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68)
68화
* * *
갈웅은 머리 쪽에 피가 몰려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눈은 감은 채 아픈 머리를 매만지려 했지만 몸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깜짝 놀라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는 손발이 꽁꽁 묶여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어? 장 형, 이놈 정신 차렸는데?”
갈웅은 거꾸로 보느라 상대방의 얼굴을 단번에 인지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딘가 얍삽해 보인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누, 누구시, 오···?”
“누구냐고? 누구겠냐?”
그 대답은 실실거리는 웃음과 합쳐져 알 수 없는 분노를 부르는 표정을 만들어냈다. 갈웅은 그 적의에 어리둥절하다가 겨우 주변을 둘러볼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상과 하늘이 같은 검은 색을 가진 채 진하고 옅은 색채의 구분만으로 서로를 구분하고 있었다. 머리 위 새카맣게 굳은 땅과 발아래 짙은 검푸름으로 일렁이는 하늘. 그 검푸른 일렁임은 수천, 수만의 은하수를 담아 끝 모르게 깊고 투명한 별의 바다가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려던 갈웅은 그 언제나 반복되었으나 동시에 지금 한순간뿐인 풍경에 압도되어 멍해졌다. 잠시 후 그런 그의 뒤통수를 누군가 세게 후려쳤다. 방금 그 얍삽한 남자였다.
“얌마, 뭘 넋 놓고 있어? 밤 풍경이 보기 좋은가 봐? 그 풍경 밑에 그대로 묻어줄까?”
감상이 깨진 갈웅은 이를 악물고 인상을 찌푸리다가 등 뒤에서 흙을 밟고 걸어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소리를 깨닫고 보니 등 뒤에선 불그스름한 빛도 희미하게 비춰오고 있었다. 그는 어떤 이들이 야영지를 차린 곳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에 반대편을 바라보고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네 이놈··· 정체를 밝혀라! 날 이렇게 대하고도 무사할 것 같나!”
“하. 이놈 정신 못 차리네.”
갈웅은 손발의 속박을 벗어나기 위해 버둥거렸다. 하지만 단단히 묶인 밧줄은 그리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가 그렇게 버둥거리는 동안 등 뒤에 있던 발걸음의 주인은 터벅터벅 돌아서 그의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버둥대던 갈웅은 움직임을 멈췄다. 얍삽한 남자의 얼굴을 인지하는데도 약간 시간이 걸렸던 것처럼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알아보는데도 잠깐의 머뭇거림이 있었다.
“···이연! 너! 이연이군! 그럼 그 자식도···”
이연을 알아본 갈웅이 그리 소리치려 할 때 발걸음 소리나 기척도 없이 불쑥하고 한 남자가 그의 시야에 나타났다. 다른 두 사람과 달리 그 남자를 알아보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장건···!”
갈웅은 그제야 자신이 사로잡혔다는 것을, 부하를 잃고 실패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얼굴이 마음의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하지만 장건은 별다른 표정 없이 그것을 가만 바라보다가 말했다.
“짧게 가자.”
그리고는 갈웅이 뭘 어떻게 대답하기도 전에 곧게 세운 검지와 중지로 그의 몸을 푹푹 찌르기 시작했다. 묶여서 매달려 있던 갈웅은 그걸 어떻게 피할 수도 없었다. 그걸 본 양굉과 이연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갈웅 일당을 물리친 그들은 곧장 말을 달려 싸움 장소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도착했다. 모닥불을 피우고 갈웅을 매달아버리며 그들은 일단 이 갈웅이라는 남자의 정체와 그가 속한 단체에 대하여 알아내야 한다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고문이라도 하기로 했는데, 그래서 양굉은 자신이 오늘 험한 꼴을 좀 볼 것이라 짐작하기도 했다. 살을 째고 손톱을 뽑는 등의 일을 장건이나 이연이 할 것이라 생각하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끄으윽···!”
하지만 그 생각은 울퉁불퉁 일그러지는 갈웅의 얼굴을 보며 싹 사라졌다. 뭘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몰라도 거꾸로 매달려 벌겋던 갈웅의 얼굴이 붉다 못해 검게 죽어가는 것을 보니 그의 고통은 짐작이 되었다.
아주 짧은 시간, 그러나 그를 지켜보는 이연과 양굉의 표정이 창백해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지난 후 장건은 다시 갈웅의 몸을 툭툭 때렸다. 그와 함께 점혈이 풀리며 힘도 풀린 갈웅은 눈이 돌아가며 기절했다. 그러나 장건의 손은 그를 쉬게 놔주지 않았다. 몇몇 혈도를 다시 푹푹 찌르자 갈웅은 헉하고 숨을 들이켜며 정신을 차렸다.
장건은 얼이 나가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갈웅 앞에 쭈그리고 앉아 눈높이를 맞추며 입을 열었다.
“지금 이건 몸에 영구적인 장애가 남지 않을 정도로 한 것이다. 여기서 네가 더 버티면 그땐 어쩔 수 없고.”
갈웅은 반쯤 풀린 눈으로 장건을 마주 보며 겨우 대답했다.
“뭐, 뭘··· 뭘? 뭘 물어보기라도 해야···”
“그런 이제 물어봐야지. 잘 대답할 텐가?”
“···예, 예··· 대답, 대답하겠소···”
그의 대답에 장건은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일단 너에 대해 말해 봐. 어디 사는 누구고 뭐 하는 놈인지. 이름부터 시작해.”
이미 알고 있을 이름부터 시작하라는 말에 갈웅은 순간 멈칫했으나, 이내 장건의 고요한 눈을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어 떠들기 시작했다.
“내, 내 이름은 갈웅이요. 내 집은 신사천에서 모피거래를 하는 상인 집안이고, 난 그 집의 둘째요. 어, 그··· 그리고, 지금은 태, 태평대太平隊에 있소···”
장건은 태평대가 뭐냐 묻지 않았다. 그저 갈웅을 지긋이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갈웅은 그 시선에 다시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태, 태평대는, 이 신사천의 경제력이 대양 너머에 있는 한 제국에게 종속되어 약탈당하다시피 하는 것에 대하여 분개한··· 그저 끝없이 착취당하기만 하는 양민들의 모습에 이를 떨치고 일어나야 한다 결의한 이들이 모인 결사대요···”
그 이야기에 앞에서 듣는 장건은 가만히 있는데 옆에 있던 양굉이 피식 웃었다.
“하이고, 양민 착취는 개뿔. 신대륙에 부과되는 세금은 물건이 제국으로 들어갈 때뿐인데? 밭이나 일구는 양민들은 자기 지역 무림맹이나 문파에 보호비 좀 내는 거 말고는 제국에 뜯기는 게 없어, 이 멍청아!”
“감산, 신사천, 천후성은 다르다. 그 세 곳에서의 상거래가 얼마나 많은 세금을 무는지 알기는 하나? 설탕과 술, 비단은 물론이고 무명천 거래에도 세금을 문다! 그리고! 그 물건이 제국으로 들어갈 때! 그 관세와 통행세가 어찌나 살인적인지 알기는 하는 것이냐? 그 세금을 물고도 중원의 물건과 경쟁하기 위해 거의 손해에 가까운 거래를 하고 있단 말이다!”
방금까지 고통으로 덜덜 떨던 자가 버럭 지르는 소리에 양굉은 움찔 놀랐다. 그리고 묶여있는 자에게 놀랐다는 점 때문에 반사적으로 그의 머리를 후려치려다가, 쭈그려 앉은 채 자신을 돌아본 장건의 눈길에 덜컥 멈췄다.
“···헤헤, 이놈이 말을 좀 막하길래.”
장건은 말없이 도로 갈웅에게 눈을 돌렸고, 갈웅은 자신이 흥분할 처지가 아님을 깨달으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우리의 목표는 우리 신대륙이, 더는 그저 신대륙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나라로 독립하는 것이오. 그저 중원의 배부른 돼지들을 더 살찌우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이 나라의 사람들이 더는 배고프지 않도록 하는 것. 애초에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들이 왜 이 땅으로 넘어왔는지를 떠올리면 당연히 이뤄져야 할 일이지.”
갈웅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꾹 입을 다물었다. 장건은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느릿한 손길로 품에서 작은 나무곽과 작은 종이 하나를 꺼냈다. 갈웅이 불안한 눈빛을 보내는 동안 장건은 거기서 마른 담배를 꺼내 가만히 연초를 말아 입에 물었다. 그리고 검지로 불을 피웠는데, 갈웅은 순간 그의 손 어디에 불씨가 있는지 찾아보려 두 눈을 깜빡거렸다.
장건이 후 연기를 뿜고는 물었다.
“그런 곳에서 왜 장보도를 노리지?”
갈웅은 눈 앞을 가리는 연기에도 눈살 하나 찌푸리지 못하며 대답했다.
“그 장보도를··· 아니, 그 장보도가 가리키는 보물을 우리 태평대의 군자금으로 쓰기 위해서요. 우리도 신대륙의 독립이 하루아침에 이뤄지리라 생각하지 않소. 내 아들, 어쩌면 내 손자 대에는 가야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지. 당연히 그 오랜 시간 조직이 운영되고, 신대륙의 사람들에게 독립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인식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돈과··· 황군의 방해에 흔들리지 않을 강력한 무력이 필요하오.”
“이 씨 세가의 보물과 이세민의 무공이 필요하다?”
“그렇소.”
장건은 다시 연초를 깊이 빨아들였다가 연기를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네가 그들의 대장은 아닌 것 같군. 그자가 대장인가? 신사천에서 창을 던지던 그 남자.”
“···그렇소.”
“그는 누구지?”
그 질문에 갈웅은 입술을 떨었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 것이 역력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조금 전 겪었던 고통을 이기지 못했다.
“···대장은··· 뛰어난 무인이고, 훌륭한 지휘자요. 처음부터 태평대를 이끈 것도 대장이고 우리에게 제대로 된 시야를 열어준 것도 대장이지. 나야 이렇게 어리석은 판단으로 사로잡혔지만, 대장은 당신들보다 결국 한발 앞설 것이오. 그는 그런 사람이지.”
“그 대장 이름은?”
갈웅은 두 눈을 꾹 감았다.
“···백사경. 대장의 이름은 백사경이오.”
어딘가 익숙한 그 이름에 장건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옆에 있던 양굉이 헉하고 숨을 들이켜며 말했다.
“백사경? 그놈 무림맹주 제자잖아!”
* * *
태평대 대장 백사경은 동료 대부분을 잃고 헐레벌떡 도망쳐 온 부하들에게 아무런 처벌도 내리지 않았다. 그저 말머리를 돌려 강 상류로 달렸을 뿐이다. 그리고 싸움이 벌어졌던 장소에 도착해서는 아무 말 없이 말에서 내려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의 부하 주선이 땅을 파는 그에게 다가갔다.
“···대장. 어서 그들을 쫓아야 하지 않겠어요?”
“이미 밤이 늦었다. 이 밤길에 흔적을 찾긴 힘들지. 그러니 결국 해가 뜨기 전까지는 쉬어야 해. 아마 놈들도 멈춰서 쉬고 있을 것이다.”
“···기왕 그렇게 쉬게 된 거 동지들을 묻어주고요?”
“그래.”
그 당연하다는 대답에 주선은 푹 한숨을 쉬고는 등에 메고 있던 검을 검집째 꺼내 그의 옆으로 다가와 같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 두 사람을 본 다른 태평대원들도 서로를 돌아보다가 말에서 내려 땅을 파고 시체를 묻어주기 시작했다.
주선은 모든 시체를 묻어주고 물주머니로 손을 씻는 백사경을 바라보다가 다른 부하들은 듣지 못할 소리로 낮게 말했다.
“갈웅이 없어요.”
“봤다. 아마 사로잡힌 모양이군.”
“그 멍청한 작자가···”
그녀는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지만 백사경은 고개를 저었다.
“긍정적인 면을 봐라. 그래도 그가 살아있을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걱정되진 않아요? 제가 봤을 때 그는 손톱 하나만 뽑혀도 자기가 아는 걸 몽땅 털어놓을 사람이에요. 도대체 선생님은 그런 얼간이에게 왜 사일검射日劍을···”
“갈웅은 재능이 있었다. 아마 제대로 노력만 한다면 마흔이 되기 전에 지금 스승님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 터. 사일검초를 사사한 것은 그 미래가 현실이 될 수 있을지 시험한 것에 지나지 않아.”
주선은 숨을 들이켜며 뭐라 다시 반박하려 했다. 하지만 백사경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만 쉬어라, 주선. 내일부터는 정말 쉼 없이 달려야 할 테니까.”
그녀는 불퉁한 표정을 짓기는 해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부하들이 마련한 자리를 향해 걸어갔다. 그녀를 보낸 백사경은 눈을 돌려 동쪽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꾹 입술을 다물고 밤하늘을 노려보는 그의 표정에서 지나는 감정이 죽은 부하들에 대한 슬픔인지, 사로잡혔을 동문에 대한 걱정일지, 아니면 장보도와 그 보물에 대한 열망인지는 불분명했다.
* * *
“무림맹주의 제자?”
옆에서 듣고 있던 이연이 덜컥 겁먹은 얼굴로 그리 되물었다. 양굉은 자기 머리를 부여잡다가 장건도 자신을 돌아보고 있음에 입을 열었다.
“그, 그 뭐냐. 아마 셋째인가 넷째인가 그렇소. 그 양반은 원래 제자를 많이 키우는데, 거기서 직전제자라고 할 만한 자가 다섯 정도 있지. 백사경은 그중 하나일 것이오.”
“···세 번째 제자요.”
여전히 거꾸로 매달려 있는 갈웅이 양굉의 정보를 수정해 주었다. 양굉은 그게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연초를 입에 문 장건이 삐뚜름한 눈으로 다시 갈웅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림맹주의 제자면 남부러울 것 없을 텐데. 왜 그딴 비밀결사를 만들었지?”
그 질문을 받은 갈웅은 이를 달달달 떨면서도 꾹 입을 다물었다. 조금 전 당한 분근착골의 고통을 생각하면서도 반드시 입을 열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였다. 그리고 장건은 그의 떨리는 눈동자를 보며 이미 떠들 만큼 떠든 그의 입을 놀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낮에 있었던 사건을 떠올렸다.
“···무림맹 앞마당인 신사천에서 너희는 참 대담했지. 마치 그들에게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것처럼.”
순간 당황한 갈웅은 두 눈마저 꾹 감아버렸다.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보이지 않겠다는 것 같았다. 그때 그의 귓가에 약간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태평대는 무림맹주가 만든 비밀조직이군.
갈웅은 번쩍 눈을 떠서는 멍하니 입만 벌리고 장건을 바라보았다. 단번에 들켜버린 비밀 때문이기도 하고, 방금 그 소리가 자신의 귓가에서만 울렸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전음술傳音術에 갈웅이 놀라 되물었다.
“이게 무슨···”
-그럼 네가 쓴 그 검법이 무림맹주의 검법인가? 쭉 뻗어 검을 찌르던 그거.
“···그렇소.”
-네 수준은?
“···겨우 흉내나 하는 수준이오. 진짜는 대장이지.”
-검법에 이름이 있나?
“···사일검射日劍”
-태평대라는 이름도 맹주가 지어줬겠군. 맹주가 도사 출신인 줄은 몰랐는데.
갈웅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그걸 어떻게···?”
장건은 그런 갈웅의 경악은 신경 쓰지 않고 쭈그리고 앉은 채 연초를 문 자세 그대로 짧은 상념에 빠졌다.
한나라가 천년을 넘겨 지속되며 자연히 삼국지의 시작이 되었던 황건적의 난은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제국 역사에 민란이라고 할 만한 것이 몇 번 있었으나 그는 황군에게 철저히 진압되어 제대로 된 기록도 남지 않았다.
그와 함께 제국의 강력한 중앙집권 덕분인지 태평도니 천사도니 하는 것들은 크게 성행하지 못했다. 그래도 아주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깊은 산이나 계곡에 도사들이 오두막을 짓고 도를 닦기도 했고, 깊게 믿고 따르는 것은 아니어도 그냥 물 한 그릇 떠다 놓고 태상노군을 향해 평안을 비는 양민도 있었다.
그리고 그 도를 닦는 사람들은 도사라 했는데, 사실 그 도사 대부분은 거의 사기꾼인 편이었다. 진짜 영험한 힘을 가지고 악귀를 물리치기도 하는 소림사와는 달리 일인전승으로 뜨문뜨문 이어지거나 산속 동굴의 다 낡아빠진 서책으로 도를 익힌 도사들은 그럴듯한 말로 양민들을 속여먹는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도 진짜 도사가 없는 것도 아니어서 민간에 도사가 귀신을 물리쳤다거나 요괴를 사냥했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수준이 많이 떨어지기는 해도 무공을 익힌 도사가 있는 것이다.
이 신대륙에도 자기를 도사라 소개하거나, 도사 출신이라 말하는 이가 있기도 했다. 아무래도 무림맹주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던 모양이다. 아니면 적어도 도교에 심취한 사람은 틀림없었다. 이들이 두른 노란 천이나 태평대라는 이름이 증거였다.
그러나 장건을 놀라게 한 것은 수백 년간 끈질기게 살아남은 태평도가 아니라 그가 쓴다는 사일검법이었다. 장건이 알기로 옛 신화에 영웅 후예가 해를 쏘아 떨어뜨린 것을 기원으로 한 검법. 이 세상 검법의 기원도 그러한 것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장건은 왠지 그게 맞을 것 같았다.
그는 연초를 입에 물고 피식 웃었다.
“재밌군.”
장건은 조만간 만나게 될 태평대 대장 백사경과의 대결을 예견하고 한 말이지만 옆에 있던 이연과 양굉은 멍한 얼굴로 고개만 갸웃거렸다. 그들 입장에선 장건은 아무 말 없고 갈웅만 혼자 떠들어댔기 때문이었다.
잠시 입술 가까이 탄 연초를 손가락으로 탁 튕겨 버린 장건은 훌쩍 일어서서 갈웅의 발을 풀어주었다.
“으억!”
갈웅은 억 소리 한번 내고 바닥에 떨어졌다. 여전히 손목과 발목은 묶여있었기 때문에 땅에 떨어진 그는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장건은 그런 갈웅을 내버려 두고 모닥불로 되돌아갔다. 양굉이 그걸 보고는 머뭇거리며 물었다.
“저기, 이놈은 그냥 이렇게 두는 것이오?”
“그래.”
“···감시 안 할 것이오?”
“도망치려면 그러라고 해. 이 돌과 자갈만 있는 곳에서 그 몸으로 기어서 어디까지 갈지 궁금하군.”
그 말을 들은 양굉은 고개를 끄덕이며 갈웅을 내려다보았다.
“야, 들었냐? 꼭 도망가라?”
갈웅은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양굉은 그런 갈웅을 보며 피식 웃고는 자신도 모닥불로 되돌아갔다. 이연까지 자리에 앉자 그들은 늦은 식사를 시작했고, 갈웅은 그 냄새를 맡으며 배가 고파오는 것을 느꼈지만, 차마 달라고는 못 했다.
양굉은 뒤돌아 누운 그의 등에서 그런 기색을 읽고는 다시 입가에 조소를 머금으며 장건에게 고개를 돌렸다.
“보시오, 장 형. 방금 무슨 대화를 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저놈들도 정신 나간 놈들이오.”
건량과 물을 끓인 죽 비슷한 것을 떠먹던 장건은 그게 무슨 말인지 설명해 보라는 눈으로 양굉을 바라보았다.
“저놈이 감산성, 신사천, 천후성에 세금이 과다하다고 말한 거 있잖소? 그거 사실 그렇게 심한 건 아니요. 비단이나 설탕 같은 물품에 비싼 세금이 붙는 건 당연하지. 그만큼 재산이 많은 자들이 쓰는 물건이니까. 무명천 거래에 세금이 붙는다는 것도 수십, 수백 필짜리 거래를 말하는 것이오. 거기엔 당연히 세금이 붙어야 하지 않겠소? 당장 신대륙 삼도성은 반쯤은 황군이 이뤄낸 도시이니 눈앞의 거래에 세금이 붙는 건 당연한 일이오. 그리고 관세와 통행세로 거의 손해를 본다고 한 것도 말 그대로 거의 손해를 보는 거지 진짜 손해를 보는 건 아니오. 그저 이 신대륙 출신들이 관세가 적은 중원 상인들과 비교해 자신들이 적게 버니까 나오는 말이지. 쉽게 말해서 배불러 터진 놈들이 자기 배 더 불려보겠다고 세금을 줄여달라 지랄하는 것이란 말이오. 양민을 위한 결사대? 저놈들 진짜 웃기는 새끼들이오.”
양굉은 후다닥 설명을 토해내고는 어떻냐는 듯 장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건량죽을 우물거리며 그런 양굉을 멀뚱히 바라보던 장건은 짧게 말했다.
“그걸 아까 떠들었어야지.”
“아···”
장건은 다시 모닥불로 시선을 돌렸고, 옆에서 듣던 이연은 양굉을 보며 피식 웃었다. 양굉은 식사하는 내내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장보도 추격전 첫날밤이 그렇게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