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33)
33화
서위량은 장건의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입에 문 곰방대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장건을 노려보는 시선 그대로 물었다.
“혼자냐?”
“혼자요.”
선선한 장건의 대답에도 서위량은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슬쩍 눈짓했다. 그러자 무사 두엇이 후다닥 달려 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누가 더 있을 리 없었다.
아무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젓는 부하들의 모습에 서위량은 의아한 눈이 되었다.
“장건이라고 했나? 자네 뭔가?”
“···무슨 질문이 그딴 식이요?”
서위량은 정말 혼자 나타난 장건을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뒤편에 서 있는 부하들에게 휙휙 손짓했다.
건물 안에서 피떡이 된 남자 둘이 질질 끌려 나왔다. 장건도 아는 남자들이었다.
“어젯밤에 여길 뜨려는 이 새끼들을 잡았지. 그래서 자네가 왜 내 마차를 습격했는지 알고 있네. 돈 때문이었다지?”
장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얼마나 얻어맞았는지 완전히 일그러진 얼굴에서 피를 질질 흘리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 남자도 부어오른 눈두덩이 사이로 희미하게 장건을 마주 보고 있었다. 장건이 알기로 그 남자의 이름은 공평이었다.
“그 양굉이라는 도둑놈이 내 부하를 꾀어서 계획을 짰다는 것도 다 알아냈네. 덕분에 내 계획은 엉망이 되었지. 그 가짜 수송 마차로 목장을 망치는 사파를 소탕할 생각이었는데.”
저 피떡이 된 남자가 공평이라면 지금 끌려온 그대로 바닥에 엎어져 있는 이는 그의 동생 공랑일 것이다. 하지만 흐릿하게나마 의식은 있어 보이는 공평과는 달리 공랑은 엎어진 그대로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제일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그거야, 자네의 존재. 내 아들은 연 씨 세가에서 어릴 적부터 십 년이나 수련했어. 자랑 같지만 녀석 무공이 괜찮았지. 그런데 자네에게 죽었어. 오 무사, 오중서는 또 어떻고? 그놈은 세가나 문파에서 무공을 배운 건 아니어도 감산 칼잡이 중엔 손에 꼽히는 녀석이었는데.”
서위량은 잠시 곰방대를 입에서 떼더니 걸쭉한 침을 찍 뱉었다.
“···고놈도 어젯밤 자네 손에 죽었지. 거기에 내 부하 열, 아니 아홉도 한꺼번에 끝장냈지? 그럼 고수도 보통 고수가 아니라는 건데··· 무림맹 타격대 정도이거나 어쩌면 황군 고수 수준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지. 하지만 이 새끼들을 아무리 족쳐봐도 자네의 정체는 모른다더군. 그러니 좀 묻겠네. 자네 뭔가? 뭐, 무림맹 순찰대나 암행 황군 그런 건가?”
장건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 공평의 눈을 마주 보다가, 천천히 조조의 등에서 내렸다. 조조는 장건이 내리자 뒤로 돌아 총총 장 내를 빠져나갔다. 그 모습이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그들을 바라보던 칼잡이들은 조조가 잘 훈련받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장건은 그런 훈련 시킨 적 없었다.
조조를 보내고 우두커니 선 장건은 왼손으로 칼집을 잡으며 말했다.
“내가 무림맹 소속이거나 혹은 그 암행 황군이면, 그럼 뭐가 달라지겠소?”
“···뭐가 달라지냐고?”
장건은 삿갓으로 반쯤 가려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 아들과 난 무공을 겨뤘고, 내가 이겼소. 그 심장에 날붙이를 쑤셔 넣진 않았지만 결과적으론 내가 그를 죽였지. 복수하고 싶다면 덤비시오. 그게 아들을 잃은 아비의 마땅한 권리일 테니까.”
복수 이야기가 나오자 서위량의 눈이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태도에 맞춰 다른 칼잡이들 또한 숨을 죽이며 조용히 살기를 키웠다.
“···내 복수가 정당하다? 그럼 그냥 내 손에 죽어주겠단 말인가?”
“아니. 그저 내가 누군지, 그리고 당신이 이 땅에서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일 뿐이오.”
서위량은 잠시 아무 말이 없다가 씨익 웃으며 들고 있던 작은 곰방대를 옆으로 휙 던져버렸다.
“그래, 맞아. 정체 같은 건 이제 의미가 없지. 난 자네를 죽일 생각이고, 자네는 그냥 죽어줄 생각이 없다는 게 지금 우리 둘 사이에 있는 것 전부야. 마음에 드는 친구군. 이런 식으로 만나는 게 아니었다면 좀 더 교분을 나눠볼 수 있었을 텐데.”
그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살살 가로젓다가, 휙 손을 털며 말했다.
“쳐라.”
서위량의 그 짧은 명령에 그를 노려보던 칼잡이들이 곧장 우아아-소리를 지르며 칼을 뽑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재빠르긴 했으나 제대로 무공을 익힌 움직임들은 아니었다. 어찌 보면 이 황야에서 제일 흔히 무림인이랍시고 뻗대는 놈들의 모습이었고, 역시 제일 흔히 죽어 나가는 인간군상이었다.
때문인지 제일 먼저 달려온 놈은 머리 위로 높이 든 칼을 내리쳐 보지도 못하고 양팔과 목이 한꺼번에 잘려 나갔다.
번쩍 칼을 뽑아 그놈을 베어 죽인 장건은 앞으로 쓰러지는 그 시체를 슬쩍 피해 나아가며 칼을 휘둘렀다. 그를 노리던 칼 두 자루가 맑은 쇳소리를 내며 튕겨 나갔다. 그 칼잡이 둘은 가볍게 부딪쳤음에도 휘청 밀려나는 칼날에 당황하며 자세를 가다듬으려다가 그대로 장건의 칼에 목이 달아났다.
한 놈이 장건의 정면으로 곧은 검을 찔러왔다. 동시에 등 뒤에서 흔치 않게 도끼를 든 놈이 그걸 훌쩍 내려찍어왔다.
장건은 왼쪽으로 빙글 돌아 찔러오던 칼을 옆으로 흘리며 돌아섰다. 직후 칼을 올려 치자 내려찍던 도낏자루가 툭 잘려 나갔다. 그와 함께 장건의 뒷발차기는 검을 든 놈의 가슴팍을 움푹 패주었다.
가슴을 걷어차인 놈은 그대로 왈칵 피를 쏟고 죽었다. 잘려 나간 도낏자루를 들고 멍한 표정이 되었던 놈은 이어진 장건의 칼날에 허리에서 내장을 쏟고 풀썩 쓰러졌다.
다섯 놈이 순식간에 쓰러지자 나머지 놈들은 놀라서 멈칫거렸다. 그들은 진짜 고수와 이런 식으로 싸워 본 적이 없었다. 서위량, 서상정, 오중서도 그들보다는 고수였지만 이렇게 빠르고 무자비하게 싸우지 않았다.
그래서 앞으로 달려들지 못하고 머뭇거리자니 이번엔 장건이 그들에게 달려왔다.
귀신이 다가오는 듯한 그 움직임에 화들짝 놀란 칼잡이들은 반사적으로 자신들이 든 날붙이를 앞으로 휘둘렀다. 하지만 그저 칼을 앞으로 들이미는 듯한 그 동작으로는 장건의 옷깃 하나 건드릴 수가 없었다.
칼잡이들은 목이 잘려 나가고 허리가 끊어졌으며 사지가 몸과 분리돼 투두둑 바닥을 굴렀다. 개중엔 나름 정신을 차리고 정신을 집중해 장건에게 일격을 날리는 자도 있었지만, 장건의 칼은 항상 그들보다 늦게 움직여서 먼저 닿았다.
메마른 저택 마당이 피로 축축해졌다. 죽은 이들이 쏟은 피는 바닥의 먼지를 빨아들여 본래보다 훨씬 더 걸쭉해져서 이리저리 오가는 발에 진흙처럼 뭉개졌다.
서위량의 무사들은 스무 명 정도 되던 자신들이 그렇게 거짓말처럼 죽어 나가자 덜컥 겁을 먹고 슬금슬금 서위량 주변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그것도 너무 늦어 장건이 멈춰서 휙 칼을 털었을 때 서위량 뒤에서 두려움에 찬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칼잡이는 셋이 전부였다.
자기 부하 대부분이 쓸려나간 상황에도 서위량은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장건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한바탕 움직였던 장건은 그 꼴을 보며 물었다.
“부하들이 죽을 걸 알았을 텐데, 굳이 앞세운 이유가 뭐요?”
“자네 실력을 좀 보려고.”
장건이 피식 웃었다.
“그래, 잘 보셨나?”
서위량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잘 보았지. 상정이랑 오 무사가 진 이유를 알겠군. 실력을 보니 별호가 있을 법도 한데 혹시 물어봐도 되겠나?”
“떠돌이에게 별호가 어디 있겠소?”
“그건 안타깝군. 좀 더 오래 살았으면 분명 별호가 생겼을 터인데.”
무슨 말인가 싶었던 장건은 툴툴 웃었다. 그가 오늘 여기서 죽을 테니 별호가 생길 일 없을 것이란 말이었다.
서위량은 그 웃음을 보며 자신도 씨익 웃더니 느긋하게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자기 뒤에 숨은 무사 중 하나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예, 예. 어르신.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자가 너무 빨라서···”
“가까이 오게.”
두려움에 떨며 변명하던 무사는 그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서위량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누가 어찌할 틈도 없이 서위량의 손이 그의 가슴팍으로 파고들었다.
“어, 어어···? 왜, 왜?”
“너무 상심하지 말게. 자네 부모에게 장례금 정도는 치러 줄 테니까.”
무사의 가슴을 파고들었던 그의 손이 쑥 나왔을 땐, 그 손에 벌컥거리는 심장이 들려 있었다.
“···어, 어머니···”
다른 무사와 장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동안, 그리고 심장이 뽑힌 무사가 마지막 숨을 내뱉는 동안 서위량은 갓 뽑아낸 심장이 먹음직스럽다는 듯 바라보다가 훌떡 삼켜버렸다. 그 크기 때문에 분명 단숨에 삼키기 힘들어야 할 텐데, 그는 그걸 무슨 꿀 빨아 마시듯 꼴깍 넘겼다.
“으으, 뭐, 뭐야?”
“어, 어르신?”
사람의 심장을 뽑아 삼키는 모습에 남은 무사 둘은 놀라서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장건은 무슨 약이라도 한 것처럼 환희에 겨워 바들바들 몸을 떠는 서위량의 모습에 욕지거리를 중얼거렸다.
“염병··· 또 뭔데.”
잠시 그렇게 미친놈처럼 혼자 떨던 서위량은 곧 제정신을 차리고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장건을 노려보았다. 그의 두 눈에선 시뻘건 광채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처음 이 무공, 혈심광화공血心狂火功을 얻었을 땐 평생 내가 이걸 쓸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지. 그래서 상정이에게도 가르치질 않았어. 괜히 마공을 익혔다가 무림맹이나 황군에게 걸려 좋은 것 없지 않은가? 무공을 익히던 연 씨 세가에 들킬 수도 있었고. 하지만 녀석의 시체를 부여잡고 있으려니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더군. 이러나저러나 일단 살아야 뭐라도 할 것 아닌가.”
서위량은 방금 사람 심장을 뽑아먹은 것 치고는 꽤 침착해 보였다. 물론 그래봐야 입과 손, 가슴께에 덕지덕지 피를 묻히고 있어서 섬뜩할 뿐이었다.
장건은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 섬뜩함을 마주 보았다. 서위량은 그런 장건의 차분함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곧 으르렁거렸다.
“자네를 죽이고 엿 같은 청수촌 비렁뱅이들, 그리고 도적놈들도 모조리 죽여버릴 것이네. 다 죽이고 불태워 버릴 것이야. 내 아들의 죽음에 연관된 놈은 아무도 살려두지 않아.”
“그 후엔?”
“뭐?”
장건은 느릿한 손길로 쓰고 있던 삿갓의 끈을 풀어 옆으로 휙 던졌다. 삿갓은 휘리릭 날아서 한쪽 구석에 떨어졌다.
“다 죽이면, 그다음엔 뭘 할 것이오?”
“그딴 게 궁금한 게냐? 넌 어차피 뒈지고 없을 텐데?”
서위량의 거친 말에도 장건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거렸다.
“궁금할 수도 있지.”
서위량은 그런 장건의 태도가 어이가 없어서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허허거리던 그 웃음소리는 점점 커져서 쩌렁쩌렁 울리더니 저택을 넘어 목장 전체를 윙윙 울리기 시작했다. 아무런 미동도 없는 장건과는 다르게 그와 제일 가까이 있던 무사 둘은 귀를 부여잡고 신음을 흘렸다.
“아악··· 끄어어···!”
“어, 어르신···! 제발!”
두 사람이 벌벌 떨며 굳어있자 서위량은 갑자기 뚝 웃음을 멈추더니 그 둘의 가슴팍에 각각 자신의 손을 틀어박았다. 무사 둘은 꺽-하는 비명 한 번씩 지르고 심장이 뽑혔다. 서위량은 곧장 뽑은 심장을 자기 입안으로 쑤셔 넣었다.
그렇게 심장 둘을 더 삼킨 서위량은 입을 쩍 벌리고 하늘을 올려보며 끅끅대다가 휙 다시 장건을 향해 돌아섰다.
“뭘 할 것이냐고? 다 죽이고 뭘 할 거냐고 물었나?”
“그렇소. 그런 짓거리를 하면 무림맹에서 추격대가 붙을 텐데.”
서위량은 이제 붉은 광채를 뿜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흰자가 시뻘겋게 물들어버린 상태로 히죽 웃으며 피 묻은 입술을 핥더니 말했다.
“그럼 그 추격대도 다 죽이고 궁을 찾아가야지! 이 무공도 궁에서 준 것이란 말이야! 아마 나 정도면 궁에서 중요한 일을 맡을 수 있지 않을까? 흑사黑蛇는 너무 보잘것없고, 아마 적사赤蛇나 백사白蛇정도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하하하! 어쩌면 뱀이 아니라 장군의 지위를 줄지도 몰라! 그거 기쁜 일이군! 손광의 밑에서 빌빌거리던 내가 그놈 위에 올라앉을 수 있다니!”
자기 혼자 외쳐대는 서위량은 그 잠깐 사이에 냉철한 두목에서 광인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는 장건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껄여대며 혼자 웃어 재꼈다. 확실한 것은 지금 그의 두 손과 팔뚝을 타고 이글거리기 시작한 불길이 아주 위험해 보인다는 점뿐이었다.
하지만 장건은 그런 모습을 보고도 그냥 피곤하다는 듯 쓰게 웃었다.
“이거 굿이라도 해야 하나. 요즘 왜 자꾸 만나는 새끼마다 저 지랄인 거야.”
“하하하하! 고맙구나, 장건! 덕분에 내가 장군이 될 것이다! 난 장군이야!”
“미친놈.”
그렇게 처웃던 서위량이 갑자기 짐승처럼 훌쩍 달려들었다. 슬쩍 몸을 굽히는 동작이 보이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 이글거리는 두 손바닥이 장건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장건은 뒤늦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먼저 닿을 듯했던 서위량의 손바닥은 허공을 때렸다. 그리고 어느새 장건은 서위량의 뒤쪽 멀찍이 칼을 뻗고 서 있었다. 장건이 휙 칼을 털고 나서야 서위량의 옆구리가 쩍 갈라졌다.
“오오···”
그동안 바닥에 엎어져 싸움을 지켜보던 공평은 엉망진창인 얼굴로 감탄사를 흘렸다. 장건은 한발 늦게 움직였음에도 서위량의 공격을 피하고 한칼 먹인 것이다.
하지만 장건은 칼을 집어넣지 않았다. 도리어 가라앉은 표정으로 칼을 잡고 서위량을 노려보았다.
그 경계가 과한 것이 아니었는지 옆구리가 쩍 갈라진 서위량은 스르르 뒤를 돌아보았다. 괴물처럼 일그러진 그의 얼굴이 표현하는 것이 고통인지 분노인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눈은 이제 완전히 벌겋게 변해서 뭐가 흰자위도 눈동자인지 구분도 되질 않았다.
그는 그렇게 일그러진 얼굴로 입을 쩍 벌리며 끄아아-하는 고함을 지르더니, 다시 장건에게 달려들었다. 쩍 갈라졌던 옆구리는 어느새 꽉 오므라져 있었다.
장건은 톡톡 가볍게 물러서며 흉악하게 휘둘러지는 서위량의 두 손을 피했다. 놈은 장건이 물러서자 곧장 따라붙으며 두 손을 휘둘렀다. 장건이 이 땅에서 만났던 무림인 대부분은 다들 칼이나 검, 창 등등 날붙이를 썼는데, 저렇게 두 손바닥으로 공격해오는 자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장건을 놀라게 하는 것은 그 투박한 장법이 아니었다. 그의 눈을 반짝이게 하는 것은 서위량의 두 손과 팔뚝을 타고 이글거리는 화염이었다. 한번 스칠 때마다 얼굴이 후끈해지는 열기와 압박감. 중원에서 수련할 적에도 본적 없던 무공. 장건도 아직 상상만 하던 그것. 열양장법.
그때 장건의 등이 턱 하고 벽에 막혀 멈췄다. 저택의 벽이었다.
“이-노옴-!”
서위량이 고함을 지르며 두 손바닥을 쭉 뻗었다. 그 안에 담긴 열기가 화끈 덮쳐왔다. 그러나 장건은 가볍게 땅과 저택의 벽을 툭툭 차고 뛰어올라 서위량을 뛰어넘었다. 서위량의 두 손바닥은 아무도 없는 저택 벽을 후려쳤다.
쿵-소리와 함께 둥그런 구멍 두 개가 뚫리고 그 주변으로 화르륵 불이 붙었다. 하지만 서위량은 자신의 저택에 불이 붙었음에도 아무 상관 없는지 곧바로 손을 뽑고 뒤돌아 다시 장건에게 달려들었다.
그 공격을 두어 번 더 피한 장건은 눈으로만 봐서는 더 볼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서위량의 장법은 투박하기 그지없었고 겉으로 보기엔 불길과 열기가 뿜어져 나온다는 것 외엔 신통할 게 없었다.
그래서 장건의 칼날이 다시 섬광을 그렸다.
단숨에 서위량의 두 다리와 상체가 쭉쭉 갈라졌다. 직후 장건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서위량은 옆구리 상처가 오므라든 것처럼 그 상처들도 주륵 피를 흘리고 오므라들어 피를 막고 있었다. 그러나 장건이 눈썹을 찡그린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그는 불길이 이글거리는 두 팔도 베어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서위량의 두 팔뚝은 베이지 않았다. 사람 셋을 잡아먹고 커진 내력이 두 팔에 극도로 집중되어 칼날을 튕겨내고 상처하나 남지 않았다.
“으하하-!”
서위량은 그게 자랑스럽다는 듯 처웃으며 다시 덤벼들어 두 손을 마구잡이로-장건 입장에서는 마구잡이였다-휘둘렀다. 사실 장건으로서는 실소가 흘러나오는 장면이었다. 두 팔만 멀쩡하면 뭐 하는가? 장건의 칼은 서위량보다 빨랐고, 다른 부분은 잘만 베여 나갔다. 두 팔을 제외한 다른 상처들이 그걸 증명했다. 장건 입장에선 그냥 두 손바닥만 슬슬 피하다가 칼로 썰어 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하지만 장건은 화르륵 이글거리는 두 손바닥을 보며 마음을 바꿨다.
“죽어-라아-!”
서위량은 지치지도 않는지 요리조리 피하는 장건을 끝까지 따라붙으며 손바닥을 휘둘렀다. 시뻘겋게 변한 두 눈과 그 집요함이 합쳐지니 섬뜩한 면이 있었다. 그때 장건이 갑자기 뒤로 훌쩍 물러났다. 그리고는 칼집에 칼을 집어넣었다.
마공 때문에 이성이 거의 흩어진 서위량은 그 모습을 보고도 뭔가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지금 당장 장건의 손에 무기가 없다는 사실만 보고 전신의 공력을 일으켜 훌쩍 달려들었다. 이글거리는 두 손바닥이 장건을 향해 쭉 뻗어왔다.
칼을 집어넣은 장건은, 그 칼을 허리 뒤로 휙 젖히며 다가오는 서위량의 두 손바닥에 자신의 양손을 마주 뻗었다.
장건의 두 손과 서위량의 두 손이 손뼉이라도 치듯 마주쳤다. 그러나 소리는 짝이 아니라 대포라도 쏘는 것처럼 꽝-하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가장 먼저 서위량의 손과 팔뚝을 감싸던 불길이 장건의 손과 만나는 지점을 시작으로 소용돌이를 그리며 흩어져갔다. 불길 다음에는 피부가, 다음엔 근육이, 마지막으로는 뼈까지 와자작 뒤틀려갔다.
“컥!”
이후 서위량은 걸레짝이 된 두 팔과 함께 피를 토하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반대로 장건은 천천히 희미한 연기가 나는 두 손바닥을 가슴께로 끌어올렸다가, 천천히 밑으로 내리누르며 후-하고 호흡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슬쩍 웃으며 손을 탈탈 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