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67)
67화
늦은 오후를 향해 기울어지는 태양 아래에 자갈과 바위로 이루어진 언덕이 펼쳐져 있었고, 그 돌 사이사이엔 애처롭게 몸을 내민 마른 풀들이 모래 섞인 바람을 맞으며 파르르 떨었다.
어느 순간, 그 떨리는 풀 위를 묵직한 말발굽이 쿵 짓밟고 지나갔다. 물론 거친 바람과 메마른 땅에 익숙해져 있던 풀은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기우뚱한 몸을 다시 바로 세웠다. 하지만 아무리 황야의 거친 풀이라고 해도 뒤이어 다가와 줄기를 물어 뜯어버리는 주둥이는 버틸 수 없었다.
“임마, 풀 뜯어 먹을 때냐?”
장건의 가벼운 타박에 조조는 괜한 신경 끄라는 것처럼 푸르륵 투레질을 했다. 그러나 그런 태도와는 달리 느려졌던 걸음은 얼른 앞장서는 양굉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런 조조의 모습에 살짝 웃은 장건은 고개를 들고 조금 멀어진 양굉에게 외쳤다.
“속도 줄여!”
양굉은 그 외침에 허리를 돌려서는 황당하다는 듯 장건을 바라보았다.
“뭐, 뭔 소리요? 얼른 튀어야지! 그 누런 새끼들은 물론이고 그놈들을 쫓아올 무림맹과 제씨 세가가 발바닥 땀나게 달려오고 있을 텐데!”
“이미 많이 앞장서 있다. 이제 무작정 달릴 게 아니라 지도를 좀 봐야지.”
“아, 그 얘기였소?”
쉽게 수긍한 양굉은 말머리를 돌려 장건과 이연에게 다가왔다. 장건은 앞에 앉혀놨던 이연을 툭 건드렸다. 어째선지 굳어있던 그녀는 그제야 움찔 놀라서 되물었다.
“에, 예? 왜요?”
“···왜긴. 장보도를 해석해줘야지.”
“아! 그, 그렇죠! 그럼요!”
그녀는 얼른 조조의 안장에서 바닥으로 내려서더니 멋쩍게 옷을 툭툭 털었다. 그 얼굴이 묘하게 불그스름했다. 다가온 양굉이 그 얼굴을 보고는 음흉하게 웃었다.
“허허. 이거이거, 장 형 가슴팍이 그렇게 듬직했나?”
“뭐, 뭐 이 새끼야? 갑자기 왜 그딴 말이 나와!”
이연은 버럭 화를 내며 허리띠에 끼워놓았던 도끼를 꺼내 들었다. 설마 말 한마디 했다고 도끼를 꺼낼 줄은 몰랐던 양굉은 덜컥 겁을 먹고는 말고삐를 슬슬 뒤로 당겼다. 그걸 바라보던 장건은 자신 역시 안장 위에서 내려와 품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들었다.
“이연.”
“네, 네?”
“장보도를 확인해 주시겠소?”
그녀는 쭈뼛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장건이 내민 장보도를 받아들었다. 하지만 그 쭈뼛거리는 태도는 지도를 펼치자 금세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진지한 얼굴로 지도를 노려보다가 조조의 안장 위에 지도를 대고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조그만 가방에서 둥근 수정 같은 것을 꺼냈다. 그리고는 장보도 위에 그 수정을 올려놓고 자세히 살폈다. 그건 돋보기였다.
그녀가 아무 말 없이 지도만 살피고 있자 장건은 물론이고 조금 멀어졌던 양굉도 슬그머니 다가와 장보도를 바라보았다. 이연은 한참 돋보기를 들여다보다가 뭔가 알겠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를 들었다. 그리고 양옆에 바짝 붙어있는 두 남자의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
양굉은 그녀가 놀라는 모습에 본인도 놀라서 얼른 멀리 떨어졌지만 장건은 별로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알아보겠소?”
“···예. 대강의 방향은 알았어요.”
그녀는 애써 침 한번 꿀꺽 삼키더니 장보도를 들고 앞으로 나서서 지도와 그들 앞에 펼쳐진 대지를 비교했다. 몇 번이고 지도와 눈앞의 풍경을 번갈아 보던 그녀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남동쪽으로 계속 나아가면 돼요. 일단 말이 있으니 일주일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
“좋소. 그쪽이 탈 말은 도중에 한 마리 구하고, 일단은 나와 계속 조조를 탑시다.”
“···네.”
장건은 곧바로 조조의 위에 올라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약간 웃을 듯 말 듯 한 얼굴로 그 손을 잡고 안장 위에 올라앉았다. 조금 떨어져서 그걸 바라보는 양굉은 꼴값 떤다는 표정을 지으며 실실 쪼갰다.
이연을 안장에 앉힌 장건은 고개를 돌려 신사천 방향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들이 선 곳이 주변보다 약간 높은 언덕이었던 덕분인지 장건은 꽤 멀리까지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시야 끝에 희미하게 꾸물거리는 점들이 보였다. 아마 열심히 그들을 쫓아오는 황색 복면인들일 것이다.
그들과 장건의 거리는 쉽게 따라잡힐 거리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완전히 안전하다고 할만한 거리도 아니었다. 대충 적들의 거리를 확인한 장건은 툭툭 조조의 고삐를 당겨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앞에 보이는 얕은 강가를 향해서였다.
“가자.”
양굉이 그 뒤를 냉큼 따라붙었다. 달려가는 그들 위 높은 곳에선 커다란 수리 한 마리가 드넓은 하늘을 부드럽게 유영하며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흔적을 놓쳤습니다.”
“강줄기를 따라 움직였군. 상류로 갔는지 하류로 갔는지 알아볼 순 없나?”
“그건··· 힘들겠습니다. 아무래도 인원을···”
“그래. 나눠야겠군. 내가 하류로 가지.”
“예, 대장님. 제가 상류로 올라가겠습니다.”
목에 황색 두건을 맨 그들은 그렇게 강줄기 앞에서 인원을 나눴다. 대장이라 불린 남자는 말머리를 돌린 자에게 다시 말했다.
“흔적을 발견하면 바로 인원을 보내 연락하도록.”
“알겠습니다.”
그와 절반으로 나뉜 인원들은 우르르 강 상류로 달렸다. 그걸 바라보던 대장 옆에서 한 여인이 입을 열었다.
“갈웅은 의욕이 너무 앞서는 것 같군요. 저러다가 일 한 번 낼 듯한데요.”
“제가의 공자와 싸우다가 코앞에서 장보도를 놓쳤으니 그럴 수 있지. 그보다 지금 도망치는 자들이 누군지 알겠나?”
“아뇨. 신사천이나 다른 도시에서 유명한 인물들은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이연이 순순히 그들과 함께하는 걸로 봐서는··· 아마 뒷골목의 인물이 아닐까 싶네요.”
대장이라는 자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상황은 복잡해졌군. 아무래도 애초부터 그 여인은 저들과 함께 장보도를 빼돌릴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결과적으론 성공했고.”
“지금 제가도 우리 뒤를 쫓아오고 있을 거예요. 맹에서도 추격대를 보낼 테지만 형식적인 인원일 거고요. 제가의 추적은 결국 우리 뒤만 따라올 수 있다는 게 다행이랄까요.”
“복잡한 인과지만 결국 당장 할 일은 분명하다. 장보도의 뒤를 쫓는 것.”
“그래요.”
잠시 대화를 나누던 그들도 말머리를 돌려 강 하류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무수한 말발굽이 떠난 자리에는 누런 흙먼지만 뿌옇게 일어나 있었다.
* * *
강 상류로 이동했던 남자는 해가 질 녘에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갈웅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는 곧바로 그 흔적을 추적하기로 했다. 옆에서 부하 하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 대장님이 연락을 취하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겨우 셋이다. 우린 스물이나 되고. 굳이 대장님을 귀찮게 할 것도 없이 오늘 밤이 가기 전에 장보도를 탈취한다. 뭐 문제 될 것 있나?”
“···아, 아닙니다.”
갈웅의 굳은 말투에 부하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그의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낮에 거래 현장을 습격했을 때 그가 쓸데없이 제가를 도발하지 않았다면 그들과 격렬히 싸우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그럼 마적들을 놓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때 장보도를 탈취했다면 지금 그들은 이렇게 흔적을 따라갈 것이 아니라 보물을 찾아 달려가고 있었을 것이다.
흔적을 따라 움직이던 그들은 곧 주변이 완전히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지평선을 채우던 석양마저 흐릿해지며 완전히 해가 진 것이다. 덕분에 그들이 열심히 따라가던 흔적은 이제 알아보기 힘들었다. 갈웅은 일단 멈춰야 했다. 괜히 무작정 움직이다가 아주 엇갈려버릴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이 짜증으로 일그러졌다.
“엇! 갈웅 님! 저기 좀 보십시오!”
그때 부하 중 하나가 먼 곳을 가리켰다. 갈웅이 바라보니 저 멀리 큼직한 바위 밑에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그의 얼굴이 밝아졌다.
“우리를 완전히 떨쳐냈다고 여긴 것인가? 가자!”
그들은 그 불빛을 향해 움직이다가 중간에 말을 멈춰 세우고 발로 뛰기 시작했다. 소리를 죽이기 위해서였다. 주위는 어둡고 고요한데, 그들이 쫓는 불빛만 혼자 흔들거리고 있었다. 장보도를 훔친 도적놈들이 있으리라 생각한 갈웅은 이상함을 느꼈다. 가까이 갈수록 불빛과 그 주변이 분명해졌다. 그 불빛, 작은 모닥불 너머에는 한 남자만 앉아 있었다.
갈웅은 순간 함정을 의심했다. 그들의 짐작과는 다르게 저들에게 배경이 되는 세력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어졌다. 저 도둑들은 그냥 도망친 게 아니라 이곳에 함정을 파두고 그들을 기다린 것이다.
하지만 몸을 낮추고 숨어서 주변을 유심히 둘러봐도 사람이 잔뜩 숨어있는 기색은 없었다. 갈웅은 이게 뭔가 싶어 고개를 갸웃했다. 어쩌면 그저 이곳을 지나던 여행자일 뿐일까.
그때 주변을 훑어보던 갈웅의 눈이 그 앉아 있는 남자와 마주쳤다. 그는 정확히 갈웅이 숨어있는 마른 풀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갈웅은 지긋이 이쪽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에 자신들이 들켰다는 걸 느꼈다.
갈웅은 천천히 일어섰다. 주변에 다른 부하들은 당황했지만 그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남자만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난 갈웅이라고 한다.”
“장건.”
그는 장건의 짤막한 대답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장보도를 탈취한 게 네놈 맞지? 다른 두 사람은 어디 있나?”
모닥불 너머 앉아 있던 장건은 별다른 표정 없이 말했다.
“그걸 확신하지도 못하면서 창부터 집어던지고 불을 지르려 했나.”
“신사천에서 옛 이씨 가문의 암호를 해독할 수 있는 건 이연, 그녀뿐이니까. 그리고 지레 겁먹을 것이 없었다면 이렇게 도망칠 이유도 없지. 자, 죽고 싶지 않다면 이제 장보도를 내놓아라. 물론 이연도.”
하지만 앉아 있는 장건은 품에 있는 장보도를 꺼내주지도, 그의 등 뒤 바위 위에 올라가 엎드려 있는 그녀를 부르지도 않았다. 그는 앉은 그대로 다시 질문했다.
“갈웅이라고 했나. 황색 복면을 쓰고 난리를 피우는 도적들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 없는데.”
“···도적? 지금 우리를 도적이라고 한 건가?”
“그럼 아닌가?”
갈웅은 들고 있던 검을 스르릉 뽑으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함부로 말하지 마라 장건. 우리는 힘없는 양민들을 위해, 이 신대륙의 사람들을 위해 움직이는 이들이다. 그저 개인의 저열한 욕망으로 움직이는 도적과 우리는 비교될 수 없다.”
“제일 먼저 습격을 시작했던 건 너희들이었던 것 같은데.”
“그 습격은 장보도를 가지고 있던 마적들에게서 암상의 무사들을 떼어내기 위함이었다. 그들도 칼밥을 먹고 사는 이들이니 이해해 줄 테지.”
장건이 고개를 기우뚱했다.
“그 제가의 사람들한테 칼을 들이민 것도 변명해 보겠나?”
“제가? 제가를 포함한 모든 고대 세가들은 저 한의 황실에 발가락을 핥아가며 수백 년을 연명해 온 패배주의자들이다. 양민의 고혈을 빨아먹은 놈들이지. 제국과 마찬가지로 털어내야 할 장애물이다. 그들의 곳간을 털면 더 많은 사람이 배불리 먹겠지.”
장건은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글쎄. 이 신대륙에서 고단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아도 굶어 죽는 이는 별로 없는데.”
검을 뽑아 들고 다가온 갈웅은 버럭 소리쳤다.
“지금 한 황실과 고대 세가들을 변호하겠다는 것이냐? 이미 이 땅의 수많은 재물이 중원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중원은 폭리를 취하고 있어! 이미 배부른 자들만 더 배불러지고 있다는 말이다! 장보도와 그 재물이 필요한 이유가 거기 있다! 그 배부른 자들에게서 우리 것을 되찾아올 앞으로 있을 전쟁을 위해서 이씨 가문의 유산은 그 군자금이 될 것이야.”
장건은 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신대륙 여기저기를 떠돌며 꽤 많은 사람을 만나본 그에겐 그저 도시 촌놈이 뭣도 모르고 요상한 사상에 빠져 징징거리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조롱하거나 애써 반박하고 싶지 않았던 장건은 그냥 옆에 세워 두었던 칼을 집어 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말했다.
“장보도는 내어주지 않겠다. 이연도 마찬가지고.”
“두 눈 똑바로 뜬 것 맞나? 우리 숫자 차이가 좀 나는데.”
갈웅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엎드려 있던 그의 부하들이 우수수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략 스무 명 정도 되는 숫자였다. 장건은 허리춤에 칼집을 끼우며 대답했다.
“적당하군.”
“···허. 적당해? 웃기는군. 얘들아, 다른 둘을 쫓아야 하니 빨리 처리해라. 심문해야 하니 적당히 팔다리만 잘라 놔.”
한목소리로 알겠다 대답한 갈웅의 부하들은 각자의 검이나 칼을 뽑아 들고 슬금슬금 장건에게 다가갔다. 장건은 그들이 손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다가올 때까지 그저 가만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그가 겁먹거나 저항하지 않으리라 생각한 무사들이 비웃음을 짓는 것을 보며 큰 숨을 한번 들이쉬었다가, 푸 내뱉었다.
다음 순간 칼이 뽑혔다.
제일 처음 목이 잘린 무사는 뭔가 번쩍하는 것만 보았을 뿐 장건의 움직임을 전혀 보지 못했다. 무사들은 갑자기 사람 목이 잘려 나가자 깜짝 놀라서 움찔 굳었다. 장건은 그들을 향해 소리 없이 다가갔다. 그의 칼날만 모닥불의 불빛에 번뜩거렸다.
장건에게 제일 가까이 다가갔던 처음 무사가 완전히 쓰러지기 전에 두 번째 무사의 심장에 칼날이 틀어박혔다. 이후 세 번째 무사가 죽을 때쯤에야 정신을 차린 무사들이 본능적으로 우아악 소리를 지르며 장건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의 내력을 폭발시킨 일 합이 장건에게 날아들었다. 그리고 장건은 그 공격 하나하나를 모두 반격해 주었다. 무사들의 공격은 분명 치명적이었으나, 동시에 맹호교위가 내려치던 매 일격들에는 반도 미치지 못했다.
덕분에 빠른 한 걸음을 내디뎌 장건을 공격한 무사 여섯이 그대로 장건을 스쳐지나 바닥에 널브러졌다.
무사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장건이 직접 다가와 셋을 죽일 때까지는 그들도 동료의 죽음에 화가 났다. 그러나 여섯이 달려가 그대로 장건을 스쳐 지나가고는 실 끊어진 인형처럼 후두둑 쓰러지는 것은 분노보다 당혹감과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당혹감을 느끼는 것은 갈웅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이내 자신의 검을 어깨쯤으로 끌어 올려 수평으로 놓고 자세를 잡았다. 왼발은 앞으로 쭉 뻗고, 오른 다리에 무게 중심을 두고 무릎을 구부린 자세. 거기에 앞으로 쭉 뻗은 왼손 때문에 마치 검으로 보이지 않는 활을 쏘려는 것처럼 보였다.
“이놈!”
짧게 호통친 갈웅은 어깨로 끌어당겼던 검을 쭉 뻗으며 장건을 향해 곧게 찔렀다. 발을 디뎠던 바닥이 펑 터져나갈 정도로 순간적인 속도는 매우 빨랐다. 그의 몸 전체가 화살이 되고, 그 끝의 검은 화살촉이 된 듯했다.
그렇게 날아오는 갈웅을 보며 장건은 두 눈을 크게 떴다. 검을 찔러가던 갈웅은 그가 자신의 속도에 놀라 넋을 놓은 것이라 생각하며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러나 이후 횡으로 칼을 휘둘러 가볍게 찌르기를 걷어낸 장건은 아주 가까이 붙은 그 얼굴에 그대로 오른 팔꿈치를 찍어버렸다.
“켁!”
갈웅은 검을 놓치고 코피를 철철 흘리며 뒤로 쓰러졌다. 간결한 동작으로 그를 쓰러뜨린 장건은 묘한 눈빛이었다. 그는 잠시 기절한 갈웅을 내려다보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겁먹은 무사들이 파르르 떨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장건은 그들을 보며 슬쩍 턱짓했고, 그 뜻을 알아들은 무사들은 화색이 되어 냉큼 도망쳤다. 쓰러진 자기들 대장이나 동료는 흘낏 돌아보지도 않았다. 장건은 그 모습을 보며 미심쩍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놈들 진짜 황건적인가?”
그의 눈이 다시 기절한 갈웅을 향했다. 확실한 건 이제 천천히 알아보면 된다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