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251)
진서하 외전 7화
* * *
한 여인이 무림맹을 성큼성큼 가로지르고 있었다.
저 먼 서쪽에 있는 무림맹처럼, 이곳 동부 무림맹 또한 아주 크고 넓은 부지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그 부지를 유지보수하기 위한 경비와 관리자가 많았다. 무림맹 안에는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건물이나 공간이 여럿 있었고, 그 앞에는 모두 건장한 무림맹도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만약 허락받지 않은 누군가가 함부로 지나다닌다면 당장에 그들의 창칼이 앞을 가로막을 터였다.
하지만 화가 난 것처럼 뚜벅뚜벅 나아가는 그녀를 가로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무림맹도 대부분은 그녀를 보고 살며시 웃거나 아니면 고개를 살살 가로저을 뿐 그녀를 막으려는 자가 없었다. 그렇게 그녀의 걸음은 무림맹의 심처 중의 심처를 향해 곧게 나아갔다.
그곳의 문 앞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그녀 앞을 가로막는 손이 있었다.
“멈추시오, 신검단주信劍團主. 맹주님은 지금-”
“비켜요, 지금 나랑 한판 붙고 싶은 게 아니면.”
무심한 얼굴로 그녀를 막고 사무적인 태도를 보이려던 남자는 그 대꾸에 절로 한숨이 나오는 걸 느꼈다. 그는 결국 겉치레는 치우고 평소처럼 물었다.
“···사매, 이번엔 뭐가 또 그렇게 화가 난 거야? 대사형은 바쁘다고.”
“그래요? 그럼 이제 더 바빠지겠네요. 나랑 대담해야 하니까. 비켜요.”
“아니. 못 비켜줘. 당장 대사형이 며칠째 집에도 못 들어가고 이 맹주전에서 먹고 자는 걸 알면서 그러는 거야? 이번엔 또 무슨 문젯거리를 만들려고 그러는 건데?”
그 말에 여인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여인, 신검단주 하연이 굳은 눈빛으로 자신의 사형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문제는 내가 아니에요. 대사형이죠.”
물러서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앞을 가로막던 사형 또한 점점 표정이 굳었다. 두 사람 사이에 차가운 냉기가 흘렀다. 얼핏 흘러나오는 기세에 맹주전 주변의 공기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때 맹주전 안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들여보내게.”
그 말에 그녀의 사형은 못마땅한 눈으로 하연을 바라보면서도 천천히 비켜섰다. 역시 지지 않고 그를 노려보던 하연은 곧바로 맹주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선 그녀의 눈에 큰 책상 뒤에 앉아 수많은 서류 사이에 묻혀있는 중년인이 보였다. 동무림맹의 맹주, 합화검주合和劍主였다.
하연은 서류에 파묻혀 고개도 들지 않는 그를 보고 대번에 도끼눈을 떴다.
“대사형!”
“듣고 있으니 그렇게 소리치지 않아도 된다. 용건이나 말해라.”
맹주는 여전히 고개도 들지 않고 그렇게 대꾸했다. 하연은 앞으로 나아가 그의 책상을 쾅 소리가 나도록 내려쳤다.
“날 봐요, 대사형!”
그로 인해 책상이 흔들리는 바람에 한창 하던 서명이 삐끗하자, 맹주는 결국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그래, 잘 보이는구나. 무슨 일이냐?”
하연은 덤덤한 맹주를 노려보듯 하며 말했다.
“이번 열차 강도 사건의 피해자들을 뇌옥에 집어넣었다면서요.”
“피해자? 그들이 피해자인지 범인인지는 아직 판명되지 않았다. 어디서 이상한 소리를-”
“열차에 있던 승무원이 의식이 되찾았어요! 그의 증언대로라면 그들은 협객이라 불리면 불렸지, 강도 무리는 아니었다고요!”
화가 난 듯한 하연의 태도에도 맹주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 승무원이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보고는 올라오지 않았는데. 기껏해야 한 식경 정도 의식을 되찾았던 것뿐이잖느냐? 그런 의식불명자의 증언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하연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젠 정말 맹주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다.
“···무슨 생각 하시는지 알아요. 이번 일을 핑계로 장가상회의 열차에 우리 사람을 상주시키려는 거잖아요. 그들의 영향력을 꺾으려고요. 아니, 꺾는 게 아니라 집어삼키고 싶은 거겠죠. 얼마 전부터 계속 기회를 노리시더니 아주 잘 되셨군요.”
그녀의 낮은 목소리에 맹주는 피곤하다는 듯 푹-한숨을 내쉬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어린 사매의 비난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장가상회를 적대하는 전략은 결국 우리만 손해를 보게 될 거예요. 당장 그들이 열차의 운영을 중단하거나, 아니면 서부의 물자를 동결시키면 우린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요! 장가상회는 서부 해안 상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고, 그 영향력으로 우릴 말려 죽이려 한다면-”
“그럼 그들도 대가를 치르게 되겠지.”
빠르게 말을 쏟아내던 하연은 고저 없이 자신의 말을 끊어내는 맹주의 말투에 멈칫 굳었다. 그녀는 허리를 펴고 서며 말했다.
“···무슨 생각이에요, 대사형? 장가상회가 동부를 포기하려 할 리 없어요. 저 바다 건너 로마와 우리 땅, 그리고 서쪽 중원으로 이어지는 무역로를 놓을 리 없다고요. 결국 그들도 나름의 수를 써서 대사형을 막으려 할 거예요. 그 과정에서 호시탐탐 동부를 노리는 서부 무림맹이 끼어드는 건 당연한 일이고요.”
의자에 몸을 기댄 맹주는 피곤하다는 듯 눈가 사이를 짚었다.
“그래서?”
“···예?”
“그래서 한 상회에게 동부 전체의 상계가 종속되는 걸 그냥 가만두고 보라는 이야기냐?”
하연의 입이 딱 다물어졌다. 맹주는 어떤 비난조나 흥분 없이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장가상회는 너무 커졌어. 서부 무림맹과 우리,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한 황군의 비호를 받아 지난 십오 년간 너무 커져 버렸단 말이야. 거기에 십 년 전부터 달리기 시작한 열차는 은밀한 재규어에게 불곰의 힘을 부여한 것과 같았지. 네가 방금 말하지 않았느냐? 장가상회가 물류를 틀어막으면 우린 그대로 말라 죽어야 한다고.”
다음 순간 하연은 맹주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제야 맹주의 담담함이 그의 가슴속에서 불타는 화염을 감추기 위함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게 말이 되는 이야기냐? 상인 몇몇 때문에 우리 동포들 전체의 삶이 흔들려야 한다는 게? 본래 이 땅에서 살던 이들이 누구냐? 중원인? 로마인? 한 황제? 아니면 장가상회의 회주? 그딴 이방인들에게 이 대지와 강이···”
맹주가 말을 멈췄다. 그는 다음 순간 두 눈을 꾹 감고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더니 깊은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그의 목소리가 다시 담담해졌다.
“···열차를 노리는 강도가 있으리라는 건 열차가 달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예상했다. 내가 아니라, 장가상회가.”
“네? 장가상회에서요?”
맹주는 다시 눈가를 만지작거렸다.
“그래. 이제 장가상회에서 조사단이 올 거고, 이번 운행의 문제를 파악한 후 동부에서 가장 큰 무력단체에게 도움을 요청할 거다. 그리고 그 대가로 열차 운행에서 나오는 이익을 일부 나누겠지. 네 말대로 그들이 지금 이 땅에서 수입해가는 그 많은 식량을 포기할 리 없으니까.”
하연은 그제야 이미 한참 전에 동부 무림맹과 장가상회 사이에 협의가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정확히는 장가상회의 양보일 것이다. 그들은 동부의 경제력을 자립 불가능할 정도로 빨아들여 동부인 전체의 분노를 사기보단 적당히 한 발짝 물러나 상생하는 방향을 선택한 모양이었다. 결국 하연은 지금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화를 낸 것이다.
자기 실수를 깨달은 하연이 괜히 책상으로 시선을 내리며 중얼거렸다.
“···그럼 지금 뇌옥에 집어넣은 사람들은요?”
“상회의 조사단이 오기 전까진 거기 있어야겠지. 조사가 끝난 후엔 보상금이라도 지급하고. 청년고수 둘이었나? 아마 일이 마무리될 때쯤엔 협객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지 않을까 싶군, 첫 열차 강도를 막았으니.”
“···아이도 하나 있어요.”
눈가를 만지작거리던 맹주가 하연의 대꾸에 눈을 떴다.
“애가 있다고? 둘이 부부였나?”
“아뇨. 로마인 소녀가 하나 있어요. 셋의 관계는 정확히 모르겠네요.”
맹주는 번거롭게 되었다는 듯 끄응-하는 소리를 냈다.
“너무 바빠서 그쪽엔 별로 신경을 못 썼군. 그럼 그 애는 따로 빼서 무림맹 안에 숙소를 마련해주도록. 괜히 아이까지 거기 둘 필요는 없겠지.”
“그 애가 스스로 들어가겠다고 한 거예요. 두 사람과 떨어질 수 없다면서.”
“···그럼 네가 가서 그 세 사람의 편의를 좀 봐주도록. 미안한 일이지만 그들은 조사단이 오기 전까진 거기 있어야 해. 혹시라도 그들이 탈옥이라도 하면 그땐 네 말대로 정말 서부 무림맹이나 온갖 잡놈들이 끼어들어 진흙탕을 만들려 들 거다.”
“···제가 가서 잘 설명할게요.”
맹주는 피곤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그럼 이만 가보거라.”
하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하지만 이내 걸음을 멈추고는 슬쩍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 멋대로 들어와서 죄송해요. 대사형.”
“넌 자세한 배경을 몰랐으니 당연히 그럴 수 있었다. 너보다 문제가 많은 놈들은 그 배경도 모르면서 가만히 알려고 하질 않는 사제들이지. 이놈들은 시킨 일이나 잘하지 뭘 믿고 맡길 수가 없어···”
맹주는 얼른 가보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하연은 다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맹주전을 나섰다. 잠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맹주는 다시 깊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서류와의 재격돌에 들어갔다.
그는 동부 무림맹의 맹주이자 한漢 제국 황제가 내린 합화검의 주인이며, 화산파 문중의 장문인이었다. 십오 년 전 동부 무림맹이 결성된 이후 그는 하루도 쉬지 못했다. 쉬고 싶지도 않았다. 그것이 이 땅의 동족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부라 믿기 때문이었다.
무림맹주 단칼은 금세 열차 강도에 대한 것을 잊고 눈앞에 있는 서류에 집중했다.
* * *
이환은 창문의 창살을 붙잡고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정말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듯합니다. 차라리 이걸 부수고 탈출할까요?”
뇌옥의 벽에 기대앉아 그 너머 이환과 대화하던 진서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를 말렸다.
“그럼 그때부턴 동부 전체에 탈옥범으로 수배지가 깔리고 현상금 사냥꾼과 무림맹 순찰대에게 쫓기겠죠. 뭔가 오해가 있는 것뿐이니 오해를 풀면 될 일이에요.”
“오해가 풀릴 거였으면 이전 뇌옥에서 풀리지 않았겠습니까? 이 사람들 우리 말을 들으려고도 하질 않는 것 같은데요.”
뭐라 대답하려던 진서하는 딱히 이환의 말이 틀린 것 같지도 않아서 말문이 막혔다.
그들은 지금 처음 들어갔던 무림맹 외부 뇌옥-취객이나 소매치기 등을 잠시 억류하던 장소였다-에서 무림맹 안에 있는 개별 뇌옥으로 이동된 상태였다. 이환과 진서하는 지금 벽을 사이에 두고 대화하고 있었다.
[부수려면 부술 순 있어요?]그때 진서하와 함께 있던 알리사가 그렇게 물었다. 그 질문에 이환은 보는 사람도 없건만 혼자 훗-웃으며 대답했다.
“이 정도는 가뿐하지. 쇠 부러뜨리기가 내 특기고, 이후에 나쁜 놈들 뼈 분지르기가 장기거든.”
[뭐라고요? 라틴어로 대답해줘요. 나 그쪽 말 모른다고요.] [···할 수 있다. 잘.]알리사는 알겠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럼 그냥 탈출해요. 우리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동안 어쩌면 티폰의 아이들이 쫓아올지도 모른다고요.] [···티폰 못 쫓아온다. 그놈들 여기 오면 죽음.]알리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가 이 땅의 의회 같은 곳이라 하지 않았나요? 그럼 호위병들은 기껏해야 의원 같은 높은 사람만 지키려고 할 텐데요. 게다가 놈들이 오면 이 감옥에선 도망칠 수도 없잖아요. 그냥 갇힌다고요.]이환은 어찌 설명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진서하에게 떠넘기기로 했다.
“진 소저? 진 소저가 좀 설명해 주십시오. 여긴 동부에서 제일 안전한 곳이라고요. 그 티폰의 아이들인지 뭔지 하는 놈들 수준으로 습격해오면 그날이 바로 그놈들 제삿날이 될 거라는 걸요.”
“···놈들은 이곳 담장도 넘을 수 없을 거야. 여긴 이 소협이나 나 정도 되는 무사가 많거든.”
이환의 말을 그대로 읊을까 하던 진서하는 그냥 짧게 줄여 말했다. 실제로 열차에서 그녀가 겪었던 정도라면 이 무림맹에선 눈 하나 깜짝 않고 쓸어버릴 수 있었다. 전투부대가 출격할 것도 없이 그냥 경비대에서 마무리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알리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열차에서 만났던 놈들은 정찰대에 불과해요. 진짜 티폰의 사제가 왔으면 그 열차는 잔해만 남기고 통째로 박살 났을 거고요. 게다가 진짜 위험한 자들은 티폰보다도 유피테르의-]그때 철컹-하면서 저 멀리 뇌옥의 입구가 열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알리사는 입을 다물었고, 이환과 진서하는 각기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복도 쪽 창살을 노려보았다. 곧 터벅터벅 한두 사람이 함께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후 나타난 것은 한 여인과 각기 두툼한 이부자리를 껴안은 무사였다.
“난 신검단주 하연입니다. 여러분이 좀 추울 듯하여 이불을 좀 챙겨왔어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게 아니오만.”
이환은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서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하연은 반대로 꼿꼿한 자세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세 분에게 이리 불편함을 끼치게 된 것은 참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림맹에도 나름의 사정이 있어요. 열차는 무림맹뿐만 아니라 이 동부 전체에 아주 중요한 물건이고, 그 열차가 습격당했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현재 그 검은 옷의 로마인들도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정말 혐의가 없다면 머지 않아 자유를 되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미리 준비한 듯한 말투에 이환이 피식 웃었다.
“그런다고 무림맹에서 우릴 함부로 억류한 사실이 사라지는 것이오? 정의와 법을 집행한다는 자들이 죄 없는 자를 이리 핍박하다니. 이 일이 알려지면 많은 사람이 무림맹을 지탄할 것이오.”
그러나 하연은 별다른 동요 없이 이환을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에 관해서는 나중에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이나 저희나 서로 이득을 보는 방향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건 또 뭔···”
“이곳에서 생활하시는데 최대한 불편함 없게 해드리겠습니다. 나중에 일이 마무리된 후에는 자세한 사정도 설명해 드릴 거고요. 그러니 부디 최대한 협조해주시길 바랍니다. 양 무사?”
그녀가 옆을 돌아보자 이부자리를 들고 온 무사가 낑낑대며 그것을 진서하와 이환의 감방 안쪽으로 넣어주었다.
“업무가 바빠서, 전 이만 가봐야할 듯하네요. 물건이나 요구사항은 여기 이 양자양 무사에게 부탁하세요. 웬만한 건 다 구해드릴 테니까요. 그럼 이만.”
“아니, 이보쇼. 그렇게 본인 할 말만 하고 가면···”
“이 소협.”
하연을 잡으려던 이환은 갑자기 들린 진서하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창살 좌우를 돌아보며 그런 두 사람을 확인한 하연은 곧 혼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뇌옥을 떠났다. 양자양이라는 무사만 남아 한쪽에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왜 말렸습니까? 사정을 알아야죠?”
하연이 떠난 후 이환이 창살을 붙잡고 서서 진서하에게 의문을 표했다. 진서하도 앞쪽으로 나와 창살을 잡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이환의 손이 아니라 무림맹 간부가 떠난 후 남아있던 무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무사를 바라보는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고, 그 미소를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던 무사도 곧 피식피식 웃기 시작했다.
“엉? 어엉? 뭡니까? 둘이 아는 사이십니까?”
진서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랜만이네요, 양 삼촌. 너무 젊게 변장한 거 아니에요?”
“무슨 소리냐, 요 녀석. 이 정도면 내 본판이랑 다를 바 없지.”
피식거리던 무림맹 무사는 곧 터벅터벅 창살 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그 걸음걸음마다 양자양이라던 젊은 무사의 모습은 휙휙 변해 잠시 후엔 웬 중년인 하나가 서 있었다.
“큼, 크흠.”
그는 헛기침을 하더니 품에서 왠 매듭을 꺼네 허리에 둘렀다. 그리고 창살 안쪽에서 그걸 본 이환이 두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그건 설마! 설마 당신은?”
중년인은 왠지 흐뭇한 표정으로 자기 턱을 쓰다듬었고, 진서하는 못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살살 가로저었다. 영문을 모르는 알리사는 어리둥절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침내 잔뜩 흥분한 이환이 외쳤다.
“항룡위개抗龍僞丐 양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