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48)
48화
“반가워요. 전 설묘금이라고 해요.”
설묘금은 의자에 앉아서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에 질풍도라는 자는 근엄한 표정 그대로 있고, 쥐 얼굴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크흠. 반갑소, 설 소저. 무슨 일이오?”
“아까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니까 여기 이분이 바로 질풍도 감군상 대협이시라구요? 와! 질풍도! 제가 질풍도전기를 몇 번이나 읽었는지 아세요? 그런데 이렇게 실제로 만나 뵙게 되다니!”
그때 겉으로 말하는 설묘금의 음성 아래 아주 작은 소리가 깔렸다.
-얼굴은 일부러 그렇게 한 건가요? 이왕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거 잘 생긴 걸로 하면 좋을 텐데요.
“허허. 감 대협의 전기를 읽으신 소저였구려. 그래 뭐, 서명이라도 하나 써달라는 것이오?”
-역용공을 쓴다고 아주 마음대로 얼굴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본판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죠. 암룡대 소속 이십사호입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공주님.
쥐상 남자의 입에서도 겉으로 말하는 것 외에 작은 목소리가 깔렸다. 그건 마치 한 입으로 두말한다는 단어가 진짜 말 그대로 실현되는 것 같았다.
설묘금은 호호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뇨, 꼭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책에서 뵈었던 분과 진짜로 이야기해보고 싶어서요. 신기한 인연 아닌가요? 이 넓은 신대륙 황야에서 책의 장본인과 독자가 실제로 만나게 되다니?”
-아, 이십사호였군요. 하와이에 계신 분은 몇 호죠?
“그렇군. 신기한 인연이오. 감 대협도 이 인연이 기쁘실 듯하군요.”
-그분은 대주님입니다. 현장에 직접 나오시는 일은 별로 없으시죠.
입을 다물고 근엄한 표정을 짓던 감군상은 쥐상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머, 이거 영광인데요? 제가 감 대협을 기쁘게 해드렸다니요.”
-어쨌든 암룡대가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그리고 난 어떻게 찾았어요?
“허허. 이분이 표현은 잘 안하시지만 본인의 책을 읽은 사람들을 아주 좋아하십니다···”
-여기서 뭐 하느냐 묻는다면 당연히 공주님을 찾기 위해 움직이는 중이었습니다. 이 주변에서 이 친구와 함께 요란법석을 떨며 돌아다니면 공주님이 찾아올 줄 알았으니까요. 공주님, 연 태수님이 걱정하고 계십니다. 그만 돌아가셔야 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겉으로는 마치 저자와 애독자의 만남인 척 대화했으나, 그 밑에서는 모기 같은 목소리로 은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연 태수님이 걱정하신다는 걸 보니 아직 중원에는 보고하지 않았군요. 뭐, 보고를 했어도 답장이 오려면 아직 시간이 있겠지만요.
-···아직 보고는 올리지 않으셨습니다. 공주님이 그 전에 돌아와 주시면 아무 일 없던 것과 같으니까요.
설묘금은 겉으로는 깔깔 웃었다.
-연 태수님도 담이 크네요? 보고가 늦은 게 걸리면 목이 달아날 수도 있을 텐데.
-그걸 아시는 분이 도망치셨습니까?
-오, 제국의 공주에게 말버릇이 그게 뭐죠? 혈통에 따른 권력의 힘 좀 맛보여드려요?
-···암룡대가 신대륙에서 벌이는 공작의 기저에는 황제 폐하의 칙령이 있습니다. 아무리 공주님이라도 그 칙령을 따르는 요원을 함부로 하실 순 없죠. 그리고 저는 공주님이 걱정될 뿐입니다.
그녀의 웃음에 쥐상의 남자도 허허 마주 웃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해 보였다.
-그 백 년도 넘은 낡은 칙령 말이죠? 암룡대가 그 칙령을 무적의 방패처럼 쓴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았죠. 그래봐야 아바마마가 이 대륙에 관심이 생기셔서 새 칙령을 내리면 끝일 테지만요.
-···공주님,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권력 상관관계 같은 것이 아닙니다. 공주님은 하와이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돌아갈 거니까 걱정 마요. 이 노숙과 객잔살이라는 게 책에서 본 것만큼 안락하진 않더라고요.
쥐상 남자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아, 그거 정말 다행입니다. 그럼 바로 가시겠습니까?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저기 있는 제 일행들 안 보여요? 난 저들이랑 같이 갈 거예요. 신사천으로 가는 길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요. 연 태수님한테도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이왕 신대륙에 왔으니 무림인이라는 사람들을 좀 만나봐야 하지 않겠어요? 아, 그리고 여기 이 배우한테는 근엄한 표정만 짓지 말고 뭐라도 좀 하라고 해요. 연기 너무 못하는 거 아니에요?
“아, 정말. 대화할 수 있어서 기뻤어요. 그럼 감 대협? 아까 필요 없다는 말을 꺼내놓고 염치없지만, 혹시 서명 하나 부탁해도 될까요?”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설묘금은 품에서 먹물이 담긴 조그만 통과 세필 붓을 꺼내며 감군상에게 내밀었다. 감군상은 약간 굳은 표정으로 그 책자에 자기 서명을 남기고 돌려주었다.
“고마워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설묘금은 웃으며 책자를 돌려받고 일어나려 했다. 그때 쥐상의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왕 이렇게 만난 거 같이 식사하시겠소? 이미 식사를 했다면 술이라도 한잔. 저기 있는 일행도 같이 불러오시오.”
-이 자는 배우가 아닙니다, 공주님. 진짜 질풍도전기의 주인공 감군상입니다. 공주님을 위해 어렵게 섭외해왔죠. 말을 안 하는 건 최근 기도를 다쳤기 때문에 거칠어진 호흡을 감추기 위함이고요. 암룡대 역용술을 알아보시면서 진짜 감군상은 알아보지 못하셨군요.
감군상은 슬쩍 손을 들어 목깃을 열어 보였다. 붕대에 감긴 가슴팍이 얼핏 보였다. 설묘금은 순간 굳어버려선 감군상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감군상은 거만하게 턱을 들고 그 얼굴을 마주 보며 슬그머니 웃었다.
“···설 소저?”
멍하니 그 얼굴을 바라보던 그녀는 쥐상의 부름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누가 봐도 대충 웃는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 그건 조금 곤란하겠는데요. 내 일행들은 자기들끼리 조용히 식사하는 걸 좋아할 거라서요. 제 마음대로 합석하는 건 힘들겠네요.”
-···놀린 건 사과드리죠. 서명 감사해요.
“그거 아쉽군. 감 대협도 그렇지 않으십니까?”
감군상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쥐상의 낮은 목소리가 다시 깔렸다.
-공주님. 돌아가셔야 한다는 말은 빈말이 아닙니다. 누군가 공주님의 일행을 쫓고 있습니다. 잘못하면 이상한 은원에 얽히실 수 있어요. 이 신대륙의 무림인들이란 앞뒤 따지지 않고 일단 들이박고 마는 놈들이 많아서 공주님의 신분만으로 몸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제가 이런 상황을 어떻게 위에 보고합니까?
-걱정 마시죠. 내 몸은 내가 지킬 수 있으니까. 위에는 내가 막무가내였다고 전해요. 실제로도 그렇잖아요?
설묘금은 몸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일행을 마주 보며 천천히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그녀의 눈에 걱정스러운 얼굴의 진하와 진견, 밥을 오물거리며 멀뚱히 바라보는 서하, 그리고 무관심한 듯 찻물을 마시는 장건이 보였다.
갑자기 일행의 뒤를 쫓는 사람이 있다니. 자신과 진하는 신대륙에 내려서 곧장 염호성을 향한 마차를 탔다. 누군가와 은원이 얽힐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진견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피해를 본 검룡문은 소림이라는 이름에 겁을 먹으면 먹었지 보복을 할 정도로 배짱 좋지 못했다. 그럴만한 이는 이미 모두 죽었다.
그리고 서하는 몸이 아픈 아이였을 뿐이다. 지금이야 건강해져서 어른들보다 밥을 두 배는 더 먹지만 그전까지는 병상에 누워만 있었다는 소녀였다. 누가 쫓아올 이유가 없어 보였다. 그럼 남은 건 장건뿐이었다.
과거를 말하기 꺼리는 방랑자. 진서하의 병을 고칠 정도로 뛰어난 의술과 소림 무승 진견에게 존중받을 정도의 무공을 가진 정체불명의 무림인. 설묘금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개기름 줄줄 흐르는 감군상보다 이쪽이 조금 더 흥미가 갔다. 그리고 원래 그녀가 제일 좋아하던 전기소설은 무명협이였다. 질풍도전기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건 다른 전기소설들에 비해 과장이 심한 편이라 반쯤은 옛날이야기 읽듯 했었던 책이다.
결정적으로 그녀가 신대륙에 온 것은 자기 책을 쓰기 위해서였다. 중원에서 읽었던 전기소설의 주인공들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그녀는 본래 목적을 잊지 않았다.
돌아온 그녀를 보고 진견이 물었다.
“분위기가 좋아 보이더구려. 저들이 무례하게 굴진 않았소?”
“무례는요. 엄청 친절하던걸요? 여기 서명도 해줬고요.”
진견은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작게 염불을 외웠다. 하지만 그 옆에 진하는 말없이 엄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설묘금은 그 표정을 보고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아, 미안해 진하. 내가 너무 함부로 행동했지?”
“···알면 됐습니다.”
진하는 그리 퉁명스레 대답하고는 그녀에게선 눈을 떼고 다시 서하를 챙겼다. 밥을 오물거리는 서하의 수저에 반찬을 올려주고 찻물을 따라주는 등 유난이었다. 누가 봐도 설묘금에게 삐져 딴짓하는 모습이었다.
설묘금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곤란한 듯 웃다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장건이 의자에 등을 깊게 기대로 앉아 입술에 찻잔을 대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깊고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에 설묘금은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겼다.
“···왜요?”
장건은 그녀의 질문에 천천히 찻잔을 내려놓았다.
“책으로 보던 사람을 만나니 어떻소?”
“뭐··· 진짜 보니 좋죠.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는 별로이기도 하고요. 저 콧수염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책에는 저런 모습이 아니었거든요.”
“그렇소?”
그녀의 너스레에 장건은 옅게 웃으며 반문했다. 대답을 받을 생각으로 한 질문은 아닌 것 같았다. 설묘금은 그 모습에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설마 그녀와 암룡대원의 대화를 엿들은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자리와 2층 감군상의 자리는 그냥 대화도 잘 들리지 않을 거리다. 거기에 이중음二重音은 단순히 귀만 밝다고 알아들을 수 없다. 겉으로 하는 대화가 그 아래 깔리는 음성을 가리고 흩어버리기 때문에 특수한 요령이 없다면 그냥 희미한 소음으로 들릴 뿐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의문을 지우고 여전히 오물오물 밥을 먹는 진서하에게 신경을 돌렸다.
“와! 너 이거 다 먹은 거야? 그 조그만 배에 이게 어떻게 다 들어갔지?”
진서하는 멀뚱한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손과 입은 바쁘게 움직였다. 밥은 세 그릇째였고 반찬은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야영할 때보다도 많이 먹는 모습에 일행들 모두 놀라워하며 음식을 더 시켜주었다. 덕분에 그들의 화제는 금방 설묘금에서 진서하로 옮겨질 수 있었다.
장건만이 다시 찻잔을 들어 호록 마시며 서하에게 장난을 치며 히히 웃는 설묘금을 바라볼 뿐이었다.
* * *
일행이 머무는 객잔은 문밖에 차양이 길게 드리워져 있고, 그 아래 의자 몇 개가 놓여있어 원한다면 거기 앉아 사색을 즐길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장건은 3층 방에 짐을 옮겨놓고는 그곳에 나와 앉아서 저무는 태양을 바라보고 연초 하나를 태우고 있었다. 겨울 날씨가 약간 서늘했지만 장건은 오히려 그 차가운 공기가 머리를 식혀주는 기분이라 좋았다.
그는 입에 문 연초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중얼거렸다.
“···거참.”
장건이 만든 천리지청술은 단순히 청력을 극대화해 작은 소리를 크게 듣는 것 외에도 원하는 소리 하나에 집중할 수도 있었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내공도 많이 소모되고 무리하게 사용된 귀가 며칠간 적잖이 아프긴 하지만, 당장 조금 전의 상황만 생각해도 꽤 쓸만하다는 것은 분명했다.
장건은 설묘금과 암룡이십사호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 겉으로 위장된 것과 그 아래 깔린 대화까지. 너무 당당히 다가가 말을 거는 그녀의 모습에 무슨 말을 하려나 궁금했던 것이,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던 황실 정보조직의 실체와 짐작만 하던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누군지도 모를 추적자에 대해서도.
그런 소문이 있기는 했다. 황제의 촉수가 은밀히 이 신대륙 이곳저곳에 깔려 정보를 빨아간다는 이야기. 장건은 이 신대륙의 크기와 늘어나는 인구를 생각하면 한나라 황실이 당연히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암룡대라는 부대가 놀랍지는 않았다. 이름이 약간 후졌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러나 설묘금의 정체는 놀라웠다. 소설을 보고 신대륙을 건너왔다는 철없는 모습에 묘하게 드러나는 자신감을 보며 신분이 높은 가문 사람이라는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그냥 황족도 아니고 공주라니?
장건은 후-하고 연기를 뿜었다.
신사천에 도착하면 그녀와 떨어져야 할 듯했다. 그녀가 싫은 것은 아니지만 계속 함께하면 황군과도 얽히게 될 터였다. 그렇게 황군에서 그를 알고 그의 무공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결국 적잖이 귀찮아질 게 뻔했다.
장건은 자신의 무공에 꽤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황군 고수 수만 명과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 조그만 그림자가 객잔 문을 열고 나왔다. 생각에 잠겨있던 장건은 그 그림자의 주인을 확인하고 슬그머니 연초를 튕겨 불씨를 껐다. 나온 사람은 진서하였다.
“왜 나왔어?”
진서하는 장건의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총총 걸어 장건 옆 의자로 다가와서는 손으로 툭툭 먼지를 털고 앉았다. 그리고 그가 그런 것처럼 의자에 등을 푹 기대로 앉더니 슥 고개를 돌려 그를 올려다보았다.
장건은 그 눈빛이 마치 아직 자신들의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고, 그러니 어디 갈 때 자길 때어놓을 생각 말라는 것처럼 느껴져 피식 웃었다. 그는 말없이 멀리 보이는 석양을 향해 눈을 돌렸다. 소녀도 고개를 돌려 그가 바라보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그럭저럭 괜찮은 저녁 시간이었다.
그때 그 석양 아래에서 말을 달려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큰 짐마차 한 대에 말을 탄 무사들이었다. 상인과 경호원들로 보였다.
그들은 객잔 앞으로 우르르 몰려와 말을 멈추고 내렸다. 그리고 저들끼리 왁자지껄 떠들며 마차와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객잔 안에 있던 점소이 왕팔도 나와서 거들며 같이 소란을 피웠다.
그런 시끄러운 모습에 진서하가 슬그머니 장건에게 가까이 붙었다. 장건은 자연스럽게 아이의 어깨에 팔을 둘러주었다. 서하는 그 팔뚝을 가볍게 그러쥐며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자기들끼리 떠드는 무사들은 그런 둘의 모습을 별 관심 없다는 듯 대충 훑어보며 객잔 안으로 몰려갔다. 두 사람에게 말을 건 것은 제일 뒤에서 마차를 정리하던, 두툼한 솜옷을 입은 텁수룩한 수염의 중년인이었다. 무사들을 따라 들어가려던 그는 장건과 진서하를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추고 슬쩍 고개를 까딱였다.
“좀 소란스러웠지요? 미안합니다. 이틀 만에 만난 객잔이라 직원들이 신이 난 모양입니다.”
“상인이시오?”
장건의 질문에 그는 하하 웃었다.
“예, 상인이지요. 저기 고원성에서 가죽을 사 신사천에 팔러 가는 길입니다. 고원성에 가보셨는지요?”
“아니. 개척도시 중 제일 동쪽에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았소.”
상인은 장건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중원인 도시 중에선 제일 동쪽이지요. 그 너머는 원주민들의 힘이 더 강한 땅입니다. 아마 새로운 도시가 세워지지 못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일 테지요. 그래도 거긴 한번 꼭 가보십시오. 참 살기 좋은 도시니까요.”
장건이 고개를 마주 끄덕여주자 상인은 다시 허허 웃더니 진서하와 눈을 마주쳤다.
“귀여운 아이군요.”
그는 진서하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서하는 그걸 보고는 와락 장건에게 안기며 손길을 피했다. 상인은 그 행동에 놀라서 겸연쩍은 표정이 되었다.
“···허허. 아이가 낯을 가리는군요.”
“낯선 사람이니 당연하지.”
상인은 장건이 툭 던진 말에 묘한 미소를 지었다.
“흐음. 하긴 그렇지요. 만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허허.”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장건의 옆구리에 머리를 숨겼던 서하는 빼꼼 머리를 내밀어 그의 뒷모습에 시선을 주다가 고개를 돌려 장건을 올려다보았다. 뚱한 얼굴로 상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장건은 그 시선을 마주 보고 슬쩍 웃어주었다.
그렇게 웃는 장건의 머릿속에 서하를 향해 뻗어오던 상인의 손이 스쳐 지났다. 그 손은 다른 무사들보다 더 잘 단련되어 있었다. 상인이 무공 열심히 익히지 말란 법은 없었으나, 손바닥만 단련된 그 손은 장건도 이미 한 번 본 적 있는 손이었다.
쉽게 잊을 수 있는 흔적도 아니었다. 본 것으로 끝난 게 아니라 손바닥을 마주 부딪치기까지 했으니까. 장건은 석양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이거 진짜 굿이라도 해야 하나. 이젠 직접 찾아오기까지 하네.”
그는 석양의 붉은 빛을 바라보며 불길을 이글거리던 서위량의 두 손이 떠올렸다. 며칠 만의 객잔인데 편히 묵는 것은 물 건너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