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72)
72화
* * *
태평대는 해가 떠 있을 땐 제가의 흔적을 추격하다가, 사위가 어두워졌을 때부터는 반쯤 감으로 방향을 잡고 움직였다. 별을 보고 대략적인 방향만 잡아가며 이동하길 한참. 출발할 적에는 기운이 넘치던 태평대원들은 모두 축 처져서 고삐만 잡고 느릿느릿 걷고 있었다. 말들조차도 제대로 보이는 것 없는 광경에 그저 자기 머리를 이끄는 사람의 손길만 따라 걷고 있었다.
만약 제일 앞에서 선두를 잡고 움직이는 백사경과 주선이 없었다면 태평대는 진즉 길을 잃고 고립되었을 것이다. 차라리 그랬으면 주저앉아 쉬기라도 했을 텐데 앞장서는 두 사람은 지치지도 않는지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었다.
그때 백사경이 짧고 단호하게 말했다.
“정지.”
반쯤 정신을 놓고 있던 태평대는 갑작스러운 그 목소리에 놀라 움찔 굳었다. 백사경의 목소리가 우렁찼던 덕분에 듣지 못한 이는 없었다. 태평대원들이 의아한 눈으로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보았다. 잠깐의 침묵 후 백사경이 말했다.
“모두 횃불을 켜라!”
어리둥절하던 태평대원들은 그 외침에 꿈지럭꿈지럭 말에 묶인 횃불을 꺼냈다. 잘 보이질 않으니 어영부영하다가 다른 누군가 먼저 불을 켜자 그 빛에 횃불을 켜는 이도 있었다.
어쨌든 잠시 후 그들은 모두 횃불을 들고 주변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별히 다른 누가 있지는 않았다. 얼굴에 피곤들이 뚝뚝 떨어진다는 것 빼면 처음 말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던 모습들 그대로였다.
그런데 그들 선두에 서 있던 백사경은 자기도 횃불 하나를 들고 심각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같이 주변을 둘러보던 주선이 물었다.
“···왜요, 대장? 뭘 찾은 거예요?”
“갈웅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
백사경은 이내 어느 방향을 특정하고 등에 메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다시 앞장서 걸으며 말했다.
“모두 무기를 뽑아라. 함정일 수 있으니.”
태평대원들은 그제야 긴장한 얼굴이 되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주변을 경계하며 앞으로 나아갔고, 잠시 후 백사경이 들었다는 목소리의 주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갈웅!”
굵은 나무에 핏덩어리 하나가 밧줄로 매달려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고 적이 없다는 걸 확인한 백사경이 나는 듯 달려가 그를 부여잡고 천천히 밧줄을 풀어 내렸다. 그 주변으로 태평대원들이 몰려들었다.
“···세상에.”
“주, 죽은 거 아니야?”
백사경이 갈웅이라고 부른 핏덩이는 그냥 죽도록 얻어맞아 엉망이 된 사람이었다. 태평대원들은 그에게서 갈웅을 연상하지 못했으나 백사경은 달랐다.
“갈웅! 정신 차려라! 갈웅!”
“···대, 대장···”
피범벅에 퉁퉁 부어오른 갈웅의 한쪽 눈이 아주 살짝 열렸다. 그는 백사경을 발견하고는 파르르 떨며 필사적으로 입술을 달싹거렸다.
“대장··· 자, 장건과, 싸우지··· 마··· 날 이렇게 한··· 이들은···”
그는 그렇게 말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추욱 떨림을 멈췄다. 그리고 동시에 서른 명이 넘게 모여있는 그 장소가 아주 고요해졌다. 누가 봐도 꽉 이를 악다물고 있던 백사경은 숨이 끊어진 갈웅을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고 일어섰다. 그리고 그 옆에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그는 사람 하나 들어갈 구덩이를 혼자 파서 그 안에 갈웅을 눕히고 흙까지 혼자 덮었다. 그가 그렇게 하는 동안 모든 태평대원들은 우두커니 횃불을 들고 서서 묵묵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손과 옷이 흙투성이가 된 백사경은 자신이 만든 봉분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태평대원들을 마주 보았다.
“가자. 더는 숨어서 쫓지 않는다. 횃불을 들고 최대한 빠르게 추격한다.”
“자, 잠깐, 대장. 조금 냉정해지세요! 당장 제가의 무사들도 저 숲 안에 있을 수 있고, 갈웅이 마지막에 한 말도 있으니···”
백사경은 말리려는 주선을 향해 오른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그만. 이젠 단순히 태평대의 군자금을 위한 싸움이 아니다. 우린 이제 복수를 해야 해.”
“아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 줄 알고요? 막말로 갈웅을 저렇게 한 것이 제가의 무사들일 수도 있잖아요! 날 이렇게 한 이들은, 제가의 무사들이다! 그가 이렇게 말하려고 한 것이란 생각 안 들어요?”
“갈웅은 그 장건이라는 자에게 잡혔다. 그러니 결국 갈웅이 제가의 손에 죽었다 하더라도 전후 사정상 장건이 빠질 것 같지는 않군. 그렇다면 태평대원을 이리 고문한 대가를 치러야지.”
백사경은 뚜벅뚜벅 그녀를 지나가며 말했다.
“···원한다면 돌아가도 좋다.”
그는 그렇게만 말하고 한 손에는 자신의 말고삐, 다른 한 손에는 횃불을 들고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태평대원 모두가 그 뒤를 따랐다. 그걸 찌푸린 얼굴로 바라보던 주선은 결국 푹 한숨을 내쉬고 그 뒤를 따랐다.
* * *
제가의 오랜 무공 역사에는 어두운 곳을 잘 볼 수 있도록 안력을 강화해주는 무공 또한 있었다. 제가의 무사들에게만 공개되고 타격대에 들어야만 익힐 수 있는 무공이었지만, 당장 여기 있는 자들이 모두 그런 자들이었다.
백여 명의 무사와 말들이 아무런 말도 없이 발아래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내며 어두운 숲속을 거니는 모습은 망자의 군대가 행진하는 모습 같기도 했다.
그때 한밤중의 하늘을 날던 혈리응이 그 행진 선두를 향해 내려앉았다. 제운성은 혈리응이 돌아온 것을 보고 눈가를 좁혔다. 장건 일행에게 뭔가 특이 사항이 있다는 말이었다. 혈리응은 제운성의 왼팔에 앉아 흔들흔들 몸을 들썩거렸다.
“···출발했다고? 우리의 추격을 눈치챘나? 아니, 추격 자체는 짐작하고 있겠지. 하지만 지금 당장 가까이 붙었다는 건 모를 텐데?”
몸을 들썩거리던 혈리응은 날개를 퍼덕이다가 다시 날았다. 제운성이 그걸 바라보고 있으니 그 옆으로 제상천이 다가왔다.
“무슨 일이지?”
“···장보도 일당이 출발했다는군요, 공자. 어찌 된 것인지는 몰라도 경로를 조금 동쪽으로 수정하며 계속 움직여야 하겠습니다.”
제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머리를 쓰는데 저쪽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 없지. 좋아, 계속 움직이지.”
그의 손짓에 잠시 움직임을 멈췄던 무사들이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소란스럽지만 과묵한 행군이 조금 방향을 틀어 계속 이어졌다.
그들은 빠르진 않았으나 꾸준하게 움직였다. 방향을 잘못 들어 머뭇거리는 것도 없었고, 누군가 지쳐 멈추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천하에서 가장 강한 군단의 모습을 모방한 것이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고대 세가들의 무사들은 그 규모가 작은 황군처럼 움직인다. 그것의 효율이 천년의 역사로 증명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굳이 그걸 바꿀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실제 황군은 지금 움직이는 제가의 몇 배 규모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더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들의 행군이 그렇게 이어지길 한참, 어두웠던 하늘이 푸르스름 물들기 시작했다. 새벽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험난하던 산맥의 계곡은 완만한 곡선을 그려 내려가고 있었다. 지난날부터 시작해 꼬박 밤을 새워 산맥을 넘은 것이다.
그때 혈리응이 다시 돌아왔다. 혈리응은 목표와 제운성 사이를 계속 오가며 방향과 남은 거리를 알려주었는데, 이제 녀석이 돌아오는 시간은 확연히 줄어 있었다. 목표와 가까워진 것이다.
제운성은 다시 녀석을 띄워 보내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여태까지 울창하던 삼림이 점점 뜨문뜨문해지며 시야가 확 트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그는 저 멀리 계곡 아래 앞서서 꾸물꾸물 나아가는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명?”
그 순간 제운성은 자신이 함정에 빠진 줄 알았다. 제가의 추격대를 짐작한 그들이 인원을 둘로 나눠 흔적을 둘로 나눠 선두에서 추격대를 끌어가고, 나머지는 경로를 우회해 도주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곧 그건 아니라는 것 또한 깨달았다. 일행이 둘로 나뉘어 움직였다면 혈리응이 알려줬을 것이다. 그렇다면? 움직인 것은 저 자뿐이라는 것.
제운성은 상황을 짐작하고 씨익 웃었다.
“···그래, 도둑들의 우정이라는 게 결국 그렇지.”
도둑들끼리 보물을 놓고 서로를 믿지 못하고, 배신하고, 보물을 훔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모습이었다. 단지 그 도둑 중 중 장건이 있었기에, 전날 제운성과 제가가 작게나마 빚을 진 남자가 있었기에 곧바로 그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뿐이었다.
“왜 저놈 혼자지?”
옆으로 다가온 제상천도 계곡 아래 나아가는 사람을 발견하고 그리 물었다. 제운성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서로를 믿는 도둑은 이야기책에나 나오는 이야기요, 공자. 욕심 많고 손이 빠른 놈이 장보도를 슬쩍 해 먼저 달려 나가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지.”
“···동료들을 배신했다는 말인가?”
“글쎄, 배신이란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도둑에게 그건 걸 기대할 순 없으니···”
제상천이 코웃음을 쳤다.
“쓰레기들이군. 가자. 눈에 보이니 금방 잡을 수 있겠지.”
“아, 진정하시오, 공자. 보이는 것보다 저자와 우리 거리는 상당한 거리가 있소. 나무나 풀이 줄어 거리 감각이 조금 어긋난 것이오. 우리가 무작정 여기부터 전력으로 말을 달려가면 저자를 따라잡을 때쯤 저자도 말을 달릴 것이고, 그러면 우리 말이 점점 지쳐가며 결국 저자를 놓치게 될 것이오.”
제운성이 그리 자신을 붙잡자 제상천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럼?”
“···저자가 눈치채기 전까지는 지금처럼 따라가면 될 일이오.”
제상천은 멀리 보이는 도둑과 제운성을 번갈아 보며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제운성이 이 철부지를 어떻게 더 설득할지 생각하는데, 옆에 있던 섬지영이 슬쩍 제상천의 팔을 잡았다. 그는 그녀의 손짓에 꾹 다문 얼굴로 제운성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럼 계속 가지요, 공자.”
제운성은 전날 했던 고민-예비 안주인이 현명하니 된 것인가, 아니면 가볍게 휘둘리는 예비 가주의 모습에 괴로워해야 하는가-을 다시 되새기며 앞장서 나갔다.
확실히 그의 말이 맞았다. 추격대와 저 아래 걷는 도둑의 거리는 쉬이 줄지 않았다. 어느 순간 나무와 풀이 확 줄어들며 바닥은 온통 돌자갈에 바위가 삐죽삐죽 솟은 지형이 나타났다. 점점 하늘이 밝아오며 마침내 햇볕이 내리쬐자 그 돌자갈과 바위산들은 누리끼리한 회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가의 추격대가 그렇게 숨을 죽이고 계속 거리를 줄이던 어느 순간, 저 앞에서 말고삐를 이끌고 터벅터벅 나아가던 도둑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휙 뒤를 돌아보았다.
제운성이 외쳤다.
“들켰다! 말에 타!”
* * *
“이런 시발? 저 새끼들 뭐야? 제가? 제가의 추격대인가?”
품 안에 장보도를 안고 흐뭇한 기분으로 걸어가던 양굉은 문득 뭔가 이상한 기분에 휙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가 있는 계곡을 내려다보는 바위산 위쪽에서 우르르 몰려오는 검은 점 백여 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눈에 그제야 높은 하늘 위에서 빙빙 돌고 있는 수리 한 마리가 보였다.
“···혈리응! 염병!”
양굉은 후다닥 말 위에 올라타 옆구리를 찼다. 반쯤 졸며 걷던 말은 거기에 화들짝 놀라 두다다 앞으로 질주를 시작했다. 희뿌연 흙먼지가 그 질주를 따라 멀겋게 일어났다. 제가의 병력도 그 뒤를 따라 달려오기 시작했다.
삼림을 벗어나자 나무는 더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작게나마 그림자 하나 지는 곳이 없었고, 그래서 그 일대는 빠르게 환해졌다. 산맥 하나 넘었을 뿐인데 세상은 메마르고 황량한 땅이 되었다. 풍요롭던 신사천 지방을 벗어나 황야에 이른 것이다.
멀건 태양이 떠오르는 동안 양굉은 흘끗흘끗 뒤를 돌아보며 말의 속도를 조절했다. 너무 급하게 달리면 말이 완전히 지쳐 따라잡히고, 그렇다고 너무 느긋하면 저들이 따라잡을 터였다. 나무 하나 없이 불룩불룩 솟아올라 있기만 한 언덕들 사이 깊게 팬 계곡들이 그들의 경주 도로가 되었다. 양굉과 추격대의 거리는 상당했지만 언덕 외에 그들을 가릴 수풀이나 나무가 없었기 때문에 서로의 위치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시발··· 왜 갑자기 이렇게 가까이 붙는 거야··· 나 혼자니까 기회다 이거냐?”
양굉의 중얼거림이 맞았다. 제운성은 그가 장건과 떨어진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 보았다. 그에게 장건과의 싸움은 조금 부담스러운 감이 있었다. 그는 가능하다면 장건을 가문의 품으로 끌어들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완급을 조절하며 달리기를 한참, 마침내 양굉의 정면이 확 트였다.
산맥을 완전히 빠져나온 것이다. 아직 아래쪽으로 완만한 기울기는 있었으나 이제 그의 정면은 마른 풀과 흙먼지 가득한 황야뿐이었다.
“시발! 지도 이거 맞는 거야? 어떤 미친놈이 저런 곳에 보물을 숨겨?”
양굉은 듣는 사람도 없건만 괜히 신경질을 냈다. 그는 말의 속도를 줄이며 품에서 장보도를 꺼내 보았다. 옛 이씨 가문의 암호로 가득한 지도가 펼쳐졌다.
“썩을···”
사실 양굉은 이런 암호나 밀어를 해독하는데 꽤 자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황제의 비밀조직 암룡대 대원이자 무림맹 정보요원 비선이기도 했다. 그리고 도둑이었다. 가진바 무공은 조금 모자라도 뭔가를 훔치고 정보를 해석해 교란하는 것에는 나름 통달했다 자부할 정도였다. 물론 그 자부심이 장건과 만났을 때 그를 지켜주진 않겠지만.
양굉은 지금까지 그들이 이동한 경로와 이연이 알려주었던 대략적인 목적지를 바탕으로 장보도의 기호들을 빠르게 해석했다. 모든 것을 해석할 필요는 없었다. 당장은 방향 정도만 알면 그만이었다.
“좋아, 이쪽으로···”
그때 조금 전 제가의 추격대를 눈치챘을 때처럼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은 그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빠르게 사방을 살폈다.
“니들은 또 뭐냐?”
계곡을 빠져나와 평야를 향해 달리는 양굉의 왼편 저 멀리 말을 탄 무리가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양굉이 빠져나온 계곡 쪽에서는 보이지 않는 방향의 언덕 아래서 대기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숫자가 좀 많았다. 당장 뒤에서 따라오는 제가의 추격대보다 더.
두 눈을 좁히고 그들의 복식을 살펴보던 양굉은 곧 그들의 정체를 깨달았다.
“···암상? 저 양심 없는 새끼들이···”
시커먼 옷자락을 펄럭이며 우르르 달려오는 그 백수 십 명 무사들은 신사천 암상의 무사들로 보였다. 그들이 어떻게 저리 많은 병력을 가지고 있는가는 둘째치고 당장 그 숫자를 보니 양굉은 자신의 심장이 비참하게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양굉은 말의 속도를 올렸다. 지도대로라면 정면으로 쭉 달리는 게 맞지만, 그는 자기도 모르게 오른쪽으로 기우뚱 경로를 틀었다.
그때 그 오른편에서도 등장한 이들이 있었다.
“···시부럴, 아주 그냥 잔치구먼?”
양굉은 이제 어이가 없어서 말을 달리는 와중에도 피식피식 웃었다. 오른편에서 등장한 이들은 숫자가 가장 적었다. 그러나 머리에 황색 천을 둘러싸 메고 충혈된 두 눈을 번들거리며 말을 달리는 모습은 희미한 광기마저 보였다. 양굉에게 달려오는 그들은 태평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본래 그들을 쫓던 제가 추격대, 태평대, 그리고 양굉 입장에선 갑자기 등장한 암상까지, 수백 명의 사람과 그 사람만큼의 말들이 황야에 매캐한 흙먼지를 피우며 제일 선두를 쫓아 달렸다. 그리고 그 선두 양굉은 어느 순간부터 미친놈처럼 처웃으며 말을 달렸다.
“이런 시발! 이 새끼들 내가 그렇게 우습냐! 그래! 다 와! 잡을 수 있으면 잡아봐, 이 병신들아! 내가 잡히나 봐라, 시발-!”
* * *
나무 하나 없는 산인지 언덕인지 불분명한 둔덕 위에 두 필의 말이 서 있었다. 그들의 눈에도 저 앞에서 흙먼지를 피우는 수백의 사람들이 보였다.
“이게 무슨··· 무슨 상황이죠? 설마 저들이 모두 장보도를 노리는 자들···”
“그럴 것이오.”
“세상에···”
그 둘은 새벽이 되어서야 양굉이 사라졌다는 걸 확인하고, 잠 한숨 자지 못하고 달려온 장건과 이연이었다. 그들이 일으킨 뿌연 흙먼지를 바라보던 장건은 이연에게 고개를 돌렸다.
“옛 이씨 가문의 기록을 되찾겠다는 건 결국 저들 모두와 대결하겠다는 것이오. 그럴 수 있겠소?”
이연은 그 말에 장건을 마주 보며 당혹스럽던 자신을 천천히 가라앉혔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 난 매년 아버지의 제사를 치르면서도 할 말이 마땅치 않았어요. 아버지는 죽는 순간까지 있지도 않은 가문에 집착했고, 나한테도 그걸 강요한 사람이었거든요. 그걸 감사하진 않지만··· 적어도 시도는 해 봐야 제사상 앞에서 내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게 내 아버지에게 보일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겠죠.”
그렇게 말한 그녀는 허리춤의 손도끼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양굉 저 새끼한테도 본때를 보여줘야 하고요.”
장건은 가볍게 웃었다.
“그렇지. 그것도 중요한 일이지.”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듯 말하고는 툭툭 고삐를 당겼다. 저 아래 움직이는 수백 필의 말을 보며 흥분이라도 한 것인지 조조가 거친 투레질을 하며 고삐를 끌어당겼다. 어서 달리자는 것만 같았다. 장건은 그 갈기를 가볍게 쓸어주고 말했다.
“갑시다.”
그 후 두 사람도 저 아래 황야에서 소용돌이치는 예비 난장판을 향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