워낙 튼튼해서요. 아, 열차가 완전히 멈춘 거 아십니까? 승객들이 다 도망치던데요.”
“열차가 멈춘 건 조금 전부터 느끼고-”
말을 하던 진서하가 갑자기 몸을 회전시키며 등 뒤의 소녀를 붙잡아 던졌다. 뭐라 말을 하거나 신호를 보낸 것도 아닌데 이환이 곧장 몸을 날려 그녀를 받아들었다.
동시에 진서하의 발이 허공을 걷어차 올렸다. 뭔가 흐무끄레한 것이 그대로 그 발끝에 차여 객차 천장을 부수고 날아갔다.
“열차 앞으로 이동해요!”
그렇게 외친 진서하는 곧바로 뻥 뚫린 객차 천장으로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이환과 소녀 알리사만 두 눈을 끔뻑거리며 서로와 뚫린 천장을 번갈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