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45)
45화
대답을 들었음에도 진원상의 어리둥절한 표정은 지워지지 않았다.
“···태극권? 어디서 그런···”
“그게 중요한가?”
변함없는 장건의 태도와 자세에 당혹스러워하던 진원상도 점점 제정신을 찾았다. 그러니까 다시 두 눈에서 흉흉한 기운을 뿜기 시작했다는 말이었다.
“···그래, 그렇지. 어디서 누구에게 배웠는지가 뭐가 중요하겠소··· 요상한 수법이긴 하지만 그런 느려터진 동작으론 날 막을 수 없을 것이오.”
장건은 피식 웃었다.
“느리긴. 아까부터 너보다 빨랐어.”
진원상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다시 훌쩍 달려들었을 뿐이다. 단단히 말아쥔 그의 주먹이 허공을 찢으며 장건의 머리를 노렸다.
장건은 그 주먹 앞에서 물러나거나 피하지 않았다. 도리어 뻗어오는 주먹과 팔을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밀어내고는 앞으로 한 발 더 내디뎌 진원상에게 바짝 붙었다. 진원상은 당황하지 않고 조금 전 밀려났던 것을 떠올리며 바짝 붙은 그대로 장건을 공격했다.
둘 사이의 공간이 너무 좁아서 주먹은 닿을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진원상이 무력한 것은 아니었다. 주먹은 멀어도 팔꿈치나 어깨 등 공격 수단은 많았다. 진원상은 곧장 장건의 얼굴을 향해 왼팔 팔꿈치를 찍어갔다.
팔꿈치는 닿지 않았다. 장건은 진원상을 중심에 두고 빙글 돌아 팔꿈치의 타점을 피하고 발을 들어 그의 무릎 뒤 오금을 툭 찼다.
진원상은 무릎이 훅 꺾이며 주저앉을 뻔했다. 그러나 무게중심을 반대편 발로 옮겨 쓰러지려는 몸을 다잡고 계속 장건을 공격했다. 주먹이 움직일 공간은 없으니 다시 팔꿈치와 팔뚝, 어깨로 장건을 찍어버리려 했다.
하지만 닿지 않았다. 진원상의 공격에는 힘이 넘쳤고 바위라도 부숴버릴 듯한 기세가 담겨 있었지만, 그 힘이 제대로 장건을 타격하질 못했다. 장건은 마치 갈대처럼 휘청거리며 진원상의 공격을 끌어당기고, 밀고, 붙잡아 누르고, 받아넘겨 흘리고, 혹은 미는 만큼 그대로 밀려났다가 오뚜기처럼 제자리로 되돌아오며 흘렸다.
바짝 붙은 두 사람은 손이 아니라 팔꿈치, 어깨, 무릎, 허리, 등을 이용해 움직였다. 차이점이라면 진원상은 어떻게든 빠르고 곧게 움직여 타격점을 얻으려 했고, 장건은 전신을 빙글빙글 돌리며 원형 운동을 하며 툭툭 진원상의 균형만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곡선을 그리는 장건이 최단 거리로 움직이는 진원상보다 꼭 한순간씩 빨랐다. 진원상은 장건이 미래라도 읽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해야 했다. 결국 한참 용을 쓰고도 유효타 한번 먹이지 못한 진원상은 점점 더 답답해졌다. 그는 마치 늪이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끄-아-아-아-!”
끝내 머리끝까지 열이 뻗친 진원상은 고함을 지르며 막무가내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쓰던 소림의 무공과 그 무리武理를 잊고 무작정 몸 안에 뻗치는 공력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 결과 그의 동작은 더 단순해지고 더 쉽게 균형을 잃었다. 그 공격을 가볍게 두어 번 피한 장건은 자신을 향해 들이박는 진원상의 이마빡을 오른손으로 부드럽게 받아 그대로 넘겨버렸다. 진원상은 누가 집어던진 것처럼 휙 날아가 소금 바닥을 나뒹굴었다.
“끄억!”
그는 이번엔 아까처럼 곧바로 땅을 박차고 일어나지 못했다. 장건의 손짓 한 번에 몸 안에 들끓는 공력이 통제를 벗어나 날뛰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렇게 땅을 뒹굴다가 번뜩 고개를 쳐들고 장건을 노려보았다. 통제를 벗어난 내력과 고통에 진원상의 얼굴은 어떻게 더 구겨질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가 버럭 외쳤다.
“당신도-! 당신도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나? 내가 저들에게 죄를 묻지 않았어야 했나? 소소의 복수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나!”
그를 집어던진 장건은 맨 처음의 자세로 돌아가 차분한 눈으로 마주 보고 있을 뿐 뭐라 대답하지 않았다. 장건의 변함없는 모습에 뭐라 더 외치려던 진원상은 문득, 그 침착한 눈빛이 마치 잔잔한 호수처럼 자신의 모습을 비추고 있는 것만 같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는 그걸 깨닫는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왜 아이에 대해 더 궁금하지 않을까? 병의 치유가 잘 되었다지만 그래도 사정이 더 궁금할 법도 한데. 정말 소소를 학대한 놈의 딸이라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면 굳이 본사의 대환단까지 훔쳐서 올 필요가 있었나? 어차피 남편의 학대에서 소소만 구하면 그만이었을 텐데.
“아.”
그랬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소소뿐이었다. 대환단을 가져와 딸의 병을 고쳐 줄 생각을 한 것은, 그것을 소소가 기뻐하리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거기엔 그가 십 년 넘게 배워온 부처의 자비는 없었다. 동시에 스승과 사형제들에 대한 존중도 없었다. 그저 옛 연인의 환심을 되찾으려는 얕은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가 죽었기 때문에, 더는 그녀의 마음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딸아이는 그에게 별 의미가 없었다. 편지를 보고 이 신대륙으로 달려올 생각을 마음먹은 순간부터 그는 소림의 승려 진조가 아니라 놓친 연인을 되찾고 싶어 발광하는 찌질이 원상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진조의 모습과 지난 십 년을 버리고 왔음에도 결국 마주한 것이 소소의 죽음이라는 사실에 그 어리석은 원상의 모습마저도 빛을 잃었다. 이제 여기 있는 것은 복수라는 핑계를 대고 그저 마구잡이로 사람을 때려죽이고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마인魔人뿐이었다.
“···흐흐, 흐하, 흐하하! 으하하하-!”
혼자 멍한 표정을 짓던 진원상은 갑자기 실성이라도 한 것처럼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웃음과 함께 잠시 멈춘 듯했던 피눈물이 다시 주르륵 흘러내렸고, 목의 핏대가 서며 얼굴과 몸에 울긋불긋 혈관이 일어섰다. 가슴의 상처에서는 검은 피가 왈칵 터져 나왔다. 모습은 흉악한 괴물이나 다름없어지는데, 입은 계속 웃으니 또 이런 마귀가 따로 없었다.
장건은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처음의 자세에서 아무런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나 진원상을 바라보는 두 눈은 더 깊게 가라앉고 있었다.
미친 듯 웃던 진원상은 갑작스레 뚝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검룡문은 모두 죽어야 한다.”
그는 정신 나간 놈처럼 그렇게 말하더니 벌떡 일어나 대뜸 검룡문 무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서로의 다친 몸을 끌어안고 멀찍이 떨어져 있던 검룡문 무사들은 갑자기 달려오는 그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뭐야 시발! 갑자기 왜 이래!”
“사, 살려줘! 제발! 안 돼!”
진원상의 그런 갑작스러운 돌진에 주저앉아 있던 진견이 다급히 일어나 무사들 앞을 가로막았다.
“멈추게, 진조 사제!”
그러나 그의 두 팔은 조금 전 얻은 상처로 들어 올릴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진원상은 그런 진견의 사정 따위는 모르겠다는 듯, 그냥 찢어 죽이겠다는 듯 매처럼 웅크린 손을 들이밀었다. 진견은 그 손을 보고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비켜서느니 그냥 몸으로 막겠다는 얼굴이었다. 벌겋게 충혈된 진원상의 눈에 망설임은 없어 보였다.
그 손아귀가 진견의 목덜미를 찢어버리기 직전, 진원상은 뒤에서 허리춤을 붙잡고 끌어당기는 어떤 힘에 훅 끌려갔다. 그 힘은 그대로 그를 위쪽으로 반 바퀴 돌리며 땅에 내리꽂으려 했다.
하지만 진원상은 그렇게 끌려가는 와중에 허공에서 거칠게 허리를 튕겨 장건의 손을 뿌리치고 휘리릭 공중제비를 돌아 땅에 내려섰다. 그리고 곧장 장건에게 오른 주먹을 날렸다.
장건은 이전 격돌처럼 왼손을 들어 그 주먹을 감싸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주먹과 손바닥이 만나는 순간 장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안에 담긴 내력이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이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 순간 다시 한번 갈대처럼 낭창한 몸놀림으로 휘청 주먹을 흘렸다. 직후 비켜나간 주먹에 담겨 있던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내력이 퓽 소리를 내며 뿜어져 나가 하얀 소금 바닥에 쿵-하고 깊은 주먹 자국을 남겼다.
“으하하하하!”
진원상은 이어서 다시 장건을 공격했다. 그 주먹과 몸짓, 걸음걸음에는 믿기지 않는 거력이 담겨 허공을 찢고 바닥을 부수며 장건을 노렸다. 그에 맞서는 장건의 동작들은 조금 전과 같이 휘청거리고 빙글 도는 것은 같았으나, 동시에 비교할 수 없이 위태로워 보였다.
두 사람이 디디는 걸음과 폭풍처럼 뿜어져 나오는 내력에 하얀 소금 바닥과 모래가 으스러지고 먼지처럼 피어나 발밑에 옅게 깔렸다.
진원상은 조금 전까지 허우적거리던 모습은 떠올릴 수 없는 동작으로 장건을 밀어붙이며 외쳤다.
“언제까지 그렇게 막고 피하기만 할 수 있을 것 같냐!”
그 외침 이후 그의 주먹에 탁한 회색 기운이 맺혔다. 날붙이에 일어나는 검기처럼 정도를 넘어선 내공이 그의 피부와 주먹을 타고 외부로 드러난 것이었다. 굳이 명명하자면 권기拳氣라고 할 수 있었다.
“죽어라-!”
그 빛을 본 장건은 더는 흘리고 피하는 방식으로 진원상을 막을 수 없다는 걸 느꼈다. 아니, 물론 계속 그렇게 하려면 그렇게 할 수도 있었다. 전날 계곡의 정령에게 얻었던 영약을 모두 소화한 장건은 지금 날뛰는 진원상만큼이나 손발에 무식하게 내공을 밀어 넣고 상대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장건은 한 가지를 더 느끼고 있었다. 지금 이 진원상의 무지막지한 내력은 그의 생명력이라는 사실이었다. 주화입마가 끝내 그의 모든 것을 불태우고 있었다. 아마 지푸라기를 불태우는 것처럼 오래 가지 못할 화력이었다.
동시에 장건은 진원상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흉악하게 일그러진 얼굴과 마귀처럼 웃는 입과는 달리, 지금 진원상의 두 눈동자는 놀랍도록 차분하고 맑게 가라앉아 그를 마주 보고 있었다. 장건은 그 또렷한 눈이 말하고 있는 바를 알았다.
“흐하하하! 죽어라, 죽어-!”
미친놈처럼 웃는 진원상이 오른 주먹에 회색 기운을 두르고 곧게 뻗어왔다. 어떤 속임수나 거짓 없이 곧은 직선으로 쭉 뻗어오는 정권이었다. 그것은 마귀 같은 얼굴과는 다르게 순수하고 간결했다.
장건의 왼손이 그 주먹을 향해 마주 뻗었다. 그의 손은 단순하게 다가오는 진원상의 주먹을 마치 흐르는 물처럼 부드럽게 비켜내며 진원상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동시에 한순간 장건의 발끝을 시작으로 발목, 무릎, 허리, 어깨, 팔꿈치, 손목을 순서로 미세한 회전이 이어져 손끝으로 도달했다. 그리고 그 손끝은 마치 깃털이 내려앉는 듯한 모습으로 진원상의 가슴에 닿았다.
그 후 약간 뒤늦게 진원상의 몸에서 쿵-하는 울림이 일었다. 그 울림 이후 장건도, 진원상도 움직이지 않았다. 두 사람의 대결로 옅게 일어났던 먼지가 천천히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가는 새털구름이 뜨문뜨문 떠다녔다. 하얀빛으로 드넓게 펼쳐진 소금 평원과 그 하늘은 그저 평화로워 보였다. 그 풍경은 그들이 싸움을 시작하기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 없었다.
그때 진원상이 입을 열었다.
“···장 무사. 내가 그 아이의 이름을 말해주었던가요? 소소의 딸아이요.”
그는 약간 쉬어버린 듯한 목소리로 그리 물었다. 피곤한 목소리였지만 적어도 미친놈처럼 웃을 적보다는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아니. 말해주지 않았소.”
“그랬군요. 아이의 이름은 진서하라고 합니다···”
그는 속에서 뭔가 올라오는지 잠시 말을 멈칫거렸다.
“···이 진眞이라는 글자가 참 제 삶과 얽히더군요. 소소를 채간 놈의 성씨였고, 제가 법명을 받았을 때 항렬이기도 하고, 당연하지만 소소의 딸아이 성도 그것이고··· 그리고 끝내 제가 저 자신을 보며 깨달았어야 할 글자이기도 하고요.”
그때 울컥거림도 없이 그의 입에서 주르륵 선홍빛 피가 흘러내렸다. 그는 그렇게 피를 흘리면서도 장건을 보여 옅게 웃었다.
“저 같은 땡중 때문에 지난 며칠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장 무사. 그리고 죄송하지만, 서하를 좀 부탁합니다.”
“난 집도 없이 떠도는 떠돌이인데.”
“잠깐 사이에 두 부모를 잃은 아이입니다. 소림사로 보내던 어디로 보내던, 그동안 홀로 두지만 말아 주세요.”
잠시 망설이던 장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원상은 그걸 보고는 자기도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 순간 기우뚱 뒤로 쓰러졌다.
“진조! 진조 사제!”
진원상이 쓰러지는 모습에 진견이 달려왔다. 하지만 하늘을 올려다보며 드러누운 그는 이미 숨이 멎어 있었다. 그 시체 앞에 꿇어앉은 진견은 침통한 듯 두 눈을 꾹 감으며 머리를 숙였다.
“···나무아미타··· 불··· 관세음, 보살···”
장건은 그 울음 섞여 억눌린 염불을 들으며 고개를 돌렸다. 염호성에서 서쪽으로 하룻밤을 달려 나오는 소금 평원은 풀 한 포기, 짐승 한 마리 찾아볼 수 없어 건조한 바람 소리만 가늘게 울려 퍼졌다. 그 새하얀 풍경이 황량함일지, 티 없는 순수함일지는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몫일 것이다.
저쪽에서 조조가 다른 말의 고삐를 물고 털털 다가오고 있었다. 장건은 그걸 발견하고는 자기도 모르게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