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261)
진서하 외전 17화
괴수의 갑작스러운 기습, 이후 물 흐르듯 이어진 진서하의 반격에 거기 있던 사람들 모두 잠시 몸이 굳었다. 물론 결정적인 이유는 그녀가 땅바닥에 처박아버린 괴수의 모습이 워낙 충격적이었던 점이 컸다.
그때 멀찍이 떨어져 있던 알리사가 외쳤다.
[조심해요!]진서하는 그 외침에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곧장 옆으로 몸을 날렸다. 그녀가 몸을 피함과 동시에 바닥에 처박혔던 괴수가 흙먼지를 피우며 벌떡 일어섰다.
“키야우웅-!”
맹수의 포효와 함께 하얀 발톱이 허공을 찢어발겼다. 발톱 하나하나가 무슨 단검처럼 크고 날카로웠다.
“저, 저게 뭐야 시발! 아, 악귀냐?”
진서하가 한쪽 바닥을 구르고 재빨리 일어서며 자세를 바로잡는 가운데 조금 뒤쪽에 있던 관량은 질겁한 표정으로 주춤거렸다. 그 소리에 진서하도 괴수의 모습을 조금 자세히 보게 되었다.
그 괴수는 어른 남자보다 머리 한두 개는 더 큰 덩치에 약간 굽은 등을 가지고 있었고, 바닥에 닿을 듯 길쭉한 양팔에는 근육이 우락부락했다. 전신을 덮고 있는 누런 털은 어딘 길고 어딘 듬성듬성해서 볼품이 없었다.
결정적으로 그것을 괴수라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얼굴 때문이었다. 인간처럼 두 발로 서 있건만 놈의 머리는 산사자나 호랑이, 혹은 표범 등등 고양잇과 동물의 것과 더 비슷했다. 그러나 얼핏 인간의 모습도 섞여 있어 끝내 그 얼굴에서 느껴지는 것은 불쾌감뿐이었다.
놈의 노란 눈이 희번덕거리며 쉴새 없이 움직였다. 입에선 으르릉하는 낮고 음산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입 밖으로 튀어나온 이빨들과 큼직한 발톱들이 희게 빛났다. 조금 전 알리사가 단검이라고 생각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진서하와 이환, 남궁빈과 관량은 긴장감을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그 괴수를 가운데 두고 포위했다. 언제나 유리한 위치를 잡으려는 무인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진서하가 괴수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저것이 사석원 산사자의 정체인 것 같군요.”
“지난 몇 년간 여행하면서 굉장한 광경을 많이 봤다고 생각했지만, 저건···”
이환도 괴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건 적을 상대하는 눈빛이라기보단 참 신기한 것을 보았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때 관량이 자신의 칼을 중단으로 끌어 올리며 외쳤다.
“구경은 일단 저놈 목을 자르고 합시다!”
그가 큰 목소리로 외치자 몸을 낮추며 긴장하고 있던 괴수가 휙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보았다. 동시에 빈틈을 본 이환이 괴수의 등으로 파고들었다.
“캬우우-!”
괴수는 곧바로 반응하며 단검 같은 발톱을 크게 휘둘렀다. 하얀 선 다섯 줄이 이환의 얼굴을 노렸다.
이환은 발을 그대로 두고 허리를 뒤로 젖혔다. 무릎이 굽으며 그의 몸이 뒤로 쓰러질 듯 넘어갔다. 하지만 괴수의 발톱이 휙 허공을 지난 직후 넘어가던 상체가 튕기듯 앞으로 돌아오며 두 주먹을 뻗었다.
괴수의 옆구리에 이환의 두 주먹이 포환처럼 꽂혔다. 우지직 뼈 으스러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크허엉-!”
괴수는 신음 비슷한 소리를 내면서도 가까이 붙은 이환을 공격했다. 놈의 팔이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이환은 곧장 뒤로 제비를 돌며 물러섰다. 괴수의 팔이 지나간 흙바닥에 다섯 줄의 고랑이 패였다.
“어이!”
괴수가 옆에서 들린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칼을 높이 든 관량이 어느새 다가와 있었다. 그는 그대로 괴수를 반으로 쪼개버리겠다는 듯 칼을 내려찍었다. 괴수는 그것을 팔을 들어 막았다.
텅-하며 무슨 쇠 끊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괴수의 오른팔이 팔꿈치 아래로 뚝 잘려 나갔다. 괴수는 거기서 붉은 피를 철철 흘리며 비명을 질렀다.
“아 시발, 뭐여?”
그런데 정작 그 팔을 잘라낸 관량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칼을 들어보았다. 괴수의 팔을 자른 칼의 이빨이 쥐라도 파먹은 것처럼 움푹 파인 것이다.
“키야오오!”
괴수는 그런 관량에게 남은 왼팔을 휘둘렀다. 관량은 이빨 나간 칼을 들어 그걸 흘려내려 했다.
실수였다. 칼날을 기울여 흘려내는 기술은 같은 날붙이를 상대할 때 쓰는 기술이다. 무식하게 휘둘러진 괴수의 손과 팔뚝에는 통하지 않았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관량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남궁빈의 표정이 굳었다. 다른 사람들과 조금 떨어져 있던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으며 비파를 다잡았다. 이환이 보기에 그걸 튕겨서 무슨 공격을 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그는 비파를 튕기지 않고 머리 쪽 줄을 잡아 쭈욱 당겼다.
그 손톱과 현이 마찰하며 끼이이-하는 높은 소음이 울렸다. 머리 부분을 당길 땐 귀가 찢어지는 소음이, 중간을 지날 땐 너무 높아서 오히려 작게 들리는 소리가, 끝부분에 이르렀을 땐 그저 삐-하는 이명만 들렸다.
다음 순간 남궁빈의 반대쪽 손이 훑듯이 현을 스쳤다. 현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 귀가 아닌 몸으로 어떤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괴수의 귓구멍이 팍-하고 터지며 피를 쏟았다.
“키헤에엑···!”
진서하는 괴수가 비틀거리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오른손이 자연스레 어깨 너머를 향했다. 하지만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내저으며 손을 내리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내장이 상하고 팔이 잘린 채 비틀거리던 괴수는 그녀가 코앞까지 다가와서야 반응했다. 길쭉한 왼팔이 횡선을 그렸다. 궁지에 몰린 만큼 더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그러나 진서하는 이미 조금 전 놈의 기습도 간단히 반격한 무인이었다. 검은 채찍 같은 그 팔과 그녀의 양손이 서로를 스쳐 지났다.
“키헥!”
괴수의 왼팔이 휘릭 돌아버렸다. 하지만 그 몸은 그대로 있으려 했기 때문에 왼팔의 각 관절 부분은 우다닥 소리를 내며 비틀어졌다.
진서하는 멈추지 않고 오른손바닥으로 괴수의 명치 어림을 툭 짚었다. 마치 격려를 위해 두들기듯 가벼운 접촉이었으나, 이어진 소리는 섬뜩했다. 콰직-하는 소리와 함께 괴수의 가슴팍이 내려앉았다.
괴수는 주둥이를 쩍 벌린 채 비틀거리다가, 곧 풀썩 무릎 꿇었다. 살기로 번뜩이던 노란 두 눈도 멍하니 풀려 있었다. 잠시 그 눈을 바라보던 진서하는 날아갔던 관량을 확인하려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흐리멍덩하던 괴수의 눈빛이 돌아오며 쩍 벌어진 주둥이가 그녀의 목덜미를 향했다.
[언니!]멀리서 지켜보던 알리사가 비명처럼 소리 질렀다. 하지만 그 짧은 단어가 끝나기도 전에 날아간 남궁빈의 비파가 괴수의 얼굴을 후려쳤다. 비파는 박살 나고, 괴수는 뒤로 쓰러졌다.
“진 소저! 괜찮습니까?”
놀란 이환이 얼른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그녀는 다가온 이환의 눈을 피해 고개를 휙 돌렸다.
“···?”
그런 진서하의 태도에 이환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 자기가 뭘 잘못한 건 아닐까 하며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의 순간이 촤르르 지나갔다.
하지만 곧 그의 얼굴이 착 가라앉았다. 진서하의 오른손이 어깨 너머 검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하얗게 변할 정도로 꽉 쥐어진 그 손은 파르르 떨고 있었다. 그것을 인식한 순간 이환은 그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거대하고 난폭한 살기 또한 느꼈다. 조금 전까지 싸우던 괴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수준이었다. 십오 년 전 마궁의 마인들이 이랬을까.
“···다가, 오지, 마세요···”
이를 악문 듯한 진서하의 목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다. 그 짧은 단어 사이사이에서 진득한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그렇게 잠시 떨리는 진서하의 손을 바라보던 이환은, 곧 자신의 손을 뻗었다.
필사적으로 터져 나오려는 살기를 억누르고 있던 진서하는 다음 순간 화들짝 놀라 움찔했다. 이환의 손이 그녀의 손을 감싸 쥐었기 때문이었다.
“괜찮습니다, 진 소저. 날 보세요.”
그 말에 진서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가까이 다가온 이환의 얼굴이 보였다. 분명 지금 그녀의 눈에서 감히 마주보기 힘든 살기가 쏟아지고 있을 터인데, 이환은 그저 차분한 모습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검을 부러뜨릴 듯 쥐고 있던 그녀의 손에서 점점 힘이 풀렸다.
이환이 빙긋 웃었다.
“손이 따듯하군요.”
진서하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녀의 체질은 구음사혈이다. 비록 스승 덕분에 천형을 벗어나고 이후엔 무공을 익혔으나 그 체질은 남았다. 그래서 그녀의 몸엔 음기가 강했고, 음기가 강하니 평소 손발이 차가운 편이었다. 더군다나 살기가 폭발한 지금은 더더욱 음기가 치솟아 얼음처럼 차가웠을 것이다.
이환은 그런 진서하의 손이 따듯하다 말했다.
“···당신 손도요.”
진서하의 손은 이제 검 손잡이가 아니라 이환의 손을 잡고 있었다. 둘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잠시 그렇게 서 있었다.
그때 휘-익 하는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관량이었다.
“허이구, 보기 좋네. 누군 아파 죽겠는데.”
그의 이상하게 껄렁한 말투에 진서하와 이환은 멋쩍은 표정으로 슬그머니 손을 놓았다. 자기 오른팔을 붙들고 있던 관량은 그걸 보고 다시 껄렁거렸다.
“왜 놔? 그냥 계속 잡고 있지? 서로 잡고 있으니 따듯해서 좋은 거 아니었소? 아주 그냥 땀이 나도록-”
“관 선배, 추한 모습이오. 본인에게 인연이 없다고 다른 인연들을 시기하는 건 참 볼쌍사납다오.”
“뭐 시발? 내가 왜 인연이 없어? 나 관량이야! 감산성의 외늑대 관량! 내가 감산성에만 가면 그냥···”
“여긴 감산성이 아니지 않소. 그리고 외늑대라니? 그거 짝이 없는 걸 놀리는 말 아니오?”
“···아, 아니라고, 시발···”
간단히 관량을 격침한 남궁빈은 진서하에게 가벼운 포권을 하며 말했다.
“내가 괜히 손을 쓴 게 아닌가 싶소. 진 소저 홀로 해결할 수 있었는데 말이오. 안 그렇소?”
말에 은근한 의문이 담겨 있었다. 조금 전 진서하의 살기를 이환뿐만 아니라 남궁빈도 느낀 것이다.
“···비파가 부서져서 어쩌죠?”
하지만 진서하는 그의 눈을 보며 그렇게만 되물었다. 남궁빈은 그녀와 그 옆에 이환을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소이다. 그리 특별한 물건은 아니었으니. 그저 내 개인적인 연공을 위한 악기였을 뿐이오.”
[언니!]그때 멀찍이 물러나 있던 알리사와 최 씨가 다가왔다. 알리사는 진서하의 품에 안겨서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진서하는 옅게 웃으며 녀석의 등을 쓸어주었다.
[위험한 줄 알았잖아요.]“괜찮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관량이 그 모습을 보고 남궁빈에게 속삭였다.
“야, 저 두 사람 말이 통하는 거냐?”
“그런 것 같군.”
“···서로 딴 얘기 하는 게 아니고? 아니, 언어가 다르잖아?”
일행이 그렇게 떠드는 동안 한 사람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는 말없이 침울한 표정으로 쓰러진 괴수를 향해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의 눈에 들릴 듯 말 듯 아주 가는 숨을 내쉬고 있는 괴수의 얼굴이 담겼다.
“누굽니까?”
그의 등 뒤에서 이환이 물었다. 최 씨는 두 눈을 꾹 감으며 고개를 떨궜다.
“···내 안사람이오.”
모두 놀란 표정이 되었다. 인간이 짐승으로 변한 것이라는 알리사의 말이 사실이었다.
“사석원에 야수가 날뛰기 시작한 건 일 년 전이라 알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이환의 질문에 최 씨는 푹 수그린 그대로 대답했다.
“···내 안사람은 도적이었소. 정확히는, 예전에 그랬지.”
다른 패거리와 이 황야를 떠돌아다니며 상인이나 양민들을 노리는 도적. 어느 날 큰 한탕 이후 패거리가 찢어지고, 도적은 황야를 흐르고 흘러 이곳 사석원에 이르렀다. 그리고 최 씨와 만났다.
이미 사랑했기에 최 씨는 도적의 과거를 알게 되고도 무시했다. 어쨌든 지금은 농부의 아내로 성실히 살아가고 있으니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때때로 밤마다 몰래 집을 나갔다 돌아오면 다음 날 창고에 죽은 산짐승이 있기도 했으나, 그저 밤 사냥을 하는 특이한 괴벽 정도로 여겼다. 적어도 도적질 할 때처럼 사람을 죽이는 건 아니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 부인이 변한 건 일 년 전, 주점의 전 주인 석 씨가 산사자에게 물려 죽은 이후였다. 물론 최 씨는 그 범인이 산사자가 아니라는 걸 알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안사람은 짐승처럼 변했소. 지금처럼 겉모습을 말하는 게 아니라, 평소 행동거지가 짐승이 되어버렸소. 사람의 이성이 사라져버린 거요. 처음엔 집안의 문단속을 하는 것으로 충분히 가둬둘 수 있었지만··· 어느 날 마을에 다녀왔더니 문이 박살 나 있더군.”
최 씨는 이후 사람들과 사냥꾼들이 죽어 나가는 걸 보고는 동생과 함께 제 손으로 부인을 죽일 생각을 했다. 지금 괴수의 모습을 보면 알겠지만, 어림도 없는 생각이었다.
“동생도 죽고··· 마을은 혼잡스럽고··· 난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소···”
“조금 더 일찍 무림맹에 도움을 요청했다면 사람들이 다치는 건 막을 수 있었을 것이오.”
이야기를 듣던 남궁빈이 그렇게 말하자, 최 씨는 번뜩 고개를 들고 외쳤다.
“그건 결국 이 사람을 죽이겠다는 거잖아! 지금 당신들이 한 것처럼!”
남궁빈은 어차피 자기 손으로 죽이려던 것 아니냐-하고 최 씨를 비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대신 말없이 최 씨를 바라보기만 했다. 최 씨는 그 눈을 오래 마주 보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 도적 생활 중에 라이칸스로피 저주를 받은 모양이네요. 제가 아는 짐승의 모습은 아니지만··· 하지만 지금 저 사람 말대로라면 이 여자는 나름대로 그 저주를 잘 감당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요?]이환에게 최 씨의 설명을 로마 말로 번역해 듣던 알리사가 그렇게 말했다. 진서하와 이환도 고개를 갸웃했다. 가장 가까이서 생활하는 남편이 그냥 괴벽 정도로 생각했다면, 알리사의 말대로 잘 감당하고 있었다 볼 수 있었다. 뭔가 최씨 부인을 돌아올 수 없게 만든 요인이 있을 터였다.
그때 진서하가 번뜩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두 눈을 크게 뜨더니, 성큼성큼 최씨 부인이 튀어나왔던 바위틈으로 걸어갔다.
“진 소저···?”
잠시 후 걸어 나온 진서하의 품에선 뭔가 꼬물거리고 있었다.
“아니···”
“오···”
거기 있던 사람들 모두 두 눈이 동그래졌다. 꿇어앉아 있던 최 씨는 얼른 일어나선 헐레벌떡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품에 안겨있던 아기를 건네받았다. 아기는 다른 갓난아기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모습이었다.
알리사가 알겠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기를 가지면서 저주가 강해졌군요. 아니, 어쩌면 강해진 건 그녀의 본능이었을지도···]아기를 끌어안은 최 씨는 울먹거리며 괴수에게 다가갔다. 가는 숨을 이어가던 부인은 두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자 코를 작게 움찔거렸다. 마치 둘의 냄새를 맡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걸 끝으로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 * *
일행은 그의 부인을 묻어주고 이빨 하나만 챙겼다. 원래라면 머리라도 잘라서 가져가야 하겠지만, 차마 그럴 순 없었다. 계곡 위에 작은 돌무덤이 생겼다.
최 씨는 아기를 데리고 떠났다. 이곳 사석원을 아예 떠날 생각이라고 했다.
알리사는 멀어지는 최 씨와 아기, 그 뒤로 이어지는 흙먼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운명에게서는 도망칠 수 없는 걸까요? 그녀는 이곳에서 그저 사랑하는 사람의 아내로 살아가려 했을 뿐인데, 그 때문에 죄 없는 사람들이 죽고 다쳤잖아요.]옆에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보던 진서하는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그건 운명 같은 게 아니야. 그저 업業일 뿐이지. 살아가며 자기 자신이 쌓은 업, 그녀가 외면한 선택. 하지만 구음사혈은 네가 선택한 게 아니야. 그건 고칠 수 있는 병일 뿐이란다.”
알리사는 고개를 들어 진서하를 올려다보았다. 진서하도 고개를 내려 눈을 마주치고 작게 웃어 주었다. 그 웃음을 본 알리사도 침울한 기색을 지우고 미소를 띠었다.
진서하가 말했다.
“돌아가자. 야수가 사라졌으니 마을 사람들이 기뻐할 거야.”
진서하와 이환, 알리사, 그리고 순찰대원 두 사람은 저기 멀어지는 최 씨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말을 달렸다. 서쪽 대산맥 산등성이에 걸친 태양이, 그들의 등 뒤로 오늘의 마지막 석양빛을 흩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