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36)
36화
작은 도시의 이름은 염호성鹽湖城이었다. 가까운 곳에 민물이 아니라 짠물이 고여있는 염수호가 있어 간단히 붙은 이름으로, 그 호수에서 나는 소금이 도시의 대표 산물이었다. 듣자 하니 독특한 맛의 신대륙 소금으로 중원에서 인기가 많다는 듯했다.
장건이 맛보기에는 그냥 텁텁한 맛이 덜하다는 정도였는데 뭐가 맛있다는 지 모를 일이었다.
“황실에선 별말 없소? 소금은 그쪽에서 직접 관리할 텐데.”
“당연히 말이 나오지. 그래서 여기서 나는 소금은 전부 천후성에 가서 황실의 감독 아래서만 팔고 있네. 겉으로는.”
“···아하. 겉으로는.”
길쭉한 탁자 뒤에서 잔을 닦던 객잔 주인이 씩 웃었다.
“이 사업에서 나오는 돈이 정말 장난 아닌 모양이야. 정말 물에서 나는 금이지, 금. 사금 같은 것보다 훨씬 확실한. 그런데 그걸 다 황실 밑에 팔아치우는 게 말이 되나?”
탁자 앞에 앉아있던 장건은 잔을 들며 말했다.
“황실이 값을 후려치나 보군.”
“···어, 아니. 그건 아닌데. 판매량을 자꾸 통제하려 한다지 뭔가? 그 새끼들 그거 다 우리가 중원 돈을 빨아먹는다는 생각에 막으려는 거라니까. 그래서 그냥 신사천 쪽에 가서 몰래 팔아치우는 거야. 이쪽에 공공연한 비밀이지.”
객잔 주인의 대답에 장건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그거 걸리면 황군이 가만있지 않겠는데. 괜찮소?”
“뭐 어떤가? 이 큰 땅덩이에 황군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다고? 천후성 쪽만 조심하면 아무 문제 없네. 그리고 황제는 이 땅에 별 관심이 없으니까 소금 좀 몰래 건너간다고 황군을 보내진 않을 거야.”
장건은 고개를 살살 가로저으며 술잔을 홀짝였다. 황제의 의중은 황제 본인을 제외하고는 정말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지금의 황제는 자신의 아버지만큼이나 신대륙에 무관심해 보였지만, 또 그것이 언제까지 그럴지는 짐작할 수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땅을 모조리 식민지화 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면 그대로 수만 명 황군이 범선을 타고 이 땅에 건너올 터였다.
거기까지 생각한 장건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이곳에서 나오는 소금이라고 해봐야 중원에서 자체적으로 생산되는 소금에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천후성에서조차 관리를 설렁설렁하는 것이고. 황제 입장에선 그냥 발아래 개미들이 꼼지락거리는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는 병을 기울여 잔을 채우고 홀짝 들이켰다. 어찌 되었든 장건이 걱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이 객잔에서 시간을 보낸 지 벌써 며칠째였다. 원래라면 간단히 여독만 풀고 다시 떠날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쌀쌀한 날씨와 따뜻한 난로 열기를 함께 겪으니 절로 객잔에 발이 붙었다. 게다가 그렇게 며칠 묵으니 이 도시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소금이 많아서 짭짤한 음식이나 값싼 방세 등이 장건 마음에 들었다.
이곳의 치안은 검룡문이라는 무림맹 소속 문파가 담당하고 있었다. 도시나 규모가 큰 마을은 이렇게 무림맹에 소속한 문파가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검룡문은 염호성의 소금 거래를 관리 감독함으로써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그 돈을 다시 염호성의 발전에 투자한다는 듯했다.
“그런데 자네 뭐 일 같은 거 안 하나?”
그때 객잔 주인이 지나가듯 물었다. 술을 마시던 장건은 혹시 그동안 자기가 뭔가 외상이라도 졌는지 생각해봤다.
“···사흘 치 방세를 어제 주지 않았소?”
“아니, 뭐. 그냥 자네가 우리 객잔에 온 지도 벌써 며칠째인데 놀고먹는 것밖에 못 봐서. 난 처음에 자네가 소금 인부로 일하러 온 줄 알았네.”
장건은 턱을 긁었다. 나름대로는 편히 쉬며 무공에 대해 탐구하는 중이었는데, 역시 남이 보기엔 그저 한량으로 보인 모양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장건은 품에서 이번에 새로 산 연초를 꺼내 말아 물었다. 옆에 있던 호롱불로 불을 붙이고 연기를 한번 후-뱉으니 지켜보던 객잔 주인이 웃었다.
“그렇게 놀고먹는 걸 보니 어디서 뭐 한탕 했었나 보지?”
“한탕··· 한탕 하긴 했었지. 빈 깡통이었다는 게 문제지만.”
“오. 이야기 좀 해보게. 객잔 일 하다 보니까 외지인들 이야기 듣는 게 내 유일한 낙이네.”
장건은 연초를 입에 물고 그런 객잔 주인을 보며 마주 웃었다. 이 양반도 청수촌 여 씨처럼 사소한 정보를 모아 팔아치우는 정보 상인일까? 며칠간 지켜봐 온 바로는 이상하게 남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긴 했다.
“빈 깡통 찬 이야기에 뭐가 더 있겠소? 술이나 한 병 더 주시오.”
이야기를 꺼내는 듯했던 장건이 그렇게 말을 마무리해 버리자 객잔 주인은 작게 구시렁거리며 새 술병을 꺼냈다.
“안주는 뭐 필요 없나?”
“괜찮소.”
사실 안주가 있으면 좋았다. 하지만 그러기엔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다. 객잔 주인의 말대로 이제 슬슬 뭐라도 하고 돈을 벌어야 했다. 굶어 죽기 싫다면.
장건은 연초를 빨며 생각했다. 그래도 이번엔 도박으로 돈을 완전히 날리거나 한 것은 아니니 너무 급할 건 없었다. 며칠 머무르며 이 도시 돌아가는 상황도 대충 알았으니 정 급하면 검룡문에 찾아가 칼솜씨 좀 보여주고 식객을 하던가, 그게 안 되면 객잔 주인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소금 인부라도 하면 되었다. 장건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때 한 남자가 객잔문을 열며 들어왔다.
“어서 옵쇼. 숙박이신가?”
“···식사만 하겠습니다.”
혼자 들어온 그는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고 장건처럼 길쭉한 탁자에 앉았다. 장건이 보니 머리에 두건을 쓰고 건장한 체격에 잘생긴 청년이었다. 약간 우울해 보이는 눈매와 분위기가 여자들에게 인기 많을 듯한 인상이었다.
그를 지나가듯 스쳐보았던 장건은 자기도 모르게 다시 눈을 돌렸다. 약간 불안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남자는 그런 장건의 시선을 느끼고 그를 마주 보았다.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아니. 처음 보는 얼굴이군. 어디서 오셨소?”
청년은 장건의 질문이 불편하다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
“그게 왜 궁금하십니까?”
“그러게. 자네가 그게 왜 궁금한가? 자네도 외지인이면서,
따듯한 차를 가져오던 객잔 주인이 그렇게 끼어들었다. 장건은 괜히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냥 그쪽 인상이 좋아서. 어디서 한번 만났나 싶었소.”
“그럴 리 없습니다. 전 여기 처음 오니까요. 그전에도 만났을 리 없으니 그냥 그쪽 착각인 것 같군요.”
“그래. 내가 착각했나 보군.”
장건은 청년과 객잔 주인의 눈을 대충 넘기며 술잔을 들었다. 그가 청년에게 눈을 떼지 못한 이유는 큰 게 아니었다. 그냥 청년의 손과 옷 위로 드러나는 잘 단련된 신체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신대륙에서 저렇게 눈에 보일 정도로 단련된 몸은 거의 보질 못했다.
하지만 또 이 넓은 땅덩어리에 무슨 사연을 가진 고수가 떠돌고 있을지 모를 일이니, 결국은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장건을 바라보던 청년은 그를 그냥 술꾼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는지 객잔 주인이 차려온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그는 배가 고팠던 듯 그걸 허겁지겁 들이켜듯 먹었다. 객잔 주인은 그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면을 조금 더 추가해 주었다.
장건이 남은 연초 하나를 다 피우는 동안 후루룩 식사를 마친 청년은 이제 살겠다는 듯 꺼억 하고 트림까지 했다. 객잔 주인이 웃었다.
“잘 먹었나?”
“아. 잘 먹었습니다, 주인장. 국물이 아주 좋군요.”
청년은 허허 웃는 객잔 주인의 얼굴을 보며 돈을 꺼내 내밀었다. 그리고 그걸 챙기는 객잔 주인에게 말을 이었다.
“저기, 뭐 좀 여쭙고자 하는데요.”
“응? 허허. 뭐가 궁금한가? 혹시 일자리? 내가 소금 인부 쪽으로 연결해 줄 수 있는데.”
청년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진··· 원상이라고 합니다. 사람을 한 명 찾고 있습니다.”
“오! 사람 찾기? 내가 또 여기 사람들 잘 알지.”
객잔 주인의 선선한 대답에 진원상이라는 청년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제가 찾는 사람은 양소소라는 소녀, 아니.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소녀는 아니군요. 어쨌든 양소소라는 여인입니다.”
“양소소?”
객잔 주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전부인가?”
“그, 웃는 게 정말 예쁘고··· 참 착합니다.”
진원상의 말에 객잔 주인은 피식 웃었다.
“이 사람아. 눈에 콩깍지 쓰이면 다 이쁘고 착하지. 그것만으로 어떻게 사람을 찾나? 이 염호성에 들락이는 사람만 몇이고 머무르는 사람만 몇인데.”
진원상은 그 말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저기, 아마··· 딸이 하나 있을 텐데··· 그 아이가 좀, 아플 겁니다. 남편은 험한 일을 하는 인부일 거고요. 그리고··· 이름을 바꿨을 수도 있습니다.”
객잔 주인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청년이 여인이 예쁘다고 말할 때 표정을 보고 연인을 찾아온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남편과 딸 가진 여인을 왜 찾는다는 것일까? 이름은 왜 바꿨다는 것이고?
잠시 그러던 객잔 주인은 적당히 알겠다는 듯 말했다.
“아, 뭐 헤어졌던 가족인가 보군? 누이인가?”
“···예, 그렇습니다. 헤어진 가족. 누이.”
냉큼 대답하는 그를 묘하게 바라보던 객잔 주인은 머리를 긁었다.
“이거 참. 미안하지만 모르겠는걸. 이름까지 바꿨다면 차라리 직접 찾아다니는 게 빠르겠는데?”
“···그렇군요.”
진원상의 표정은 침울해 보였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을 만나며 돌아다닐 생각에 힘이 빠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는 애써 다시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여기까지 오는 길도 정말 힘들었지만 결국 오긴 왔으니, 찾고자 하면 결국 찾을 수 있겠죠.”
한쪽에서 술을 홀짝이며 본의 아니게 둘의 대화를 다 듣게 된 장건은 축 처진 그를 가만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방금 객잔 주인에게 그가 돈을 꺼내주었던 품 쪽을 보고 있었다. 얼핏 봐도 묵직하던 그 주머니를 그려보던 장건은 크게 힘들 것 없이 적당히 발품이나 팔아 돈을 만질 방법이 생각났다.
“그렇게 여기저기 쏘다니려면 안내자가 필요하시겠군.”
침울해 보이던 진원상은 갑작스러운 장건의 말에 눈썹을 찌푸렸다.
“···뭡니까?”
장건은 꽁지만 남은 연초를 재떨이에 비벼끄며 말을 이었다.
“이곳은 처음 아니오? 그런 곳에서 사람을 찾으러 다니자면 보통 힘든 게 아닐 텐데.”
“···그렇겠죠. 하지만 그건 당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글쎄. 어쩌면 우린 서로를 도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진원상은 잠시 눈을 끔벅거리다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다시 눈썹을 찌푸렸다.
“내가 사람 찾는 걸 도와주겠다는 겁니까? 대가를 받고? 하지만 당신도 외지인이라면서요?”
“당신보다는 오래 있었지.”
장건의 무던한 대답에 진원상이 피식 웃었다.
“그런 거라면 차라리 이곳 주민을 고용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객잔에서 술이나 마시던 사람보다는 그게 훨씬···”
“그쪽, 무공을 익혔군.”
진원상은 갑작스러운 장건의 말에 잠시 멈칫거렸다. 하지만 이내 다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간단한 토납법 정도 익힌 사람은 널리고 널렸잖습니까. 그게 뭐 대단한-”
“주로 권법을 수련한 모양인데, 그럼 신대륙 문파 사람은 아니군. 중원에서 무공을 익혔어. 넘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손바닥을 보아하니 주 권법 외에도 무기술을 배운 모양이고··· 아마 창··· 아니, 봉술이군. 몸을 보아하니 익힌 권법은 상당한 강권强拳이야. 바위도 부수겠군. 그리고 내가 알기로 그런 강권과 봉술을 같이 익히는 중원 문파는 정말 몇 없지.”
장건은 웃으며 진원상의 머리를 가린 두건을 가리켰다.
“그 두건 멋진데.”
그 잠깐 사이에 진원상의 표정은 싹 굳어서 창백해져 있었다. 그는 입술을 떨며 머뭇거리다가 겨우 말했다.
“···누, 눈이 굉장히··· 좋군요. 내가 객잔에 들어와 식사하는 그 잠깐 사이에 그걸 모두··· 확인한 겁니까?”
장건은 대답 없이 옅게 웃으며 술잔만 슬쩍 들어 보였다. 둘의 대화를 가만 듣던 객잔 주인은 슬그머니 진원상 앞에 새 차를 내려놓으며 끼어들었다.
“뭔지는 몰라도 저 친구가 다 맞춘 모양이지? 저런 능력이 있는 줄은 몰랐구먼. 저 친구 말대로 하는 게 어떤가?”
그는 진원상이 자신을 돌아보자 말을 이었다.
“저 친구가 며칠 여기서 묵었는데 그동안 이야기를 나눠본 바로는 그렇게 나쁜 친구는 아니야. 사기 치고 돈 뜯어 갈 친구는 아니지. 그러니 일단 잠깐 같이해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사람을 바꾸면 되지 않겠나?”
진원상은 그 이야기에 손을 모으고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남은 술을 홀짝이던 장건은 자신을 편들어주는 객잔 주인의 모습에 의외라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객잔 주인은 슬쩍 한쪽 눈을 깜빡이며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이고 있었다. 그가 하는 말이 보이는 듯했다. 도와줬으니 보수의 삼 할은 내 꺼.
장건은 엄중히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였다. 잠시 고민하던 객잔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진원상이 고민을 마치고 고개를 들었다.
“좋습니다. 관찰력이 보통이 아니신 분인 것 같으니 사람 찾는데 큰 도움이 될 듯하군요.그럼 돈은 얼마나 드리면 되겠습니까?”
“글쎄. 얼마나 있으시오?”
장건의 시큰둥한 대답에 진원상은 품에서 돈주머니를 꺼냈다. 그리고 잠시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그 주머니를 통째로 장건에게 내밀었다.
“···이걸 다 주시겠다고?”
“예.”
이번엔 장건이 놀라 잠시 머뭇거렸다.
“···내가 찾을지 못 찾을지 아직 모르지 않소?”
“그럼 저는 돈을 탕진하겠군요.”
장건은 잠시 진원상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순수하고 단단했다. 어떤 바위나 강철 같기보다도 그저 그가 가진 의지의 단단함이 드러나는 눈이었다. 장건은 그 눈빛이 왠지 마음에 들어 슬쩍 웃었다. 그리고 내미는 돈주머니를 받아들었다.
“좋소. 그럼 바로 시작합시다.”
“예, 예? 지금 바로요?”
돈주머니를 뒤져 은전과 동전 몇 닢을 탁자에 올려둔 장건은 그대로 성큼성큼 객잔을 나섰다. 당황하던 진원상은 얼른 객잔 주인이 차려준 찻물을 들이켜고는 꾸벅 인사까지 하며 그 뒤를 따랐다.
객잔 주인은 그들이 나가며 흔들리는 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은전과 동전을 챙겼다.
“재밌는 친구들이군. 시끌시끌하겠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