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35)
35화
* * *
하남성 숭산에는 그리 크지 않은 절 하나가 있다.
수백 년 전 천축에서 온 승려가 세운 절로, 처음엔 그저 복잡한 속세를 떠나 수행하려는 자들로 조용한 산사였다. 그러던 것이 달마라는 또 다른 천축 승려의 돈오頓悟로 조금 더 대중을 위한 불법을 설파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통제할 수 없는 민간세력이 생기는 것을 경계한 황군에게 직접적인 견제를 받는다.
이를 그 달마가 직접 황제를 찾아가 자신들은 그저 불법을 설파하고 그로서 사람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갈 방향을 제시하고자 함 외에는 아무런 의도가 없음을 피력한다.
당시 황제는 가히 대사大士라 칭하기에 부족함 없는 달마의 모습에 직접 그의 법력을 시험하고자 그를 데리고 장강에 이른다. 그리고 자신의 가공할 무공으로 세 걸음 만에 장강을 건너며 달마에게도 배 없이 자신이 있는 곳으로 건너온다면 소림사에 대한 억압을 멈추겠다 약속한다.
이에 달마는 옆에 있던 갈대 하나를 뽑아 그것을 타고 장강을 미끄러져 건너며 자신의 법력을 증명했다.
이후 황제는 크게 웃고 기뻐하며 달마와의 약속을 지켰고, 달마는 소림사의 규모를 전과같이 작게 유지하는 것으로 황제의 선의에 답했다. 훗날에 황군은 단순히 칼과 창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불가해한 일이나 요괴가 날뛰는 일이 있으면 소림사의 조언을 얻었다.
그렇게 소림사는 그 규모 자체는 그리 커지지 않았으나 중원 선종 불교의 본산이 되어 많은 민중과 고대 세가의 존경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존경은 새로운 대륙이 발견되고 무수한 사람이 건너간 지 백 년이 흐른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소림사 제자 진견은 그런 소림을 자신의 집이자 가족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사랑했다. 또 그랬기에 지금 자기 앞에 앉아 눈을 감고 염주를 굴리는 자신의 스승 혜원 대사의 슬픔을 이해했다.
혜원이 걸걸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녀석이 어디로 갔다고?”
“항주에서 배를 타고 신대륙으로 간 듯합니다.”
“허어··· 그저 그리 멀리 도망간다고 연이라는 것이 끊어지는 것은 아니거늘···”
혜원 대사는 수십 년의 수행이 무색하게 고개를 떨구며 말을 이었다.
“정말 녀석이··· 그걸 훔쳐 간 게냐?”
진견은 마음 같아선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것이 어떤 물건인데 냅다 들고 도망친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렇다고 혜원에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차기 방장이 타락해 도망친 일로 누구보다 마음이 상했을 것은 다른 누구보다 지금 앞에 있는 혜원이었다.
“예. 정황상 진조가 가져간 것이 맞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바다까지 건너가며 도망칠 이유가 없지요.”
고개를 떨군 혜원은 대답을 듣고도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진견도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해 산사의 고요함인지 죄인의 침묵인지 모를 조용함이 암자 안을 맴돌 뿐이었다.
“···그럼 어쩔 수 없구나. 제자 진견은 들어라.”
“예, 방장. 제자 진견 듣고 있습니다.”
혜원은 여전히 고개를 떨구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자 진조를··· 파문한다. 너 진견은··· 신대륙으로 가 진조를 찾아··· 소림이 준 것을··· 모두 거둬들이거라··· 모두···”
진견은 곧게 앉은 채로 반장으로 하며 담담히 대답했다.
“예, 방장. 진조를 찾아 소림이 그에게 준 것과, 그가 훔쳐 간 것 모두 되찾아오겠습니다.”
그날 소림의 아라한阿羅漢 진견이 하산했다. 목표는 파문 제자 진조의 징벌과 보물의 회수였다.
* * *
하와이夏渦夷 태수 연하상은 편안한 의자에 느긋이 누워 그늘 밑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멀리 보이는 수평선, 푸른 바다, 그 바다에 떠다니는 범선들, 그리고 반짝이는 모래사장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이 하와이 태수를 사실상 관직 생활의 끝으로 보고 어떻게든 피하려 했다. 중앙과 밑도 끝도 없이 멀어지는 데다가 섬 원주민과 이주민 사이의 갈등, 중원에서 신대륙으로 건너가는 온갖 인간군상의 충돌로 골치가 아프다는 게 이유였다.
“뭘 모르는 놈들이라니까.”
연하상은 옆 탁상에 놓여있던 음료를 들어 홀짝이며 슬쩍 웃었다. 사실 그처럼 더 높은 관직을 꿈꾸지 않는 이에게 이 섬들은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었다.
중앙과 멀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의 간섭이 없어 그가 왕과 같다는 말과 같았고, 원주민과 이주민들 사이의 갈등은 이미 백 년의 시간 동안 많이 봉합되어 있었다. 이곳을 거쳐 신대륙으로 떠나는 이들도 적당히 황군의 위엄을 앞세워가면 통제하기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문제가 있다면 가끔 이곳의 풍경을 보고 휴식을 취하러 오는 황족들이 있다는 것인데, 그들은 북쪽 섬들의 별장에서 지내는 편이라 건너올 적 빼면 별다른 접촉도 없었다. 가끔 식사나 하고 술이나 마시며 이곳 원주민들의 춤과 노래를 공연해주면 다들 만족하며 중원으로 돌아가는 편이었다.
“아. 이게 사는 거지. 아득바득 높은 관직 바라며 살아봐야 뭐하나.”
별로 특별할 것도 없이 그렇게 대부분의 하와이 태수들은 천혜의 풍경에 취해, 혹은 원주민들의 춤에 취해 태수직이 끝나고도 이곳에 살았다. 심지어 더 높은 관직을 고사하고 태수로 여생을 마친 이도 있었다.
연하상은 자신도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지긋지긋했던 가문과 빡빡했던 중원 생활을 벗어나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그는 수평선 여기저기 천천히 움직이는 범선들을 바라보며 다시 손에 든 음료, 아니 음료로 위장한 술잔을 홀짝였다. 그는 지금 이 그늘과 손에 들린 술 한잔이면 앞으로도 남은 인생이 행복하리라 믿었다.
그때 가벼운 경장 갑옷을 차려입은 무사 둘이 헐레벌떡 연하상에게 달려왔다. 교위 우상과 교위 켈라니였다. 그중 켈라니는 원주민 출신 황군으로 이주민과 하와이 원주민 사이 교류의 상징이었다.
“오! 어서 오게, 우상, 켈라니! 또 뭐가 그렇게 급하신가? 바쁘게만 살아봐야 재미없다네.”
연하상의 인사에 우상의 표정이 일그러졌고, 켈라니는 그저 가벼운 한숨만 내쉬었다. 연하상이 그런 둘의 표정을 보고 되물었다.
“이 사람들아. 그래도 내가 자네들 상관인데 표정이 그게 뭐야? 뭐 진짜 문제 생겼나?”
“···교위 우상, 태수님을 뵙습니다.”
“교위 켈라니, 태수님을 뵙습니다.”
두 교위는 딱딱한 태도로 인사하더니 이어 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우상은 품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전에 없이 뭔가 심각한 모습에 연하상은 그 종이를 받아들고 조심스레 펼쳐보았다.
‘신대륙에서 놀다 올게요. 진하가 같이 가니까 걱정할 것 없어요.’
“···이게 뭔가?”
연하상의 멍한 되물음에 우상이 대답했다.
“제가 그걸 어디서 찾았는지 아십니까?”
“글쎄? 허허, 자네 딸 방에서 찾았나? 녀석이 괄괄한 게 언젠가 사고 한번 칠 관상인데.”
웃으며 말하던 연하상은 갑자기 표정이 굳었다.
“잠깐. 진하?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이틀 전 연회에서 보았지요.”
가만있던 켈라니가 해준 대답에 연하상이 기억난다는 듯 다시 웃었다.
“아! 그 검 끝에 술잔 올려놓고 춤춘 그 여검객? 히야··· 무공 진짜 열심히 익힌 모양이더구먼. 그렇게 춤을 추고도 술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거 기억나나?”
“큰 잔이었고 애초에 술이 조금 들어있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이 사람아. 그게 어딘가. 사람이 그러면 안 돼. 뛰어난 사람을 보면 칭찬도 하고 그래야지. 자네는 하와이 사람이 그렇게 딱딱해서야-”
“태수님!”
켈라니와 쓸데없는 잡담으로 빠지는 듯했던 연하상은 그제야 어어 거리며 우상을 바라보았다. 우상은 그런 연하상을 정말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
“그 검객이 누구 호위였는지는 기억나십니까?”
“어? 그야 요번에 놀러 온 공주님의 호위무사였지. 아무렴 내가 그것도 까먹었을···”
거기까지 말하던 연하상의 얼굴이 멍해졌다. 우상은 그런 연하상의 얼굴을 보며 축 처졌다.
“···우리 엿 됐습니다. 진짜로.”
태수의 집을 청소하던 시녀는 갑자기 끼에엑-하고 들린 괴성에 움찔 놀랐다. 마치 광인이 죽음의 순간 내지른 단말마처럼 섬뜩하고 오싹한 게 온몸에 닭살이 돋는 것 같았다. 하지만 또 그 목소리를 어디선가 자주 들어본 듯해서 시녀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 * *
장건은 목을 스치는 쌀쌀함에 옷깃을 추슬렀다. 청수촌에서의 사건 이후 감산성에서 멀어져 보자는 생각에 남동부 쪽으로 쭉 내려온 지 한참이었다. 어느새 겨울에 접어든 날씨에 그의 얇은 옷자락은 숭숭 뚫렸다.
눈이 펑펑 내리는 북쪽 지방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추운 것은 추운 것이었다. 장건은 반쯤 남은 꽁초를 입에 물고 뚱하니 중얼거렸다.
“제기랄. 그냥 신사천 쪽으로 갈 걸 그랬나. 아니면 천후성이나··· 천후성이면 춥진 않았을 텐데···”
터벅터벅 걷던 조조는 지가 여정을 이리 잡아놓고 왜 지랄이냐는 듯 불만스레 푸르륵거렸다.
“인마, 그래도 거긴 몇 번 가봤잖아. 따듯하긴 해도 재미는 없는 곳이야. 황군도 너무 많고.”
그럼 다른 곳도 있지 않냐는 듯 조조가 다시 투레질했다.
“신사천? 거긴 무림맹이 있지 않냐. 나 같은 떠돌이가 머물기 좋은 곳은 아니지.”
조조는 다시 한번 자기가 말 꺼내놓고 왜 다 싫다며 지랄이냐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장건도 그게 웃겨서 피식 웃어버렸다. 그들은 그렇게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며 슬렁슬렁 걸음을 내디뎠다. 그래도 걷긴 걷는 것이라고 슬금슬금 그렇게 작은 언덕 하나를 넘게 되었다.
“오.”
언덕 위에 올라서자 저 멀리 작은 도시가 보였다. 가슴이 뻥 뚫리다 못해 휑해지는 하늘과 그 아래 보이는 도시의 모습, 눈 덮인 산맥들이 시야 한쪽을 가로막고 선 풍경.
잠시 멈춰서 그 정경을 바라보던 장건은 툭툭 조조의 고삐를 당겼다.
“가자. 오늘은 객잔에서 잘 수 있겠다.”
조조도 기대된다는 듯 조금 전보다는 빠르게 털털털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도시에 가까워지자 언덕을 넘기 전까지 보기 힘들었던 마차나 사람들이 보였다. 오가는 사람이 꽤 많은 것으로 보아 멀리서 본 것보다는 큰 도시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오늘 저녁 따듯한 식사와 잠자리를 기대하는 장건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도시 안에 들어선 그는 자기도 모르게 조조의 걸음을 멈추고 한쪽에 잔뜩 모여있는 사람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곳엔 높은 처형대와 올가미 진 밧줄을 뒤집어쓴 사람 넷이 올라서 있었다. 그 네 사람은 흑흑 흐느끼거나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깨끗한 옷을 차려입은 중년인이 뭔가 서류 하나를 꺼내 큰 소리로 읽고 있었다.
“···교수형에 처한다! 이광! 마차 탈취와 강도, 그리고 양민 세 사람을 살해한 죄로 교수형에 처한다! 여송연! 남편을 독살한 죄로 교수형에 처한다! 강역사! 부녀자를 강간하고 살해한 죄로 교수형에 처한다! 이상! 죄인 4인에 대한 형을 집행하겠다!”
그의 말이 끝나자 두어 사람이 그 위로 올라가 죄수들의 머리에 검은 천을 씌웠다. 죄수들은 대부분 그즈음 멀쩡히 서지 못하고 덜덜덜 떨고만 있었다. 울던 여인은 제대로 울지도 못하고 힉힉 경직된 숨만 쉬었다.
장건이 알기로는 저렇게 천을 뒤집어씌우기 전에 유언도 들어주고, 죄수가 진정할 시간도 적당히 주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지금 보이는 모습은 그런 배려 없이 대충 형을 집행하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외쳤다.
“저런 시부럴 새끼들! 빨리 죽여라!”
모여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 그 목소리가 도화선이 되었는지 웅성거리기만 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큰 목소리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꼴 보기 싫다! 빨리 죽여라!”
“저 새끼 때문에 내 거래가 며칠이 미뤄졌는지 알아? 빨리 죽여라!”
“저 강간범 새끼! 아랫도리를 먼저 뜯어버렸어야지!”
모든 사람이 외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뜨문뜨문 사람들 사이에서 외치는 목소리들은 하나같이 과격하기 그지없었다. 결국 처형대 위에서 듣다 못한 집행인이 외쳤다.
“다들 닥치시오! 형의 집행 방식에 불만이 있다면 우리 검룡문에 직접 문의하시오! 이 도시의 법은 우리가 집행하니까! 그리고 이제 매달기만 하면 되는데 뭐가 그렇게들 불만이시오!”
다행히 그 외침에 웅성거림은 금방 잦아들었다. 버럭 소리를 질렀던 자는 사람들이 조용해지자 헛기침을 하며 옷자락을 추스르더니 처형대 아래를 향해 휙 손짓했다. 그 손짓에 아래에서 대기하던 사람이 덜컥 장치를 당겼다.
동시에 죄수들의 발판이 벌컥 열리며 투두둑 목이 매달렸다.
죄수를 죽이라 외치던 사람들은 막상 그들이 진짜 매달리자 잠시 조용해졌다. 세 죄수는 발판이 꺼지며 곧바로 목이 꺾였는지 조용했는데, 한 사람은 죽지 않았는지 꺽꺽대며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을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네 죄수 모두 축 처져서 바람에 흔들리는 것 외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동시에 지켜보던 대중들에게서 가벼운 환호와 박수가 흘러나왔다.
멀리 길가에서 가만 그걸 바라보던 장건은 입가에 물고 있던 꽁지를 퉷 뱉고는 마지막 남은 종이와 연초를 꺼내 말았다. 그 연초에 불을 붙이고 깊게 빨아들였던 장건은 후-하고 연기를 뿜으며 툭툭 조조의 고삐를 당겼다. 조조는 평소와 같은 장난도 없이 터덜터덜 객잔을 찾아 걸음을 내디뎠다.
건물이 가득한 도시 안으로 들어왔음에도 겨울의 서늘함은 더해지기만 할 뿐 나아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