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66)
66화
* * *
“···죄송합니다, 대장.”
“괜찮다. 제가의 후계자가 알려진 것보다 멍청했고, 또 다른 변수도 있었지. 자네 탓으로만 몰아갈 수 없다. 최종적으로 장보도를 챙긴 자가 누군지는 알아냈나?”
사과를 한 자와 대장이라 불린 자 외에 그 자리에 있던 제삼자가 입을 열었다.
“아뇨, 아직 특별한 정보는 없어요. 하지만 이세민, 정확히는 이치의 암호를 풀기 위해서는 결국 그 암호를 해석할 수 있는 자를 찾아야겠죠. 그리고 이 신사천에서 그게 가능한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고요.”
“그렇겠군. 그럼 놓쳐도 놓친 게 아니지.”
“대장! 저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십시오! 이번엔 괜히 엉뚱한 짓 하는 일 없이 장보도만 챙겨 오겠습니다!”
“아니. 객잔에서의 소란으로 무림맹과 세간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럴 때일수록 일부만 따로 움직일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꼬리를 남길 게 아니라 맹수가 되어 사냥감을 물어 뜯어야 해.”
“···알겠습니다.”
“명심하라. 이번 일의 결과에 따라 우리의 날개를 펴고 웅대한 시작을 열 수도, 아니면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못한 채 꼬꾸라지게 될 수도 있다.”
대장이라 불린 자는 그 후 자리에서 일어나며 낮게 읊조렸다.
“한의 천명은 끝났으니.”
“이제 곧 황천의 때가 오리라.”
어둑한 방안의 그림자들이 은밀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장건과 양굉은 객잔에서 말을 찾아 이끌고 신사천의 거리를 헤맸다.
양굉은 가야 할 곳을 확실히 아는 것인지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앞장서 걷고 있었다. 그리고 장건은 그 뒤를 따르며 노란색 복면을 쓰고 있던 무뢰배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말을 되찾기 위해 객잔으로 돌아갔을 때, 먼저 공격을 해왔던 무뢰한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암상의 무사들과 싸우며 다친 이들까지 모두 데려갔기 때문에 장건이 본 것은 텅텅 빈 객잔이었다.
혼자인 장건으로써는 그들의 정체를 짐작하기 쉽지 않았다. 양굉의 말로는 황군이 아니라지만 이놈의 말만 믿을 수도 없었고, 거래 장소에 나타났던 제가의 모습을 보아선 다른 고대 세가가 훼방을 놓은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자신들의 앞마당에서 다른 세력들이 난리를 피우는 것을 본 무림맹에서 방해한 것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 난장판에서 장보도를 주운 장건은 그들이 누구였는지 무슨 상관인가 싶어 피식 웃었다. 노란 복면을 했던데. 그럼 황면적黃面賊쯤 되는 것일까? 이 세상의 역사에서 장각의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그에겐 농담 같기만 할 뿐이었다.
그의 상념이 이어지는 동안 양굉의 걸음은 신사천의 번화가를 벗어나 외곽의 한 잡화점 앞에 멈춰 섰다. 그는 말고삐를 가게 앞에 묶으며 말했다.
“다 왔소. 시간을 오래 끌어봐야 좋을 것 없으니까, 완벽한 해석보다는 어떻게 가는지만 좀 알아봅시다.”
장건은 그 옆에 조조의 고삐를 묶으며 물었다.
“급하군.”
“당연히 급하지. 우리 손에 쥔 건 결국 장물에다가, 제가는 물론이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놈들도 노리고 있잖소? 이거 시간을 더 끌면 오만 잡것들이 더 끼어들 상황이오. 당연히 장 형도 급해야 할 상황이외다!”
양굉은 고삐를 묶으며 그렇게 다다다 쏟아내고는 후다닥 잡화점으로 들어갔다. 장건은 고개를 살살 내저으며 그 뒤를 따랐다. 그런데 양굉보다 한발 늦게 잡화점 안으로 들어가자니 대뜸 뭔가가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반사적으로 붙잡고 보니 웬 나무 조각상이었다. 의자에 앉은 노인이 조각된. 이게 뭔 상황인가 보니 가게 안에서 한 여인이 양굉을 향해 온갖 잡것을 집어 던지고 있었다.
“꺼져! 꺼져 이 새꺄!”
“이, 이연! 왜, 왜 이러는 거야!”
“왜? 왜냐고 했냐, 이 새끼야!”
여인은 키가 훌쩍하니 크고 팔다리가 늘씬한 미인이었는데, 뒤로 질끈 묶은 머리칼과 동동 묶은 소매가 활동적인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듯했다. 그런 여인은 얼굴을 있는 대로 일그러뜨리고는 양굉을 향해 버럭 화를 냈다.
“왜긴 시발! 너 때문에 내가 암상한테 뒈지게 생겼으니까 그렇지!”
“아,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나무 상자 하나를 번쩍 집어 든 여인은 그걸 그대로 양굉에게 집어던졌다. 양굉은 몸을 달려 데굴데굴 굴러가며 그걸 피했고, 덕분에 잡화점 안은 더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 모자란 새끼야! 소문이 어찌나 빠른지 벌써 다 들었다! 한밤중에 훔치겠다며! 근데 사람을 모아서 거래 현장을 습격해? 그 지랄을 하면 당연히 암상에서 불을 켜고 전후 사정을 캐려 하겠지! 그럼 지도를 해석한 나는 당연히 걸리고!”
“아, 아니야! 내가 동원한 사람들 아니라고! 진짜야!”
흥분한 여인은 기어코 묵직한 손도끼 하나를 집어 들었다가 양굉의 말을 듣고 우뚝 멈췄다.
“···네가 아니라고?”
“당연히 아니지! 내가 그렇게 동원할 사람이 어디 있어! 우린 한밤중에 훔치려 했어!”
“우리?”
여인은 그제야 문 앞에 우뚝 선 장건을 발견했다. 그녀는 물건들을 집어던지며 버럭버럭 소리치느라 숨이 찬 것인지 옆 탁자에 도끼를 턱 꽂아놓고 장건과 양굉을 번갈아 보았다.
“···뭐야? 저 남자는 누군데?”
“장건.”
양굉을 노려보던 여인은 그 불쑥 끼어든 장건의 말에 살짝 당황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예?”
“난 장건이오. 당신은?”
“아, 예. 그··· 이연, 난 이연이라고 해요.”
장건은 손에 든 노인 조각상을 옆에 있는 선반에 자연스럽게 세워 두었다. 난장판으로 엎어진 와중에 그것만 멀쩡히 서 있으니 묘한 멋이 있었다.
“난 지금 두 사람의 대화를 따라갈 수가 없군. 사정을 좀 알려 주시겠소?”
“아, 장 형. 이 친구는 옛 유물의 모사품을 만드는 친구로···”
바닥에 엎드려 있던 양굉은 천천히 일어나며 그렇게 이연을 소개하려 했다. 하지만 중간에 그녀가 박혀있던 도끼를 불쑥 뽑아 들며 텅 하는 소리가 나자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도끼를 들고 양굉에게 입 다물라는 듯 싱긋 웃었고, 양굉은 떨떠름하게 따라 웃으며 침묵해야 했다.
이연은 장건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소개했다.
“난 이 신사천에서 옛 유물을 연구하는 사람이에요. 지난 백 년간 중원에서 이 신대륙으로 넘어온 유물부터, 원래 이 땅에 살던 원주민들의 물건, 그리고 저 멀리 서역에서 이곳까지 상행을 온 서역 상인들이 가져온 물건까지 과거의 물건이라면 가리지 않고 받아서 해석하죠.”
“해석?”
“예, 해석. 그때 그 사람들이 이 물건을 어떻게 썼을지, 그 행동양식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에 따른 그들의 삶은 어땠는지 등등. 작은 밥그릇에도 수백 년의 역사가 담겨있는 법이죠.”
“고고학자셨군.”
그녀의 표정이 약간 멍해졌다.
“···고고학자? 음. 그거 발음이 괜찮네요. 앞으로는 그렇게 날 소개해야겠어요.”
장건은 엉망이 된 잡화점 안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 분이 저 건달 놈하고는 왜 엮이신 거요?”
“아··· 그게···”
그녀는 처음 만난 장건에게 말을 꺼내기 어렵다는 듯 망설였다. 그런 그녀를 보고 양굉은 믿을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양굉이 미심쩍다는 듯 바라보면서도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중원의 유물이나 서역의 유물은 아무래도 거리가 있어서인지 많이 비싸거든요··· 물론 신사천이나 천후성의 부자들은 자기 가문의 족보나 가보가 어디서 왔는지 알아내는 데 많은 돈을 내기는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라···”
장건은 그녀가 떠듬떠듬 이야기하는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옛 왕족들의 유물을 모조해서 신대륙의 새로운 부자들에게 팔아먹는 위조범이었다. 도둑이자 사기꾼인 양굉과 얼굴을 아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녀가 방금 그렇게 화를 낸 이유도 알 수 있었다.
마적이 장보도를 얻어 그걸 암상에게 가져온 후, 암상은 그 이세민의 장보도가 진짜인지 알아볼 생각에 신사천에서 제일 유물에 정통한 이연 그녀에게 가져왔다. 물론 장보도 전부를 가져온 것도 아니고 일부만 필사해 온 것이었다.
하지만 옛 이씨 세가의 암호와 기호를 해독한 그녀는 대번에 그 암호의 전체가 일종의 지도임을, 그러니까 장보도임을 눈치채고 그걸 빼돌릴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도를 훔쳐 줄 인물로 양굉을 끌어들인 것이다. 암상 안에 있으리라 생각했던 양굉의 정보원이 그녀였던 모양이다.
“저놈이 훔치고, 그쪽이 나머지를 해독해 보물을 찾을 생각이셨다?”
“···네.”
그녀의 대답을 들은 장건은 팔짱을 끼고 한심하다는 눈으로 양굉을 바라보았다. 양굉은 그 눈빛에 안절부절못했는데, 그는 당연히 수익비율을 나눌 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야.”
“···왜, 왜 그러시오, 장 형?”
“너 지도 알아볼 수 있었으면 여기로 안 왔겠네?”
이연은 대번에 도끼눈을 뜨고 양굉을 노려보았다. 그의 얼굴에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에, 에이, 무슨 소리요? 당연히 여기로 왔어야지. 지도를 해석해야 보물을 찾아갈 것 아니요?”
“근데 넌 이쪽 이야기는 하나도 안 했잖아. 나랑 칠 대 삼으로 나눌 약속만 하고.”
“칠 대 삼? 칠 대 사암? 나랑 오 대 오로 나누기로 한 건 어쩌고, 이 새끼야!”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도끼를 양굉에게 들이밀었고, 양굉은 그 시퍼런 도끼날에 기겁을 하며 물러섰다.
“에헤이! 이러지 말고! 우리 셋이서 다시 비율을 나누면 될 일이잖아! 어차피 그 복면 쓴 이상한 놈들 때문에 우리 둘이서 먹기엔 글렀다고! 칼잡이가 있어야 한단 말이야!”
이연은 양굉과 비슷한 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멱살을 잡아가며 도끼날을 들이밀자 양굉은 비굴하게 찌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혓바닥을 굴리는 것이 대단하다면 대단한 놈이었다.
빽빽거리는 두 사람을 약간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던 장건은 문득 안색을 바꿨다. 그리고 번뜩 움직여 양굉과 이연 두 사람을 붙잡아 한쪽 구석으로 밀었다. 두 사람은 깜짝 놀라 외쳤다.
“으악! 뭐요!”
“왜 이래요!”
동시에 잡화점 밖에서 길쭉한 창 하나가 벽을 뚫고 날아들었다.
강력한 힘이 실린 창은 조금 전까지 두 사람이 멱살을 잡고 떠들던 자리에 쿵 소리를 내며 틀어박혀서는 파르르 떨렸다.
“···뭐, 뭐야?”
양굉의 당혹스러운 중얼거림 이후 잡화점 안에는 침묵만 가득했다. 장건은 가라앉은 눈으로 구멍 뚫린 벽과 창을 확인하고는 잡화점 문 쪽으로 다가갔다. 슬쩍 그 문 옆 나무창 밖을 내다보니 바깥에는 노란색 복면을 쓴 자들이 잔뜩 깔려 있었다. 그중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덩치에 마치 날렵한 표범 같다는 느낌을 주는 남자가 길쭉한 창 하나를 어깨 뒤로 넘기고 있었다.
장건은 곧장 옆으로 몸을 피했다. 그와 동시에 날아온 창이 또 한 번 벽을 뚫고 들어와 잡화점 내부를 부수고 틀어박혔다.
그 창에 실린 힘을 느낀 장건은 작은 호승심을 느끼며 왼손으로 칼집을 붙잡았다. 밖에 복면인들이 잔뜩 있기는 했으나 지금 그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창을 던지는 사내 하나뿐이었다.
그때 그 남자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물건을 가지고 나오라! 이제 곧 그곳에 불을 지를 것이다! 타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당장 나오는 게 좋을 것이다!”
장건은 그 목소리를 들으며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 무림맹 앞마당에서 복면을 쓰고 우르르 몰려나온 것을 넘어 방화를 예고하다니? 어서 와서 잡아가라 광고를 하는 것과 같았다.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한 것인지 양굉이 꾸물꾸물 앉은 다리로 걸어와 말했다.
“저 멍청한 새끼들 도대체 누군지 알겠소?”
“아니.”
“시발, 무식한 새끼들이 더 위험하다더니. 그럼 어쩌지? 장보도 들고 나가는 거요? 무림맹 올 때까지 시간이라도 끌어야 할 텐데.”
장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히 힘 빼지 말고 저놈들은 무림맹에서 알아서 하라 그래. 그리고 우리도 무림맹을 기다릴 순 없다. 무림맹에서 이 장보도를 알게 되면 더 시끄러워질 테니.”
“···그럼 어쩌시려고?”
그의 시선이 이연을 향했다.
“여기 뒷문 있소?”
“예? 예, 예. 있어요.”
“갑시다.”
“자, 잠깐, 장 형! 우리 말이 저 앞에 있는데···”
양굉의 목소리를 무시한 장건은 이연의 안내에 따라서 가게 뒷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문을 확인하고는 이연이 열기도 전에 와락 걷어찼다.
“으악!”
문 너머에 숨죽이고 있던 황색 복면인이 억 소리를 내며 나가떨어졌다. 동시에 번쩍 치켜든 장건은 그 복면인 뒤에 있던 다른 복면인 셋에게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갑자기 문을 걷어차고 등장해선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공격해오는 장건의 모습에 복면인들은 뭘 어떻게 저항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한 방씩 얻어맞으며 기절했다. 뒤따라 나오던 이연은 그 모습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말했지? 칼잡이 하나 있어야 한다고.”
양굉은 그런 그녀를 툭 치며 그리 말했다. 그녀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는데 저쪽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저기다! 저놈들 뒷문으로 나왔다!”
옆 건물 지붕에 있는 복면인의 외침에 다른 복면인들이 우와아-함성을 지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를 확인한 장건은 고개를 돌려 이연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공을 익혔소?”
“예? 아, 그, 호신공 정도만···”
장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실례하겠소.”
“어어!”
번쩍 그녀를 끌어안은 장건은 긴 휘파람을 불더니 휙 몸을 띄워 담장 위로 올라가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 있던 양굉이 그걸 멍청히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달렸다.
“자, 잠깐! 나도 같이 가야지!”
뒤에서 우아악 소리 지르며 따라오는 복면인들의 모습에 양굉은 기를 쓰고 장건을 뒤따랐다. 담장 위를 아슬아슬 달려가는 장건, 그에게 업힌 이연, 그 아래서 죽어라 달리던 양굉은 금방 뒷골목을 빙 골아 대로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뒤에서는 창칼을 든 복면인들이 가까이 쫓아오고 있었다.
“오!”
그 짧은 새에 땀을 뻘뻘 흘리던 양굉은 짧은 환호를 질렀다. 대로로 빠져나온 그들 앞에 조조와 양굉의 말이 서 있던 것이다. 양굉의 말은 조조가 고삐를 물고 있었다.
나는 듯이 달려간 장건은 이연을 먼저 앉히고 가볍게 조조의 안장에 올라탔다. 이어서 양굉도 말 위에 올라타고, 두 말은 달리기 시작했다. 복면인들이 우르르 나와 멍청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움직였다.
“말! 말 가져와!”
“쫓아라! 놓치면 안 돼!”
그러나 장건과 양굉, 이연은 이미 한참을 앞서 달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