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49)
49화
* * *
상인과 그의 경호원들은 우르르 몰려 들어와 음식을 시키고 시끌벅적 떠들기 시작했다. 일고여덟 정도 되는 사람이 그렇게 떠들자 객잔 안이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하지만 객잔 주인과 점소이는 바쁘게 음식을 하고 차리느라 특별히 주의를 주지 않았다. 소란이 엄청나게 큰 것도 아니라 객잔 안에 다른 손님들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의 대화는 그렇게 그들 자신의 소란 속에 묻혔다.
“어떻습니까? 아이가 맞습니까?”
“음. 눈이 푸르게 변한 것으로 보아 외형은 맞다. 하지만 너무 건강해 보이더군. 단순한 응급처치로 그리 멀쩡해질 수는 없는데···”
그 목소리들은 전날 염호성 객잔에서 진서하를 쫓던 두 사람의 음성이었다.
“들어오면서 보셨습니까? 아무래도 저기 있는 자가 염호성에서 소란을 피웠다는 그 소림승인 것 같습니다.”
“그래, 일단 황군 쪽에서 우리 움직임을 눈치채고 선수를 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상황을 알 수가 없군. 중원 하남의 소림승이 왜 이 먼 땅까지 와서 고아를 데려간다는 말인가?”
“왕 적사赤蛇, 너무 깊이 고민할 필요 없을 듯합니다. 어차피 여긴 사람이 많은 도시나 마을도 아니니 그냥 모조리 멸구하면 될 일 아닙니까?”
왕 적사라 불린 상인이 대화를 나누던 무사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말을 가려서 하라, 원 흑사黑蛇. 우리가 왜 대계를 따르는가? 그건 단순히 저 도둑황제의 제국을 무너뜨리는 것을 넘어 새로운 나라와 새 정의를 세우기 위함이다. 그 과정에서 일어날 부차적인 피해는 어쩔 수 없으나, 막을 수 있다면 그 또한 막아야 함이다.”
“···예, 왕 적사.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그 두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나머지 무사들은 자기들끼리 왁자지껄 떠들며 소란스레 밥을 먹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왕 적사가 침중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이 그 부차적인 피해를 봐야겠군. 저들과 아이의 관계는 알 수 없으나 쉽게 내놓을 것 같지는 않으니, 괜한 흔적을 남겨 무림맹이나 황군이 쫓아올 여지를 남기는 것보다 깨끗이 쓸어버리는 게 좋겠어. 밤을 기다려라. 객잔이 잠들 시간에 움직이자.”
그 말에 원 흑사라 불린 자는 물론이고 크게 떠들며 술과 밥을 먹던 이들도 모두 씩 미소를 지었다. 마치 밤이 기대된다는 듯 섬뜩한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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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룡이십사호는 탁자 위에 손을 모으고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마치 명상이나 깊은 생각에 빠진 듯 엄숙하고 정적인 모습이었다. 감군상은 홀짝 차를 마시며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루해진 것인지 툭툭 이십사호의 모은 손을 건드렸다. 그러자 이십사호가 한쪽 눈만 떠서는 그를 바라보았다.
“뭐요?”
감군상은 마치 이제 어쩔 것이냐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에 이십사호는 눈살을 확 찌푸렸다.
“좀 가만히 기다리시오. 지금 들어온 자들이 수상하니까. 뭘 쓸어버리니 어쩌니 하고 있단 말이오.”
그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지금 그의 귓가에는 이 객잔에서 울리는 모든 소리가 몇 배로 증폭되어 울리고 있었다. 눈을 감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그 윙윙 울리는 소리 사이에서 상인의 목소리를 찾아 구분해 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금 전의 대화를 끝으로 상인과 무사는 낮은 목소리로 대화하지 않았다. 다른 무사들처럼 큰 목소리로 웃고 떠들며 술과 음식을 먹어댈 뿐 이십사호가 원하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귀의 통증을 참지 못한 그는 청이聽耳술을 멈췄다. 뭘 더 들을 건 없을 듯했다.
“젠장, 착각이었나? 이건 소리를 키우는 건 좋은데 귀가 너무 아파.”
감군상은 그런 이십사호를 바라보다가 다시 팔을 툭툭 건드리더니 혼자 이리저리 손짓했다. 이제 정말 어쩔 것이냐는 듯한 동작이었다. 이십사호는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대답했다.
“···뭐 있겠소? 일단 위에 보고하고 우린 계속 저분 뒤를 따라야지. 진짜 신사천으로 가시는 거라면 굳이 재촉할 필요 없소. 연 태수님이 보고를 확인하고 거기서 알아서 준비하실 테니까. 그리고 저분도 염치가 있다면 또 도망가진 않을 테지. 아마 거기서 또 도망치면 그땐 진짜 연 태수님 목이 달아날 걸 본인도 잘 알고 있을 것이오.”
그때 감군상이 다시 이리저리 손짓을 했다. 이십사호는 두 눈을 좁히고 그걸 바라보다가 되물었다.
“저분이 몇 째냐고? 갑자기 그딴 건 왜 궁금하시오? 왜, 닷 닢 소설에 푹 빠졌으니 그걸로 어떻게 비벼 보려고? 부마도위가 해보고 싶으신가?”
그 말에 감군상은 깜짝 놀랐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이십사호가 웃었다.
“농담이오. 사람이 이 정도에 놀라기는. 그래, 저분이··· 아마 딸 중에 일곱째인가 그럴 것이오. 위로 언니만 여섯에 오빠는 다섯 정도 될걸? 아래 동생은 더 많고. 경쟁은 진즉에 포기하고 그냥 놀고먹는다고 아는데··· 배가 불러 터졌지. 그렇게 놀고먹다가 뭐가 아쉬워서 이 난리를 피우는지.”
감군상은 그의 말에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황제에게 충성한다는 이가 공주를 저리 함부로 말해도 되는 것일까? 이십사호는 그 표정이 말하는 것을 다 알아들었다는 듯 다시 웃었다. 그리고는 스윽 주변을 훑어보곤 말했다.
“안 될 거 있소? 내 충성의 대상은 저 철부지가 아니란 말이오. 게다가 장안의 주인께는 저런 자식이 수십은 있소. 아마 태수님이 보고를 올렸어도 장안에서는 교위 열댓 명 보내 잡아 오라는 명만 떨어졌을걸? 굳이 우리 쪽 인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란 말이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감군상은 꿀꺽 침을 삼켰다. 그리고 그도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이리저리 손짓했다.
“···물론 그게 놓쳐도 된다는 말은 아니오. 그래도 그분의 자식인데 신대륙 어디서 칼 맞고 죽는 건 막아야 할 것 아니오? 만약 저분이 어디 다쳐서 되돌아가면 그땐 연 태수님이고 뭐고 진짜 피바람이 부는 것이오. 그러니 계속 뒤는 따라야지.”
이십사호는 그의 말을 듣고 긴장한 감군상의 표정을 바라보며 턱을 긁다가 마치 선심 쓴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이보쇼, 내가 이런 걸 알려주는 이유를 알겠소? 암룡대의 분위기를 파악하라는 것이오. 이제 그쪽은 질풍도 감군상이 아니라 암룡삼십일호니까. 물론 하와이에 있는 훈련소로 가서 정식으로 수료를 받아야 하겠지만, 그 전에 일 돌아가는 분위기를 좀 알면 좋은 것 아니오?”
감군상은 고맙다는 듯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십사호는 별것 아니라는 듯 웃으며 그를 말렸다. 그러나 웃고있는 입과는 달리 감군상을 바라보는 눈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 * *
“이놈이나 저놈이나. 정상적인 놈이 하나 없군.”
밖에서 객잔의 소리를 듣던 장건은 서하를 등에 업고 안으로 들어섰다. 서하가 아까 풀썩 품에 안긴 이후 떨어지려 하질 않아서 그냥 등에 업고 들어온 것이다. 그는 소녀를 업은 그대로 일행에게 다가갔다. 앉아서 차를 마시던 진견이 그의 모습을 보고 허허 웃었다.
“그새 많이 친해진 모양이오. 이거 참, 결국 헤어져야 할 인연인데···”
“예견된 헤어짐이 가까워지지 못할 이유는 아니오. 사람과 사람은 누구나 끝내 헤어지게 되니까. 그보다 할 이야기가 있으니 다들 방으로 올라오시오.”
장건은 그리 말하고 서하를 업은 채 성큼성큼 3층 방으로 올라갔다. 설묘금과 진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그 뒤를 따랐고, 진견은 잠시 멍한 얼굴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뒤늦게 일어섰다.
“···아미타불···”
그렇게 올라가는 그들의 모습을 상인과 무사들, 그리고 감군상과 암룡이십사호가 은밀한 눈길로 훔쳐보았다.
먼저 방으로 들어선 장건은 서하를 침대 위에 올려두고 이불을 잘 덮어주었다. 소녀는 얌전히 누워서는 여전히 멀뚱멀뚱한 눈으로 그런 장건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장건은 그 눈을 보고 피식 웃으며 괜히 그녀의 코끝을 살짝 튕겨주었다.
“무슨 일인데요?”
그때 뒤따라 방으로 들어온 설묘금이 양손으로 자기 허리를 짚으며 물었다. 그 뒤로 진하와 진견도 들어섰다. 장건은 제일 뒤에 있는 진견에게 말했다.
“문부터 좀 닫아주시겠소?”
진견은 장건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순순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렇게 문이 닫히는 순간, 장건이 갑자기 칼을 뽑았다. 설묘금은 흠칫 놀랐고, 진하는 빠르게 그녀의 앞을 막으며 검 손잡이를 잡았다.
“지금 뭐 하는 거죠?”
장건은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뜬금없이 손가락으로 칼을 튕겼을 뿐이다. 튕 하고 손가락과 쇠가 만나는 소리 이후 지이잉 칼이 울었다. 그 소리가 그냥 칼을 튕긴 것치고 유난히 길고 깊게 울렸지만,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게 뭐 하는 짓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설묘금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방 밖 객잔 2층에 앉아있던 암룡이십사호가 자신의 귀를 틀어막으며 탁자에 엎드려선 억눌린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장건은 칼의 울음이 잦아들자 휙 한 번 털어주고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진하, 진견과 입술을 꾹 다문 얼굴의 설묘금을 바라보았다.
“이 신대륙에서 마공을 익히는 자들이 있다는 것, 알고 있소?”
일행은 서로를 돌아보며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중 진견이 나서서 입을 열었다.
“삿된 마음에 휩쓸려 마공을 익히는 자는 중원에도 있소. 물론 이 신대륙에서 조금 더 흔히 벌어진다는 소문은 들어보았지.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것이오?”
장건은 팔짱을 끼며 창가에 걸터앉으며 생각했다. 조금 전 그가 본 상인은 서위량과 같은 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서위량은 죽기 전 본격적으로 계급을 나눠 마공을 익히는 단체를 언급했고, 장건은 이전에도 그처럼 잘 단련된 마공 수련자와 싸운 적 있었다. 그리고 그자는 계곡 원주민 부족의 정령을 노리던 자였다.
정확하고 확실한 연결고리는 없었다. 그러나 장건은 그 정령을 노리던 자들이 서위량이 언급한 단체임을, 그리고 그들이 이번엔 기이한 혈맥을 가진 진서하를 노린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황군의 눈을 피해 마공을 연성하는 단체가 둘이라 생각하긴 힘들었다.
물론 왜냐는 질문이 남긴 했다. 하지만 당장 장건만 하더라도 그 기혈을 치료하며 새로운 무공의 영감을 얻었다. 사람 심장을 뽑아 먹으며 내력을 늘리는 마공 수련자들이라면 진서하의 몸에 무슨 짓을 하고 뭘 더 얻을 생각일지 쉽게 예상도 되지 않았다.
“장 무사?”
그의 생각이 마무리될 즈음 진견이 다시 말을 걸었다. 의아함 가득했던 그도 그 잠깐 마음을 정리했는지 이제 단단히 가라앉은 눈으로 장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 장 무사를 오래 알지 않았으나, 진조 사제가 장 무사에 보여준 믿음, 그리고 짧은 기간이나마 직접 지켜봐 온 바에 따라 장 무사를 믿소. 주저하지 말고 이야기해 주시오.”
장건은 그런 진견의 모습에 슬쩍 웃었다. 이 사람 사제도 그랬지만 소림승들은 사람을 너무 쉽게 믿는 것 같았다. 짧게 웃은 그는 방 안의 사람들을 쭉 둘러보다가, 설묘금에게서 눈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오늘 밤, 그쪽 책에 쓸만한 일이 일어날 것이오. 이 꼬맹이를 노리는 놈들이지.”
이후 장건은 자신의 경험과 그를 바탕으로 한 추론을 꺼내놓았다. 그가 겪은 마인들과의 싸움과 그에 따른 예견에 가까운 추측에 두 여자와 한 승려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 * *
무명객잔에 밤이 깊었다.
손님들은 물론이고 객잔 주인과 점소이도 자러 들어가서 객잔 안은 적막만 가득했다. 그 침묵의 객잔 밖에선 반도 차지 못한 달빛이 객잔 아래 얼핏 그림자를 만들며, 싸늘한 겨울 밤바람의 섬찟한 울음소리만 황야 위로 희미하게 울려 퍼졌다.
그때 꿈틀거리는 그림자들이 객잔 지붕 위로 일어섰다.
검은 복면과 암행복으로 몸을 가린 그들은 상인으로 위장했던 왕 적사와 그의 부하들이었다. 지붕 위에 우뚝 일어서 흐린 달을 올려다보던 왕 적사라 입을 열었다.
“우선 아이를 확보하는 게 먼저다. 그 이후 잠든 자들을 처리하고 객잔을 불태운다.”
그의 부하들은 대답도, 소리도 없이 그저 바짝 엎드려 복종을 표했다. 그들의 등에 메고 있던 검을 역시 아무런 소리도 없이 뽑아 스르륵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치 도마뱀이라도 된 것처럼 객잔의 지붕과 벽을 타고 진서하가 묶고 있는 방을 향해 움직였다.
제일 먼저 창가에 닿은 자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창문에 손을 가져가는 순간이었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발 하나가 창문을 부수고 나와 그자의 얼굴을 후려쳤다. 얼굴이 뭉개진 자와 부서진 창틀은 그대로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져 버렸다. 깜짝 놀란 복면인들이 부서진 창가 안을 바라보니 승려 하나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합장을 하고 서 있었다.
“아미타불, 선자불래 내자불선이라. 그대들의 방문이 선한 목적이 아니라는 건 쉬이 알 수 있구려.”
그러나 객잔 벽 여기저기 매달려 있던 복면인들은 곧장 검을 치켜세우며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부서진 창가로 달려 들어가려 했다.
그때 옆 방의 창문이 벌컥 열리며 소매와 머리카락을 동동 싸맨 진하가 검을 들고나왔다. 승려에게 달려들려던 복면인들은 그 시의적절한 등장에 멈칫하고 말았다. 창틀에 걸쳐 선 진하는 그런 무사들을 차가운 눈으로 노려보며 느릿하게 검을 뽑아 들었다. 희미한 달빛 아래서도 순백의 칼날은 시리게 반짝였다.
직후 그 칼날의 빛이 폭발하여 흑의 복면인들을 향해 쏟아졌다.
“···이게 무슨···”
왕 적사는 객잔 벽에서 우수수 떨어져 내려 칼부림을 시작한 여인과 자신의 부하들을 내려다보았다. 소림 승려의 무공이 발목을 잡으리라 짐작은 했으나, 양손에 붕대를 칭칭 감은 것과 식사 시간 동안 그 손이 불편해 보이는 점을 생각해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승려가 아니었던 듯했다. 당장 부하들의 검은 여인의 옷깃 하나 스치지 못하고 있는데, 바닥에는 벌써 피가 흩뿌려지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알 수 없는 섬뜩함에 천천히 몸을 돌렸다. 객잔의 지붕 위 한 남자가 왼손으로 칼집을 잡고 반도 차지 못한 달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왕 적사의 시선에 그도 고개를 내려 그를 마주 보았다.
그 눈은 무심한 달빛만큼이나 차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