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60)
60화
견우영은 꺾이는 무릎을 강하게 힘줘 버티고 장건을 노려보았다.
“이건 또··· 무슨 사술邪術이냐···?”
“호랑이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 있나?”
“뭐, 뭐?”
그런 이야기가 있다. 호랑이의 울음소리에는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아주 낮은 진동이 있고 그 진동을 들은 사람은 알 수 없는 두려움과 피곤함,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 장건은 칼을 울려 그 진동을 재현하고, 중간에 강한 진각을 밟아 소리와 진동으로 흔들리는 상대의 기혈에 충격을 준 것이다.
장건은 마치 장난이라도 치듯 손에 든 칼로 허공을 휘휘 그었다. 동시에 견우영은 귓가에 이명이 강해지며 아찔해지는 걸 느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전신의 내공을 끌어올렸다.
“이이··· 네놈···! 이딴 잔재주를···!”
정말 앞뒤 가리지 않고 내력을 끌어올렸는지 그의 몸 위로 희미한 아지랑이까지 피어올랐다. 그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크헝-함성을 지르고 훌쩍 뛰어 덤벼왔다.
그가 내려친 검과 장건의 칼이 맞부딪쳤다.
짧은 불티가 튀며 장건의 칼에서 위이잉 하는 묘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견우영은 그에 머리가 살짝 띵한 것을 느끼면서도 소리를 지르고 내공을 끌어올리자 할만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다시 고함을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그때 장건이 쿵- 진각을 밟았다.
“으헉···!”
견우영은 그 걸음 한 번에 전신 기혈이 흔들리며 다리에 힘을 풀리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대로 무릎 꿇을 수는 없어서 재빨리 다시 내공을 끌어올리고 장건에게 달려들었다.
“네 이놈-!”
그의 움직임에서 이제 법도라고 할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쾅쾅 바닥을 밟으며 마구잡이로 칼을 휘둘렀다. 그래도 그 동작 하나하나에 담긴 내공이 무지막지했던 터라 아직 다 지어지지도 않았던 누각 꼭대기는 폐허가 되어갔다.
나무 기둥을 베어버리고, 벽을 부수고, 쌓아둔 자재들을 마구 흩뿌리며 견우영은 장건을 쫓았다. 그러나 장건은 그 모든 공격을 흘리고 비껴내며 유효타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쿵- 진각을 밟았다.
“너···! 너 이 새끼···!”
짐승처럼 움직이다가 그 걸음 한 번에 휘청했던 견우영은 장건이 그러는 것처럼 바닥을 꽝! 찍고는 몸을 바로 세웠다. 혈관이 터져 벌게진 눈과 귓가에서 주르르 흐르는 핏물이 그를 더 흉악하게 만들었다.
“끄아아아-!”
견우영은 훌쩍 뛰어올라 두 손으로 검을 잡고 망치처럼 내려쳤다. 장건은 호흡 한 번 뱉고 칼을 들어 그것을 흘리려 했다. 그러나 견우영의 검에는 내력이 너무 많이 실려 있었다.
칼날과 칼날이 만나 쇠붙이가 부딪쳐 나는 것이 맞는지 싶은 굉음이 울렸다. 동시에 장건의 발밑에서 어마어마한 하중이 가해졌고, 이미 두 사람의 난리로 약해졌던 누각 꼭대기의 바닥은 더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내렸다.
바닥이 무너져 떨어지는 와중에도 장건과 견우영은 서로의 목숨을 노리고 무기를 휘둘렀다. 일 장 높이를 떨어지는 그 잠깐 사이에 두 무인의 칼날은 세 번 부딪쳤다. 그 후 장건은 안정적인 자세로 소리 없이 바닥에 내려섰고, 견우영은 쿵-소리를 내며 두 발로 바닥을 찍었다. 그는 그렇게 내려서자마자 장건에게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그때 장건이 다시 진각을 밟았다.
견우영은 순간이지만 뭔가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 머리가 띵해지는 걸 느꼈다. 걸음을 디딜수록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기이한 점은 바닥을 찍는 진각 자체는 앞에 걸음보다 소리가 작았다는 것이다.
“네, 네놈···! 장건··· 널 죽여버릴, 것이다···! 너는 물론이고··· 네 형도, 네 형수도! 네 가족들도 모두 다-!”
칼을 울린 이후로 정신을 차릴 수 없자 견우영은 그냥 열이 뻗치는 대로 외치며 장건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귓가뿐만 아니라 두 눈에서도 핏줄이 터져 줄줄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래봐야 이어진 공격들이 너무 단조로워져서 장건은 가볍게 흘려가며 입까지 열 수 있었다.
“너도 참 답 없는 놈이다. 여기서 날 이겨도 그럴 시간이 있겠냐? 이미 그 암룡대가 네 비리를 확인했는데?”
“비리라니, 비리라니! 난 그저 내 품위를 유지하길 바랐을 뿐이다!”
그는 버럭 소리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내력을 통제할 수 없는지 그의 검에서는 시퍼런 기운이 줄줄 흘러내렸다.
“나는 황군의 교위다! 무려 황제 폐하께 맹호猛虎의 호號를 받은 선임 교위! 그런 내가 왜 이딴 모래와 먼지뿐인 황량한 땅에 와서 썩어가야 하는가! 이 땅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그 순간 그의 검이 조금 전보다 몇 배는 빠르게 움직였다. 잠시지만 장건도 그 움직임을 놓쳤다. 직후 장건의 왼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암룡대? 오래되다 못해 낡아빠진 칙령을 방패로 들고 있는 건달과 무뢰배들의 모임일 뿐이다! 백 년의 세월 동안 그 많은 자금을 빨아먹고도 마궁魔宮의 위치조차 파악하지도 못한 버러지들!”
장건의 어깨를 벤 그의 검이 다시 빨라졌다. 이번엔 장건도 칼을 들어 막았으나 완전히 막지는 못하고 옆구리에 상처를 입었다.
“나는 이 땅을 벗어나 다시 중원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를 위해 천금을 바쳐야 한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천금을 위해 이 신대륙의 상인들을 죽여야 한다면! 역시 얼마든지 그렇게 할 것이야!”
견우영은 그렇게 외치며 다시 빠른 검을 휘둘렀다. 칼날이 번뜩 하얀 빛살을 그려 장건의 목을 노렸다.
그때 장건의 칼과 손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눈보다 빠르게 움직인 칼날들이 그 순간 쨍-하고 부딪치고, 견우영의 검은 그대로 크게 밀려났다. 동시에 그의 가슴팍에서 가로로 길쭉한 상처가 나며 피가 튀었다. 그렇게 검을 튕기고 반격한 장건은 휘리릭 몸을 돌려 견우영의 몸을 밀어 찼다. 그는 억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쭉 밀려났다.
이후 바로 선 장건이 입을 열었다.
“아이를 납치하고 손가락을 잘라가며 그 아비를 협박한 게 그저 중원 복귀를 위해서라. 답 없는 놈이 아니라 훌륭한 개자식이었군.”
가슴팍에서 피를 줄줄 흘리던 견우영은 그 말을 듣고 자기가 진짜 짐승이라도 된 듯 울부짖으며 달려오려 했다. 그때 장건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먼젓번 진각에 비해 너무나 작은 소리로 퉁-하는 가벼운 진동이 울렸다.
“커억···!”
그러나 견우영에게는 지금까지의 진각 중 가장 강한 충격이었다. 순간 눈앞이 흐려지며 머리통이 터져버릴 듯 이명이 울리고, 통제를 잃은 내공은 제멋대로 날뛰며 기혈을 찢었다. 전신 근육들은 덜덜덜 떨려 힘을 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견우영은 그렇게 혼이 나가버릴 것 같은 상황에서도 단단히 검을 쥐고 내공을 통제하려 했다.
장건은 오른손에 든 칼을 늘어뜨리고 앞으로 한 발짝 내디딘 자연스러운 자세로 그를 마주 보았다. 그도 머리칼이 너저분하고 어깨와 옆구리에서 피가 흐르긴 했지만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질질 흘리며 흉하게 일그러진 견우영과는 천지 차이였다. 견우영은 그것이 더 화가 나는지 이를 악물고 장건을 노려보았다.
그렇게 차분한 기색으로 그를 마주 보던 장건은 앞으로 천천히 한 걸음을 내디뎠다. 지금까지 큰 진동과 소리를 울리던 진각들과 달리 그 걸음은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견우영은 그 걸음이 바닥을 디디는 순간, 전신을 울리는 커다란 진동을 느끼며 눈앞이 새하얗게 변하고 모든 감각이 뭉개지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든 내공을 일깨우고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려 했으나 그는 결국 수 만근 쇳덩이에 짓눌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털썩 무릎 꿇었다.
“···”
그런데 그렇게 싸울 의지를 잃고 무릎을 꿇자 사라졌던 오감이 천천히 돌아오고, 고통도 잦아들었다. 어리둥절한 견우영은 무릎을 꿇은 채 돌아온 시야로 장건을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무너진 누각의 천장에서 달빛이 스며들었다. 흐린 구름이 걷힌 것인지 장건을 내리쬐는 달빛은 참 환했다. 그리고 견우영은 달빛을 받으며 우뚝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장건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떠올렸다.
언제나 사지와 머리를 바닥에 처박고 마주했던, 황군에 입군 했을 때, 교위가 되었을 때, 그리고 맹호라는 별호를 받았을 때나 겨우 만날 수 있었던 존재. 곁에 엎드린 수많은 동료들 사이에서 흘끗 올려다보았을 때 가장 높은 곳에서 자신들을 내려다보던 위대한 자. 그가 품은 충성심의 주인.
견우영은 더없는 혼란과 고통 이후 올려다본 남자에게서 황제의 모습을 보았다.
“···너는 누구냐?”
“장건.”
이미 아는 이름을 물은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또 그렇다고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 것인지도 알 수 없었기에 견우영은 헛웃음을 흘리며 푹 고개를 숙였다. 황군 선임 교위인 그가 신대륙 황야의 무인에게 패배한 것이다. 더 할 말이 없었다.
장건도 그가 싸울 의지를 완전히 잃었음을 느끼고 휙 칼을 털어 집어넣었다. 일단 당장 목을 베 죽일 게 아니라 주 행수의 딸을 찾아야 했다.
그때 우당탕 소리가 들리더니 누각 한쪽 바닥이 벌컥 들리며 누군가 머리를 내밀었다. 그녀는 그렇게 머리를 들이밀고 주변을 살피다가 장건과 그 앞에 무릎 꿇은 견우영을 발견했다.
“장건!”
그녀는 적세인이었다. 장건은 바닥을 짚고 올라오는 그녀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소?”
“암룡대원 둘을 무림맹에 압송하고 나도 부둣가로 가고 있었소. 그런데 이 주변에서 고함과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 사람들이 웅성대고 있더군. 장건 당신일 줄 알았소.”
장건은 피식 웃었다. 올라온 적세인의 얼굴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만큼이나 열심히 뛰어다닌 모양이었다.
“이거 누각 상부를 아주 부숴놓았군. 상행조합에서 말이 나오겠는데··· 이 자가 암룡대원이오?”
무너진 천장과 사방 어지럽게 널브러진 건설 자재를 둘러보던 그녀는 꿇어앉아 있는 견우영을 보며 물었다.
“황군 교위이자 상행조합장 견우영이오.”
“···누구?”
적세인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장건과 견우영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그제야 장건의 몸에 난 상처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단순히 암룡대원을 제압하느라 사방을 어질러 놓은 줄 알았는데, 인제 보니 둘이서 사생결단을 벌인 모양이었다.
장건은 당황한 적세인을 두고 견우영 앞으로 다가가 쭈그려 앉았다.
“야. 주 행수 딸은 어딨어?”
“···부두의 십삼 번 창고 지하에.”
견우영은 고개를 푹 숙인 그대로 그렇게 대답했다. 장건은 바로 코앞에 아이를 두고 엉뚱한 곳에서 난리를 피웠음을 깨닫고 헛웃음을 흘렸다. 노인으로 위장한 암룡대원이 냅다 도망친 이유에는 인질의 위치를 숨기기 위함도 있었던 것이다.
장건은 적세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위층에 정신 못 차리는 놈 하나 더 있소. 그놈까지 포함해서 좀 부탁하겠소.”
그리고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훌쩍 일어나 누각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잠깐! 장건! 또 나한테 떠넘기려고!”
놀란 적세인이 붙잡으려 했을 때 그는 이미 건너편 지붕 위를 달려가고 있었다. 적세인은 그 뒷모습을 멍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본인이 열고 올라왔던 바닥으로 다가가 아래를 보며 외쳤다.
“빨리들 올라와! 뭐 하는데 다들 그렇게 느려 터졌어!”
“가, 갑니다, 선배! 가요!”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적세인이 무림맹에 가서 이끌고 온 순찰대원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들을 재촉한 적세인은 꿇어앉은 채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견우영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눈을 뜨고 숨은 쉬고 있었지만 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적세인은 그가 진짜 황군 교위라면 도대체 무슨 수를 썼기에 저런 식으로 싸울 의지를 꺾을 수 있었을지 짐작도 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저자가 맹으로 압송됨으로써 일어날 무림맹과 황군의 복잡한 정치적 싸움에는 머리가 아파져 왔다.
의룡검을 쥔 무림맹주는 저자를 빌미로 황군과 암룡대의 무림 활동을 억제하려 할 것이고, 황군 쪽에선 최대한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려 양보든, 협박이든 수를 쓸 것이다.
적세인은 그 과정에서 죄없이 다치는 사람이 없기만을 바랐다.
* * *
주산영은 어둑한 지하실 바닥에서 꿈지럭대고 있었다. 뒤로 묶인 양손을 어떻게든 풀어내려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굵은 밧줄은 조금의 틈도 나오질 않았고, 지난밤 계속 힘을 줘 쓸린 피부는 벌겋게 까져 쓰라리다 못해 피가 줄줄 흘렀다.
하지만 주산영은 멈추지 못했다.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을 지키다 죽은 호위무사들과 자신을 말리던 아버지, 그리고 잘려 나간 왼손 약지가 그녀의 머릿속을 헝클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어젯밤 멈췄던 눈물이 어느새 다시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때 굳게 닫혀있던 계단 위 쇠문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주산영은 그 소리를 들으며 흠칫 떨 수밖에 없었다. 지난번 저 쇠문이 열리고 내려온 자는 그녀의 손가락을 잘랐다.
그런데 쇠문은 덜컹거리는 소리만 낼 뿐 열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덜컹거리는 소리마저도 멈췄다. 그 때문에 주산영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문을 올려다보는 순간, 생뚱맞게 챙-하는 소음이 울렸다. 그 후 문이 열렸다.
주산영은 그 끼이익 열린 철문밖에서 들어온 새벽의 푸르른 빛깔에 눈을 감고 몸을 돌렸다. 설마 또 손가락을 자르려는 것일까 하는 두려움에 몸이 떨렸다.
문을 연 자는 뚜벅뚜벅 계단을 내려와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 곁에 꿇어앉아서는 묶인 밧줄을 붙잡았다. 그 손길이 참 조심스러워서, 주산영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뜨고 그를 돌아보았다.
장건은 밤을 새며 목숨을 건 싸움 때문에 피로한 와중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소녀에게 가벼운 미소를 지어주었다.
“이제 집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