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4)
4화
멍청한 얼굴로 진청석과 장건을 번갈아 보던 사상파 건달 중 누군가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저 새끼 쳐!”
그들 중 어느 정도 이상의 무공을 익힌 자가 있었다면 그렇게 무작정 공격하란 말이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건달 중 최고수인 진청석은 이미 나가떨어져 있었고, 건달들은 방금 장건의 움직임을 읽을 정도로 안법을 수련한 적이 없었다.
“이 시발! 뒈져!”
장건과 제일 가까이 있던 건달이 손에 쥔 몽둥이를 휘둘러왔다. 어떤 현묘함도 느껴지지 않는 사선 공격. 평범한 양민의 머리를 깨버릴 적엔 충분했을 움직임.
장건은 오른발을 뒤로 한 발짝 빼고 슬쩍 허리를 젖혀 가볍게 몽둥이를 피했다. 그리고 곧바로 젖혔던 허리를 펴며 오른 주먹으로 건달의 턱을 후려쳤다. 쩍-하는 소리가 울리고 건달은 뻣뻣해지더니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놈이 완전히 쓰러지기도 전에 놈을 지나 앞으로 나아간 장건은 그대로 오른발을 들어 건달 한 놈의 얼굴에 찍어주었다. 동시에 반발력이 실린 그 오른발을 끌어 뒤돌려차기로 다른 한 놈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그 움직임에 놀란 건달 한 놈이 반사적으로 장건에게 달려들며 몽둥이를 높이 치들었다. 장건은 재빠르게 그놈에게 몸을 돌리고는 왼 주먹으로 훤히 열린 옆구리를 끊어쳤다. 숨이 턱 막혀 멈춘 놈의 얼굴에 오른 주먹을 꽂아준 장건은 쓰러지는 놈을 두고 오른쪽으로 크게 발을 내디디며 팔꿈치를 들었다.
그 팔꿈치 끝에 건달 한 놈의 명치가 있었다. 그놈이 우웩 토하는 순간 이미 몸을 뺀 장건은 왼발 돌려차기로 다른 놈의 턱을 스쳤다. 턱이 스친 놈의 눈이 맹하니 풀리며 앞으로 자빠졌다.
몸을 바로 한 장건은 평범한 걸음으로 남은 두 놈에게 다가갔다. 그 두 놈은 다른 건달들이 픽픽 쓰러지는 모습에 멍청한 얼굴이 되어 입을 벌리고 장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건은 그 두 놈 앞에 삐딱 서서 한심스러운 얼굴들을 확인하고는, 턱에 한 주먹씩 꽂아주었다. 둘은 켁 하는 소리 한 번씩 내고 쓰러졌다.
아주 잠깐 사이에 진청석을 포함해 건달 아홉을 쓰러뜨린 장건은 두 손을 탁탁 털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진양석이 보이지 않았다. 그놈은 약삭빠르게 자기 형이 쓰러지자 곧장 도망친 것이다. 피식 웃은 장건이 양굉에게 돌아섰다.
양굉은 방금 턱을 맞은 건달처럼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상처 하나 없으시네?”
“이런 건달들한테 지려고 배운 무공이 아니니까. ”
양굉은 쓰러진 사상파 놈들을 내려다보며 자기 턱을 쓰다듬었다.
“아니 그래도, 이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
“내가 골패를 내 무공의 절반만큼만 했어도 네 일당한테 털릴 일은 없었어.”
장건은 쓰러진 건달들을 피하며 자기 자리로 돌아와 탁자 옆에 세워두었던 칼을 집어 허리에 매고, 삿갓을 손에 들었다.
“어쨌든. 만나서 반가웠고 다시는 얼굴 볼 일 없도록 하자, 사기꾼.”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빠져있던 양굉은 장건의 말에 슬그머니 몸을 움츠리며 비실비실 웃었다.
“아니, 장 형! 이렇게 헤어지자니? 그렇게 박정한 말이 어디 있소? 그러지 말고 우리 술이나 한잔합시다.”
“뭐 시발, 뭐가 아쉬워? 돈 더 뜯기고 싶어?”
양굉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아니, 그게 아니라. 정말 이대로 떠나려고?”
장건은 대답 없이 객잔의 창밖을 턱짓했다. 창 가장자리엔 방금 도망쳤던 객잔 주인과 손님들이 믿기 힘들단 눈으로 그들을 훔쳐보고 있었다. 양굉도 그 얼굴들을 확인했다.
“···아, 그래. 확실히 이 객잔에서 술 먹기는 글렀구먼.”
양굉의 중얼거림을 들은 장건은 가볍게 웃고는 객잔의 문을 나섰다. 창밖을 바라보던 양굉은 얼른 그 뒤를 따라붙으며 말했다.
“에이, 장 형! 그러지 말고 같이 갑시다. 이 사상파 놈들이 아직 열은 더 남았다니까? 그 중엔 저 진청석 위에 있던 사상파 문주놈도 있소! 게다가 진청석보다 반 수 처진다는 놈이 문주를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뭐겠소? 그건 바로 여기 무림맹 지부와 끈이 있는 것이 바로 그 자식이기 때문에···”
양굉은 객잔 주렴을 걷고 나가던 장건이 걸음을 멈추자 그 등에 얼굴을 박을 뻔하고는 움찔 멈춰 섰다.
“뭐요? 왜 멈춰?”
장건은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양굉은 슬쩍 그의 어깨 너머로 머리를 빼 객잔 밖 상황을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그곳엔 말 위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건장한 중년인 하나와 검을 뽑아 든 무사 다섯이 객잔 입구를 포위하고 있었다. 양굉은 슬그머니 다시 객잔 안으로 뒷걸음질 쳤다.
말 위에 앉아있는 중년인은 풍성한 자신의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장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장건이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그가 탄 말 옆에는 장건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진양석이 있었다.
중년인이 말했다.
“그리 당황스러워 보이진 않는군. 내가 누군 줄 아는가?”
질문을 받은 장건은 팔짱을 끼며 중년인의 가슴께를 향해 턱짓했다.
“무림맹 지부장이시겠지.”
장건이 바라보는 중년인의 상의에는 조그마한 육각형의 금속이 꿰여 있었다. 무림맹에서 각 지부의 지부장들에게 지급하는 무림맹 표식이었다. 중년인은 가벼운 웃음소리를 내고 말을 이었다.
“그래. 내가 이 마을 무림맹 지부장이네. 그리고 지금 자네가 내 마을 사람들을 폭행했단 신고가 접수되었는데 말이야.”
“그냥 폭행 정도가 아니오! 내 형님이 인사불성이 되셨단 말이오! 이빨도 나가셨으니 이제 식사도 제대로 못 하겠지!”
지부장 옆에 있던 진양석이 고함을 질렀다. 지부장은 그 모습을 보곤 정말이냐는 듯 다시 장건에게 시선을 주었다.
장건은 팔짱 낀 그대로 퉁명스레 말했다.
“정당방위였소.”
“정당방위?”
지부장의 반문에 장건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거렸다.
“그럼 구 대 일 싸움이 정당방위가 아니면 뭐겠소? 아홉 명 중 여덟은 몽둥이까지 들고 있었는데.”
“그런데 지금 객잔 밖으로 나오는 건 자네뿐이군.”
“그 아홉이 좀 병신이었소.”
지부장은 어째선지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물었다.
“누구 죽었나?”
장건은 말없이 느릿하게 고개만 가로저었다. 지부장은 더 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진양석은 그걸 보곤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외쳤다.
“지부장! 당장 저놈을 체포하지 않고 뭐 하는 게요? 내 형님이 쓰러졌다니까! 나도 코가 부러졌고!”
진양석의 외침을 들은 지부장은 천천히 안색을 굳히며 그에게 시선을 주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던 진양석은 그 시선에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뭔가 깨달았는지 핏기가 가시기 시작했다.
지부장이 그를 향해 말했다.
“진청석을 포함해 사상파 아홉이 쓰러졌다? 그럼 내가 너희들을 계속 참아줄 이유가 뭐지? 너희 중에서 그나마 무공 흉내라도 내는 건 그 진청석과 문주뿐이지. 그리고 둘 중 하나라면 나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 나머지 건달들은 내 부하들 선에서 끝이고.”
“그, 그··· 내, 내 형님이 깨어나면, 가, 가만있지···”
“그가 깨어나서 보는 건 감옥 창살뿐이다.”
지부장은 검을 뽑고 서 있던 무사들에게 턱짓했다. 그러자 그들 중 하나가 검을 집어넣고 허리에서 포승줄을 풀어서 진양석을 묶기 시작했다. 그는 그렇게 말도 제대로 못하는 멍청한 얼굴로 끌려갔다.
지부장은 여전히 말을 탄 그대로 장건에게 조금 다가와선 말했다.
“자. 이제 거기서 비켜서게. 마을을 어지럽히던 건달들을 체포해야 하니까.”
상황을 가만 지켜보던 장건은 순순히 그의 말에 따랐다. 객잔 입구에서 나와 말이 묶여있던 말뚝 쪽으로 걸어간 것이다. 무림맹 무사들이 우르르 객잔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지부장은 고삐를 푸는 장건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곧바로 떠날 생각인가?”
장건은 뒤돌아보지 않고 대답 하지도 않았다. 지부장은 혼자 고개를 끄덕거렸다.
“잘 생각했네. 아무리 정당방위였다지만 자네가 계속 여기 머무는 것은 좀 곤란하지. 마을 사람들이 불안해할 테니까.”
그가 말하는 잠깐 사이에 객잔 안으로 들어갔던 무사들이 기절한 건달들을 끄집어 길가에 늘어놓고 있었다. 지부장은 그 중 얼굴이 엉망이 된 진청석을 확인하고는 다시 장건에게 물었다.
“무공은 어디서 배웠나? 진청석 저놈이 고수는 아니어도 싸움질을 꽤 하는데.”
장건은 여전히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말안장 위로 올라앉았다. 푸르륵 거리는 말의 고삐를 대충 한번 끌어당긴 그는 그제야 지부장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는 아무런 말 없이 바라보다가 들고 있던 삿갓을 쓰며 마을에 들어설 적과는 반대 방향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과묵한 친구군.”
지부장은 그가 돌아서고 나서야 표정을 굳혔다. 마음 같아선 무림맹 지부장의 지위를 이용해 그를 겁박하고 싶었으나, 혹시나 무림맹을 두려워하지 않는 고수면 어쩌나 하는 거리낌도 있었다. 지부장은 결국 천천히 떠나는 장건을 붙잡지 못했다. 그는 싯누런 침을 바닥에 찍 뱉어내며 멀어지는 장건의 등을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때 객잔 안에서 양굉이 튀어나오며 외쳤다.
“장 형! 같이 갑시다, 장 형! 나 여기 혼자 두지 마시오!”
그는 그렇게 무작정 외쳤다가 다른 무림맹 무사들과 지부장의 찌푸린 눈살을 받고 움찔거리더니, 재빨리 자신의 말 위에 타 장건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얼른 장건 옆으로 따라와서 흘끔 뒤를 돌아보았다.
“염병··· 무림맹 지부장이라는 양반이 저렇게 기회주의자여서야···”
장건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두 사람이 그 작은 개척 마을의 대로를 가로지르는 동안 마을 사람들은 각자의 집에서, 창문으로, 혹은 문 앞에 서서 그들을 경계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양굉은 그런 사람들을 씁쓸한 눈으로 마주 보다가 말했다.
“이거 참, 그래도 장 형이 이 마을 문젯거리를 해결해준 것인데 다들 보는 눈이 좀 그렇구먼.”
그는 장건에게 눈을 돌리며 물었다.
“장 형, 저 지부장 양반이 왜 저런 건줄 아시오?”
“왜 저러긴 뭐. 무림맹 소속이니 범죄자를 잡는 거지.”
“자기 의무를 그렇게 잘 지키는 놈이었으면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그렇게 뒷담화가 나왔겠소? 보시오, 장 형. 내가 소문 하나를 들었는데, 이 일대에 지금 무림맹 순찰자가 돌고 있다더구먼. 내가 봤을 때 저 양반도 그 소문을 듣고 불안해하다가 장 형이 나타나자 좋은 기회다 하고 나선 것 같단 말이지.”
장건은 대답도 없이 말안장의 흔들림에 그대로 몸을 싣고 있는데 양굉은 마을을 벗어나는 동안 계속 나불나불 떠들었다.
“그럼 덕분에 자기 치부를 가렸으니 뭐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오? 돈이라도 몇 푼 주던가, 아니면 숙식이라도 해결해주는 게 맞는 이치지, 이렇게 쫓아내는 건 아니라는 말이외다. 하여간 내가 본 무림맹 지부장 중에선 제대로 된 놈이 없었소. 어딘가 모자라거나, 아니면 저기 저 양반만큼 기회주의자들이지. 하긴 일 좀 할 줄 아는 놈이면 무림맹 안 들어가지. 저기 그래서 말인데, 장 형. 뜬금없지만 혹시 나하고 일 하나···”
양굉의 말이 멈췄다. 조금 앞서가던 장건이 멈췄기 때문이었다. 양굉이 그 모습에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그들은 어느새 동쪽으로 마을을 벗어나 갈림길 앞에 서 있었다. 한쪽은 북쪽으로, 한쪽은 계속 동쪽으로 나아가는 길이었다. 작은 나무 표지판이 갈림길 사이에 세워져 있었다.
“···왜 멈추셨소?”
장건은 그 말에 양굉을 바라보았다.
“넌 어디로 가냐.”
“그, 글쎄? 장 형은 어디로 가시오?”
장건은 피식 웃었다.
“난 도박판에서 속임수 쓰는 놈하곤 같이 일 안 한다.”
“···난 하지 말자고 했다니까? 정말이외다. 그리고 내가 무슨 일을 하자고 할 줄 알고?”
양굉의 대답에 고개를 살살 저은 장건은 동쪽 길을 향해 말머리를 돌렸다.
“앞으로 다시 보는 일 없도록 하자, 사기꾼. 혹시나 따라오면 다리를 분질러 줄 테니까 알아서 해.”
그리고는 그대로 말을 달려 떠나버렸다. 양굉은 다리를 분지르니 어쩌니 하는 험악한 말에 뭐라 말도 못하고 입만 벙긋거리며 그의 등과 말 엉덩이만 바라보았다. 그는 잠시 후 장건이 좀 멀어지고 나서야 푹 한숨을 내쉬었다.
“···거 겁나 비싸게 구네. 저놈 정체가 뭐지? 암주골 토박이는 아니었는데. 제대로 조사해 봐야겠군.”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린 양굉은 북쪽 길로 말머리를 돌리곤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아, 제길. 해가 다 지는데 마을에서 쫓겨나다니. 염병.”
북쪽으로 출발하려던 그는 잠시 말을 멈춰 세우고 멀어진 장건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해가 지며 동쪽은 검푸르게 물들어가고 있었으나, 그 어둑한 세상으로 달려가는 장건과 그가 탄 말은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못하는지 거침없었다.
그걸 바라보며 묘한 감상을 느끼던 양굉은 이내 자신도 북쪽으로 길을 잡고 떠났다. 말발굽에 자욱하게 피어난 먼지가 그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