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31)
31화
* * *
오중서, 서위량에게 오 무사라 불리는 그는 착잡한 눈으로 불타는 객잔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렇게까지 사람들을 몰아붙이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이 지역 목장이나 광산이 손광의 소유고 서위량이 그것을 관리하는 위치에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거칠게 사람들을 몰아붙이면 결국 더 큰 저항으로 돌아올 뿐이었다.
게다가 이미 도적단이라는 형태로 그 저항이 나타나기도 했다. 사실 이젠 무림맹이 개입하는 걸 더 막을 수 있는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하지만 오중서는 결국 서위량의 밑에서 봉급이나 받아먹고 사는 봉급쟁이일 뿐이었다. 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믿고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은 그냥 돈 주는 사람이 시켜서 하는 것뿐이라고. 자신에게 죄를 물을 순 없으리라고.
“안에 사람이 있잖아! 사람은 살려야지! 대체 이게 뭐 하는 짓거리야!”
청수촌 촌장 고 노인이 나이에 걸맞지 않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객잔을 둘러싼 무사들을 손가락질했다. 그 외에도 청수촌 사람들이 안타까운 눈으로 객잔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저 안에는 객잔 여주인 여 씨와 점소이 호룡이 갇혀 있었다.
사람들은 객잔이 불타는 걸 보고 각자 집에 있던 대야나 바가지에 물을 채워 뛰어왔다. 원래 마을에서 불이 나면 그 불이 어떻게 번질지 모르는 것 때문에 온 마을 사람들이 달려와 힘을 합쳐 불을 끈다.
그러나 지금은 객잔을 가로막고 있는 서위량의 무사들에 가로막혀 다들 안타깝게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이놈들! 안 되겠다! 비켜!”
소리를 지르던 고 노인은 더 참지 못하고 무사들 사이로 달려들었다. 몸으로라도 뚫고 들어가 여 씨와 호룡을 구하려는 것이었다. 나이도 많은 노인이 그 순간 어찌나 재빠른지 마을 사람들을 위협적으로 노려보던 무사 둘은 아차 하는 사이에 노인을 놓쳤다. 고 노인은 물이 찰찰 넘치는 두레박을 들고 객잔을 향해 달렸다.
동시에 오중서의 칼이 뽑혔다.
“아버님!”
“세상에!”
두레박이 땅에 떨어지며 물이 쫙 쏟아졌다. 그리고 고 노인은 허벅지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그 위에 엎어졌다. 노인이 어구구 하는 신음을 흘리고 있자 오중서가 그 상처를 짓밟으며 조용히 말했다.
“이보시오, 고 촌장. 왜 나서는 거요? 그동안 우리가 주는 돈 잘 받아먹었으면서.”
“으으, 이 시부럴 놈아, 그럼 애가 타 죽는 걸 보고만 있어? 사람이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는 것이여!”
오중서는 피식 웃더니 고개를 살살 저었다.
“그렇게 선을 잘 지키면서 우리 창고와 목장을 터는 도적놈들을 옹호해? 그 새끼들 때문에 손해가 얼마인 줄 알아?”
“미친놈··· 걔들은 창고를 털어도 너희처럼 사람을 태워죽이진 않아···”
오중서는 가벼운 코웃음을 치며 마을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며 외쳤다.
“우리가 너무하다고 생각하나? 하지만 우리도 서상정이 죽었다! 그리고 다른 무사도 넷이나 죽었어! 이젠 우리도 가릴 게 없다! 당장 그 개새끼들의 위치를 말하지 않으면 나머지 집들도 다 불 질러 버릴 것이다! 집을 잃고 싶지 않으면 당장 말해!”
그의 외침에 다른 무사들도 채챙 소리를 내며 검과 칼을 뽑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 시퍼런 칼날에 겁먹고 웅성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들 중 누군가가 외쳤다.
“왜, 왜 우리한테만 이래? 그 도적들이 청수촌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럼 또 어디 사람이 있겠나! 이 일대에서 사람이 제일 많이 모여 사는 곳이 이곳이고 도적단이 제일 많이 나온 것도 이 마을인데 내가 또 어디서 그놈들을 찾아야 하냐고!”
오중서가 칼을 쭉 들이밀며 외치는 소리에 마을 사람들은 조금 더 뒤로 물러났다. 객잔은 불타고 촌장은 다리에 칼이 맞아 쓰러져 있는데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개중에는 객잔에서 머물던 외지인 무사도 몇몇 있었지만 그들은 마을 사람의 시선에도 슬쩍 눈을 피할 뿐 나서지 않았다.
“자, 뭐라도 말해봐! 아니면 이 늙은이마저 죽는 꼴을 보고 싶나!”
마을 사람들을 가리키던 오중서의 칼이 고 노인의 목으로 향했다. 지켜보던 고 노인의 며느리가 비명을 질렀지만 오중서와 무사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서슬 퍼런 칼날을 더 깊게 들이밀어 고 노인의 목에 붉은 실선을 남길 뿐이었다.
겁먹은 마을 사람들을 보면서 오중서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마을을 완전히 불태우거나 더 사람을 죽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아마 조금 더 압박하면 뭐라도 아는 걸 털어놓을 듯했다.
그래서 다시 뭐라 소리쳐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오중서의 귓가에 무슨 말발굽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누가 이 야밤에 말을 타나 싶은 생각에 고개를 돌려보니 저 먼 곳에서 누군가 옷자락을 펄럭이며 달려오고 있었다.
“···뭐야?”
오중서는 물론이고 무사들과 마을 사람들마저 달려오는 그를 발견하고 어리둥절해졌다. 그런데 그 말을 달려오는 자는 벌써 많이 가까워졌는데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한 무사가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멈춰라!”
말은 멈추지 않았다. 도리어 더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앞으로 나섰던 무사는 그 기세에 안색이 싹 굳어가다가 결국 으악-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몸을 던지려 했다.
그때 말이 땅을 박차고 올라 훌쩍 무사를 뛰어넘었다. 그리고 그렇게 단숨에 무사들의 포위를 뚫고 들어온 말은 거침없이 불타는 객잔 앞까지 도착했다.
“저, 저···”
오중서와 다른 무사들이 그 갑작스러운 등장에 당황하는 동안 말 위에 타고 있던 누군가는 말이 멈추자 그대로 안장을 차고 뛰어올라 아직 불이 많이 번지지 않은 2층 객실 창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그걸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오중서는 어이가 없어서 다른 무사들을 돌아보았다.
“···뭐냐?”
“···모르겠는데요. 얼굴도 제대로 못 봤습니다.”
오중서는 시선을 고 노인에게 돌리며 다시 물었다.
“뭐야, 저놈 누구야?”
하지만 고 노인도 어리둥절해서 멍하니 그를 마주 볼 뿐이었다. 오중서는 그 표정을 보고는 얼굴을 확 찌푸리며 마을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지금 장난해? 저 새끼 누구야! 지금 외지에서 무사를 고용해온-”
그때 처음 박살 났던 쪽에서 조금 떨어진 창문이 와장창 깨져나가며 그 정체 모를 이가 툭 떨어져 내렸다. 그의 품에는 객잔 주인 여 씨와 점소이 호룡이 안겨있었다. 오중서와 사람들이 그걸 놀란 얼굴로 지켜보고 있으니 그 남자는 여 씨를 바로 눕히고 그녀의 호흡을 확인하고 있었다.
같이 나온 호룡은 얼굴에 검댕이 잔뜩 묻은 것을 닦을 생각을 못 하고 울먹거리며 외쳤다.
“아줌마! 정신 차려요, 아줌마! 죽으면 안 돼요!”
갑자기 나타난 이는 이어서 여 씨의 맥박을 확인하고 꽉 조이는 그녀의 허리띠를 넉넉하게 풀어주었다. 그리고 흉부 위에 오른손을 올리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잠시 후 여 씨는 콜록거리며 기침을 하면서 정신을 차렸다. 호룡이 그녀를 보고 환히 웃었다.
“아줌마!”
“이 녀석··· 누나라고 부르라고··· 나 아줌마 아니야···”
두 사람이 그렇게 멀쩡해 보이자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와-하고 환호가 터져 나왔다. 방금까지 무사들의 칼에 겁먹고 침울해 보이던 것이 거짓말인 것 같았다.
“닥쳐! 다 입 다물어!”
멍하니 불청객의 거침없는 행동을 지켜보기만 하던 오중서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역시 마찬가지로 그 외침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린 다른 무사들도 다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사람들에게 칼을 들이밀었다.
다시 입을 다무는 사람들을 확인한 오중서는 이번엔 옷을 툭툭 털며 일어서는 불청객을 향해 외쳤다.
“너!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그 성난 외침과 반대되게 불청객은 차분히 대답했다.
“장건.”
“···뭐, 뭐? 장건?”
오중서는 다른 무사들에게 고개를 돌려 들어본 적 있냐고 묻는 듯 눈짓했다. 하지만 무사들도 전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그때 그 무사 중 하나가 장건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기억난다는 듯 말했다.
“아! 저 새끼 압니다! 며칠 전에 찾아온 외지인이에요! 도박 존나게 못하던!”
입술 아래 흉터가 있는 그는 장건이 이곳 객잔을 찾았을 때 같이 골패를 했던 건달이었다. 같이 골패를 했던 무사 몇몇도 그를 기억해냈다. 그들의 이야기에 오중서는 장건을 노려보았다.
“몸놀림을 보아하니 무공 좀 하는 것 같은데··· 이런 시기에 갑자기 나타난 떠돌이라. 수상한 놈이군.”
하지만 장건은 그 시선이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인지 옷을 마저 툭툭 털며 덤덤하게 물었다.
“저 둘을 2층 객실에 가두고 불을 지른 게 너희냐?”
“그렇다면 어쩔 거냐?”
“사람을 땔감 취급한 게 자랑이냐? 뭐가 그렇게 당당해?”
오중서는 얼굴을 더 일그러뜨리며 앞으로 나섰다.
“이건 이 마을 사람들에게 본보기를 보인 것뿐이다. 외지인이라 모르는 모양인데, 요즘 이 주변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도적놈들이 있지. 소 키우는 목장을 습격하고 또 물건을 모아둔 창고를 털어가는 그런 쓰레기들이야.”
그가 그렇게 천천히 다가가자 다른 무사들도 슬금슬금 장건을 포위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마을 주민들은 그 도적 중에 자신들이 알던 사람이 있다고 그들에 대한 정보를 숨기고, 또 어떨 땐 도망치는 놈들을 보호하기까지 했다. 그게 맞는 일이냐? 중원의 법률에서도 범죄자를 숨겨주면 벌을 받는다. 오히려 본보기 정도로 넘어가는 데 감사해야지. 안 그래? 가족도 없는 여자와 아이 정도면 괜찮지.”
그는 장건과 조금 떨어진 곳에 멈춰서서 흘끗 장건의 허리에 매인 칼을 훔쳐보았다. 특별한 것 없는 칼로 보였다.
“그리고 일단 넌 우리랑 좀 같이 가야겠다. 어디서 뭘 하고 굴러먹던 놈인지, 어쩌다 이 마을에 왔는지 하나하나 전부 좀 설명해 줘야겠어.”
그러나 장건은 여전히 무덤덤한 채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여긴 무림맹 지부도 없나? 맹원도 아니고 방화범이 지금 날 억류하겠다는데 어디서 뭐 하는 거야.”
그 말에 오중서는 자기도 모르게 옆을 돌아보았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 서 있던 무림맹 청수촌 지부장은 슬그머니 옷깃으로 자기 무림맹 흉장을 가리며 눈을 내리깔았다. 주변에 있던 마을 사람들이 그를 혐오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아도 그는 나서지 않았다.
그걸 본 오중서는 입가만 슬쩍 끌어 비릿하게 웃으며 장건을 돌아보았다.
“여기 무림맹원은 없으니 얌전히 무기 넘기고 따라와라. 아니면, 기어코 어디 칼집 하나 생겨야 얌전해지겠나?”
장건은 그가 칼을 들이밀며 하는 소리에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뒤에 있는 객잔이 이글거리며 주변을 환히 밝히는 가운데 건달인지 무사인지 모를 칼잡이 열이 반원을 그리며 그를 포위하고 있었다. 그 너머에 다친 노인을 자기들 쪽으로 데려가는 마을 사람들이 보였다.
마을 사람들은 칼잡이들에게 포위당한 장건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칼잡이들이야 그냥 칼 든 양아치와 크게 다를 것 없는 건달들이었지만, 그 중 오중서는 서위량의 오른팔로 손광이 감산성에서 직접 보낸 자였다. 듣기로는 고대 세가의 무사와 싸워 이겼다는 소문도 있는 실력자였다. 사람들이 장건을 안타깝게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장건은 그런 오중서의 살기와 주변을 둘러싼 포위에도 피식 웃었다.
“할 수 있으면 해봐.”
“이런 시발. 어디서 굴러먹던 것인지 모를 떠돌이 새끼가···”
오중서는 원래 찡그렸던 얼굴을 더 진하게 일그러뜨리며 칼을 바로잡다가 흠칫 놀랐다. 어느새 왼손으로 칼집을 잡으며 비스듬히 선 장건의 모습에서 알 수 없는 위압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허. 그래. 뭔가 한 수가 있는 놈이긴 하군. 하지만 그래봐야 혼자지. 공격해.”
장건의 분위기에 살짝 놀랐던 오중서는 대충 웃으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이미 무기를 빼 들고 있던 무사들이 곧바로 우르르 장건에게 달려들었다.
설사 뭔가 한 수가 있는 놈이라도 칼잡이 열과 싸우며 그 한 수를 연이어 쓸 수는 없었다. 무림인들의 일 합은 아주 빠르고 강한 만큼 그 일격에 많은 것을 담아 공격하기 때문이었다. 오중서는 자신이 가르친 칼잡이들이면 저 묘한 분위기의 진실 정도는 알아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장건의 칼이 뽑혔다.
객잔의 불길에 뭔가가 반짝인가 싶더니 제일 먼저 달려들었던 칼잡이의 목이 잘려 나갔다. 이어서 그는 옆으로 한 걸음 내디디며 뽑은 칼을 훅 찔렀다. 그 칼끝에 목이 찔린 또 다른 칼잡이가 켁-하는 소리를 내는 동시에 장건은 그 칼을 끌어당기고 몸을 띄우며 옆으로 빙그르르 돌았다.
그의 하체를 노리던 칼과 머리를 노리던 검이 목표를 잃고 허공을 찔렀다.
장건은 회전하던 힘 그대로 칼을 올려 베어 칼잡이 하나의 머리를 세로로 쪼개고 제자리에 내려앉았다. 이후 곧바로 굽혔던 무릎을 피며 앞으로 쭉 뻗어나갔다. 그 칼끝에 검을 찔렀던 놈이 걸려 목이 잘렸다.
넷이 그렇게 순식간에 죽었다. 다른 놈들이 놀란 숨을 들이켜기도 전에 귀신같은 장건의 칼이 그들을 덮쳤다.
놀라서 무작정 칼을 휘두르던 놈 둘은 장건의 옷자락 하나 베지 못하고 각각 목이 잘리고 허리가 절반쯤 베여나가며 쓰러졌다. 길쭉한 장검을 들고 있던 놈은 장건이 칼을 휘두른 직후를 노리고 그 긴 칼을 찔러 넣었으나, 오른쪽으로 빙글 돌며 바짝 붙은 장건이 그의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때리자 쿨럭 기침 한번을 하고는 주저앉았다.
오중서는 그제야 그냥 보고만 있으면 안 된다는 걸 깨닫고 칼을 바로잡으며 달려들려 했다. 하지만 그가 딱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디디려는 순간 칼잡이 하나를 더 끝장낸 장건이 휙 몸을 돌려 그를 마주 보았다.
칼잡이 여덟을 그렇게 보내버리고도 오중서를 마주 보는 장건의 눈은 깊게 가라앉아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호흡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오중서는 곧바로 공격하지 못하고 멈칫하고 말았다.
그때 오중서에게 틈을 만들어줘야 한다 생각했는지 남은 무사 하나가 왁-고함을 지르며 장건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허리를 뒤로 쭉 뺀 것이 적당히 공격하는 시늉만 하려 했던 것 같지만, 그가 물러나려는 속도보다 장건이 따라붙어 쿡 칼을 찌르는 것이 더 빨랐다. 칼날이 얼굴을 그대로 뚫고 들어갔다.
그 순간 오중서가 땅을 박찼다. 칼잡이가 자신의 목숨을 바쳐-본인은 그럴 생각까진 아니었지만-만든 틈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다음 순간 길쭉한 섬광을 그린 오중서가 장건을 지나 멈췄다. 장건의 칼날은 여전히 칼잡이의 얼굴에 틀어박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싸움에 입을 떡 벌리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칼잡이, 입술 및 흉터가 있던 건달은 확 밝은 표정을 지었다. 장건의 칼이 움직이지 못했으니 오중서가 이겼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때 앞으로 쭉 칼을 뻗은 자세 그대로 서 있던 오중서의 가슴팍에서 바람 터지는 소리가 퍼버벅 나더니 마치 보이지 않는 망치에 맞은 듯 움푹움푹 구겨졌다. 장건은 칼을 놓고 낮은 자세로 두 주먹을 들고 있었다.
곧 오중서는 입으로 왈칵 피를 쏟아내더니 기우뚱 앞으로 쓰러졌다. 그렇게 상대하던 자를 모두 쓰러뜨린 장건은 시체에서 칼을 뽑아내고는 휙휙 털었다. 그리고 덜덜 떨기 시작한 입술 밑 흉터남에게 터벅터벅 다가왔다.
다가온 장건은 동그랗게 뜬 눈으로 덜덜 떨기만 하는 건달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의 손이 들리자 건달은 움찔 떨며 더 꼼짝도 하지 못했다.
장건은 그렇게 벌벌 떠는 건달의 품으로 손을 뻗어 그가 가지고 있던 연초 주머니와 작은 종이를 꺼냈다. 그리고 칼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서위량이 네 대장이지? 가서 전해라. 내가 당신 부하들을 죽였고, 직접 가서 마무리를 지을 것이니 준비하라고. 알아들었나?”
건달은 그 말에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꺼져,”
그는 그 말만 기다렸다는 듯 들고 있던 칼도 내던지고 모여 있는 마을 사람들을 헤치며 도망쳤다.
장건은 후다닥 달아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방금 꺼낸 종이와 연초를 말았다. 그걸 입에 물고 검지 끝을 연초 끝에 가져다 대자 잠시 후 스멀스멀 연기가 피어올랐다. 피어나는 연기를 한 모금 빨아들인 장건은 고갤 돌렸다.
그곳엔 객잔 주인 여 씨와 호룡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을 객잔의 불길이 붉게 비추고 있었다.
그들을 마주 본 장건이 말했다.
“뭘 구경만 하시오? 불 안 끌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