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59)
59화
어둑한 달빛이 두 남자를 비췄다.
호랑이 복면을 한 거구의 남자는 그 달빛과 그림자 사이에 반쯤 몸을 걸치고 장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마치 맹수가 달려들기 직전 사냥감을 노려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반대로 장건은 그를 감정을 알 수 없는 차가운 눈으로 마주 볼 뿐이었다.
그렇게 서로를 노려보길 한참, 복면인의 입이 열렸다.
“장건. 호남 장 씨 세가의 둘째 아들. 이 신대륙에서 떠돈 지는 몇 년 되었고. 신사천에는 왜 온 거냐? 그저 형을 만나러 온 것인가?”
그 질문에 장건은 슬쩍 웃었다.
“형수가 요리를 잘해서. 그거 좀 얻어먹으러 왔지. 넌 몇 호냐?”
“몇 호? 아니, 난 암룡대가 아니다.”
그는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와 흐린 달빛에 자신을 조금 더 드러냈다.
“난 그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자다. 중원에 계신 황제 폐하의 충실한 종복이지.”
“아, 암룡대 같이 불순한 놈들이 아니라 위대한 황군이시다?”
복면인의 눈빛이 시퍼렇게 빛났다.
“···네놈 말투가 더 불순하군. 네놈도 황제 폐하의 신민이 아닌가? 그런데 어찌 그 권위에 함부로 입을 여는가?”
장건은 어리둥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 개소리지? 아이를 납치해 무공도 모르는 양민을 협박하면서 권위는 무슨 권위?”
“주가 상회에 대한 이야기인가? 그는 그저 본인의 욕망을 위해 사업을 독점하려는 장사꾼에게 정의를 구현한 것이다. 주월의 독점이 성공했다면 이 신사천에서 운송을 생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그 많은 사람이 항산을 잃고 거리에 나앉아 유리걸식하게 되었겠지. 폐하의 녹을 받아 살면서 어찌 백성들의 아비규환을 지켜만 보겠느냐.”
장건은 잠시 말을 잊었다. 복면인의 말투는 침착하고 평이했다. 마치 방금 말한 것이 모두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열 몇 살 여자애 손가락을 잘랐나?”
“아비의 죄는 자식이 물려받는 것이지.”
장건의 얼굴에서 표정이라고 할만한 것이 사라졌다. 그는 자연스럽게 왼손으로 칼집을 붙잡고 오른발을 앞으로 한 발짝 내디디며 몸을 틀었다. 그리고 복면인에게 턱짓하며 말했다.
“그 가린 거 좀 치우지. 이미 오늘 낮에 본 얼굴인데.”
복면인의 눈이 그 말에 슬며시 좁혀지며 눈웃음을 지었다. 그는 느릿하게 손을 들어 복면을 끌어 내렸다. 그 아래 드러난 얼굴은 낮에 장가 상회를 찾아왔던 신사천 상행조합의 견우영 조합장이었다.
“눈썰미가 좋군. 목소리는 바꿨는데.”
“그 덩치와 눈을 보고도 못 알아보면 장님이지.”
견우영은 복면을 완전히 풀어 품 안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아쉽군. 저녁 식사를 같이하면서 알아가고 싶은 게 많았는데 말이야.”
“난 알고 싶지 않은데. 날 아이들에게서 떼어놓으려 초대한 건가?”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본래 장운에게 공작을 실행하는 시기는 오늘이 아니었다. 주월이 신사천을 떠나고 난 뒤가 될 것이었지.”
장건이 암룡대를 알아볼 줄은 몰랐다는 이야기였다. 저녁 식사 초대는 정말 호기심이었다는 말이기도 했고, 진짜 장 씨 남매를 납치할 계획이 있었다는 것이기도 했다.
거기까지 들은 장건은 더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오른손을 자연스레 늘어뜨리고 묵묵한 눈으로 견우영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를 마주 보는 견우영의 미소는 더 진해졌다. 앞으로 한 발짝 더 나와 희미한 달빛 아래 자신을 모두 드러내는 그의 왼손엔 검 하나를 들고 있었고, 동시에 왼손 엄지로 찰칵 검집에서 검을 밀어냈다.
두 사람이 서 있는 미완공 누각 위는 바람 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한 가운데 저 아래 야시장 거리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내는 소음이 희미하게 울려 퍼졌다.
상품을 소개하며 손님을 부르는 상인의 외침부터 무쇠솥에 요리를 볶으며 덜그럭거리는 소리, 술에 취해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 기루에서 들리는 비파와 고금을 뜯어 울리는 가락 소리, 화를 내며 싸우는 사람, 즐거워 와하하 웃는 사람, 뭐가 그리 슬픈지 엉엉 우는 사람 등등.
이 신사천의 민낯인지 화려함인지 모를 야시장의 소리는 그렇게 미완공 누각 꼭대기까지 올라와 장건과 견우영 사이에서 희미한 배경처럼 깔렸다.
하늘은 뭉글한 구름이 흘러 반도 차지 못한 달과 별을 가렸고, 아래에선 인간사 천태만상의 소음이 복잡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가운데 경계선에선 두 남자가 서로를 응시하며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전신의 근육을 긴장시키고 있었다.
다음 순간, 야시장에서 싸우던 사람들이 서로를 밀치다가 와락 무쇠솥을 엎고, 기루에서 튕기던 고금은 현이 끊어져 띠잉-하는 소리를 냈다. 잠시지만 그 소리들로 그 일대 기루와 야시장이 조용해졌다. 알 수 없는 고요함에 어리둥절하던 사람들은 잠시 후 소리의 원인을 파악하고 난 뒤에야 다시 웃고 떠들며 거리의 소란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때 미완공 누각 위 장건과 견우영은 뒤바뀐 자리에서 서로에게 등을 보이고 있었다.
견우영은 앞으로 검을 쭉 뻗은 자세 그대로 입을 열었다.
“꽤 빠르군. 의룡검주의 직전제자도 이 정도 수준은 아닌데.”
그와 비슷한 자세로 칼을 뻗고 있던 장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흘끗 자신의 칼을 바라보았다. 방금 부딪친 칼날 부분에 이가 나가 있었다. 동시에 그의 오른뺨 위에 희미한 혈선이 그어지며 주르륵 핏방울이 흘렀다.
두 사람은 천천히 자세를 풀며 서로를 돌아보았다. 견우영은 장건의 뺨에 흐르는 핏방울을 보고 씨익 웃었다. 그런데 웃음을 본 장건이 그에게 슬쩍 턱짓했다.
견우영은 그 턱짓에 자기 가슴팍을 내려다본 이후에야 옷 앞섶이 갈라져 나풀거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간 무표정해졌던 그의 입가에 잠시 후 진득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그렇게 웃는 것인지 화 내는 것인지 모를 얼굴로 장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게 하나 있네, 장건.”
“뭐.”
장건은 칼을 두 손으로 잡고 늘어뜨리며 짧게 되물었다. 견우영은 왼손에 들고 있던 검집을 옆으로 휙 던지며 말을 이었다.
“지금 여기 누워있는 암룡이십호는 어떻게 찾았나? 아니, 주월의 상회를 찾아갈 생각은 어떻게 했어? 장가 상회로 잠입했던 십칠호는 독단을 물고 죽었는데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이 어찌 주가 상회를 찾았단 말인가?”
장건은 그 질문에 대답하려다가, 무언가 머리를 스치는 장면들에 다시 입을 다물었다.
신사천 상행조합과 주가 상회의 갈등, 장건이 있는 장가 상회로 잠입하다 들통이 나 자결한 가짜 유모,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찾아온 무림맹 순찰대원 적세인, 막힌 길 앞에 갑자기 등장해 단편적인 정보만을 준 양굉, 그저 위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던 암룡대원, 그리고 양굉의 행동을 모르는 눈앞의 견우영, 그가 달고 있는 신사천 조합장이라는 지위.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장건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희도 참 개판이군. 황제가 보면 좋아죽지 않을까?”
“···감히 폐하를 그리 들먹이다니. 멸문이 두렵지 않은 것이냐?”
“내가 황제를 잘 알진 못해도 멸문 걱정은 네가 해야 할 것 같은데. 본인의 정보조직을 중간 간부가 사적으로 이용했는데 말이야.”
견우영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 표정은 장건의 추측이 맞았다는 걸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황제의 칙령에 따라 움직이는 암룡대를, 신사천 상행조합장으로 위장하고 있던 암행 황군이 본인의 위장 신분을 위해, 정확히는 그 신분에서 얻던 이익을 위해 이용했다는 것. 그리고 그를 알아챈 암룡대에서 장건과 적세인, 그리고 무림맹을 이용해 견우영을 처리하려 한다는 것.
“어떻게 주가 상회를 찾았냐고? 내가 안 찾았다. 네 부하들이 알려줬지.”
“···무슨 일인지 알겠군. 어떻게 역용을 알아보았나 했는데, 암룡대 내에 배신자가 있었던 거였어. 누구냐? 삼호? 아니면 칠호?”
“그딴 식으로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대충 대답한 장건은 칼을 치켜들어 견우영을 겨눴다.
“그럼 나도 뭐 하나 물어보자. 그 주 씨 상인이야 네 사업을 방해했으니 그렇다 치고, 장가는 왜 건드렸냐?”
“장가 상회도 주월처럼 중원의 자금지원을 통해 신사천 상계를 집어삼킬 수 있으니까.”
“···얼씨구.”
장건은 곧바로 튀어나온 대답에 어이가 없어서 도리어 웃었다. 견우영의 말은 장가 상회가 주가 상회처럼 신사천 상행조합에 위협적인 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으니, 애초부터 신사천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할 생각이었다는 이야기였다.
“잠깐 대화했지만 네가 뭐 하는 새낀지 대충 알겠다.”
“그런가? 그럼 남은 건 하나뿐이군.”
견우영은 표정을 지우고 짐승 같은 눈을 번뜩이며 장건에게 검을 겨눴다. 그렇게 둘의 대화가 멎고 미완공 누각 꼭대기에는 다시 야시장의 소란스러움만 울려 퍼졌다.
동상이라도 된 것처럼 서로를 겨누고만 있던 두 사람은, 다음 순간 서로를 향해 달려들어 검과 칼을 부딪치며 서로를 스쳤다. 그리고 곧바로 몸을 돌려 다시 서로의 날붙이를 부딪쳤다. 쇠와 쇠가 만나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견우영의 검은 빠르고 강했다. 지금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진 않았는데, 장건은 칼을 부딪치며 손바닥이 가볍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신대륙 무인들이 흔히 첫 일격 이후 힘이 풀려 점점 느려지는 것과는 다르게 견우영의 검은 도리어 점점 더 빠르고, 더 강해지는 듯했다. 카가각 하고 두 칼날이 서로를 긁어 환한 불티가 튀었다.
장건은 슬쩍 뒤로 물러섰다. 견우영은 그것을 기회라 생각했는지 쭉 따라오며 검을 휘둘렀다. 장건은 그 순간 바싹 자세를 낮췄다. 그의 뒤에는 누각의 기둥이 있었다. 장건은 견우영의 검이 그 기둥에 가로막히며 빈틈이 생기리라 보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장건은 거침없이 기둥을 베어버리고 순식간에 이어진 연환검에 공격이 아니라 방어를 해야만 했다. 다시 한번 날과 날이 만나 거친 불티가 튀었다.
이후로도 견우영은 주변에 거치적거리는 공사 자재나 기둥, 대나무 비계 따위를 파죽지세로 베어버리며 장건을 공격했다. 어찌나 무식한 힘과 빠르기인지 그동안 장건이 만났던 마인들도 이와 비교하면 한 수 처졌다.
큰 덩치와 길쭉한 팔다리에서 나오는 힘은 단순히 강한 완력 말고도 원초적인 기세가 있었다. 그가 썼던 복면이 호랑이의 입을 그리고, 두 눈이 호랑이의 눈을 그렸던 것처럼, 그는 정말 자신이 그런 한 마리 맹수가 되었다는 듯 휘몰아쳤다.
대나무 비계의 한 축이 무너지는 가운데서 견우영은 시퍼렇게 번뜩이는 눈으로 장건을 노려보며 검을 휘둘러왔다. 그 검의 경로에 걸리는 누각 일부가 모두 잘려 나갔다.
그렇게 한참 수세에 몰리던 장건은 어느 순간 빠르게 두 번 칼을 휘둘러 견우영의 검과 돌진을 잠시 멈춰 세웠다. 그리고 멈칫한 그를 향해 짧은 호흡을 들이마시며 번뜩, 칼을 휘둘렀다. 그 칼날의 그림자는 셋이었다.
셋으로 나뉘어 오는 장건의 칼날에 견우영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그는 순식간에 그 당혹을 지우고 양손으로 검을 붙잡았다. 동시에 그의 검과 양팔이 흐릿해졌다.
쨍-하는 소음과 함께 장건은 뒤로 물러섰다. 그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방금 견우영은 셋으로 나뉜 그의 환검에서 허와 실을 구분한 것이 아니라 그저 무지막지한 내공과 속도로 칼날 셋을 모조리 베어낸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하! 재밌는 잔재주구나!”
견우영은 어느 순간부터 즐겁다는 듯 그리 외치며 곧게 검을 내려쳤다. 단순하지만, 또 그만큼 강력한 일격이었다. 장건은 그를 흘려내고 곧바로 반격했다. 그 칼날은 견우영 같은 무식한 기세는 없으나 그의 목까지 선명하고 곧게 그려지는 선형은 섬뜩하리만치 예리했다. 견우영은 이를 악문 얼굴로 검을 들어 그것을 막아냈다.
두 검객이 서로를 향해 날리는 매 일격이 그러했다.
널찍한 누각 위에서 두 사람의 모든 공격과 방어, 반격은 하나하나 모두 치명적이었다. 견우영의 그 짐승 같은 무공 앞에서 장건은 셋으로 나뉘던 환검을 넷으로, 칼끝에는 기혈을 진탕 시킬 내가중수법을 담아, 걸음걸음은 자신의 칼 그림자 사이로 몸을 숨기는 무영보를 펼치며 표홀히 움직였다.
그러나 견우영은 이를 끝 모를 내공으로 더 빠르고 더 강한 칼을 휘둘러 막아내고, 역시 그 무식한 내공과 힘 그대로 장건을 몰아세웠다.
“재밌는 재주가 많군! 태학사太學師가 보면 아주 좋아하겠어! 하지만 잔재주는 결국 잔재주일 뿐이지! 끝끝내 이기는 것은 더 강한 내공과 더 빠른 검이다!”
견우영은 그리 외치며 다시 한번 곧게 검을 내리쳤다. 마치 막을 수 있다면 막아보라는 듯했다. 이에 장건은 칼을 들어 흘렸으나, 그 검날에 담긴 무거운 내공에 자기도 모르게 이를 악물어야 했다.
동시에 숨결이 느껴질 정도고 가까워진 견우영의 얼굴이 보였다. 번뜩이는 두 눈과 으르렁대듯 드러낸 이빨이 지금 그의 흥분과 스스로가 가진 무공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듯했다.
순간 장건은 그 얼굴이 엿 같다고 느껴져서, 그대로 이마를 들이박아 버렸다.
“억!”
견우영은 코를 부여잡고 장건의 후속타를 경계해 훌쩍 뒤로 물러섰다. 멀찍이 물러난 그는 손을 떼고 거기 흥건한 핏물을 보며 와락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너 이 새끼!”
멀리 물러난 견우영과 달리 장건은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양손으로 잡은 칼을 늘어뜨리고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찢어진 이마에서 견우영의 것과 뒤섞인 피가 질질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더 빠른 칼. 더 강한 내공.
황군의 실용성과 패도를 담은 핵심 무공 개론이었다. 천년의 세월 동안 제국은 그런 무공을 통해 중원을 정복하고 천하를 평정했다. 자연스레 그 개론을 벗어나는 무공들은 비효율적이고 쓸모없다 하여 사장되어 갔다.
당장 천하를 지배하는 황군의 무공이 그러하니 그게 옳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었다. 그 외의 방식은 굳이 필요 없다고, 검으로 매화를 그리니 태극을 그리니 하는 건 모두 개소리고 오직 더 강한 내공과 힘만이 무공의 전부라 말할 수 있었다.
장건도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상대보다 한 치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무공을 쓸 수 있었다. 전날 괜찮은 영약도 하나 먹어서 내공도 넉넉하니 지금 견우영이 하는 것처럼 칼에 내공을 잔뜩 싣고 우악스레 칼을 내려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공武功일까. 그를 무武로써 공功을 쌓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장건의 생각에 무공은 결국 인간의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도구였다. 더 빨리 움직이고 더 강한 힘을 내는 것을 넘어, 소리로 타인의 정신을 보호하고, 한 줌 힘으로 천근의 상대를 받아넘기고, 더 멀리 달려가며, 허공을 디뎌 날아오르는 것은 물론이고, 먼 곳의 소리를 듣고 특정 누구에게만 자신의 소리를 전달하는 것 등.
본래라면 한미하기 그지없었을 가능성을 몇 배에서 수십 배까지 극대화해 새로운 현상을 일으키는 힘.
장건에게 있어 무공이라 함은 그런 것이었다. 그에 비하자면 그저 더 빠르고 더 강한 것은 기초적인 무공에 지나지 않았다.
“흐, 슬슬 힘에 부치는 모양이군, 장건. 그래, 특별히 황군이나 세가에서 사사 받지 않은 무림인치고는 꽤 싸울 만했다. 마가의 후예들도 네 수준은 드물지.”
견우영은 어긋난 코뼈를 맞추고 스윽 피를 닦으며 그리 말했다. 장건이 멍하니 호흡을 가다듬는 모습을 보고 그가 지쳤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 대답에 초점을 되찾은 장건은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호랑이. 호랑이라. 그거 괜찮군.”
“뭐?”
장건은 휙 하고 칼을 한 번 털어낸 뒤, 한손으로 칼을 잡고 중단에 두었다. 그를 본 견우영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무릎을 낮추며 검세를 잡았다.
그때 장건의 칼이 울었다.
“···뭐냐?”
그 웅웅거리며 떨리는 칼을 보며 견우영은 의아함을 드러냈다. 검이 떨리는 것. 그것은 내공의 집중이 숙달되지 못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장건은 대답하지 않았고, 견우영은 그가 지쳐서 그런 것이라 생각해 씩 웃었다.
“그래, 내공이 슬슬···”
하지만 금세 견우영의 표정은 이상해졌다. 장건의 칼에서 웅웅 울리던 소리가 점점 낮아졌기 때문이었다. 뭔가 그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수준으로 낮아지던 소리는 어느 순간 희미한 소리조자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그리고 견우영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귓가에선 삐-하고 이명이 들렸고, 어째선지 오금이 저릿해지는 기분이었다. 더 이상한 것은 이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건만, 장건의 칼은 여전히 떨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때 장건이 꽝-소리가 나도록 강하게 진각을 밟았다.
“허억···”
그 커다란 울림에 견우영은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꿇을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