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46)
46화
* * *
늦은 오후의 날씨는 쌀쌀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장건은 오늘따라 겨울 날씨답게 서늘하단 느낌을 받으며 슬쩍 옷깃을 추슬렀다. 하얀 입김을 뿜어 올린 그는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그의 앞에 묘비 둘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진원상과 양소소의 묘비. 그 묘비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옆에 있던 진견이 입을 열었다.
“흙으로 돌아갈 육신이라도 이제나마 함께하니, 둘 모두 미련을 거두고 정토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장건은 별다른 대답 없이 슬쩍 그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진견은 양팔에 붕대를 둥둥 두르고 그 위에 넉넉한 승복을 걸치고 있었다. 상처가 꽤 깊어서 가벼운 움직임에도 큰 고통을 느낄 터인데, 그는 전혀 그런 걸 모르겠다는 듯 합장을 하고 눈을 감으며 중얼중얼 불경을 읊조렸다. 물론 장건의 눈에는 통증을 견디느라 미세하게 떨리는 그의 몸이 보였다.
조금 더 고개를 돌리니 뒤쪽에 서 있는 설 씨 아가씨와 그녀의 호위무사 진하가 보였다. 그리고 그들 앞에 무표정으로 선 소녀가 보였다. 약간 창백한 얼굴의 소녀는 진서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문득 장건의 시선을 느꼈는지 묘비에서 눈을 떼 그를 마주 보았다. 그렇게 그를 마주 보는 소녀의 두 눈은 묘한 검푸른 색이었다. 그 차가운 얼굴과 눈을 잠시 바라보던 장건은 이내 다시 묘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반듯한 모양의 묘비들이 다시 그의 눈앞을 채웠다. 장건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진원상의 시신과 염호성으로 돌아온 지 벌써 사흘째인데 그는 아직 저 소녀와 인사도 제대로 나누질 못했다. 그건 그가 무슨 이야기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점도 있었지만, 동시에 진서하가 눈을 뜬 이후로 여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문제 때문도 있었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하던 장건은 불쑥 옆에 있는 진견에게 물었다.
“괜찮겠소?”
“···아미타불, 무엇이 말이오?”
“소림에서 여제자를 받는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진견은 가볍게 웃었다.
“소림을 오르는 자가 무조건 머리를 밀고 중이 되어 소림의 제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오. 본사는 그저 저 아이의 후견을 맡을 뿐이지. 우린 저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그리고 본인 앞가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도울 것이오. 보통 이걸 속가제자라 하외다.”
장건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진견은 그걸 보고 다시 씩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검룡문으로부터 받은 보상금도 있으니 나중에라도 아이가 배곯을 일은 없을 것이오.”
며칠 전 검룡문에 찾아가 진서하의 재산 대신 받아온 상행 조합 전표를 말하는 것일 터였다. 살아남은 무사들 덕분에 장건에게 잔뜩 겁먹은 검룡문은 일반적인 소금가마 가격의 세 배 정도를 내주었었다. 그건 확실히 많은 돈이었다. 진견은 어느 정도 설명이 끝났다 생각되자 다시 눈을 감고 염불을 외웠다. 그 염불은 한참이나 끝나지 않고 조용히 이어졌다.
조촐한 장례식 이후 객잔으로 돌아가는 길에 설 씨 아가씨가 슬쩍 장건에게 붙었다.
“저기, 장 무사님?”
“듣고 있소.”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던 그녀는 장건이 퉁명스럽게나마 대답을 해주는 것을 보고 살며시 웃었다.
“그, 갑자기 이런 거 여쭤보긴 그런데요··· 그래도 지난번 이후로 한참 동안 계속 생각하던 거라서요.”
장건은 그런 그녀의 얼굴을 흘깃 확인했다.
“물어보시오.”
“저기, 그. 정말 아무 이름도 못 들어보셨어요?”
“이름?”
장건이 다시 확인해보니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웃음은 약간 곤란하고 불안한 웃음이었다.
“···백사경이나 감군상이나··· 혹은 무명협 말이에요···”
“그 천룡이니 질풍이니 하던 이름들?”
“···네, 그거요.”
장건은 피식 웃었다.
“지금 무림맹주의 별호가 의룡검주요. 황제가 하사한 검의 이름이 의룡검義龍劍이라 붙은 별호지. 그런데 그 천룡검사라는 양반이 무림맹주 제자라며? 제정신이라면 본인 스승을 위해서라도 자기 별호를 천룡天龍이라 하지 않을 것이오. 진짜 그렇게 불렸으면 그렇게 부르는 자들부터 직접 찾아서 말렸겠지.”
그 대답에 그녀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지난 며칠간 객잔에 머물며 직접 들은-대부분 객잔 주인에게서였다-신대륙 무림의 실체에 약간 울적해진 모양이었다. 장건은 그 표정을 보고 옅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무림맹주 제자 중 백사경이라는 이름이 있다고는 하더군. 아마 그의 이야기가 약간 과장되어 중원에 전해진 것 같은데.”
시무룩하던 그녀는 달래듯 이어진 말에 금세 활짝 얼굴을 폈다.
“역시 그렇죠? 그래요, 그게 맞겠죠. 무림맹의 무인이 어떻게 천룡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쓸 수 있겠어요? 실제로 천룡검이 어떤 지위인데··· 아, 역시 직접 이야기를 찾으러 오길 잘한 것 같아요. 중원에만 있었다면 이 진짜 무인들의 이야기를 알 수 없었겠죠···”
장건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싱글벙글한 그녀를 가만 바라보기만 했다.
“···그래요! 질풍도 감군상이나 무명협도 진짜 있을 거예요! 물론 별호는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진짜 그들이 겪은 사건이 있었으니까 중원에서도 전기소설이 나올 수 있었겠죠. 아! 무명협의 정체를, 진짜 얼굴을 알 수 있다면! 질풍도와 백사경도 궁금하지만 누구보다도 무명협의 진짜 모습이 제일 궁금하다니까요. 중원에서도 그 사람 전기소설이 제일···”
혼자 흥분해서 떠들던 그녀는 문득 자신을 멀뚱히 바라보는 장건의 시선을 느끼고 슬며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겸연쩍게 웃었다.
“···목소리가 좀 컸죠? 그게, 제가 원래 좀 흥분하면 남의 눈 신경을 잘 안 써서···”
장건은 그 어설픈 변명을 들으며 물었다.
“이름이 뭐요?”
“예?”
“그쪽. 그동안 설이라는 성씨만 알려주고 이름은 알려주질 않는군. 계속 설 소저니, 설 아가씨니 부르긴 하는데 그래도 이름은 알아야지.”
“···아, 이름이요? 제 이름?”
장건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는 잠시 입술을 핥으며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아 그게, 그, 서, 설, 묘오그음··· 그러니까··· 묘금卯金··· 이요···”
“묘금? 설묘금?”
“네, 네에···”
머뭇거리는 그녀의 대답에 옆에서 듣고 있던 진견이 끼어들었다.
“조금 특이한 이름이긴 하군. 그래도 부모가 지어주신 이름인데 그리 부끄러워해서야 되겠소? 좀 더 당당히 이야기하는 것이 설 시주의 부모님도 기뻐하실 듯하오. 그리고 이름이 조금 이상하다 하여 우리 중 누가 뭐라 하겠소? 굳이 따지자면 내 이름은 견이고, 장 무사의 이름은 건이외다. 허허.”
“그, 그렇죠?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 하하하! 묘금! 제 이름은 설묘금이예요!”
“그래! 그렇게 당당하니 얼마나 보기 좋소? 허허허!”
조금 뒤에서 진서하의 손을 붙잡고 따라가던 호위무사 진하는 자기도 모르게 이마를 감싸 쥐었다. 묘금卯金. 누가봐도 유劉의 파자에서 도刀를 뺀 것에 불과했다. 그딴 걸 이름이라고 대고 있으니 자연스레 그녀는 머리가 아팠다.
다행히 진견이 자연스레 어울려 주어서인지 둔한 것인지 장건은 뭐라 더 묻지 않았다. 그저 어설프게 웃는 설묘금과 이제 슬픔을 조금 거둔 듯한 진견의 모습에 옅게 웃을 뿐이었다.
잠시 후 객잔에 도착한 그들은 한쪽 구석 탁자에 저녁 식사를 했다. 별다른 대화 없이 그 식사를 마친 그들은 이내 각자 앞에 찻잔 하나씩 두고 앉았다. 진견이 호로록 찻물을 마시고 말했다.
“우선 지난 며칠간 많은 도움을 주었던 설 시주에게 감사하다는 말부터 하고 싶소. 나와 장 무사뿐이었다면 여러모로 곤란했을 것이오.”
그는 진서하를 보살펴준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확실히 승려인 진견과 그럭저럭 아이를 좋아하긴 하지만 약간 어려워하는 편인 장건이었다면, 열두 살 난 여자아이 진서하를 보살피는 것은 보통 복잡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별말씀을요. 이렇게라도 서하를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인걸요.”
장건은 그렇게 대답하는 설묘금을 슬쩍 바라보며 며칠 전 밤을 떠올렸다. 진원상의 시신을 가지고 돌아온 다음 날, 장건은 약속대로 그녀에게 진원상과 양소소, 그리고 진서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엔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으로 붓과 책을 들었던 그녀는 이야기가 끝날쯤에는 펼쳐놓은 책자에 굵은 눈물만 뚝뚝 흘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는 나중에 진서하의 여정을 돕고 싶다고, 적어도 중원으로 떠나는 배까지는 보살펴주고 싶다며 떠나지 않고 객잔에 남았다. 거기에 그녀는 그 후부터 진서하뿐만 아니라 진견과 장건의 숙박비와 식사 비용까지 대신 해결해 주기 시작했다. 주머니 가벼운 장건으로서는 이 부잣집 아가씨의 호의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신사천으로 출발하는 건 내일 아침부터요. 마차 수리도 끝났고, 짐도 정리해 실어놓았으니 내일은 식사를 하고 바로 출발할 수 있을 것이오.”
계획된 예정은 별것 없었다. 이틀 전 구해놓은 마차에 진서하와 설묘금이 타고 진하는 마부가 된다. 장건과 진견은 말을 타고, 그렇게 중간중간 마을을 들렀다 가며 신사천으로 떠나는 것이다. 신사천에 도착해서는 진견이 진서하와 배를 타고 소림으로 돌아가는 게 여정의 끝이었다.
원래는 염호성에서 정기적으로 출발하는 정기 마차 행렬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행렬을 관리 감독하는 것이 검룡문이라는 사실에 설묘금이 대뜸 마차를 한 대 구해온 것이다.
그렇게 짧게나마 일정을 정리해본 어른들은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슬며시 누군가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눈치를 보는 상대는 그 자리에서 제일 어린 진서하였다.
그 묘한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일까. 자기 앞에 놓인 찻잔을 바라보던 진서하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어른들을 바라보았다. 진한 검푸른색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그에 모두들 알 수 없는 기대감을 느끼며 소녀에게 집중했다.
하지만 소녀는 잠시 후 다시 찻잔으로 눈을 내리며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진견은 자기도 모르게 작은 한숨을 내쉬다 혼자 움찔 놀라 얼른 말을 꺼냈다.
“큼, 그럼 이제 다들 올라가서 쉽시다. 내일 길을 떠나면 피곤할 것이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일어섰다. 설묘금과 진하도 따라 일어섰고, 진서하도 부드럽게 자신을 이끄는 두 여인의 손길에 일어나 위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단을 올라가던 소녀는 슬쩍 고개를 돌려 혼자 일어서지 않고 아직 앉아 있는 장건을 바라보았다.
혼자 앉아서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들기고 있던 장건은 그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마주친 그 소녀의 시선이 어째선지 왜 혼자 아직 올라가지 않느냐 묻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는 그래서 뚱하니 그녀의 눈을 마주 보다가, 갑자기 대뜸 크게 눈을 벌려 뜨며 메롱 혀를 내밀었다. 그걸 본 진서하는 눈이 커지고 꾹 다물어져 있던 입이 슬며시 벌어졌다.
그 후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같이 올라가던 설묘금과 진하를 돌아보았다. 그녀들이 그 시선에 무슨 일이냐는 듯 바라보자 아이는 마치 그들도 보라는 듯 다시 장건에게 시선을 주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다시 평소의 침착한 표정을 되찾고는 깊은 상념에 빠진 듯 텅 빈 탁자 위를 내려다보며 톡톡 손가락을 두들기고 있었다.
“왜 그러니, 서하야?”
진서하는 어리둥절한 설묘금의 질문에 혼란스럽다는 듯 장건과 그녀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다가 당혹스럽다는 얼굴로 도도도 계단을 밟고 먼저 올라가 버렸다.
“어! 서, 서하야!”
그 뒤를 설묘금과 진하가 얼른 따라 올라갔다. 그리고 장건은 1층에서 그 모습을 보고는 혼자 큭큭 웃으며 품에서 연초를 꺼냈다.
그는 느릿한 동작으로 천천히 연초를 말아 입에 물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검지로 불을 붙이고는 탁자 위에 팔꿈치를 걸치며 가만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빨갛게 타는 연초 끝과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연기가 휘청거리며 위로 올라갔다. 장건은 그 흔들거리는 연초 연기의 그림자에서 겨우 한나절 알았던, 그러나 눈빛이 마음에 들었던 친구를 그렸다.
하지만 잠시 후 손가락 사이에 연초를 끼워 입에서 떼며 후-하고 내뿜은 연기에 그 그림자는 허망하게 흩어졌다. 장건은 그렇게 혼자서 연초 한 대를 그렇게 한참 동안 피웠다.
다음날 그들은 준비한 마차를 타고 염호성을 떠났다. 진서하는 떠나는 동안 한 번도 염호성을 되돌아보지 않았다.
* * *
장건과 진서하 일행이 떠난 지 며칠 후, 검은 삿갓과 피풍의를 두른 두 사람이 염호성에 들어섰다. 그들은 묘하게 삭막한 도시의 분위기가 당혹스럽지도 않은지 곧장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그들이 찾는 것은 천후성에서 온 의원마저도 병을 고치지도, 병명을 알아내지도 못했다는 진씨 성을 가진 불치병 소녀였다.
그들은 끝내 그 소녀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객잔에 이르렀다.
“그 양반들? 떠난 지 며칠 되었는데?”
사람들과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객잔 주인은 그 두 사람이 비싼 술 한 병을 사주자 자신이 기억하는 걸 냉큼 털어놓았다. 물론 그 객잔 주인도 자세한 것은 몰랐다. 하지만 대강 사건이 돌아간 모양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에게 이야기를 들은 두 검은 삿갓은 몸을 돌리고 자기들끼리 쑥덕거렸다.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구음사혈九陰邪血을 치료한 것일까요?”
“그건 하룻밤 사이에 고쳐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설사 영약이 있다 하더라도 내공이 뛰어난 고수가 그 기운을 인도해 몇 주에 걸쳐 천천히 막힌 기혈을 녹여내야 해. 아무래도 여기선 응급조치만 하고 제대로 치료할 생각으로 데려간 모양이군.”
“누가 부모도 잃은 병자를 구해갔단 말입니까? 설마, 황군에서···”
대화하던 검은 삿갓인은 손을 들어 상대방의 말을 멈추고 슬쩍 뒤에 있는 객잔 주인을 돌아보았다. 팔짱을 끼고 서 있던 객잔 주인은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뭔데? 그 친구들은 왜 찾는 건가? 나도 좀 알려주게. 내 삶의 낙이 남 이야기 듣는 거야.”
그 말에 하급자로 보이는 삿갓인이 피풍의 아래에서 움찔 뭔가를 꺼내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곧 다른 삿갓인의 손에 가로막혔다. 그는 품에서 은전 한 닢을 꺼내 객잔 주인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야기는 잘 들었소.”
“오! 값이 후하군! 이거 객잔을 할 게 아니라 이야기꾼을 해야 하나.”
삿갓인들은 뭐라 대답도 없이 스르륵 객잔을 떠났다. 객잔 주인은 객잔의 종이 창문 너머로 멀어지는 흐릿한 그림자를 보며 앞에 놓인 은전을 챙겼다. 그리고는 곧바로 객잔 뒤편으로 나가 바로 전날 찾아왔던 또 다른 이방인이 주었던 새장을 꺼냈다.
“보자, 그 양반이 어떻게 하랬지? 아.”
그는 새장 안에 있던 조그만 종이와 그 종이만큼 작은 먹물통, 그리고 바늘을 꺼내 뭐라 쓰기 시작했다.
-이상 활동 감지. 누군가 감시 대상을 쫓고 있음.
“가만. 그 친구를 쫓는 게 아니라 그 꼬마 아가씨를 쫓는 거 같은데··· 에이, 뭐 어때.”
객잔 주인은 대충 쪽지를 마무리하고 전서구 발목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새장을 열어 전서구를 풀었다. 자유를 얻은 전서구는 훈련받았던 집을 향해 퍼덕퍼덕 날아가기 시작했다.
객잔 주인은 그렇게 날아가는 비둘기를 바라보며 엊그제 찾아와서 전서구와 새장, 그리고 은전 열 닢을 내밀던 남자를 떠올렸다. 이름이 양굉이라고 했던가.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간단한 정보를 부탁한다던 자였다. 자주 찾아오겠다며 마지막에 은전 다섯 닢을 더 얹어주기도 했었다.
객잔 주인은 자신이 일종의 정보원이 되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는 그저 돈이나 많이 벌어 기분이 좋을 뿐이었다.
전서구는 퍼덕퍼덕 열심히 하늘을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