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37)
37화
진원상은 거침없이 나아가는 장건의 뒤로 따라붙으며 물었다.
“뭐, 뭘 알고 가는 겁니까?”
“남편이 힘든 일을 하는 인부라 하지 않았소. 이곳 염호성에서 험한 일이라고 할 만한 건 결국 소금 인부지. 그쪽 인부들이 주로 가는 술집이 몇 곳 있소. 거길 돌면서 딸이 아픈 인부를 찾아볼 거요.”
“딸이 아픈··· 확실히 그렇게 하면 확인할 사람이 확 줄긴 하겠군요.”
길거리엔 쌀쌀한 날씨에 움츠린 사람들이 총총거리며 장건과 진원상을 스쳐 지났다. 장건은 자연스럽게 그들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거기서 더 범위를 줄이고 싶다면 그 양소소라는 여인의 특징을 떠올리면 될 것이오.”
“특징이요? 하지만 이미 객잔 주인에게도 말했던 것처럼···”
“그냥 예쁘다 말고. 예쁜 얼굴에서도 특징이 있을 텐데. 유난히 코가 오뚝하다던가, 입가나 눈가에 점이 있다거나. 흉터도 있을 수 있고.”
장건의 뒤를 따라 걷던 진원상은 그 말을 듣고 천천히 걸음을 멈췄다. 몇 걸음 앞서간 장건도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니 진원상은 흐린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는 무엇 때문인지 옅게 웃었다.
“···점. 예, 점이 하나 있었군요. 왼쪽 볼, 코에 가깝게 붙은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녀가 환히 웃을 때마다 작게 꼼실거리던 귀여운 점이었죠. 난 그걸 좋아했지만, 그녀 자신은 그게 흉이라고 생각해 부끄러워했습니다.”
그의 옅은 웃음과 표정은 아름다웠던 과거로 빠져드는 듯 몽환적이었다. 그러나 그 몽환은 결국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이기 때문인지 씁쓸해 보이기도 하는 웃음이었다.
그 웃음을 잠시 바라보던 장건이 짧게 말했다.
“왼쪽 볼 코에 가깝게 붙은 점. 범위는 더 줄일 수 있겠군.”
다시 몸을 돌려 앞장선 장건은 생각했다. 진원상이 찾는 여인이 절대 누이는 아닐 것이라고. 저 표정은 누이와의 과거를 떠올리며 지을 수 있는 표정이 아니었다. 장건은 그저 이 순진해 보이는 승려가 변해버린 추억에 상처받지 않기만을 바랐다.
이후 두 사람은 별다른 대화 없이 염화성 번화가에 들어섰다. 아직 해도 완전히 떨어지지 않았는데 벌써 등에 불을 붙인 술집이 많았다.
“한두 군데 돌아보다 보면 일이 끝난 인부들이 쏟아질 것이오. 천천히 알아봅시다.”
장건은 머뭇거리는 진원상을 이끌고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벌써부터 술을 푸는 술꾼들이 여기저기 보였고, 칼만 차고 인부와 크게 다를 것 없는 무림인부터 구석에 삿갓으로 얼굴을 가리고 웅크린 사람 등등 신대륙의 별의별 사람으로 술집 자리는 이미 반 이상 채워져 있었다.
장건은 그들 틈으로 파고들어 술집 주인을 불렀다.
“여기. 독한 걸로 두 잔 주시오.”
술집 주인은 곧 잔 두 개에 술을 담아 왔다. 장건은 그걸 받아 쭈뼛거리는 진원상에게 하나 내밀고 그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며 말했다.
“소금가마와 호수에서 일하는 인부는 대부분 하급 인부라 가족과 입에 풀칠할 정도밖에 못 벌지. 웬만한 술 한 병 사 먹는 것도 부담될 정도로. 그래서 이곳 술집들이 방안을 생각한 것이오. 그럼 한 병이 아니라 한 잔씩 팔면 되는 거 아닌가 하고. 덕분에 인부들은 평소에 맛보기 힘들었던 술도 한 잔씩 먹어볼 수 있고, 술집들은 한 병씩 파는 것보다는 귀찮아도 이익을 보게 되었지.”
그렇게 말한 장건은 벌컥 한 번에 잔을 들이켰다. 그리고는 진원상에게도 마시라는 듯 턱짓했다. 진원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속삭였다.
“짐작하시겠지만, 전 제 문파 때문에 술 마셔본 적 없습니다.”
“그럼 이번 기회에 마셔보시오.”
그는 장건의 여상한 태도에 입술을 우물거렸다. 한참 장건의 평온한 표정을 바라보던 그는 결국 두 눈 꾹 감고 훌쩍 술을 넘겼다. 그리고 곧장 사레가 걸려 캑캑거렸다. 그가 잔을 비우길 기다리던 장건은 시뻘게져 기침하는 진원상의 얼굴에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
“쿨룩, 커흑··· 대체 이게 뭐가 맛있다고···”
장건은 그런 진원상의 어깨를 툭툭 쳐줬다.
“술을 뭐 맛으로 먹겠소? 취하려고 마시는 거지. 어쨌든, 인부들과 대화하려면 우리도 몸에서 술 냄새 좀 나야 할 것 같아서 그랬소. 이제 시작합시다.”
사실은 그냥 그가 긴장을 좀 풀었으면 해서 한 장난이었다. 그 후 장건은 얼굴이 붉어진 진원상을 이끌고 이 술집, 저 술집을 쏘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술집 주인이나 적당히 취해 실실거리는 인부를 붙잡고 술 한 잔씩 사며 물었다.
“혹시 인부 중에 딸이 아픈 사람이 있소?”
“어엉? 딸 아픈 사람? 그딴 건 왜 물어보나?”
의아해서 되묻는 자들도 술을 사면 그냥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뭐어어. 저기 정 씨 딸내미가 어제부터 열이 좀 있다는데.”
그 이야기에 장건이 진원상을 돌아보았다.
“그 여인 딸이 얼마나 아픈 것이오? 그냥 감기? 아니면 지병이 있는 건가?”
“···아마 자리에서 못 일어난 지 한참일 겁니다.”
“무슨 병인지는 모르고?”
진원상은 한숨 한 번을 내쉬고 대답했다.
“···여기 사람들은 모를 겁니다. 희귀한 병이라서요.”
이후에도 딸 가진 인부는 많았으나 그중 병이 오래된 사람은 몇 없었다. 그리고 그 몇몇도 양소소에 대한 질문을 이어 하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돌아다니는 동안 어느새 해는 지고 주변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염호성 번화가는 낮보다 밝게 빛나며 취한 인부들을 유혹했다. 길을 걷는 소금 인부들의 마른 땀 냄새와 가마에서 옷에 배긴 탄내, 그리고 술집과 음식점에서 새어 나온 향들이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의해 뒤섞이며 뭐라 설명하기 힘든 묘한 공기가 거리를 맴돌고 있었다.
진원상은 그 한가운데서 문득 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그러고 있던 그는 앞서가던 장건이 뒤를 돌아보고 돌아와 눈앞에서 손가락을 튕겨서야 정신을 차렸다.
“···항주와 천후성을 지나며 더는 사람이 많다는 것에 당황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거기는 정말 이곳보다도 사람이 많고 복잡했으니까요. 하지만 이건··· 이건 또 다르군요. 이곳은 단순히 사람이 많은 것이 아니라··· 고된 일상을 보낸 사람들의 하루 끝자락이··· 이곳에 모이고 흘러서···”
그의 말을 가만 듣던 장건은 다시 멍하니 생각에 빠지려는 걸 툭툭 쳐서 깨웠다.
“정신 차리시오. 묵상에 빠지는 건 나중에 조용한 방이라도 잡아서 하고. 길가에서 그러고 있으면 제발 소매치기해달라고 떠벌리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하하. 소매치기라. 직접 당하기라도 한 겁니까?”
장건은 대답은 안 하고 묘하게 웃기만 했다. 그 후 거리를 돌던 두 사람은 처음에 들어갔던 술집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그렇게 오래 지난 것 같지도 않은데 안에 들어찬 사람은 두 배쯤 불어난 것 같았다.
장건은 여태 하던 대로 기분이 좋아 보이는 사람에게 술 한 잔 더 사며 지나가듯 물었다. 그런데 이번엔 약간 다른 대답이 나왔다.
“···자네 누군가? 왜 그딴 걸 묻고 다니나?”
흰색 수염을 기른 건장한 노인이었다. 장건은 그가 평범한 인부가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그 애 엄마가 고향 친구라서요. 편지를 보내길 딸애가 많이 아파 걱정이라는데, 이번에 이곳을 지날 일이 있어 도움을 줄까 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난 이 친구가 염호성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결혼하며 이름도 바꿨는지 아명兒名으론 찾을 수가 없더군요. 마침 남편이 힘쓰는 일을 한다기에 이쪽부터 찾기로 한 겁니다.”
진원상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적당히 비틀어 만든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게 어느 정도 진실이었는지 진원상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장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편 노인은 장건의 이야기에도 굳은 얼굴을 펴지 않았다.
“···고향 친구라. 자네가 이놈 저놈 붙잡고 물어보는 걸 계속 지켜보았지. 덕분에 누굴 찾는지 알 것도 같구먼.”
“그거 다행이군요. 그럼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노인은 굳은 얼굴 그대로 장건과 눈을 마주 보았다. 잠시 그렇게 눈을 마주치고 있던 노인은 단호하게 말했다.
“돌아가게. 계속 찾아봐야 좋은 꼴 못 볼 테니까.”
장건이 그 말에 깔린 저의를 생각하느라 눈살을 찌푸리는 동안, 드디어 단서를 찾은 진원상은 자기도 모르게 앞으로 나서서 물었다.
“시주, 아, 아니. 그러니까, 어, 어르신! 부탁드립니다! 저는 소소를 만나야만 합니다. 꼭, 꼭 말입니다.”
“···인제 보니 이쪽이 찾는 쪽이었군.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네. 돌아가게.”
“어르신!”
약간 흥분한 진원상이 노인에게 다가가며 그의 팔을 잡았다. 그러자 그 주변에 있던 인부들이 드르륵 의자를 밀며 벌떡 일어섰다.
“어이, 그 손 놔.”
“이 새끼들이 염공 어르신께 무슨 무례를···”
하지만 그들은 노인이 손을 들어 올리자 모두 그 자리에 멈췄다. 인부들을 멈춰 세운 노인은 진원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술이나 진탕 마시고, 내일 해가 밝으면 이 도시를 떠나게. 자네를 위해 하는 말이야.”
“···어르신, 부탁드립니다. 전 이대로는 떠날 수 없어요. 부디 멀리서라도 그녀와 아이를 볼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노인의 말에도 물러서지 않는 진원상의 태도에 일어섰던 인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가! 어르신 말씀 못 들었어! 꺼지라잖아!”
그는 그렇게 외치며 대뜸 진원상에게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그 주먹은 진원상의 얼굴에는 닿지도 못하고 덜컥 멈췄다. 장건이 손목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이봐, 우린 싸울 생각 없어. 그냥···”
“이 시발!”
장건은 주먹을 막고 차분히 말을 꺼내려 했으나, 손목이 잡힌 인부는 다시 버럭 욕설을 지껄이며 반대쪽 주먹을 날렸다. 결국 장건은 붙잡았던 손목을 쑥 당기며 빙글 돌아 가볍게 인부의 팔을 등 뒤로 꺾어 잡았다. 인부는 비명을 질렀다.
“아악!”
“살살 잡았어, 인마. 꾀병 부리지 말고-”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이런 시발! 싸움이다-!”
“와-아-!”
“싸움이다-!”
장건은 술집 안에서 터진 외침과 이어서 술에 취한 주정뱅이들이 아무나 붙잡고 주먹질을 하는 난장판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푹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노인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고, 진원상은 자신을 향한 인부들의 주먹질을 피하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손목을 붙잡고 있던 인부의 엉덩이를 걷어차 술집 구석으로 굴려준 장건은 뚜벅뚜벅 진원상에게 다가갔다. 중간에 그를 노리는 인부들이 있었으나, 장건은 그 주먹을 부드럽게 걷어내며 얼굴에 가볍게 한방씩 꽂아주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넷 정도를 그렇게 기절시키자 더 그에게 덤비는 주정뱅이는 없었다.
손을 탁탁 털은 장건은 여전히 주먹을 피하고만 있는 진원상에게 말했다.
“피하지만 말고 공격하시오.”
“고, 공격이요? 하지만 이분들은 양민이라 다칠 텐데요!”
“살살 치면 되지 않소.”
장건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진원상은 이내 결심을 굳혔는지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차돌처럼 단련된 주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는 금방 생각을 바꿔 주먹을 펴 손바닥이 드러나도록 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쫙-하는 차진 소리와 함께 인부 하나의 고개가 획 돌며 바닥에 쓰러졌다. 쓰러진 인부는 눈이 게게 풀려 있었다. 진원상이 뺨을 후려친 것이다. 기절할 정도로.
장건이 피식 웃는 동안 쫙쫙하는 소리가 서너 번 더 나고 역시 우당탕 쓰러지는 소리도 서너 번 울렸다. 진원상과 장건을 공격하려던 인부들은 질린 표정이 되었다. 진원상이 그런 그들과 쓰러진 인부들을 안쓰럽게 바라보자니 장건이 그의 팔을 툭 쳤다.
“호각 소리가 들리는군. 검룡문에서 치안 활동을 열심히 하는 모양이오. 문제 생기기 전에 갑시다.”
“예? 하, 하지만 아까 그 어르신은···”
“염공이라는 것을 보니 소금가마를 다루는 장인이오. 그냥 힘쓰는 인부는 많지만 가마를 다루는 장인은 몇 없지. 금방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오. 지금은 당신 정체를 감추는 게 먼저일 것 같군.”
사실상 이 일대의 주인인 검룡문은 진원상의 두건을 벗기고 정체를 알게 되면 일단 잡아두고 목적을 알아내려 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어떤 정치적 요소가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억지로 자신들을 엮어 이득을 보려 할 터였다. 그게 고대 세가들의 방식이었고, 무림맹의 덩치 큰 문파들이 고스란히 따라 배운 방식이었다.
그 뜻을 알아들은 진원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쓰러뜨린 인부들을 두고 난장판이 되어가는 사람들 사이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술집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검은 피풍의와 삿갓을 쓴 사람 둘이 따라나섰다. 그들은 장건과 진원상이 처음 이 술집을 찾았을 때부터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이들로, 술집의 난장판 사이에서도 평온히 자리를 지키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먼저 빠져나갔던 두 사람만큼이나 자연스럽고 은밀한 움직임으로 거리에 스며들어 그들의 뒤를 쫓았다.
술집의 난장판이 멈춘 것은 잠시 후 검룡문 무사들이 들이닥쳐 귀가 찢어져라 호각을 분 이후였다. 검룡문 무사는 싸움의 발단을 찾으려 주변 구경꾼들까지 모조리 줄 세웠으나 당연히 이미 빠져나간 장건과 진원상을 찾을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