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41)
41화
방 안에 있는 세 사람의 자세는 조금씩 달랐다.
거구의 승려는 의자 위에 바르게 앉아 명상이라도 하듯 반쯤 감은 눈으로 장건을 바라보고 있었고, 검을 끌어안은 진하라는 무사는 마찬가지로 장건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 승려에게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다. 설이라는 여자는 그런 둘의 묘한 신경전과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 구석에서 벽에 머리를 대고 꾸벅거렸다.
그녀는 그렇게 졸다가 장건이 뒤를 돌며 한 말에 화들짝 놀라 깨서 장건을 바라보았다.
“아! 끝나셨나요?”
그 말에 승려의 눈이 번쩍 뜨이고, 진하도 장건에게 시선을 주었다. 장건은 그들의 눈을 마주 보다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물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군. 설명 좀 해주시겠소?”
설이는 소매로 입가를 슥슥 닦으며 일어섰다. 그녀는 슬쩍 장건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
“와, 멀쩡하시네요? 사흘 가까이 진기 도인을 했으면서 피곤한 기색 하나 없네.”
“사흘?”
“네. 장 무사님은 사흘 동안 진기 도인을 하고 계셨어요.”
장건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쪽은 왜 여기 있소?”
“아. 기억 안 나시나요? 제 책의 취재를 도와주기로 하셨잖아요?”
그건 장건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객잔에서 만나 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약속장소에 가서도 나타나질 않으시더라고요. 그래서 두 분의 흔적을 쫓고 쫓아 여기 도착했죠. 그 이후에는 진원상 스님 부탁대로 장 무사님 호법을 섰고요.”
“···호법을 부탁했다고?”
그가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 없었다는 건 그녀들이 그 호법을 잘 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녁에 잠시 만났던 사람을 뭘 믿고 호법을 맡겼단 말인가.
“그렇게 호법을 서는 동안 반나절 전쯤에 저 스님이 등장하셨죠. 처음엔 쫓아내려 했는데, 저분이 자기를 소림사 아라한이라는 거 있죠? 게다가 진원상 그분은 소림에 죄를 짓고 도망친 죄인이라 하고···”
“진원상은?”
“그분이요? 아··· 그분은···”
“그건 내가 이야기해 주겠소.”
그때 앉아 있던 승려가 스르르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그를 경계하고 있던 진하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설이의 전방을 가렸다. 하지만 승려는 그런 모습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장건의 눈만 바라보고 있었다.
“난 진견이라고 하오. 하찮은 땡중이지.”
“장건.”
“만나서 반갑소, 장건. 진조를 도와주셨다지?”
“그 진조가 진원상을 말하는 거라면.”
“원상은 진조가 출가하기 전 이름이오. 그나마 항렬까지 잊진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자신을 진견이라 밝힌 승려는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고개를 내젓다가 장건 너머에 누워있는 소녀에게 눈을 주었다.
“저 아이가 삼킨 게 본사의 보물이라는 것 알고 있었소?”
장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조가 그걸 방장과 사형제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반출한 물건이라는 것도?”
“대충 짐작하고 있었소.”
진견은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다시 물었다.
“아이 상태는 어떻소?”
“멀쩡하지. 영약 덕에 전신의 기혈이 깨끗해지고 질겨져 무공을 배우면 고수가 될 것이오.”
특히 이번에 고쳐진 아홉 기혈이 소녀의 내공에 특별한 힘을 부여할 것이라는 점도 있었다. 정확히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 알겠지만, 장건은 그게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재능이라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 저 아이가 본사의 보물을 완전히 소화한 것이오?”
“남김없이.”
“당신이 그걸 도왔고?”
“죄 없는 아이는 살려야지.”
진견은 잠시 아무런 말 없이 장건의 눈을 바라보기만 했다. 지켜보던 진하와 설이는 그렇게 서로를 마주 보는 두 남자의 모습에서 묘한 긴장감을 느끼고 숨을 죽였다. 진하는 검집째 쥐고 있던 검에 슬며시 손을 가져갔다.
그때 진견이 천천히 두 손을 모아 합장하더니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내 못난 사제를 대신해 감사하겠소. 대환단의 약력을 감당하고 인도해 아이의 몸을 고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일을 별다른 대가도 없이 선뜻 나서주었으니 이보다 훌륭한 공덕은 몇 없을 것이오. 훗날 그 공덕이 장 무인의 큰 힘이 될 것이오.”
이번 경험이 힘이 되긴 할 것이다. 훗날까지 갈 것도 없이 당장 시간만 주어지면 장건의 손에서 새로운 무리武理가 되어 나올 테니까.
장건은 진견이 허리를 펴는 걸 보며 물었다.
“···나한테 죄를 묻지는 않겠다는 것 같은데. 맞소?”
“사람을 구한 게 어찌 죄가 되겠소? 물건은 물건일 뿐이지. 그저 이제부터 내가 할 이야기를 듣고 장 무사가 부디 도움을 주시길 바랄 뿐이오.”
“무슨 도움?”
진견은 두 손을 합장한 그대로 장건을 올려다보며 얼굴을 굳혔다.
“장 무사가 사흘간 진기 도인을 하던 때에, 내 못난 사제는 여기 이 여인들에게 호법을 맡기고 무지막지한 일을 벌였소. 한밤중 검룡문에 몰래 숨어 들어가 검룡문주를 암살하고, 그것으로 모자라 수많은 검룡문 문도를 해친 것이오.”
장건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진원상이 했던 대가를 치러야 할 자가 없지는 않다는 말뜻을 이제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견은 그런 장건을 향해 말을 이었다.
“진조는 아직 잡히지 않았소. 검룡문에서 그 난리를 피우고 서쪽으로 도망쳤지. 그리고 문주를 잃은 검룡문에서는 무사들을 정리해 추적대를 보냈소. 그 수가 백여 명이라 하더군. 진조도 싸움 중에 큰 상처를 입어서 그 추적을 뿌리칠 수 있을지 모를 일이오.”
진견의 이야기에 장건은 다시 눈을 뜨고 그를 마주 보았다.
“그 상황에 내 도움이 필요할 일이 있소?”
“있지. 난 진조와 친해 녀석이 이 염호성으로 오리라는 것, 그리고 옛 친구를 찾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소. 그래서 여기까지 별 어려움 없이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오. 하지만 길도 뭣도 없는 황야에서는? 난 길잡이가 아니오. 진조와 검룡문 추격대가 떠난 지 벌써 하루가 지났소.”
진견은 합장을 풀고 똑바로 섰다. 몸에 걸친 승복과 깨끗이 민 머리가 아니었다면 승려가 아니라 장군이라 해도 믿었을 풍채였다.
“듣자니 별것 없는 단서로 반나절 만에 진조의 친구를 찾았다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해줄 수 있겠소? 이번 일은 도시에서 사람 찾기가 아니라 서쪽에서 흔적을 따라가는 것이오.”
“찾아서 뭘 어쩌려고?”
진견의 두 눈이 단단한 금강석처럼 빛났다.
“진조는 선사의 유해를 망치고 중요한 수행 중 도망쳤을 뿐만 아니라, 불살생계를 어기고 사람을 해쳤소. 소림의 죄는 소림에게. 내 사제는 모든 무공을 폐하고 나와 함께 소림의 참회동으로 가 남은 생을 보내게 될 것이오.
“···적어도 검룡문 손에 죽게 두진 않겠다는 것이군.”
“소림의 것은 소림에게.”
장건은 그렇게 말하는 진견의 모습을 가만 바라보았다. 어쩐지 그의 모습에서 진원상, 그러니까 진조의 모습이 겹치는 것 같았다. 사형제라 그런 것인지 정말 그의 형 정도로 보일 정도였다. 장건은 그의 눈에 시선을 고정하고 말했다.
“설 소저.”
“아, 예, 예. 말씀하세요.”
진하 어깨 너머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숨을 죽이고 있던 설이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저 아이를 좀 보살펴줄 수 있겠소? 내가 돌아올 때까지. 아마 금방 깨어날 텐데.”
“아이를요? 알겠어요. 그러면 여기보다는 우리가 만나기로 했던 객잔이 좋겠네요. 진하랑 제가 아이를 데려가서 기다릴게요. 그리고··· 저기···
그녀가 말끝을 흐리자 장건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마주 보고 생글 미소 지었다. 그녀의 손에 조그마한 책자 하나가 들려 있었다.
“대신에 돌아오시면 그땐 장 무사님이 겪은 이번 일을 모두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그렇게 하지.”
장건은 마지막으로 몸을 돌려 여태까지 이름을 모르는 소녀를 돌아보았다. 시체처럼 창백하던 얼굴엔 불그스름 생기가 돌고 있었고, 호흡도 고르게 흐르고 있었다. 엄마가 흔들어 깨우면 더 자고 싶어서 투정이라도 부릴 것 같은 그런 평범한 소녀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사이에 부모를 잃고, 집과 재산마저 빼앗겨 퀴퀴한 절간 방 한구석에서 죽어가던 아이였다.
그 소녀를 잠시 바라보던 장건은 손을 뻗어 아이의 얼굴 위에 조금 너저분한 잔머리를 치워주었다.
“다음엔 깨어난 얼굴로 보자.”
인사말을 건넨 장건은 설이와 진하에게 부탁한다는 뜻으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곧장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그 행동들이 승낙임을 느낀 진견이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방을 나서자 잠시 방 안이 조용해졌다. 그러다가 유설이 갑자기 진하의 팔뚝을 두들기며 말했다.
“크으! 내가 말했지? 분명 뭔가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이었다니까!”
“아, 예···”
진하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동안 유설은 약간 너덜너덜한 책자를 꼭 끌어안으며 빙글 돌아 방 한가운데 멈춰 섰다.
“보물을 훔쳐 들고 옛 연인을 찾아온 소림승, 돈을 위해 그를 돕는 낭인과 벌을 줄지언정 자신의 손으로 주겠다는 그의 사형! 서로를 마주한 세 남자의 차가운 눈빛과 칼날··· 그래, 이걸 위해 그 먼바다를 건너온 거지!”
진하는 그런 유설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장건과 진견, 진조의 모습을 보고 너무 유설 마음대로 해석한 이야기였다. 그 상상이 맞을지는 나중에 장건이 돌아와야 알 수 있을 터였다. 문제는 백 명이 넘는 검룡문 추격대를 그와 진견이 해결할 수 있냐는 것이지만.
그런데 혼자 그렇게 발랄하게 놀던 유설이 어느 순간 안색을 가라앉히더니 진하를 돌아보았다.
“···저기, 진하.”
“예, 말씀하세요.”
“···그러니까 이 아이. 부모님이 모두 죽은 거지? 거기에 이 지역 문파에서 그 유산도 모두 갈취한 거고.”
진하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진지한 질문에 잠시 말문이 막혀 머뭇거리다가, 푹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예. 그 진원상인지 진조인지 모를 파계승의 이야기대로라면요. 그 검룡문이라는 곳에서 제대로 이 지역의 질서를 세웠다면 없었을 비극이긴 하죠.”
유설은 가라앉은 눈으로 잠든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 칼 든 무뢰배들이 자기 마음대로 법을 집행하고 재산을 빼앗는 이런 곳에서. 그렇게 새로운 세상과 기회가 고팠던 걸까? 아니면 이런 엉망진창의 세상마저도 아바마마의 중원보다는 낫다는 걸까? 대체···”
“아가씨.”
유설은 진하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그녀를 바라보았다. 진하가 말했다.
“신대륙의 모든 곳이 이곳과 같지는 않습니다. 더 살기 좋은 곳이 많죠. 그리고 지난 백 년 동안, 그리고 지금도 이 신대륙으로 건너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땅을 가지기 위해 온 이들이에요. 적어도 자신의 선택으로 온 이들이죠. 하지만 이 아이는 아직 그런 선택의 기회가 없었을 뿐입니다. 이 아이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당연히 중원에서 살아갈 거예요.”
유설은 자신을 위로하려는 진하의 모습에 작게 웃었다.
“아닐 수도 있잖아?”
“···네, 아닐 수도 있죠. 그럼 뭐, 아이가 깨어나는 대로 중원에 대한 환상을 마구 심어주자고요. 거기 가는 게 꿈이 되도록.”
“나처럼?”
진하는 곤란한 듯 웃었다. 유설은 다시 싱긋 웃으며 아직도 달게 다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좋은 꿈이라도 꾸는지 편안해 보였다.
*
장건과 진견은 지난밤의 일로 혼잡스러운 염호성을 가로질러서 먼저 객잔에 들렀다. 조조가 거기 있었기 때문이었다. 녀석은 장건이 말안장을 얹어주자 귀찮아 죽겠다는 듯 푸르륵거렸다.
“며칠 놀았으면 됐지, 인마. 가자.”
장건이 안장에 올라타 마구간을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진견이 조조를 보며 말했다.
“훌륭한 말이군. 보통 말이 아닌 듯 보이오.”
“훌륭하긴. 가끔 이 녀석 때문에 머리가 아픈데.”
진견은 장건의 너스레에도 진지한 얼굴 그대로 말을 이었다.
“어디부터 시작할 것이오? 우린 이미 많이 뒤처져 있소.”
“그들이 서쪽으로 향했다 했소?”
진견이 고개를 끄덕이자 장건은 곧장 앞장섰다.
“갑시다.”
장건의 손길에 조조는 가볍게 투레질을 하고 곧장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 거침없는 질주에 진견은 살짝 당황하며 따라붙었다. 장건과 조조의 질주는 서쪽으로 염호성을 벗어난 이후엔 더 거침없이 빨라져 갔다.
잠시 후 진견이 그 뒤로 따라붙으며 외쳤다.
“뭘 알고 가는 거 맞소? 흔적은 살피지도 않았잖소!”
장건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굳이 내려서 살필 필요 없었소! 이미 먼저 지나간 백여 명이 만들어둔 길이 있으니까!”
진견이 그 말에 땅을 살펴보니 드넓게 펼쳐진 마른 풀과 대지에 수많은 말발굽이 만든 뚜렷한 길이 있었다. 그 길은 서쪽으로, 더 먼 서쪽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진견은 이 정도 흔적이라면 자신 혼자서라도 쫓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길게 하나로 이어지는 듯했던 말발굽이 중간에 셋으로 나뉜 것이다. 진견은 이번엔 장건이 말에서 내려 흔적을 살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장건은 속도만 잠시 늦춰 발아래를 대강 훑더니 거침없이 셋 중 하나를 선택해 달려 나갔다. 진견이 외쳤다.
“왜 이쪽으로 가는 것이오?”
“다른 둘은 우회해서 나아가 진원상이 다른 방향으로 빠지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것이오! 산이나 계곡으로 도망치면 흔적을 놓칠 수 있어서!”
추적법에 대해 잘 모르는 진견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늦었으나 장건과 함께하길 잘했단 생각을 했다. 그들은 중간중간 말이 너무 지치지 않게 속도를 조절하면서 꾸준히 서쪽을 향했다.
그때 장건이 갑자기 뭔가 발견하고 조조의 속도를 높였다. 진견은 얼른 그 뒤를 따라 붙으며 그가 본 것을 확인했다. 뭔가 하얀 천으로 둘둘 싸맨 뭔가가 모여있었다. 잠시 후 진견은 그것들의 정체를 확인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아미타불…”
그들을 맞이한 것은 벌판 한복판에 누워있는 시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