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57)
57화
“헤, 헤헤. 잘 지내셨수?”
양굉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보였다. 장건은 그를 보고 씨익 웃었다. 어색하게 웃던 양굉은 그 웃음을 보고 점점 표정이 밝아졌다. 그의 기분이 나쁘지 않은가보다 싶어서였다.
하지만 양굉의 웃음은 불쑥 들어온 장건의 손에 멱살이 잡히자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변했다.
“아, 장 형. 왜 또 보자마자 이러쇼. 우리 한탕 같이 털었던 동료 아니오···”
장건은 지랄 말라는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그를 신사천의 골목길 사이로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아, 아니. 장 무인! 지금 뭐 하는···”
적세인은 그런 장건의 태도와 투덜거리면서도 질질 끌려가는 양굉의 모습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그 뒤를 따랐다. 그 주변에 있던 주민들은 그 모습을 보며 쑥덕거렸다.
“뭐시여 저거? 지금 사람 끌고 가는 것이여?”
“워메! 이거 얼른 무림맹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 말을 들은 적세인은 얼른 돌아서며 무림맹 명패를 꺼내 보였다.
“사건조사 중이오! 신고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시오!”
그렇게 외친 그녀는 얼른 두 사람의 뒤를 따라 달렸다. 하지만 그녀가 멀어지자 주민들은 다시 떠들었다.
“···그럼 지금 무림맹이 사람 끌고 간다는 것인감?”
“허이고! 무림맹도 이제 다 됐구먼!”
달려가던 적세인은 그 이야기가 다 들렸지만, 그렇다고 다시 돌아가서 정정해줄 시간은 없었다. 장건과 양굉이 한쪽 골목으로 쑥 들어가 버린 것이다.
“잠깐! 같이 가자고!”
당황한 적세인은 자기도 모르게 존칭도 잊고 그리 외쳤다. 다행히 골목을 돌아서자 바닥에 주저앉은 양굉과 그를 내려다보는 장건이 보였다. 적세인은 그들을 보며 버럭 소리 질렀다.
“상황 설명을 좀 하시오, 장건! 무턱대고 움직이면 위험하다고 이미 말하지 않았소!”
장건은 화내는 그녀를 보고 피식 웃었다.
“이놈이 단서요.”
“이, 이놈? 아니 그자가 누구기에···”
“아, 장 형! 내 이름이 있는데 왜 이놈이요?”
양굉은 바지를 툭툭 털며 일어나 히죽 웃으며 적세인에게 포권을 했다.
“양굉이라고 합니다, 무사님. 잘 부탁하외다.”
적세인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냐는 듯 장건과 그를 번갈아 보면서도 일단 마주 포권을 했다. 양굉은 웃는 낯으로 입을 열었다.
“이거 무림맹에서 명성이 자자한 적세인 무사님을 만나다니. 마음 같아서는 서명이라도 한 줄 받아서 족자로 만들고 싶지만 슬프게도 특별히 지필묵이 없구려. 내 평소 적 무사의 명성을 듣고 흠모해왔소이다. 혹시 나중에 시간이 있다면- 어이쿠!”
“지랄 말고.”
적세인에게 말을 걸며 슬그머니 옆으로 빠져나가려던 양굉은 다시 장건의 손에 붙잡혀 벽으로 밀쳐졌다. 적세인이 그걸 보고 눈살을 찌푸리는데, 장건이 말을 이었다.
“너 여기서 뭐 하고 있었냐?”
“···헤헤. 양상군자가 도시 쪽에 나와서 뭣 하겠소? 물건 처리하러 왔지.”
장건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서늘한 미소였다.
“마침 장물을 처리하러 도시에 들렀다가, 날 봤다? 하필 살해 현장에서?”
“그··· 그건 정말 어디까지나 우연의 일치일 뿐으로···”
“암룡대.”
실실 쪼개던 양굉의 얼굴이 순간이지만 바싹 굳었다. 하지만 그는 금세 표정을 풀고 되물었다.
“암룡대? 그게 뭐요?”
장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 서늘한 미소 그대로 양굉을 바라볼 뿐이었다.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되물었던 양굉은 그 말 없는 압박에 슬슬 표정이 굳었다. 장건의 입가는 웃고 있었지만 자신을 내려다보는 두 눈은 위험하게 번쩍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굉은 잠시 입술을 핥으며 뭐라 말할 듯 말 듯 망설이다가 결국 푹, 하고 한숨 한번을 내쉬었다.
“아이 시발··· 어떻게 알았소? 장 형 앞에서 말실수 같은 거 한 적 없는데.”
“앞으로 객잔 주인을 정보원으로 쓰려면 입막음 비용도 생각해야 할 거다.”
“···아, 청수촌 여 씨?”
대충 알겠다는 듯 중얼거린 양굉은 자기 머리를 벅벅 긁다가 굳은 얼굴로 장건의 두 눈을 마주 보았다. 놀랍게도 잠깐 사이 그 얼굴엔 조금 전까지의 경박함이나 비굴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젠장, 이걸 이렇게 알려주려던 게 아닌데··· 그, 신사천 남향로에 주윤이라는 부자가 있소. 아마 지금 신사천을 뜨려고 이사를 준비하고 있을 텐데, 그 양반을 찾아가 보쇼. 아직 달려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주가 상회라는 간판을 찾으면 될 것이오. 장 형이라면 거기서 시작해서 왜 장가 상회 행수를 노린 유괴 미수가 일어났는지 알 수 있을 것이오.”
뜬금없는 내용이었다. 자신이 암룡대가 맞는지도 분명히 긍정하지 않고, 왜 그를 찾아가라는 것인지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장건은 그를 바라보며 오른손 중지와 엄지를 슬슬 비비적거렸다. 이놈에게도 분근착골을 맛보여줘야 할까.
고민하는 장건을 보며 양굉이 삐죽 웃었다.
“날 고문이라도 해볼까 고민하는 얼굴이시군. 원한다면 하시오. 장 형의 손이 빠를지, 내가 독단을 깨무는게 더 빠를지 겨뤄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소만. 참고로 내가 물고 있는 건 먼저 죽은 십칠호보다 독한 놈이오.”
그는 아무런 떨림 없는 눈으로 장건의 차분한 눈을 마주 보고 있었다. 전과 달리 굳은 의지와 진심이 드러나는 눈이었다.
그 눈을 한참 바라보던 장건은 비비적대던 엄지를 천천히 움직여 허리띠에 끼웠다.
“그걸 왜 알려주는 거냐? 알려주다 마는 건 뭐고?”
양굉은 흘끗 그 손을 바라보더니 다시 실실 쪼갰다.
“세상사 단순하고 분명한 흑백이 나뉘는 일이 얼마나 있겠소? 한가지 변명을 하자면 이 일이 우리 쪽 전체의 의지가 아니라는 것이오. 게다가 권력과 돈이라는 놈은 언제나 문제를 일으키지. 아무리 그리운 임이라도 몸이 너무 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이고.”
장건은 허리띠를 붙잡고 삐딱하니 서서 뜻 모를 소리를 하는 양굉을 바라보다가, 옆에서 심각한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던 적세인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남향로에서 길을 찾을 수 있겠소?”
“···물론이오.”
그녀의 대답을 들은 장건은 몸을 비켜 양굉에게 길을 터주었다. 양굉은 장건이 이렇게 간단히 길을 터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지 살짝 놀란 얼굴이었다. 장건은 그 얼굴에 말해주었다.
“왜? 한 대 맞고 갈래?”
“아니! 그럴 필요 없소! 내 얌전히 가리다!”
양굉은 장건이 터준 길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반쯤 뛰는 듯한 걸음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멀어져 어둑한 골목 너머로 사라지기 전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 몸을 돌려 장건을 바라보았다.
“저기, 장 형. 내 조만간 또 큰 건이 있을 듯한데. 그때 다시 한탕 뛰어보시겠소?”
양굉과 반대 방향으로 골목을 빠져나가려던 장건은 그 말에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그리고 휙 몸을 틀어 마치 달려들 듯한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양굉은 깜짝 놀라서 후다닥 도망치며 외쳤다.
“그럼 다음에 봅시다, 장 형!”
장건은 골목길 어귀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살살 저었다. 만약 오늘 이런 식으로 만난 게 아니었다면 양굉을 조금 더 탈탈 털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전 일부로 그의 눈에 띄다시피 한 것과 곧바로 원하는 정보를 내놓은 것으로 보아, 일단 양굉은 그를 도우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 밑에 무슨 저의가 깔려있는지는 몰라도 당장 장건이 보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은 그 선의였다.
그렇다면 장건이 돌려줄 행동 또한 그것뿐이었다. 물론 나중에 양굉이나 그놈 뒤에 있을 암룡대의 다른 속셈이 드러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그들 나름의 계산이 있다는 것은 확정적이었다. 그러나 그건 그때 겉으로 드러난 순간 가서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단순히 그가 가진 무력을 차치하더라도 장건은 받은 만큼 돌려줄 강인한 의지가 있었다.
“···이거 참. 맹에서 제일 확보하고 싶어 할 암룡대 요원 하나가 방금 내 눈앞에 있다가 사라졌소. 약간 어이가 없군.”
장건의 행동을 바라보던 적세인은 그렇게 말하며 앞장서 나갔다. 그들의 머리 위 높고 낮은 건물들 사이로 노을을 거두고 남청색으로 물들어가는 저녁 하늘이 보였다.
“필요하다면 잡지 그랬소. 난 안 막았을 텐데.”
“하. 아무리 애가 탄다지만 정보를 제공해준 사람인데 그럴 순 없지. 차라리 이 일을 더 파고 들어가면 뭐 하나 나올듯하오만.”
장건은 그녀의 말에 옅게 웃었다.
“그럼 빨리 갑시다.”
골목을 빠져나온 두 사람은 그대로 적세인이 앞장서 나아갔다.
어두워지는 신사천의 거리의 높고 낮은 곳 여기저기 매달린 등불에 빛이 밝아오고 있었다. 이제 하늘에서 붉은 석조는 찾아보기 힘들어지는 시간이 되었는데, 두 사람이 걷는 거리에는 도리어 사람이 몰리고 있었다. 하루 일을 마친 상인들과 가게의 점원들, 부자들이 신사천의 등불에 취해 나오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거리를 가로지르던 장건의 눈에 유난히 튀는 것이 있었다.
아직 다 지어지지 않은 거대한 누각이었다. 대나무와 목재로 엮어 올린 비계와 크고 굵은 기둥들이 비죽비죽 솟아 있어서, 어두워진 지금 시간대에는 마치 고슴도치처럼 보이기도 했다. 장건의 그 시선을 느낀 것인지 적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신사천 상행조합의 건물이오. 이 신사천을 대표하는 누각을 세우겠다며 돈을 꽤 쏟아부은 것으로 알고 있소. 층수만 팔층이고 완공되면 이 신사천에서 제일 크고 높은 건물이 될 테지.”
장건은 그 미완성의 누각을 잠시 눈에 담다가, 적세인의 뒤를 따랐다.
그녀는 한창 사람이 많아지는 번화가를 똑바로 관통해 신사천의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러면서 그 많던 사람이 점점 줄어들며 조용한 저택 가가 나왔다. 크고 넓은 건물들과 담장들에 잠시 머뭇거릴 만도 하건만 적세인은 별다른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앞장서 걸었다.
그리고 곧 양굉이 말했던 간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주가상회周家商會라고 거창한 필체로 써진 간판이었다.
그런데 그곳의 대문으로 다가가니 문이 열려 있었다. 슬쩍 안을 들여다보니 하인들이 바쁘게 오가며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이것저것 가구를 들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아하니 정말 양굉의 말처럼 신사천을 뜨려 이사를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벌써 해가 지고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인데 어째서 이리 급하게···”
적세인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장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열린 대문을 거침없이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 장 무인! 그리 함부로 들어가면 어쩌겠다는 것이오?”
“그냥 장건이라 부르시오. 이미 그렇게 했으니까. 그리고 여기서 부른다고 나올 정신머리들이 남은 것 같지는 않군. 그냥 가서 이 집 주인을 찾아보는 게 나을 것이오.”
장건은 마치 자기 집 들어가듯 자연스레 안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잠시 생각하던 적세인도 그냥 그 뒤를 따라 냉큼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두 사람은 그 넓은 상회인지 장원인지 모를 곳을 이곳저곳 들쑤시기 시작했다. 해가 진 상황에서도 하인이나 점원으로 보이는 자들은 바쁘게 움직이며 물건과 가구를 정리하고 있었다. 짚을 깐 상자에 도자기 같은 깨지기 쉬운 물건을 챙기고 있거나 뭐가 들은 것인지 모를 궤짝을 들고 두 사람 앞을 지나쳤다.
슬쩍 보니 주방으로 보이는 곳에서 밥과 반찬을 우걱거리며 농땡이를 피우는 자들도 있었고, 설렁설렁하는 시늉만 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일어나는 태업이었다.
한참 장원을 쏘다니던 장건과 적세인은 마침내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지시를 내리는 백발의 중년인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약간 작은 키에 통통한 체형을 가진 남자였는데, 그 주변에는 서책과 세필을 들고 따라다니는 사람이 두셋에 일꾼들은 한두 명씩 계속 다가와 그에게 뭘 어찌할지 물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그를 발견한 것처럼 그도 두 사람을 발견했다. 그는 주변에 있는 일꾼들에게 바쁘게 일을 시키며 다가왔다.
“처음 보는 분들이군. 일꾼이나 할 인상들은 아닌데. 어찌 오셨소?”
장건은 슬쩍 적세인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그녀에게는 이럴 때 편한 물건이 있었다. 그가 그렇게 물러나는 모습을 본 그녀는 슬쩍 두 눈을 좁혔으나 결국은 앞으로 나와 무림맹 명패를 들어 보였다.
“무림맹 순찰대원 적세인이오. 몇 가지 물어보고 확인할 사항이 있어서 찾아왔소.”
“···무, 무림맹에서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괜히 바쁜 사람 붙잡지 말고 나가시오! 아니, 이거 누가 함부로 들여보냈어?”
“잠깐, 그, 주 행수? 상회에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오. 질문만 몇 가지 하겠소.”
주가상회니 그의 성을 주周씨로 때려 맞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주 행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무림맹이면 다인가! 어떻게 이사 준비로 정신없는 상회에 마음대로 들어와 천방지축으로 쏘다닐 수 있단 말이오! 당장 나가시오! 뭔가 문제가 있으면 나중에 정식으로 협조를 요청하시오! 아무리 황제 폐하에게 의룡검을 하사받은 무림맹주라지만 그게 이런 막무가내 수사를 허용시켜주는 건 아니지 않소이까!”
“아니, 몇 가지 물어보기만 하겠다는데···”
적세인은 앞으로 조금 더 나서며 주 행수에게 마치 너무한 것 아니냐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 그녀의 오른손이 슬그머니 허리춤으로 움직여 장건에게만 보이게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였다. 장건은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 주 행수는 무림맹 명패를 보자마자 당황했고, 동시에 자기 뒤에 있는 서기들의 눈치를 보았다. 그 후엔 적세인과 장건을 쫓아내려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이다. 장건의 깊게 가라앉은 눈이 서기들을 향했다. 서기는 셋이었는데, 적세인의 손짓대로 그중 둘은 서기라는 직책에 걸맞지 못한 차가운 눈빛을 숨기고 있었다.
“···그럼 어쩔 수 없구려. 내 맹에 가서 정식으로 협조 요청서를 떼오겠소. 그럼 되는 것이오?”
“그, 그렇소! 당연히 그런 식으로 절차를 지켜야지!”
적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그녀와 장건의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장건이 속삭였다. ‘왼쪽’
다음 순간 몸을 돌린 적세인과 장건이 호랑이처럼 뛰어 서기들을 덮쳤다. 전에 경험한 용조수를 흉내 낸 장건의 손에 오른쪽 서기의 목이 붙잡혔다. 옆에선 적세인은 등에 멘 검을 검집째 뽑아 왼쪽 서기의 머리통을 후려치고 있었다.
붙잡힌 서기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급히 저항하려 했으나, 순간 목덜미를 콱 쪼여오는 손길에 켁! 하는 신음 한번 흘리고 굳어버렸다. 그 손을 통해 뭔가 타고 들어와 전신을 찌르르 울리며 고통과 경직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장건은 서기가 이를 악물지 못하게 다른 손으로 그의 턱을 움켜쥐었다. 당혹에 빠진 서기의 눈이 장건과 마주쳤다. 그는 웃었다.
“잡았군.”
* * *
머리칼을 깔끔하게 빗어 묶은 중년인 한 명이 사악사악 칼을 갈고 있었다. 호롱불 하나만 밝혀두어 어두웠지만 반들거리는 쟁반과 무쇠솥들로 그곳이 주방이라는 것은 쉬이 알 수 있었다. 그는 옆에 둔 호롱불에 칼을 한 번씩 비춰보며 천천히 칼갈이를 이어갔다. 그때 누군가 주방의 문가에 나타났다.
그가 말했다.
“큼, 큼. 잘 처리됐습니다.”
“그런가요? 의심하지는 않던가요?”
“의심이라뇨? 저한테 위험할 껀덕지가 있습니까?”
“있지요. 암룡대 신분이 탄로 나는 것. 아직 그의 무공 연원을 밝히지 못했는데 정체가 드러나는 건 좋지 못해요.”
“···정말 그를 영입할 생각이십니까?”
“안될 이유가 없죠. 당장 암룡칠호 당신도 이 신대륙에서 영입된 외부인사고, 우리 암룡대는 요원 고용에 대해선 차별 없이 열린 조직이라고요.”
“그, 저기 진짜 영입할 생각이면 이번 일에 써먹으면 안 됐던 거 아닙니까? 결국 그 줄을 잡고 올라가면···”
“그 옆에 이미 무림맹 순찰대원이 붙지 않았나요? 그 순찰대원이 전모를 파악하면 무림맹이 움직일 거예요. 그와 맹호교위가 직접 싸울 일은 없을 테지요.”
문가에 선 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요··· 그럴 것 같진 않은데···”
“그럴 것 같지 않다니?”
“아니··· 그게··· 제 생각엔 그 양반 그대로 쭉 타고 쫓아가서 한판 싸울 텐데···”
중년인의 칼갈이가 순간 멈췄다. 하지만 곧 다시 사악사악 하는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그렇다면 거기까지인 거죠. 그럼 그 문제는 그만 신경 쓰고 볼일 보러 가세요.”
“아··· 예. 수고하십쇼. 전 이만.”
문가에 있던 자는 스르륵 떠났다. 그가 떠나고 나서도 중년인은 한참 동안 칼을 갈았다. 그렇게 묵묵히 칼을 갈던 그는 어느 순간 문득 칼갈이를 멈췄다. 그리고 탁자 위에 여태 갈던 칼을 툭 던졌다.
비어버린 왼손은 오른 팔뚝에 묶여있던 천 매듭을 만지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