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3)
3화
양굉은 가지고 있던 돈과 옥가락지를 뜯기고 금방이라도 도망칠 듯하던 기색과는 달리 후루룩후루룩 국수를 먹는 장건 앞자리에 앉아 넉살 좋게 말을 걸었다.
“장 형, 지금 장 형 국수나 먹고 있을 때가 아니요.”
장건은 대답 없이 국수만 먹었다. 면을 잔뜩 빨아들여선 두 볼 가득 채우고 우물거리는 모양이 보통 먹음직스러운 게 아니었다. 양굉은 괜히 침만 꿀꺽 삼키고 말을 이었다.
“그, 장 형. 그래도 내가 장 형이랑 식사도 하고 같이 골패도 만지작거리던 기억이 있으니 말해주는데, 얼른 이 객잔을 뜨는 게 좋을 것이오.”
장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수를 우물거리다가 그릇을 들어 후루룩 국물까지 마셨다. 그 후 그릇을 내려놓고 입 안에 있던 것을 모두 삼킨 다음, 옆에 놓여 있던 찻물까지 한 모금 목으로 넘기고 나서야 양굉에게 눈을 주었다.
“왜?”
“···아까 도망친 놈 있지 않소?”
“진양석?”
양굉이 자기 턱을 긁적거렸다.
“안 그런 척 하더니만 다 기억하시는군. 뭐 어쨌든, 그 친구가 좀 위험한 친구요.”
“너 같은 사기꾼한테 털리던 놈이?”
장건의 말에 양굉은 가벼운 헛기침을 했다.
“거참 말을 해도 사기꾼이 뭡니까?”
“사기꾼이 싫으면 도적놈이라 불러주고.”
“에헤이. 방금 내가 한 말 기억 안 나는 거요? 무림맹 현상금 다 냈다니까.”
“그걸 내면 피해자가 사라지냐?”
양굉은 두 손을 들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현상금 일부는 그 인간들 보상금으로 나간다지 않소? 그럼 됐지 뭐. 게다가 난 가난한 양민들을 털어본 적 없소이다.”
“네가 홍길동이냐?”
“···홍길동이 누구요?”
장건은 다시 찻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가며 대답했다.
“활빈당의 당주.”
“···활빈당?”
“말해주면 아냐?”
양굉은 헤죽 웃었다.
“아니. 모르지. 내가 배움이 좀 부족해서.”
장건은 그런 양굉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놈이 왜 위험한데.”
양굉은 탁자 구석에 엎어둔 찻잔 하나를 집어와 자기도 그 잔에 찻물을 채우며 말했다.
“진양석 그놈은 뭐 없는 놈이오. 무공도 배우질 않았고, 그렇다고 가진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지. 배운 게 많아서 똑똑한 것도 아니고. 그냥 호구지, 호구.”
“그 호구가 위험하다?”
그는 따른 찻물을 한 모금 홀짝거렸다.
“호구는 그냥 호구지. 문제는 그 호구한테 형이 하나 있다는 것이오. 그것도 꽤 고수인 형.”
양굉의 말을 듣던 장건은 피식 웃으며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나도 무공 좀 한다.”
“아 그건 나도 알지. 저기 암주골에 장 형 주먹 솜씨 모르던 사람이 어디 있소? 다들 칼 뽑는 거 보기 전엔 그게 장식품이 분명하다고 했지.”
그 말에 장건은 젓가락 든 손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럼 뭐가 문젠데 새끼야. 말 돌리지 말고 빨리 해.”
“···호구의 고수 형도 문제인데, 그 형놈 소속 문파는 더 문제요. 사상파라는 사파거든.”
장건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림맹 지부가 있다며? 근데 사파가 어떻게 있어?”
양굉은 실실 쪼개며 대답했다.
“궁금하시오?”
장건도 실실 웃었다. 그는 꽉 쥔 왼 주먹을 보여주었다. 주먹을 본 양굉의 안색이 조금 하얘졌다.
“그, 뭐냐. 말할 테니까 주먹은 좀 내리시고··· 당연히 겉으로는 사파가 아니오. 그런 집도 없이 떠도는 부랑자들은 아니지. 거기 두목이랑 여기 무림맹 지부장이랑 어떻게 엮여 있다는데, 그래서 적당한 선만 지키면 아예 건들지를 않는다는 모양이오. 그리고 호구의 형 진청석은 거기 최고수고.”
“그런 놈 동생을 털어먹고 있었냐?”
양굉은 다시 어깨를 으쓱거렸다.
“말했잖소. 그놈들도 선을 지켜야 한다고. 방금 있던 일은 어제도 있던 일이었고, 아마 장 형이 오지 않았다면 내일도 있었을 일이외다.”
“무림맹 참 잘 돌아가는군.”
“여기 주민들도 다 그런 생각을 하는 모양이오. 평소 불만이 많았는지 외지인인 나한테 입을 쉽게 열더라니까.”
장건은 양굉에게서 눈을 떼고 젓가락을 들었다.
“그럼 그만 떠들고 그 주민들한테 꺼지든가.”
“···그건 좀 곤란하오만.”
이놈이 무슨 말을 하나 싶었던 장건은 방금까지 양굉이 앉아있던 탁자를 돌아보고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아까까지 웃으며 양굉과 도박을 하던 사람들은 이제 그와 장건을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진양석을 도발한 것과 속임수를 썼다는 것 때문일 터였다.
거기에 몇몇 주민들은 겁을 먹었는지 슬금슬금 객잔을 떠나고 있었다. 장건이 남은 국수를 우물거리며 그걸 바라보고 있자니 객잔 주인이 다가와 굳은 얼굴로 말을 걸었다.
“손님.”
장건은 객잔 주인을 올려다보았다. 자세히 보니 주인장의 얼굴은 굳어있을 뿐만 아니라 파르르 떨리고 있기까지 했다.
“국숫값이랑 숙박비는 돌려드리지요. 그러니 내 객잔에서 나가주시오.”
양굉은 그걸 보고 어쩔 수 없지 않냐는 듯 웃으며 말했다.
“자, 이런 상황이니 나갑시다. 사상파 놈들이 오기 전에. 놈들이 오면 나나 장 형이나 무사하기 힘들 것이오.”
그러나 장건은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도 느긋하게 국수의 면을 다 건져 먹고 그릇을 들어 국물을 마셨다. 꿀꺽거리며 국수 그릇을 바닥까지 모조리 비운 그는 빈 그릇을 내려놓고 가볍게 트림까지 하며 짧게 말했다.
“무사할 것 같은데.”
“···장 형이 무슨 황군고수요? 사상파 놈들이 스물은 된다는데 어쩌려고?”
“도망치려면 날 붙잡고 떠들 게 아니라 냉큼 떠났어야지. 이미 늦었어.”
양굉과 객잔 주인이 그 말을 듣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순간 객잔 문 주렴 너머에서 낮고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도망치기엔 이미 늦었지.”
객잔 주인과 양굉에서 싸악 하고 핏물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동시에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객잔 안으로 들어섰다. 대충 봐도 우락부락해 보이는 그 남자는 몸무게가 꽤 되는지 객잔의 나무 바닥이 끄드득끄드득 하는 소음을 냈다.
객잔으로 들어선 우락부락한 남자는 겁먹은 객잔 주인과 양굉을 거쳐 장건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는 차분한 얼굴로 차를 마시는 장건을 잠시 바라보다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저놈들이냐?”
“어, 어. 맞소, 형님. 저놈들이 속임수를 써서 내 돈을 뜯고는 항의하자 코를 이 모양으로 부숴놓았소. 꼭 좀 혼쭐을 내주시오.”
“···네 돈?”
남자 뒤에서 나타난 진양석은 아차 하는 표정을 짓더니 얼른 덧붙였다.
“그, 사람들 돈을 뜯고 있었지. 내 돈, 그건 그러니까, 그 일부에 불과하고.”
우락부락한 남자는 코에 붕대를 두르고 떠듬거리는 진양석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다시 양굉과 장건에게 눈길을 주었다.
“다 나가시오.”
장건은 그 말이 자신을 향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객잔 안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모두 허겁지겁 밖으로 달려 나간 것이다. 객잔 주인도 그 뒤를 따라나서다가 남자 옆에서 멈칫하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그, 새 탁자를 산 지 얼마 안 됐는데···”
남자는 말 없이 도끼눈으로 객잔 주인을 바라보기만 했고, 주인장은 그 눈빛에 놀라서 얼른 주렴 너머로 달려 나갔다.
불안한 표정을 짓던 양굉은 나가는 사람들 틈에 섞여나갈 생각으로 슬며시 일어섰다.
“앉아라. 너부터 뒈지기 싫으면.”
그는 장건의 건조한 목소리를 듣고는 자연스럽게 다시 자리에 앉아서 찻잔을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음? 무슨 소리요, 장 형? 나 여기 앉아있는데?”
남자와 눈을 마주치고 있던 장건은 그 말에 대답은 안 하고 피식 웃기만 했다. 그때 객잔 안 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밖에서 험상궂은 남자 일고여덟이 우르르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객잔 구석자리에 앉아있는 장건과 양굉을 반원을 그리며 포위했다.
그때까지 장건을 노려보던 남자가 천천히 걸어오며 말했다.
“반갑소, 친구들. 난 진청석이라고 하외다. 부끄럽지만 이 마을에서 해결사 노릇을 하고 있지. 그래봐야 평화로운 곳이라 별로 할 일이 없어서 놀고먹는 와중이었소만.”
그는 장건과 양굉이 앉은 탁자 앞에 멈춰 섰다.
“그런데, 오늘 여기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 생긴 것 같군.”
장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가라앉은 눈으로 진청석을 바라보다가 찻잔을 들어 마셨을 뿐이다. 진청석이 그걸 보고 눈썹을 꿈틀거리자 눈치를 보던 양굉이 냉큼 일어나 두 손을 모아서 포권을 하고 말했다.
“하, 하하. 이거 뭔가 서로 오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반갑습니다. 전 양굉이라고 합니다. 며칠 전 이 마을에 왔는데, 그 잠깐에도 진 형이 의협심 넘친다는 이야기를 한 두 번 들은 것이 아니라 꼭 한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요즘 같은 때에 협객이라니요? 그런데 정말 이렇게 만나게 되었으니 이게 바로 인연이 아니겠습니까? 아, 그리고 이쪽은 장 형, 장건 형님인데, 이 마을에 온 지는 얼마 안 됐고···”
그러나 양굉의 말은 갑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진청석의 오른손 검지에 끊어졌다. 양굉이 그 갑작스러운 삿대질에 당황하는 순간 진청석이 입을 열었다.
“사기꾼.”
“예, 예? 사, 사기꾼?”
그 검지는 그대로 움직여 이번엔 장건을 가리켰다.
“불량배.”
진청석은 손을 내리고 양손으로 허리를 짚으며 거만하게 말했다.
“이 평화로운 마을에 갑자기 나타나선 가난한 양민들 등을 처먹고, 그걸 보다 못한 내 동생의 항의는 주먹질로 대답하다니. 보통 무뢰배들이 아니구나. 협의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이 일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 내 너희를 모두 체포해 무림맹 지부로 끌고 가야겠다. 부디 바라건대, 저항해봐야 다치기만 할 뿐이니 그러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마치 재판관이라도 되는 듯 죄를 확정 짓는 말과 당당한 태도에 양굉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눈썹을 일그러뜨리고 입만 뻥긋거렸다. 두 사람을 포위하던 남자들은 진청석의 말이 끝나자 허리춤에서 두툼한 몽둥이 하나씩을 빼 들며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본 양굉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이런 시발···’하고 욕설을 중얼거렸다.
“그래도 냅다 쳐 죽이니 어쩌니 하진 않는군.”
조용히 있던 장건의 갑작스러운 말에 포위를 좁혀오던 남자들이 멈칫거렸다. 그들은 자기들도 모르게 진청석을 바라보며 눈치를 봤다. 진청석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눈살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장건을 노려보았다.
“어찌 대낮 객잔에서 사람을 죽일 수 있겠느냐?”
“이렇게 우르르 몰려와 핍박하는 건 괜찮고?”
진청석은 장건이 앉은 탁자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마을을 어지럽히는 불량배를 체포하기 위함이니, 강호 동포들 모두 상황을 이해해 줄 것이다.”
“여기 그쪽 건달들 말고 강호 동포가 어디 있다고. 자의식이 비대하시군.”
장건의 비꼼에 진청석은 한 걸음을 더 다가와선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이 새끼가 정말 뒈지고 싶어서 꼬박꼬박 말대꾸하는구나. 적당히 하지 않으면 무림맹에 넘기기 전에 그 주둥아리를 찢어놓는 수가 있다.”
장건은 그 험악한 말에도 피식 웃었다.
“멀쩡히 보내주진 않겠다?”
“내 동생 얼굴에 저 지랄을 해놓고, 내 마을에서 사지 멀쩡히 빠져나갈 생각을 하면 안 되지. 적어도 팔 병신, 다리 병신을 만들어주마. 뭐, 그게 싫다면 그 다리 사이 물건 하나로 봐주지.”
진청석의 마지막 말이 뭐가 웃기는지 포위하고 있던 건달들이 피식피식 웃었다. 낄낄거리며 몽둥이로 자기 허벅지를 툭툭 치는 놈도 있었다. 그걸 본 양굉만 자기도 모르게 슬며시 두 손을 모으며 다리를 움츠렸다.
그리고 장건은 그 건달들과 진청석, 실실 쪼개는 진양석 등을 모두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말했다.
“무협지에선 보통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하면 이 새끼 뭔가 있지 않을까 조심하지 않냐? 혹시 황군은 아닐까, 떠돌던 고수는 아닐까 하는, 그런 걱정은 안 해?”
장건의 말을 들은 진청석의 안색이 싹 굳었다.
“뭐요? 황군? 황군이시라고요?”
장건은 멀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 그건 아닌데.”
“···뭐야, 이 미친 새끼? 장난하냐? 뒈지고 싶어서 황군을 사칭하는-”
그 순간 자리에 앉아있던 장건이 아무런 준비동작 없이 의자에서 튕겨 올라 손으로 탁자를 짚고 뛰어넘으며 진청석의 얼굴에 발차기를 꽂아주었다.
그 발차기 한 번의 힘이 얼마나 셌던지 우락부락하고 커다란 덩치의 진청석이 그대로 객잔 입구까지 나가떨어졌다. 쓰러진 그의 두 눈은 맹하니 풀렸고, 앞니는 위아래 할 것 없이 모조리 부러져 나가 피가 질질 흘러 보기 흉했다. 객잔 안에 있던 건달들과 양굉은 멍청한 얼굴로 쓰러진 진청석과 장건을 번갈아 보았다.
진청석을 걷어찬 반동으로 그 자리에 깔끔히 내려선 장건은 삐뚜름한 눈으로 그 시선을 마주 보며 말했다.
“황군 아니면 고수가 없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