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260)
진서하 외전 16화
그들은 금세 가까워졌다. 그럴듯하게 생긴 남빈의 얼굴과 어딘가 능글맞아 보이는 관량의 얼굴이 점점 커졌다.
“주점에 머무는 외지인들 아니요? 저 사람들이 여긴 왜 오는 거요?”
진서하와 일행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멀찍이 한쪽에 떨어져서 뚱한 표정을 하고 있던 최 씨가 다가왔다. 그의 표정이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주점에서의 일 때문에 앙심을 품고 해코지를 할 사람들은 아닐 겁니다.”
“···이렇게 우르르 몰려와 봐야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를 안심시키려는 이환의 말에도 최 씨는 굳은 표정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이환은 그런 최 씨를 잠시 가만 바라보기만 했다.
잠시 후 신나게 달려오던 남빈과 관량은 어느 정도 가까워져 서로의 표정을 살필만한 거리가 되자 속도를 늦췄다. 그리고는 반갑다는 듯 손을 들며 외쳤다.
“이야! 이거 여기서 만나니 참 반갑습니다! 아까 인사 나눈 관량입니다! 기억하십니까?”
“밝은 태양 아래 있으니 당신의 미모가 더 빛나는구려, 진 소저! 어쩌면 저 태양이 빛나는 이유가 당신을 비추기 위함일지도 모르겠소!”
손을 들고 인사를 보내던 관량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남빈을 돌아보았다.
“···뭐하냐?”
“뭐하긴. 진 소저에게 인사하는 거요. 뭐 문제 있소?”
“···에라이 이 미친놈아. 제발 잠깐만 입 다물고 있어라, 좀. 상황 설명은 해야 할 것 아니야.”
남빈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 입을 다물고 계속하라는 듯 관량에게 살짝 고개를 까딱였다. 관량은 그 꼴을 보며 열불이 난다는 듯 맑은 하늘을 향해 허우-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말에서 내려와 진서하 일행에게 다가왔다.
그는 진서하 일행이 이쪽을 조금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음에도 크게 개의치 않는 듯했다. 오히려 그런 판단을 단번에 뒤집어 주겠다는 듯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다가오는 그를 보고 이환이 말했다.
“그만. 거기서 용무를 말해 주시죠.”
관량은 순순히 걸음을 멈추고 느릿하게 품속으로 손을 넣었다. 그 움직임을 본 진서하와 이환의 표정이 살짝 굳어가자, 관량은 경계하지 말라는 듯 천천히 그 손을 꺼냈다.
품속에서 나온 손안에는 무림武林이라는 글자가 양각된 육각형 패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는 그 패를 들고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림맹 순찰대 삼십 삼호 관량이오.”
관량은 그렇게만 말하고 잠시 말을 멈췄다. 마치 그의 정체를 듣고 모두에게 놀랄 시간을 주는 듯했다. 실제로 진서하 일행 뒤에 있던 최 씨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진서하와 이환, 그리고 애초에 무슨 말인지도 제대로 못 알아듣는 알리사는 멀뚱멀뚱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진서하가 짧게 대꾸했다.
“그래서요?”
“···잉?”
관량은 예상보다 미지근한 일행의 반응에 혼자 맹한 소리를 냈다. 이환은 그를 보며 머리를 긁적거렸고, 진서하는 팔짱을 끼며 약간 삐딱하니 선 채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이미 주점에서부터 정체를 숨길 생각이 없어 보이더군요. 움직임에 드러나는 무공을 숨기지도 않았고, 대주니 감봉이니 말을 조심하지도 않았어요. 어떤 소속을 가진 채 둘로 묶여 무림의 변방을 떠도는 젊은 고수들. 제일 먼저 무림맹 순찰대를 떠올리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그녀의 말에 관량은 김샌다는 듯 시무룩해졌다.
“···주점에서 무림맹이라는 말은 꺼내지도 않았는데요.”
“물론 저분의 성씨가 남궁이 아니었다면 확신은 못 했겠죠.”
거기까지 들은 관량은 허허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흘리다가 뒤를 돌아보며 버럭 외쳤다.
“야 이 멍청한 새끼야! 그러게 적당히 했어야지!”
“우리의 정체를 알아낸 것은 진 소저의 뛰어난 지성과 현명함 때문이오. 어리석은 자라면 거기까지 들었어도 우리 정체를 예상하진 못했을 거외다. 난 부끄러울 게 없소, 관 선배.”
남빈, 아니 남궁빈은 그렇게 대꾸하며 말에서 내렸다. 진서하는 그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남궁세가에서 아직도 날 신경 쓰는 줄은 몰랐군요.”
그 말에 옆에 있던 이환이 자기도 모르게 움찔하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단어 자체는 평이했지만, 단어를 내뱉는 진서하의 얼굴은 굉장히 차가웠다. 지난 며칠간 봐온 그녀의 모습 중 가장 온도가 낮았다.
하지만 남궁빈은 그런 눈빛을 받고도 부드럽게 허리를 숙여 인사할 뿐이었다.
“가주님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외다, 진 소저. 다른 뜻은 없소. 남궁의 무공은 마魔를 벗었고, 지금은 그저 언제나 진 소저의 편에 설 뿐이오.”
진서하는 깊은 눈으로 그런 남궁빈을 바라보다가, 차가운 표정을 풀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용무인지나 말해보세요.”
남궁빈은 고개를 들어 빙긋 웃었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관량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치 이제 그쪽이 말할 차례라고 하는 듯했다. 그 시선에 관량은 눈썹을 살짝 꿈틀거리면서도 다시 순찰대 패를 들어 보이며 말투까지 바꾸고 진지한 태도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석원에 기이한 야수가 날뛰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퍼져 고원성 너머까지 이르렀소. 비록 이 일대가 동서부 무림맹의 중간지대로 지부를 세우지 못한 땅이지만, 그런 윗사람들 정쟁 따위에 평범한 사람들이 피해를 봐서는 안 될 일이오. 그래서 나흘 전 우리가 왔고, 지난 며칠 동안 이 일대를 탐문수색 하며 그 야수에 대한 정보를 모았소. 사건의 대략적인 얼개는 파악한 상태였지.”
“대략적인 얼개요?”
관량은 이환의 반문이 적절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번 사건은 평범한 산사자의 문제로 보기엔 문제가 많았소. 보통 사람을 경계하는 산사자가 여러 차례 주민을 공격하고, 그 이후 전문 수렵꾼을 고용하고도 사냥하긴커녕 도리어 사냥당한 사건은 흔하지 않소. 거기에 현장에 남은 흔적은 살아있는 짐승이 남겼다고 보기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흐릿한데다가 시체에 남은 흔적도 먹기 위해서라기엔 너무 난도질되어 있었지.”
거기서 이환과 진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조금 전까지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친구와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요.”
“그게 뭡니까?”
관량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산사자같은 맹수가 아니라, 이 주변에 숨어든 마인魔人이 사람들을 죽이며 마공魔功을 연공하고 있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오.”
이환은 깜짝 놀란 얼굴로 진서하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이환이 그런 모습을 보며 당혹스럽다는 듯 말했다.
“마인이라고요? 하지만···”
“조금 전까지 흔적을 살피던 건 여러분이었지. 뭔가 다른 의견이 있소?”
관량의 말에 이환은 슬그머니 알리사를 돌아보며 여태 들고 있던 털 뭉치를 꺼내 보였다.
[이거 뭔지 안다고?]알리사는 큰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무림인들의 대화를 듣는 척하다가, 갑자기 들어온 질문에 그 눈을 깜빡거렸다.
[···뭔데요? 이야기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 거예요?] [일단 이 털 뭔지 말해봐라.] [어, 그게··· 사실 그 털이 무슨 짐승 털인지 아는 건 아니고요. 거기 묻어나는 저주를 알아본 건데요···]알리사의 말에 이환의 표정도 아리송해졌다.
[저주? 나쁜 말? 욕이 묻어나왔다?] [아뇨, 그런 게 아니라요. 말 그대로 마술을 부려 상대방에게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걸 뜻하는 거예요. 그 털 뭉치에 묻어나는 저주는 라이칸스로프 저주고요. 로마의 마술과는 방식이 많이 다르긴 한데, 그래도 그 기본적인 골자는 비슷해서 알아볼 수 있어요. 아마 이 저주에 당한 사람은 그동안 때때로 짐승의 모습으로 변해 난동을 피우거나 했을 거예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인간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자, 잠깐. 못 알아듣는다. 천천히 좀.]이환은 두다다 쏟아지려는 알리사의 말에 당황했다. 아직 그에게 로마 현지인의 라틴어는 너무 빨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라틴어 선생을 로마인으로 구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고 있었다. 가격이 거의 반절 차이가 나기에 중원인 선생을 구했는데···
“사람이 짐승으로 변신한다는 거니?”
다행히 알리사에겐 일대일 대화가 통하는 진서하가 있었다. 알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리고 인간의 마음은 거의 사라져 버리죠. 그냥 악한 본능에 충실한 괴물이 되어버리는 거예요.]“···어쨌든 마인과 크게 다르지 않겠군.”
세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관량이 다시 입을 열었다. 처음처럼 약간 껄렁한 말투였다.
“무슨 결론이 나온 건지 모르겠네. 다 된 겁니까?”
진서하가 대표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인이든 반짐승이든 사람을 공격하는 괴물임에는 틀림이 없어요. 어쨌든 추적해서 결딴을 내야죠.”
관량은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강단 있는 진서하의 말투가 인상적인 듯했다.
“관 선배, 진 소저에게 무례하지 마시오.”
“···아 이 시발. 휘파람도 내 맘대로 못 부냐?”
“허어. 또 입을 함부로 놀리시는구려. 이번엔 감봉 육 개월을 한번 당해보고 싶으신 게요?”
“유, 육 개월?”
남궁빈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원하신다면 내 가주님께 말씀드려 어떻게든 그렇게 해드리리다.”
“···기분 나빴다면 미안합니다, 진 소저. 놀리려는 건 아니었습니다.”
관량은 당장 진서하에게 포권을 쥐어 보이며 사과했다. 진서하는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물었다.
“그럼 두 분이 조사를 하는 중 저희가 나타나 여기 오신 거군요. 뭔가 그 흉수를 쫓을 방법이 있으신 건가요?”
“···우린 그쪽에 방법이 있는 줄 알았는데? 혹시 그냥 현장만 보려고 온 거요?”
허리를 살짝 숙였던 관량이 고개를 들며 그렇게 말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진서하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흘렸다. 이 두 젊은 순찰대원은 다른 순찰대원에 비해 조금 특이한 구석이 있는 듯했다. 이렇게 대놓고 진서하 일행에게 얹혀 가려 했다고 말하다니.
[이 라이칸스로피를 쫓으려는 거죠? 그럼 나한테 맡겨요! 내가 추적할 수 있어요!]알리사는 다른 무림인들의 말은 알아듣지 못하지만, 진서하의 말과 적당히 눈치껏 살핀 정황으로 대화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알아챘다. 그래서 허리에 손을 얹고 당당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말했다. 물론 그걸 알아들은 건 진서하와 이환뿐이었다.
관량이 턱을 긁으며 물었다.
“···저 색목인色目人 꼬맹이가 뭐라는 겁니까?”
[앗! 저 사람 나한테 꼬맹이라 했죠! 내가 어떻게 꼬맹이야! 이렇게 큰 꼬맹이가 어디 있어!]이환과 진서하는 앞으로 손가락질을 하는 알리사와 그 손짓에 당황하는 관량을 보며 살짝 놀랐다. 정확히는 그새 중원 말을 알아듣기 시작한 알리사를 향한 놀라움이었다.
“뭐, 뭐여? 설마 지금 나 욕하는 거냐?”
“욕은 관 선배가 먼저 했소. 저 로마인 소녀 어디가 꼬맹이로 보이는지 모르겠군.”
“야 이··· 넌 시발 내 편을 들어주진 못할망정··· 그리고 애한테 꼬맹이라 하는 게 뭐 어때서? 그럼 저게 애지 어른이야?”
둘이 떠드는 걸 뒤로 한 진서하가 알리사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정말 찾을 수 있니?”
[···네. 금방 찾아요. 여기 매개체도 있는걸요.]알리사는 이환 손에 들려 있던 털 뭉치를 냉큼 집어오며 말했다. 잠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던 진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더 길게 끌 것 없이 지금 바로 시작하자.”
[네!]고개를 끄덕인 알리사는 곧바로 두 손바닥 사이에 털 뭉치를 두고는 꽉 깍지를 끼어 모았다. 작은 털 뭉치가 작은 소녀의 양 손바닥 안에 숨었다. 이후 알리사는 두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깍지 낀 두 손을 명치 어림에 두고, 깊게 고개를 숙인 알리사의 모습엔 어딘가 엄숙함이 있었다.
다음 순간 그녀의 왼뺨 문신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투닥거리던 관량과 남궁빈은 그 모습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하지만 그 신비한 엄숙함은 금방 끝났다. 문신의 빛이 사그라지고, 알리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깍지를 풀고 오른손등을 내밀었다. 그 깍지 안에 있던 털 뭉치는 사라지고 그녀의 손등을 타고 흐르는 검은 반점 하나만 남아 있었다.
[됐어요. 방향을 알겠어요. 가죠.]“그래, 가자.”
진서하와 알리사, 이환은 시선을 교환하고 곧장 말 위에 올랐다. 멍하니 그들을 지켜보던 관량과 남궁빈도 그 뒤를 따르기 위해 냉큼 말에 올라탔다. 이후 알리사가 손등의 반점을 따라 달리기 시작하자 다른 이들도 모두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막 달리려던 이환이 멈칫 말을 세우고 뒤를 돌아보았다. 잔뜩 굳은 표정의 최 씨가 보였다.
이환이 그를 보며 말했다.
“여기까지 안내해줘서 고맙습니다. 흉수는 저희 손으로 해치울 테니 돌아가는 게 좋겠군요.”
“···아니, 난 그것, 그것이 죽는 걸 봐야겠소.”
“위험할 텐데요.”
최 씨의 눈가가 조금 붉어졌다.
“난 봐야겠소.”
이환은 그 눈을 담담히 마주했다. 그리고 아무런 대꾸 없이 말을 달려 일행의 뒤를 따랐다. 최 씨는 그런 이환의 모습이 당혹스러워 눈을 끔뻑거리며 머뭇거렸다. 하지만 그 역시 재빨리 그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여섯이나 되는 인마人馬가 사석원의 계곡을 따라 달렸다. 오래된 흙이 뿌연 먼지를 일으키고, 마른 풀이 말발굽에 짓이겨져 거칠게 흩날렸다. 선두에서 달리는 알리사는 점점 더 계곡의 상류로 올라갔다.
강줄기는 점점 더 좁아졌고, 풀과 나무, 그리고 바위도 많아졌다. 어느새 말을 타고 다니기엔 너무 험한 지형이 나왔다. 일행은 한쪽에 말들을 묶어놓고 계속 나아갔다.
관량이 알리사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제대로 알고 가는 거 맞아? 이건 뭐 말이 통해야 물어보기라도 하지···”
“믿고 갑시다, 관 선배. 내 나름 술법에 조예가 있는데, 저 로마인 소녀는 상당한 술법가임이 분명하오. 어쩌면 원주민 중에도 저런 술법가는 흔치 않을지 모르오.”
관량은 미심쩍다는 눈으로 남궁빈을 바라보았다.
“···네가 술법을 안다고?”
“어허. 믿음이오, 믿음. 관 선배는 언제나 그렇게 너무 회의적인게 문제요.”
“현실적인 거다, 자식아. 만날 협객지나 보면서 안 본다고 우기는 네가 더 문제-”
그때 알리사가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손등의 피부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반점과 주변을 휙휙 돌아보다가, 한쪽에 우거진 관목을 해치고 나아갔다. 그 뒤를 쫓으니 조금 넓은 공터와 그 중심 지면에 비스듬히 솟은 바위들이 보였다.
알리사가 그 바위틈을 가리켰다.
[저기, 저기 안에 있어요.]손짓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강력한 신호다. 관량과 남궁빈은 당장 표정을 바꾸고는 몸을 긴장시켰다. 관량은 묵직한 도 한 자루를 뽑아 들었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맨손이었다.
“뭐여? 나만 날붙이 쓰나?”
진서하는 검을 뽑을 수 없었고, 이환은 원래 권사였다. 남궁빈은 그 말에 어처구니없게도 등에 메고 있던 비파를 끌러 손에 들었다. 디디딩-현 튕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게 무깁니까?”
“내 최근에 연구하고 있는 것이 좀 있소. 발목은 안 잡을 터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쉿. 숨소리가 들려요.”
떠들던 이환과 남궁빈이 진서하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바위틈으로 다가갈수록 커다란 숨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잠이라도 자고 있는 것인지 규칙적인 호흡이었다.
알리사와 최 씨를 뒤로 물린 후, 나머지 무림인들은 그곳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다가 제일 앞에서 다가가던 진서하가 우뚝 걸음을 멈췄다. 그녀가 멈추니 다른 세 사람도 멈추게 되었다. 모두 숨을 죽이고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왜? 뭐 문제 있소?”
바위틈과 그녀를 살펴보던 관량이 그렇게 물었다. 진서하는 아무 대꾸 없이 조용히 해보라는 듯 손만 들었다. 그녀는 바위틈의 숨소리를 듣고 있었다.
잠시 후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
“···호흡이 너무 규칙적이군요. 자는 척이에요.”
다음 순간 그 말이 신호가 되기라도 했다는 듯 바위틈에서 시커먼 무언가가 튀어나와 그녀를 노렸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알리사와 최 씨의 눈에는 검은 그림자로 이루어진 악령이 하얗게 빛나는 단검으로 진서하를 찌르는 것처럼 보였다.
“진 소저!”
뒤에서 그걸 보고 깜짝 놀란 이환이 그녀를 부르며 앞으로 튀어 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의 걸음보다 진서하를 덮쳤던 시커먼 덩어리가 허공에서 휘리릭 회전하더니 바닥에 내리꽂히는 것이 더 빨랐다. 꽝-하는 굉음과 함께 땅이 진동했다.
“후우···”
진서하는 양손을 중단에 둔 자세로 부드럽게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그녀의 발밑에는 인간과 표범을 섞어놓은 듯한 커다란 괴물이 거꾸로 처박혀서 파르르 떨고 있었다.
그녀는 그 자세 그대로 왜 불렀냐는 듯 이환을 바라보았다. 이환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애매한 웃음을 흘렸다.
“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