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79)
79화
중원 호남을 가로지르는 강은 장강長江이다. 황하는 그보다 한참을 올라가야 나오는 다른 강줄기다. 호남 마시장에 유명한 말에게 황하룡의 아들이라는 말이 붙은 것은 조금 이상한 일이었다.
저량은 그 생각을 곧바로 물어보았다.
“호남성이면 황하가 아니라 장강이 가로지르는 땅 아니오? 그런데 왜 장강룡이 아니라 황하룡의 아들이오?”
“저 녀석을 밴 어미 말이 황하에서 왔으니까.”
장건은 호로록 찻물을 마시고 말을 이었다.
“···저 녀석 어미는 굉장히 혈통 좋은 말이었소. 원래 황하 유역의 장사치 하나가 황군 장수들에게 선물할 생각으로 먼 서역에서 구해온 여덟 말 중 하나였지. 당연히 그 장사치는 그 녀석들을 모두 애지중지하며 잘 먹이고 가꿨고, 그 자태가 가히 목왕穆王의 팔준八駿처럼 보였다고 하더군.”
팔준은 옛 주나라 목왕의 마차를 끌었다는 전설의 말들이다. 그 말에 저량은 혼자 오- 감탄을 하더니 재빨리 손을 놀려 뭔가를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당시 황하에 문제가 좀 있었소. 요 몇 년간 잠잠하던 강이 갑자기 범람하며 수많은 수재민을 만들어냈지. 마을을 잃고, 집을 잃고,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굶주리고 병에 걸려 난장판이 벌어졌소. 황군이 투입될 정도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고 하오.”
“강의 범람이라. 저기 동쪽 부족이 사는 곳에 그런 일이 가끔 있다고 하던데.”
훈마의 말에 장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강 주변은 땅이 비옥해 농사짓기가 좋지. 범람이 자주 일어나도 농부들이 쉽게 떠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소.”
“맞소. 그렇게 농사가 잘돼서 동쪽 친구들은 중원인 없이도 꽤 큰 도시를 만들었다는···”
“아, 아! 치수治水와 농사의 일은 나중에 둘이 따로 떠들고! 그래서, 그 범람이랑 팔준마랑 무슨 상관이었소?”
장건과 훈마의 이야기가 엉뚱하게 샐 것 같이 보이자 저량이 얼른 끼어들어 경로를 다잡았다. 그 모습에 장건은 빙긋 웃으며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황군이 투입되었으니 일단 겉으로는 혼란이 진정되었소. 하지만 그렇다고 집이 되돌아온 것도 아니고, 황하의 범람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지··· 그때 누군가 말한 것이오. 이건 황하의 용이 분노했기 때문이다. 제물을 바쳐야 한다.”
“···제물?”
저량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재난 중에 용에게 바칠 제물이라고 하니 좋은 그림은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장건은 평온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황군이 질서를 지키고 있는데 사람을 제물로 바칠 순 없었지. 그랬다간 수재민이 아니라 사이비 종교에 빠진 광신도로 규정되어 토벌당할 테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그 장사치가 수입해 온 여덟 말을 제물로 황하룡을 달래기로 했소. 사람은 아니어도 그 말 여덟 필이면 황하룡이 진정하리라 생각한 것이지.”
“그, 그래서?”
“그래서는.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 강 유역에서 제사가 치러졌고, 수천 리 땅을 지나와 잘 먹고 잘 놀던 말 여덟 필은 그대로 누런 황하에 휩쓸려간 거지.”
저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여덟 필에 저 녀석의 어미도 있었다고 하지 않았소?”
“맞소. 그 여덟 필 중 제일이었다고 하더군.”
“···황하에 제물로 바쳐져 휩쓸려갔다며?”
장건은 남은 찻물을 호로록 마시고 빈 찻잔을 내려놓았다.
“말을 제물로 바치자 놀랍게도 황하는 물론이고 날씨까지 진정되었소. 말을 사 왔던 장사치는 원래 생각대로 황군의 호의는 얻지 못했으나 그 일대 많은 사람의 존경을 얻게 되어 그럭저럭 만족했지. 그런데 얼마 뒤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오. 황하에 휩쓸려 사라진 줄만 알았던 말 중 하나가 어느 날 되돌아온 것이오. 그것도 새끼를 배고.”
“오오···”
“하지만 장사치는 기쁘지 않았소. 사실 두려웠지. 분명 그 험한 강줄기에 휩쓸려 간 것을 보았는데 어찌 되돌아올 수 있었을까? 진짜 황하에 용이 있는 것일까? 지금 저 녀석 배에 들어찬 새끼가 정말 용의 자식일까? 만약 그렇다면, 내가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저량은 끄적이던 것을 잊고 장건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옆에 있는 훈마도 마찬가지였다.
“용龍이라는 단어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장사치는 그 말이 새끼를 낳기 전에 아무에게나 팔아치우려 들었소. 그렇게 겁먹을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진짜 제물을 바치고 범람이 멈춘 것을 본 입장에서는 자신이 뭔가 알 수 없는 기류에 휩쓸려간다는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소. 범람의 이유가 황하룡이 제 새끼를 세상에 풀어놓기 위함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 같은 거였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제물을 바쳤던 장사치도 그리 생각하는데, 황하 유역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소?”
훈마가 알만 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무도 말을 사지 않았겠군···”
“그렇소. 그래서 결국 황하룡의 새끼를 밴 어미는 돌고 돌아 한참 떨어진 장강에까지 이르렀지. 거기까지 와서 더는 출산이 미뤄질 수 없었고, 그렇게 저 녀석이 탄생했소. 도저히 그 씨를 찾을 수 없어 황하룡의 자식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호남 마장의 말썽꾼이.”
훈마와 저량은 감탄한 눈으로 조조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녀석은 왜들 그렇게 꼬라보냐는 듯 시큰둥한 표정이었다가, 다시 옆에 있는 암말들에게 찝쩍거리기 시작했다.
“···뭔가, 용의 위엄 같은 건 느껴지질 않는군요.”
장건은 저량의 살짝 실망한 목소리를 들으며 잠시 옛 생각을 떠올렸다.
그렇게 비범하게 태어난 조조는 그 출생 그대로 비범한 행보를 보였다. 평범한 체구에 비해 도저히 다른 말들은 따라올 수 없는 힘과 성질머리로 무리의 우두머리가 된 것은 물론이고, 안장과 같은 마구를 차는 것도 거부해 사람을 태우질 않았다.
허구한 날 울타리를 부수고는 무리를 이끌어 드넓은 들판으로 도망치기도 했으며, 마장을 노린 늑대 무리를 홀로 짓밟아 죽여버리기도 했다. 심지어 어느 날엔 한밤중에 산에서 내려온 호랑이가 울타리를 넘어오자 그 허리를 걷어차 쫓아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용의 자식이건, 무리의 우두머리건 사람 손에 길러진 말은 결국 사람을 태워야 했다. 아니면 짐마차라도 끌던가. 결국 말은 말일 뿐이었다.
어쩌다 보니 조조를 떠맡았던 호남의 말 장수는 그 녀석을 원래 그 어미가 그리하려던 것처럼 황군 장수에게 선물해 버렸다. 무공이 뛰어난 황군이니 난폭한 놈을 오히려 좋아하겠거니 한 것이다.
그러나 이틀이 지나기 전에 조조는 그 장수의 마구간을 때려 부수며 탈출했고, 결국 도로 잡혀 종마로나 쓰이게 되었다.
“···그럼 그쪽은 어쩌다 저 녀석을 맡게 된 것이오?”
저량의 질문은 장건에게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쇠 철판으로 사방이 막힌 어둑한 축사 한 구석, 쇠사슬에 묶여 그 좁은 구석마저 마음껏 돌아다니지 못하던 존재. 오랫동안 갇혀 오직 암말이 들어오는 날에만 잠시나마 흐린 햇빛을 볼 수 있던 녀석. 항상 발정제 섞인 사료를 먹어 삐쩍 곯은 몸뚱이와 물을 쏟아붓는 것으로 대신한 목욕으로 축사 안 가득하던 퀴퀴한 냄새.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도 시퍼렇게 불타던, 말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눈빛. 지금 이 속박만 풀린다면 폐가 찢어지고, 다리가 부러지고, 허리가 내려앉아도 멈추지 않고 달리리라는, 그러나 끝내 이 어두운 철판 안에서 죽는다면 덧없는 넋이나마 육신을 벗어나 너른 벌판을 달리고 말리라는 길들일 수 없는 야수의 눈빛.
그때 장건의 눈에 상대편 암말이 샐쭉하니 고개를 돌리고 멀어지는 모습에 시무룩해진 조조가 보였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조조도 다시 장건을 바라보았고, 둘은 조금 전처럼 다시 두 눈이 마주쳤다.
장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조조를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어쩌다 맡기는. 내가 샀으니 나랑 다니는 거지.”
훈마와 저량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 조조는 다가온 장건을 보고 무슨 볼일이냐는 듯 시큰둥하게 푸르륵거렸다. 장건은 피식 웃으며 아직 녀석에 등에 얹혀 있는 안장을 풀기 시작했다.
그때 장건은 새로운 무공을 위한 경험과 불편한 집안을 벗어나려는 생각으로 이제 막 가문을 떠나던 때였다. 원래 전생에도 가축들의 가혹한 사육환경이니 방목형이니 하는 것에 관심이 없던 그였으나, 어쩌다 보게 된 이 녀석의 눈빛과 모습은 그의 발걸음을 사로잡았다.
장건은 당장에 가지고 있던 돈을 몽땅 털어 조조를 샀다. 그리고 대충 재갈만 물리고는 고삐를 끌어 장강과 황하를 넘어 북쪽으로 오르고 올라 적당한 들판에 이르러서, 그냥 풀어주었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동안 정이 들어서인지 아니면 막상 진짜 벌판에 이르니 마장에서만 살던 말로서 겁이 났던 것인지 녀석은 장건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그날 녀석의 이름이 ‘조조’가 되었다.
“넌 질리지도 않냐? 적당히 해라, 괜히 뒷발에 차이지 말고.”
안장을 벗은 조조는 별걱정을 다 한다는 듯 투레질을 하더니 다시 슬금슬금 암말에게 다가가 껄떡거리기 시작했다. 그를 보며 살살 고개를 저은 장건은 안장을 들고 모닥불로 돌아왔다.
그가 자리에 앉는 것을 본 저량이 독촉했다.
“그래서, 저 녀석을 사서 탔다는 게 끝이오? 황하룡의 아들을?”
“그렇소.”
“아니 무슨, 그게 그렇게 마무리될 이야기가 아닌데-”
저량은 무언가 더 이야기가 있을 것이란 생각에 장건을 재촉하려 했다. 그러나 자신을 바라보며 슬며시 고개를 젓는 훈마의 모습에 자신이 지금 좀 무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큼, 그렇군. 재밌는 이야기였소. 덕분에 새로운 소설에 쓸 이야기가 마구 떠오르는 것 같소.”
장건은 슬며시 책과 붓을 집어넣으며 처음 인사를 할 때처럼 여유를 차리는 저량을 보며 옅게 웃었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가 진짜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든 아니든 흥미롭기만 하면 상관없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헛소리하지 말라며 장건에게 핀잔을 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것만으로 그가 꽤 예의 있는 사람이라는 건 분명했다.
그렇게 약간 실망하던 저량은 잠시 후 도리어 뚝 끊어진 이야기에 상상력이 자극되었는지 다시 책을 펴고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훈마는 못 말리겠다는 듯 작은 한숨을 내쉬더니 찻주전자를 들어 장건에게 내밀며 말했다.
“그래, 남쪽 소식에 재밌는 이야기까지 들었으니, 우리도 달걀로만 때울 게 아니라 요즘 소식 하나를 들려줘야겠지. 들어보시겠소?”
장건은 찻물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잔을 채워준 훈마는 무엇 때문인지 잠시 머뭇거리며 입술을 핥다가 말했다.
“···사실 그쪽이 말해준 것처럼 재밌는 소식은 아니오. 오히려 조금 무서운 이야기지.”
“무서운 이야기라.”
장건은 문득 이제 완연히 어두워진 하늘과 가는 초승달을 올려다보았다. 딱 괴담 이야기하기에 좋은 순간이긴 했다. 훈마는 장건의 중얼거림에 혼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모닥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최근 이 주변에서 무시무시한 소문이 돌고 있소. 길을 지나는 여행자나 상인을 노리는 악귀가 있다는 것이오.”
“악귀?”
“그렇소. 악귀. 이 일대를 지나다 보면 어느 순간 잿빛 구름이 하늘을 가리는 순간이 오고, 그 순간 연기로 이루어진 검은 말과 피처럼 붉은 얼굴을 한 기수가 나타나 여행자를 갈기갈기 찢어 죽인다는 소문이오.”
조금 우스꽝스러운 소문이지만 장건은 웃지 않았다. 이런 황야에서 그런 소문이 돌려면 무언가 시작이 있어야 했다.
“음, 도적이오?”
“아니, 그런 게 아니오. 진짜 악령이라더군. 연기로 이루어진 검은 말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고, 살갗을 벨 수도 없어 막을 수도 없다고 하오. 그를 탄 붉은 얼굴의 기수는 조금 끔찍하외다. 온몸은 새카만데 얼굴만 피처럼 붉은 흉한 몰골이고, 죽인 여행자의 심장을 꺼내 먹는 괴물이라지.”
심장을 꺼내 먹는 악귀라. 장건은 그게 어딘가 익숙함을 느꼈다. 설마 그 마궁魔宮이니 뭐니 하는 새끼들이 여기서 소란을 피우는 것일까.
“그런 소문이 돌면 무림맹이 나설 텐데.”
“아직 신사천까지 소식이 퍼지진 않은 것 같소. 우리도 어제 들렀던 마을에서 들은 소문이거든. 아마 순찰대든 누구든 오려면 몇 주야는 더 지나야 할 것이오.”
장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 소문의 근원이 마궁일지, 아니면 어디서 시답잖은 마공을 주워 익힌 도적이 끔찍한 일을 벌이는 것인지 고민해 보았다. 물론 이제 겨우 소문 한 자락을 주워들은 그가 그걸 알 수는 없었다.
“저기, 사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그때 한쪽에서 꼼지락대던 저량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장건이 말하라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장 무사는 북쪽으로 가는 중인 것 같은데, 맞소?”
“일단 방향은 그렇소.”
“어, 저기, 우리도 북쪽으로 가는 길인데, 내일 이 평원을 빠져나갈 동안만이라도 같이 움직이는 건 어떻소? 사실 나도 그 소문의 악귀가 진짜 악귀라고는 생각하지 않소. 아마 도적놈들이 여행자를 털어먹고 시체를 난도질해 놓은 걸 보고 그런 소문이 돌았겠지. 그리고 그런 소문을 뿌려 악명을 키우는 도적놈들이라면 하나나 둘이 다니는 여행자를 주로 노릴 것이오. 그래야 놓치는 이가 없을 테니까.”
“셋이면 노리지 않을 것이다?”
“하나나 둘보다는 훨씬 낫겠지. 어떻소?”
잠시 생각하던 장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잠깐이라면 혼자 가는 것보다 여럿이 떠들며 움직이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짧은 대화였지만 훈마나 저량이나 꽤 마음에 드는 대화상대였다. 굳이 도적들과 싸우며 힘 뺄 것도 없고.
이후 그들은 잠시 담소를 나누고 잠자리에 들었다. 조조는 그 와중에 끝끝내 암말에게 거부당했고, 그걸 본 장건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다음 날 장건은 도적놈들이 이 주변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이란 생각을 바꿔야 했다. 길을 가던 그들이 정오쯤 만난, 들판 한가운데에 늘어진 엉망으로 박살 난 마차와 그 주변에 걸레짝처럼 찢겨 흩어진 살 조각은 도저히 사람이 한 짓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